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68화 (169/287)

< 팀 동료(3) >

시리즈 2차전 보스턴이 토론토에게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남은 경기는 이제 한 경기.

성민의 차례가 돌아왔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메이저리그의 유일한 캐나다 팀이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스포츠와 내셔널리즘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캐나다 사람 중에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십중 팔구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응원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토론토라는 도시의 크기 자체가 크다. 사실 메이저 팀들의 연고지 가운데 뉴욕과 LA 정도를 제외하면 단일 도시로 토론토보다 큰 곳도 없다. 광역권으로 봐도 시카고 정도만이 토론토에 비길만하다.

게다가 뉴욕, LA, 시카고. 모두 한 도시에 두 개의 팀이 있는 도시들이다.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면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사실상 가장 큰 마켓을 가진 팀이다. 실제로 한참 잘나가던 시절에는 최다관중을 기록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이미지 속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어딘가 한 끗 부족한 팀이다. 실제 선수들도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강력한 컨텐더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같은 지구의 라이벌이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다. 사람들의 이미지 속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영원한 3등이었다.

실제로 토론토가 좋은 선수를 수급하기 힘들어하는 이유 중에는 국경 너머의 캐나다라는 점, 캐나다의 세금이 조금 세다는 점 외에도 그 컨텐더가 될 수 없다는 루징팀의 이미지도 한몫 단단히 했다.

하지만 2034년 현재.

보스턴이 꾸준히 죽을 쑤는 상황에서 토론토는 3년 연속 지구 2위를 기록하며 와일드카드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물론 그 3번의 와일드카드 가운데 디비전 시리즈까지 진출한 경기는 한 번에 불과하긴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가을야구를 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들은 여전히 FA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다른 팀보다 더 많은 돈을 불러야 했지만, 그래도 더 많은 돈을 부르고도 까이는 수모는 거의 사라졌다.

좋은 성적과 비싼 선수는 팬을 끌어 들인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캐나다 전 지역이라는 잠재적인 시장을 가진 팀이었다. 총인구 4,200만. 미국에서 가장 큰 주인 캘리포니아의 인구수에 맞먹는다. 작년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1993년 이후 무려 40년 만에 400만 관중을 동원했다.

참고로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홈으로 사용하는 로저스 센터의 좌석수는 49,500석이며 일 년에 열리는 홈경기는 81경기다.

즉, 작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모든 경기는 매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 오늘도 로저스 센터는 관중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제와 어제. 2경기 연속으로 승리를 가져간 토론토 블루제이스. 로저스 센터를 찾은 관중들은 아마 오늘도 그들의 팀이 승리를 가져오기를 바랄 겁니다.]

[하지만 승리를 원하는 것은 보스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시리즈 스윕을 내줄 수는 없죠.]

[게다가 오늘 선발로 등판하는 선수는 다름 아닌 우리 김성민 선수거든요. 작년에 이어 이번 시즌도 정말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요. 연 2,200만 달러가 헐값이라고 주장하는듯한 활약입니다.]

마운드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1선발. 애덤 맥도날드가 올라왔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과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이 거구의 사나이는 우락부락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핀포인트 제구를 장기로 하는 기교파였다.

-딱!!

1번 타자인 제롬 스튜버츠가 초구를 건드렸다.

이루수 정면 내야 땅볼. 제롬 스튜버츠가 달려볼 시간도 없이 깔끔하게 물러났다. 이어지는 후속 타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 일곱 개.

애덤 맥도날드가 보스턴의 젊은 타자들을 노련하게 막아냈다.

[애덤 맥도날드 선수. 오늘도 아주 훌륭합니다. 이 선수는 정말 언제봐도 땅볼 유도가 참 일품이에요.]

[커멘드가 참 예술이죠. 지난 3년간의 로케이션을 살펴보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보시면 보통 아무리 제구가 좋다는 말을 듣는 투수도 대부분은 존의 복판에 가장 높은 빈도로 공을 던지거든요. 근데 이 선수 같은 경우는 영점 자체가 좌우 낮은 코스에 딱 맞춰져 있어요.]

[그렇습니다. 이런 제구력이 있기때문에 최고 93마일을 던지는 우완 투수가 리그 최고의 에이스 자리를 경쟁할 수 있는 거죠. 실제로 지난 3년 타구 발사각은 2도에 불과했고 평균적인 타구 속도는 84.1마일로 리그 최저였습니다.]

