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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볼-173화 (174/287)

< 가심비? 가성비!(1) >

상황은 성민이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돌아갔다.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 성민을 따라다니던 한국의 기자들은 호텔의 CCTV를 입수하여 경쟁하듯 기사를 작성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경쟁하듯 SNS로 퍼 날랐다.

-에이, 이거 조작 아님?-

-멍청한 소리 하고 있네. 호텔 CCTV에 술집에서 이동하는 동선까지 다 조작했다고 보는 것보다 의혹성 기사 하나 내놓고 입 다물고 있는 그 타블로이드 쪽의 신뢰를 의심하는 게 정상적인 사고방식 아니냐?-

-그거야 김성민이 돈으로 막았겠지. 걔 돈 엄청 많잖아.-

-어휴, 음모론도 지겹다. 야 CCTV 조작이면 전문가들이 지금 가만히 있겠냐? 그리고 애초에 기사에서도 함께 저녁을 먹었다는 이야기만 있지, 마지막까지 같이 놀았다는 이야기는 없었거든?-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냐?-

-내버려 둬. 어차피 저런 애들은 이성적인 대화가 안 통함.-

물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단순히 성공한 사람을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마음만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몇몇 한심한 인간들은 여전히 쓸데없는 트집을 잡았지만,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라이프 오브 헐리웃. 조이 제임슨. ‘성민이 토론토까지 가서 일반인을 만나고 다녔다고? 풋, 그럴 리가. 성민은 이곳에서도 얼마든지 여자를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인데? 서러브레드 대신 동네 짐말을 택하는 사람도 있어?’]

[조이 제임슨!! 나는 서러브레드. 성민은 서러브레드 대신 짐말을 택하는 바보가 아니다.]

게다가 조이 제임슨의 멘션이 또 한 번 크게 화제가 됐다. 둘의 열애설이 떠돌기는 했지만, 그것을 공식화한 적은 없었는데 이 정도면 이제 거의 공식적으로 발표만 하지 않았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김성민!! 헐리웃 여배우 조이 제임슨과의 만남 공식화?]

[라이프 오브 헐리웃에 출연 중인 조이 제임슨!! 그녀는 대체 누구?]

미국의 뉴스들이 조이 제임슨과 만나는 김성민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떠들어대고 있었다면, 한국의 뉴스들은 김성민과 만나는 조이 제임슨이 누구인지를 떠들어댔다.

어쨌거나 성민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근데 너 이렇게 열애설 나는 것 괜찮냐?

‘어차피 라이프 오브 헐리웃 계속 찍으려면 공식적으로도 사귀는 형태로 가는 게 좋죠. 그거 시트콤이지만 마치 다큐멘터리인 것처럼 촬영되는 거잖아요.’

페이크 다큐인 라이프 오브 헐리웃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현실에서도 커플이 되어주는 것이 극에 더 현실성을 불어넣는 방법이기는 했다.

물론 리스크는 있다. 현실의 성민과 조이가 헤어지지 않는 이상 극에서도 둘을 헤어지게 만들기 힘들지만, 반대로 현실의 둘이 관계가 나빠진다고 해도 극의 반응이 좋다면 대외적으로 헤어졌다고 발표하기 힘들어질 수가 있다.

‘게다가 뭐, 조이도 어느 정도 사업적인 감각은 있으니까요. 걔도 알아서 잘할 겁니다.’

위성을 사용한 데이터망을 통해 자신의 와이프와 통화를 이어가던 미셸 에쉬만 역시 비행기가 다시 보스턴에 닿기 전에 환한 미소로 성민을 찾아왔다.

“성민 고마워.”

“고맙기는. 가족끼리 서로 도와야지. 그래서 뭐래? 해결은 잘 된 거야?”

“어, 일단 얼굴 보고 이야기하기로 했어. 네 말처럼 그 기사에서 틀린 부분들 이야기하고 절대 아니라고 딱 잡아떼니까 일단은 납득하는 것 같더라고.”

“미셸, 사실 깊숙한 부분까지는 내가 상관할 게 아니지만······.”

성민의 서두에 미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잔소리를 하려는 속셈일까?

그러고 보면 성민은 진지하게 만나는 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밤놀이를 거부할 만큼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결혼까지 해서 여자들이랑 놀아나지 말라는 이야기 따위는 그리 듣고 싶지 않았다.

원래 대부분 사람은 남에게 잘못을 지적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은 본인도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아는 경우 더 하다.

“거짓말을 할 때는 말이야 몇 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어.”

“응? 거짓말?”

“어, 거짓말.”

“그게 뭔데?”

하지만 성민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가 생각했던 잔소리가 아니었다.

“너 와이프 한테 어떻게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네가 모든 걸 다 부정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들은 보통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면서, 이것만은 아니기를 이라고 바라는 경향이 있어. 이게 내가 말했던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부분이거든.”

“그렇지?”

“그런데 또 반대로 최악을 상상했는데 일이 너무 잘 풀리면 굉장히 불안해진단 말이지.”

“불안해진다고?”

“그래, 최소한, 이 정도는 손해를 보겠지. 생각했는데 아무 손해 없이 넘어가면 처음에는 ‘운이 좋군.’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뭔가 의심이 드는 게 인간의 심리란 말이지.”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그래,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 하나만 지키고 나머지는 다 솔직하게 말하라는 뜻이야. 나를 보내고 금방 따라 들어갔다. 뭐 이런 이야기 하지 말고 말이야.”

성민의 이야기에 미셸이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봤을 때 성민은 신뢰할만한 남자였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다 좋게좋게 넘어가는 게 좋은 거 아닐까?”

