< 가심비? 가성비!(6) >
라이프 오브 헐리웃의 총괄 PD가 뜻밖의 결과에 화색을 표했다.
대박이다.
“뭐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게 조이의 열애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열애설? 그러면 이게 김성민의 효과라고? 메이저리그가 그렇게나 인지도가 있어?”
“예전에 강진호 선수 이후로 사무국에서 동아시아 삼국은 특히 신경을 썼다고 알고 있습니다. 개막전 같은 건 종종 그쪽에서 열기도 하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다가 내가 듣기로는 중국은 야구에 큰 관심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한국의 1위와 일본의 4위는 그렇다고 쳐도 중국에서 어떻게 10위나 한 거지?”
실제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프로야구 리그는 2034년인 현재까지 고작 8개 팀. 평균관중이 1만 명 남짓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MLB의 중계권이 제대로 팔리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아, 그 부분은 이게 아무래도 플랫폼에서도 중국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터라······.”
“플랫폼에서 중국 눈치를 보는 거랑 그게 무슨 상관······, 아!!”
“네, 대만 쪽 시청이 중국으로 함께 잡힙니다.”
“확실히, 성민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한 자료에서 대만도 프로리그가 있다는 문장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군.”
성민을 카메오로 사용하면서 동북아시아 쪽에 깜짝 홍보 효과를 기대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시점은 아니었다.
애초에 성민이 등장하는 회차는 마지막 회차. 아직 헐리웃 오브 라이프에 등장한다는 말은 루머 정도로만 떠돌 뿐 공식적인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생각하지 못했던 대박이 터졌다는 부분이로군.”
“어떻게 할까요?”
“이후 시즌 성민과의 계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6회 분량 출연으로 계약 제시를 하기로 내부에서 결정이 끝난 상황입니다.”
총괄 PD가 잠시 고민했다.
지금 이 순위는 열애설로 인한 단발적인 이벤트라고 봐야 했다. 게다가 때마침 새로운 시즌이 오픈되면서 광고가 나간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성민이라는 야구 선수의 이름값이 동아시아에서 저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알았어. 될 수 있으면 계약 최대한 빠르게 잡아보도록 해.”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시즌 8의 제작이 확정되고 예산의 가이드 라인이 내려와야······.”
“답답한 소리 하지 말고!! 그거야 나중에 끼워 맞추면 되잖아. 어차피 우리 이번에도 1위로 시즌 시작했고, 예상치 못한 동아시아 반응까지 나온 상황이야. 여덟 번째 시즌은 무조건 가는 거고 작가도 그 친구를 원하고 있어. 무엇보다 지금 반응 안 보여? 안 그래도 이거 제안하려면 선수의 비시즌 상당히 잡아먹어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다른 거로 꽉 차면 어쩔 생각이야!!”
“네, 넵!!”
“멀뚱히 서서 대답할 시간에 얼른 움직이라고. 얼른!!”
***
사람의 마음은 묘하다.
미셸 에쉬만은 분명 여기저기 애인을 만들고 다닌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느냐 하면 그건 또 그렇지 않다. 그는 종종 전용기에서 맥주를 한잔하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난 모든 여자 가운데 에밀리야말로 최고지.”
그리고 그런 미셸에게 언제 한 번은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아니, 그러면 좀 그런 짓 그만하면 안 됩니까? 불안하지도 않아요? 최고의 여자가 있는데 대체 왜 그러고 다니는 겁니까?”
그리고 미셸은 그의 이야기에 대체 이건 무슨 개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무슨 헛소리야? 넌 맥도날드의 치즈버거가 최고라고 햄버거는 무조건 그것만 먹어?”
실로 뻔뻔한 이야기였다.
-뭐지? 분명 개소리인데 왜 맞는 이야기 같지?‘맞긴 뭐가 맞습니까. 비유 자체가 틀려먹었잖아요. 굳이 따지자면 치즈버거가 최고라도 다른 버거를 먹는 날이 있다면, 그 다른 날에는 치즈버거를 내버려 둬야죠. 지금 저 인간이 하는 건 그 치즈버거 남들은 못 먹게 꼭꼭 감추고 여기저기 다른 버거 사러 다니는 거잖아요.’
