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76화 (177/287)

< 가심비? 가성비!(4) >

최소투입 최대효과.

좋은 말이다. 만약 야구가 단순한 기업경영과 똑같았다면 말이다.

물론 메이저리그 구단은 수익사업이고 경영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일반적인 기업과는 다르다.

분명 천 원으로 천오백 원의 효용을 얻는 것은 경제적이다.

스몰 마켓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그런 현명한 소비를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제법 긴 시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천 원을 써서 천오백 원의 효용을 얻는 것은 현명하다. 기업이라면 아주 오랫동안 건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목적은 단순히 살아남는 데 있지 않다.

1등.

오직 1등.

게다가 메이저리그는 애초에 불공정한 경쟁을 한다. 오클랜드는 상위권의 성적을 꾸준히 냈지만, 그 상위권의 성적이 그들을 빅마켓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스몰 마켓 가운데서 조금 여유 있는 수준.

중간 규모도 되지 못하는 크기. 물론 그들이 만약 확 하고 몰아쳐서 우승을 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승은 최소투입 최대효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천 원, 삼천 원을 가진 녀석들이 넘쳐난다. 물론 녀석들은 이천 원으로 천오백 원의 효용을 얻기도 하고, 때론 삼천 원으로 천 원의 효용을 얻기도 한다.

오클랜드는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는 승리했다. 하지만 애초에 오천 원, 만 원을 가진 녀석이라면? 아무리 효율이 안 좋더라도 결국 절댓값에서 오클랜드는 그들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할아버지는 남 좋은 일만 실컷 해준 거라니까요. 벤치마킹만 실컷 시켜주고, 정작 본인은 시대가 변하는데도 그거 못 따라가더니 결국 우승도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그렇게 끝나버렸잖아요.”

“본인 할아버지를 너무 신랄하게 비난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나름 명예의 전당까지 이름을 올린 야구인이시잖아.”

“흥, 그게 뭐 대수라고. 두고 보시라고요. 내가 이 지긋지긋한 팀 꼭 우승시킬 거니까.”

“할아버지 엄청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매일 입으로만 툴툴 거리지.”

“아니거든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프런트.

현 단장인 밥 오웬과 단장 보좌(Assistant General Manager) 데이비드 빈이 언제나처럼 투닥거렸다.

“어쨌거나, 네 할아버지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 팀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솔직히 오클랜드 이 촌구석에서 이나마 할 수 있는 것도 그분이 다 기반을 마련해주셨기에 가능했던 거라고.”

“그야 그렇지만, 어차피 본인도 실수를 인정했잖아요. 2000년대 초반에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어야 했다고.”

“그거야 결과론이고. 게다가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관측기술도 발달하지 않아서 유망주들의 성공확률 예측도 훨씬 떨어졌었어. 게다가 그 이후로는 팀 자체가 탱킹을 하는 순간 폭삭 무너질 확률도 높았다고. 다시 말하지만 애초에 오클랜드에서 야구를 한다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야.”

“하지만 올해는 다르죠.”

“그래, 올해는 다르지.”

천 원밖에 쓰지 못하는 팀이 매번 오천 원씩 쓰는 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한 가지 뿐이다. 몇백 원씩 아껴가며 몇 년을 모으고, 앞으로 몇 년간 쓸 돈까지 대출을 받는다.

그러니까 그렇게 딱 1년.

“확실한 눈도장을 찍고, 이전 계획에 박차를 가해야죠.”

“그래, 이번에도 망할 수는 없어. 산 호세에 내쉬빌에 밴쿠버까지 물을 먹었어. 라스베이거스. 여기까지 놓치는 건 곤란해.”

물론 프로구단의 성적이 연고지 이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도시 시민들의 여론을 흔들 수 있는 요소임은 분명하다.

오클랜드에서는 더이상 가능성이 없다. 아무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보다 좋은 성적을 기록해도 오클랜드의 지역 구조상 돈이 되는 팬은 늘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시즌을 치러낼 체력을 갖췄고, 5번 중에 2번을 이길만한 필승 카드도 마련했어요. 뒷문 역시 단단하게 막아놨죠. 올해는 포스트 시즌에서 이길 수 있는 팀입니다.”