“당장은 그게 더 좋아 보이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고 보면 또 그게 아니더라고. 하지만 뭐 선택은 네 몫이야. 난 그냥 가족에게 조언해주는 것뿐이니까.”

미셸 에쉬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민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맥스 자식은 옆에 다른 애들도 다 있는 곳에서 내가 한 소리 더했어. 베테랑에게 함부로 구는 개 같은 버릇은 고쳐야 한다고 말이야.”

“젠장, 고작 그 정도로 되겠어?”

“물론,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지. 하지만 알잖아. 저 자식들 작년에 어땠는지. 아직 베테랑들을 왜 존중해야 하는 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애들이야. 계속 누르기만 하면 튀어 오를 게 분명하다고.”

“제깟 놈들이 튀어 올라 봤자지.”

“미셸, 우리 어차피 야구를 하는 건데 너도 이기는 게 더 좋잖아. 그리고 베테랑의 역할이라는 건 결국 저런 머저리들을 어떻게든 달래서 멱살 잡고 승리로 끌고 가는 거기도 하고. 이번에는 네가 적당히 혼내고 끝내는 그림으로 가는 게 어떨까? 보다시피 녀석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명확히 알고 있잖아.”

한참을 고민하던 미셸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네가 원하는 대로 스무스하게 마무리가 됐구나.

‘네, 다행히 대충이라도 일단락이 되긴 했네요. 휴, 그나저나 제가 너무 안일했던 것 같아요.’

-안일? 뭐가?

‘그냥 애들이 재능도 있고, 그냥 살살 달래가면서 경험을 쌓다 보면 금방 재능을 개화해서 좋은 선수들이 되겠거니 했는데 이건 역시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상황을 컨트롤 해야겠어요.’

각자의 복잡한 생각을 품은 비행기가 활주로를 밟았다.

근 2주 만의 귀환.

보스턴 레드삭스의 다음 상대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1세기 초반 빌리 빈의 머니볼 이후로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효율성으로는 수위를 달리는 가성비의 팀이었다.

***

처음 권 여사가 SNS를 통해 성민의 소식을 접했을 때, 권 여사는 8년 전의 악몽이 뇌리를 스치는 기분이었다.

사실 술이 먼저였는지, 부진이 먼저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무엇이 먼저인지는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두 가지가 서로를 점점 더 키워나갔다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잠깐만, 근데 또 나쁘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지?”

사실 8년 전에는 악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장 야구를 그만둔다? 당시 성민은 어마어마한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루키였지만, 그 어마어마한 계약금은 약 30%를 세금으로 뜯겼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어마어마하지만 결국 가게를 한, 두 번만 말아먹어도 쫄딱 망할 액수였다. 평생 운동만 한 녀석이 단박에 사업에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으니 제법 불안한 금액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일정의 수준을 넘어선 자본은 이제 개인의 노동으로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위용을 보여준다. 그리고 성민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통해 벌어들인 금액은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넘어서는 그 임계점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여자 잘 만나고 다니는 것 같으니, 야구 그만둔다고 해도 이제 어디 건물만 잘 잡고 임대만 놔도 풍족하게 살 거 아니야. 아직 내가 그런 거는 사기 안 당하게 잘 알아봐 줄 수 있으니까.”

사실 권 여사는 성민이 야구로 성공을 하건 말 건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성민이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존중했지만, 그녀에게 더 중요한 것은 성민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는 사람의 행복은 남들 해서 좋았던 건 다 해보고, 남들 하기 싫은 건 최대한 안 하는 삶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즐거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성민이 갓 태어나 바닥을 뒹굴던 그 날들이었다. 남편과 교대로 2시간씩 쪽잠을 잤던 나날이었지만 정말이지 너무나도 행복한 시기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도 자신이 경험했던 그 평범한 행복을 경험해보기를 원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김성민!! 헐리웃 여배우 조이 제임슨과의 만남 공식화?]

[라이프 오브 헐리웃에 출연 중인 조이 제임슨!! 그녀는 대체 누구?]

“응?”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미국 시각으로는 저녁 6시 경. 한국 시각으로는 아침 7시.

은근히 소문으로만 돌았던 성민의 열애설이 마치 기정사실처럼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돌아온 지 고작 일주일.

권 여사가 창고 깊숙이 넣어두었던 캐리어를 다시 꺼내 들었다.

***

머니볼이라는 말은 너무 유명하다.

유명하다 못해 이제는 사골곰탕처럼 우려낼 것도 없는 단어가 되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은 그 머니볼이라는 것의 개념을 착각한다. 2034년인 지금도 머니볼=세이버메트릭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의 방법론이고, 머니볼은 그것을 활용한 경제적인 팀의 운용이다.

즉 머니볼이 추구하는 것은 세이버메트릭스 상으로 더 좋은 선수를 쓰는 것이 아니다. 머니볼이 추구하는 것은 극한의 가성비.

가격 대비 성능이 더 좋은 선수로 로스터를 꾹꾹 채워 넣는 것.

그것이 바로 빌리 빈이 탄생시킨 머니볼의 핵심 개념이다.

물론 2034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머니볼은 1998년 시작했던 빌리 빈의 머니볼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 사상의 가장 근간이 되는 핵심이 ‘가성비’라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클랜드가 연고지 이전에 성공하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을 요소였다.

“내가 그래서 저 녀석은 꼭 데리고 오고 싶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젠장. 속이 쓰리네.”

< 가심비? 가성비!(1) > 끝

ⓒ 묘엽

작가의 말

저는 세상에 모든 머머리를 존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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