-그렇군!! 그러면 어서 가서 저 멍청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확실하게 해주도록.
‘됐습니다. 저 친구가 도덕적으로 하자가 많고, 인간적으로도 그리 정감이 가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녀석이잖아요. 굳이 다툴 필요는 없죠.’
-하긴, 네 기준에 따르자면 저 녀석도 좋은 녀석이긴 하지.
좋은 녀석을 가르는 성민의 기준은 명확하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녀석인가, 아닌가.
그리고 미셸 에쉬만은 필 니크로조차도 인정할만한 ‘좋은 녀석’이었다.
4회 초. 원아웃. 주자 없음.
지금까지 무려 10개의 아웃 카운트가 올라가는 동안 오클랜드는 아무도 출루에 성공하지 못했다.
[오늘 김성민 선수 컨디션이 상당히 좋습니다. 10개의 아웃 카운트 가운데 삼진이 무려 여섯 개나 됩니다.]
[오늘 심판의 판정이 상당히 너그럽습니다. 상대 팀의 투수인 오토 로드리게스 선수도 지금까지 3이닝 동안 안타 세 개. 무실점으로 보스턴을 틀어막고 있어요.]
[자, 타석에 루이스 넬슨 선수가 올라옵니다. 앞선 타석에서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었죠.]
[하지만 이 선수도 한 방이 있는 선수입니다. 아차 하면 담장을 넘길 힘이 있어요.]
몇 번이나 이야기한 것처럼 항상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없다. 그것은 성민 역시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너클볼은 대충 그즈음에 들어가겠지 하는 경험에 따른 ‘믿음’으로 던지는 공이다. 공을 던지는 투수 본인도 어떻게 움직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헛스윙 스트라이크.
볼.
파울.
볼.
그리고 다섯 번째. 움직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살짝 빠지는 코스를 노렸던 너클볼이 중앙으로 크게 몰렸다. 루이스 넬슨의 방망이가 힘차게 움직였다.
-딱!!
완벽하게 때려낸 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충분하다. 방망이를 집어 던진 루이스 넬슨이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쳤습니다!! 루이스 넬슨!! 좌측 방면. 큼지막한 타구!!]
성민이 작년까지 뛰었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체이스필드와 쿠어스필드를 제외하면 완벽하게 투수 친화적인 구장들이다. 반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얄짤 없다. 다섯 개 팀 가운데 투수 친화적인 구장은 단 하나도 없다. 기껏해야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구장인 트로피카나 필드 정도만이 중립구장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보스턴의 홈구장인 펜웨이파크 역시 마찬가지다.
홈런이 많이 나오기 때문은 아니다. 사실 펜웨이파크의 홈런 수는 평균보다 약간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타자구장으로 꼽히는 이유는 한 가지.
펜웨이파크의 좌측 담장.
녹색의 거대한 장벽. 그린 몬스터.
11미터의 거대한 이 장벽이 바로 그 원인이다.
보통이라면 좌익수 플라이로 끝날 수많은 타구가 이 장벽을 두들기고 이루타로 둔갑한다. 게다가 이 장벽을 두드린 공을 처리하기가 쉬운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회전하던 공이 어디로 튕겨 나올지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온다!’
타격의 순간.
미셸 에쉬만의 시선이 타구를 캐치했다.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다. 전성기와 비교해 신체 능력의 저하는 뚜렷했지만, 판단력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수많은 경험을 통해 오히려 더 발전했다.
물론 그린 몬스터까지 달리는 속도는 조금 느렸다.
하지만 애초에 보스턴의 우측 담장은 그리 멀지 않다. 좌측 담장까지 고작 94.5미터.
여기다.
그린 몬스터까지 여덟 걸음.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퉁
담장의 중간 즈음을 두들기는 강한 타구.
그의 시선이 공을 따라갔다. 세 걸음 옆으로. 마지막 발걸음을 왼발로 디뎠다. 이 정도는 베테랑 외야수에게는 너무 기본적이다.