“그 전에 일단 정규시즌에서 이겨야겠지만 말이야.”

***

펜웨이파크의 마운드.

성민은 자신을 응원하는 팬이 부쩍 늘어났음을 체감했다.

물론 그는 시즌 초부터 기대받는 선수였다. 애초에 2,200만 달러라는 금액은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게다가 고작 2년 동안 그를 사용하기 위해 소모한 유망주 역시 상당한 기대를 받던 유망주들이었다.

하지만 개막전 때와는 시선 자체가 달랐다.

그때의 시선이 ‘흐음, 네가 그 유명한 너클볼 투수야? 어디 얼마나 잘 던지나 한번 볼까?’ 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면 지금은 ‘우앗!! 김성민!!!’ 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TV로만 보긴 했는데, 클래스가 다르다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 하는 게 확 와닿더라니까요.”

“정말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요.”

시즌 성적만 따지면 그리 좋지 못했지만 어제의 승리, 그리고 에이스의 포스를 뿜어내는 성민의 등판이라는 점 때문에 펜웨이파크의 3만 8천석은 가득 찼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덕아웃.

드와이언 머피 감독이 마운드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194센티에 98킬로. 훤칠한 청년이 가볍게 몸을 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빌어먹을. 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봤지만 역시 더럽다.

“운이 따라줘야 할 텐데 말이야.”

“그럴 겁니다. 게다가 오늘은 우리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마운드의 성민이 크게 와인드업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메이저 30개 구단을 통틀어 손에 꼽히는 전력분석팀을 갖추고 있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선수단에 비해 프런트의 연봉은 많이 낮긴 했지만, 사실 메이저의 전력분석팀에 불러올만한 인재들이라면 구글이나 애플, 테슬라 같은 대기업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을 대단한 인재였던 만큼 아이비리그 출신의 최소 연 12만 달러에서 시작하는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인재들에게 오클랜드는 좋은 직장이었다. 같은 연봉이라면 다른 구단이 아닌 오클랜드를 선택할만큼.

그들은 가장 선진적인 기구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미 쌓아올린 데이터와 수식 역시 만만치 않았다. 메이저 30개 구단은 모두 각자의 수식을 갖고 있었지만, 오클랜드의 그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다고 할만했다.

그리고 그 가장 정교한 식을 가진 오클랜드의 전력분석팀이 말하기를

“확률로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닙니다. 집중력있게 실투를 놓치지 말아야죠.”

“그게 전부야? 그런 원론적인 이야기가 지금 전부라고?”

“보통 선수라면 뛰어난 강점이 있는 만큼 그 강점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 약점이 있기 마련인데, 이 선수는 그냥 빠른 너클볼, 느린 너클볼, 그리고 속구만 던지잖아요. 뭐 그중에서 공략할 구석이라면 속구이긴 한데.”

“한데?”

“속구의 경우 존을 구 등분 했을 때, 존의 네 귀퉁이를 제외한 다섯 지역으로 들어올 확률이 1할이 채 안 되거든요. 실투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죠.”

라는 무책임한 이야기밖에 들을 수 없었다.

사실 너클볼과 속구라는 단순한 레퍼토리로 리그 최고를 경쟁한다는 말은 그 단순한 레퍼토리 자체가 터무니없는 위력이라는 소리일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선두 타자 제이콥 필립스가 타석에 들어왔다.

초구.

바깥쪽을 살짝 빠지는 빠른 너클볼.

-딱!!

제이콥 필립스가 성민의 초구를 건드렸다.

약한 타구. 빠르게 달려 나간 성민이 그대로 맨손으로 공을 주워 일루에 송구했다.

-뻐엉!!

“아웃!!”

훌륭한 수비였다.

공으로 달려드는 속도가 특출난 것도, 송구가 특출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공을 던진 직후의 균형감각. 그리고 판단력이 기가 막히다.

‘균형감각이야 애초에 폼 자체가 억지로 끌어올린 폼이 아니니 그렇다고 쳐도, 판단능력 하나는 정말.’