땅을 디딘 왼발을 축으로 글러브에서 공을 뽑아내며 몸을 270도 회전한다. 저 멀리 이루 베이스를 지키고 있는 제롬 스튜버츠가 보였다.
물론 레이저 같은 송구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어깨가 있다면 우익수를 봐야지 좌익수를 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좌익수치고는 나쁘지 않은 송구가 제롬 스튜버츠의 글러브를 향해 날았다.
원바운드.
그리고
-뻐엉!!
이루타를 확신하며 일루를 지나 이루까지 달려 나가던 루이스 넬슨의 다리에 제롬 스튜버츠의 글러브가 톡 닿았다.
“아웃!!”
심판의 손이 올라왔다.
판정까지 갈 필요도 없는 명백한 아웃.
성민이 미셸 에쉬만을 향해 엄지를 치켜주었다.
-확실히 좋은 녀석은 좋은 녀석······. 아니, 아니라 수비 실력은 좋군.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죠. 사람이 좀 모가 나있고, 남한테 잔소리하는 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해서 그렇지 이곳 펜웨이파크 좌측 담장으로 한정 짓자면 정말 최고의 좌익수예요.’
-그러니까 칭찬 맞지?
‘당연하죠!!’
비교적 좁은 수비 레인지. 하지만 정확한 판단력과 나쁘지 않은 어깨.
그린 몬스터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이만한 인재도 찾기 힘들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드와이언 머피 감독이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기회였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루이스 넬슨을 타박할 수도 없었다. 이건 이루까지 달리는 게 맞는 상황이었다. 그저 저 좌익수가 상식 밖의 수비를 한 것뿐이다.
“그래도 이제 두 번째 타순이 돌기 시작하니까 슬슬 때리기 시작하네.”
드와이언 머피 감독이 혼잣말의 볼륨을 일부러 크게 키웠다. 덕아웃의 선수들이 들으라는 의도였다. 저 너클볼 투수도 언터쳐블의 괴물은 아니다.
충분히 공략할 수 있는 인간이다. 선수들에게 그런 자신감을 불어넣으려는 의도였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그리고 공 네 개.
후속 타자인 알론조 산체스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4회 초가 지난 상황에서 투구 수는 41개.
경기가 계속됐다.
***
야구는 복합적인 스포츠다.
크게 보자면 치고 던지고 달린다는 심플한 기능들이지만 그 모든 것은 상당히 복잡한 메커니즘이 들어있고, 거기에 요구되는 재능 역시 다양하다.
모든 재능의 가치가 공평하게 측정될 수는 없다. 머니볼은 거기서 시작된다. 시장에서 가장 저평가된 가치를 파악해서 싼값에 선수를 모은다. 이것은 이기기 위한 재능이 콕 찝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어.”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1년 162경기.
시즌 전체를 통틀어 본다면 맞는 이야기다. 애초에 그 모든 측정의 기준이 1년 162경기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빌리 빈의 머니볼은 그 162경기에서 제법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마지막 스무 경기.
와일드카드 한 경기
디비전 시리즈 다섯 경기
챔피언십 시리즈 일곱 경기
그리고 월드 시리즈 일곱 경기.
먼저 한 경기를, 세 경기를, 네 경기를 이기는 것으로 승부가 결정 나는 토너먼트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당장 선발 투수와 야수의 가치만 따지더라도 포스트 시즌에는 확 차이가 나버리거든.”
162경기 중에서 한 명의 선발이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뛸 수 있는 경기는 32경기에서 34경기.
전체의 2할에 불과하다.
하지만 7경기라면? 아니, 그 이전에 승패가 결정이 나버린다면?
1차전을 등판하고 나흘을 쉬고 5차전.
가끔 괴물 같은 에이스라면 1차전을 등판하고 사흘을 쉬고 4차전.
전체의 4할. 혹은 5할이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볼 때 에이스급 투수의 가치가 2배로 뛰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정규시즌과 포스트 시즌에서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선발 투수만이 아니다. 그리고 오클랜드는 바로 거기에서 새로운 가성비를 찾아냈다.
< 가심비? 가성비!(6)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