에두아르도 크루즈가 혀를 내둘렀다.

방금의 경우 글러브로 공을 주워서 던졌으면 아슬아슬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맨손으로 공을 잡는 것은 위험하지만, 확실하게 아웃을 시키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성민이 항상 이렇게 위험한 플레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지금 주자가 조금만 느린 주자였다면 성민은 안전하게 글러브로 공을 잡아 일루에 송구했을 것이다.

결국, 찰나의 순간 그것을 파악하는 판단력의 문제다.

에두아르도 크루즈는 성민이 최근 보여주는 저 괴물 같은 수비의 원동력은 바로 저것이라고 확신했다.

-점점 괜찮아지는구나.

‘네, 뭐 확실히 피칭에 여유가 생기니까 시야가 좀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게다가 뭐든 하면 는다고, 이것도 하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기도 하고요.’

-그래, 다른 녀석들도 부디 점점 익숙해졌으면 좋겠구나.

드와이언 머피가 성민의 수비에 인상을 찌푸렸다.

현역 최고의 투수라고 불리는 디아고 헤밍턴은 물론이거니와 메이저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전성기의 페드로 마르티네즈까지.

세상에 완전무결한 투수는 없다.

성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정말 대단한 투수지만 한 시즌을 통틀어 보면 결국 50점이 넘는 자책점을 기록한다. 경기당 평균 2점가량을 내준다는 뜻이다.

물론 항상 그런 점수를 내주는 것은 아니다. 확 무너지는 몇 경기에서 5점 6점을 내주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시즌 평자책 2점대 선발 투수에게 점수를 뽑아내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가능성은 있는 거란 말이지. 게다가······.’

자책점만이 점수는 아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심각한 상태를 어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그는 지금 저 그라운드에서 가장 수비를 잘하는 야수가 성민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뻐엉!!

“스트라잌!!”

잠시 타석에서 물러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2번 타자 루이스 넬슨이 헬멧을 벗고 머리를 긁적였다.

젠장.

이게 스트라이크라고?

그는 공을 보는 눈에 제법 자신이 있었다. 그런 그의 눈으로 볼 때 이건 명백히 존을 벗어난 공이었다. 안그래도 치기 어려운 공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슬아슬한 공에 스트라이크 콜까지 내주면 이건 답이 없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그가 다시 타석에 들어왔다.

-뻐엉!!

“스트라잌!!”

이런 미친.

이번에는 정반대였는데 이걸 또 잡아준다고? 무슨 던지는 공마다 전부 스트라이크라 이건가?

그리고 세 번째.

-딱!!

비슷한 코스로 올 것처럼 날아오던 너클볼이었다. 즉 이건 휘두를 수밖에 없는 공이었다. 하지만 정작 공은 존을 상당히 벗어났다. 억지로 밀어 친 공이 파울라인을 크게 벗어났다.

루이스 넬슨의 마음이 요동쳤다.

날아오는 공은 그런 루이스 넬슨의 마음보다 더 크게 흔들렸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멋진 헛스윙.

허공을 향해 방망이를 퍼올린 그의 자세가 조금 무너졌다.

젠장.

짜증이 숨겨지지 않는다.

타석에서 벗어나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길. 대기 타석에서 기다리던 알론조 산체스에게 뿔이 잔뜩 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오늘 심판이 미쳤어.”

“응?”

“존이 태평양이야. 아주 어디로 던지건 다 스트라이크 콜을 할 기세야.”

“조언 땡큐. 조금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돌려봐야겠군.”

“그래, 네 힘이면 뭐 어떻게 될 수도 있겠네.”

작년 39개의 홈런을 기록했던 알론조 산체스가 타석에 섰다.

한 방이 있는 타자다.

오클랜드 덕아웃의 드와이언 머피 감독이 약간의 기대를 담고 그를 바라봤다.

-딱!!

그리고 정확히 30초.

단 하나의 공을 던진 성민이 마운드를 내려왔다.

1회 초. 공 여섯 개.

삼자범퇴.

보스턴의 공격이 이어졌다.

< 가심비? 가성비!(4)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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