[아, 마운드에 김성민 선수가 올라옵니다.]

마운드에 오른 성민이 등을 돌려 그라운드의 야수들과 외야의 관중을 살폈다.

-장관이로군. 정규시즌, 평일 경기라는 게 믿겨 지지 않을 정도야.

‘그러게요. 이런 건 2만 석짜리 구장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이었는데 말이죠.’

평일 경기에 49,500석 매진.

그리고 2연패.

보스턴 야수들의 표정이 좋지 못 했다. 특히 내야를 지키는 애송이들의 표정은 가관이다. 그나마 볼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저 자식,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드는 놈이긴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죠.’

저니맨이라는 것은 결국 그 팀에 계속 남아 중심이 되기에 무언가 부족한 선수라는 의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꾸준하게 그를필요로 하는 수요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미셸 에쉬만은 분명 꼰대에 워크에씩도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1차전에서 몇 가지 실수가 있었지만, 지난 2차전에서 그는 제법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오늘 3차전.

이 압도적인 기세의 토론토 블루제이스 앞에서 평소와 똑같은 여유를 보이는 야수는 오직 미셸 에쉬만 뿐이었다.

타석에 토론토의 선두 타자 로버트 네일러가 타석에 들어왔다.

그는 지난 2경기에서 연신 맹타를 휘둘렀다. 점점 흐름을 타기 시작한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고조.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가볍고 감각은 예리하다.

올해 27세가 된 이 젊은 우익수는 브레이킹 시즌을 맞이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상태였다.

초구.

마치 시간이 느려지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 그의 시야에 마운드의 투수가 움직이는 모습인 똑똑하게 들어왔다. 물론 착각이겠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귀 뒤에서 뽑혀 나오는 투수의 오른손 그립마저 보일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어떤 공이라도 쳐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생겨나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성민의 오른손 끝이 야구공을 밀어냈다.

약 0.07초. 날아오던 공이 슬쩍 흔들렸다. 바깥쪽? 본능은 방망이를 휘두르라 소리쳤지만 이성이 그것을 억눌렀다. 그리고 다시 0.05초. 공의 흐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또 0.07초 만에 공의 움직임이 다시 바뀐다.

칼날 같은 감각이기에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혼란.

27세의 젊은 타자가 엉거주춤하게 방망이를 멈춰 세웠다.

-뻐엉

“스트라잌!!”

초구 루킹 스트라이크.

자신만만한 젊은 타자의 등에 한줄기 땀방울이 흘렀다.

이것이 메이저 최정상급 너클볼 투수인가?

기세 좋게 불타오르던 젊은 타자가 신중하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필 니크로가 성민의 공에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그를 처음 만난 이후로 햇수로 4년. 기간으로 하면 이제 고작 2년 6개월이다. 비록 처음에 사기적인 방법을 사용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최고의 너클볼러가 24시간 1:1 관리를 해줬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이건 정말 터무니없는 성장 속도다.

두 번째.

로버트 네일러가 성민을 응시했다.

젊은 선수의 기세라는 놈은 조금 묘한 구석이 있다. 한번 기세를 타고 뒤를 생각하지 않은 채 방망이를 휘두를 때는 끝모르고 뻗어 나간다. 하지만 그 끝 모를 기세가 잠시라도 주춤하는 순간.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조용해지기도 한다.

고작 한 번의 루킹 스트라이크로 좋았던 컨디션이 나빠졌을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눈 옆을 가리고 오직 정면만을 보고 달리던 경주마의 시야가 탁 트인 것처럼, 오직 투수에게만 집중하던 로버트 네일러의 머릿속에 너클볼의 잔상이 남아버렸다.

잠깐의 주춤거림.

-딱!!

몸쪽 깊숙한 코스.

스트라이크 존과 히트 바이 피치 사이의 어딘가. 로버트 네일러의 방망이가 존을 벗어난 성민의 공을 건드렸다.

완벽한 땅볼 코스.

방향도 좋았다. 이루수인 제롬 스튜버츠가 날아오는 타구를 향해 움직였다. 익숙하지 않은 인조잔디. 하지만 그는 애초에 감각이 있는 남자였다. 지난 두 경기를 통해 인조잔디의 빠른 타구속도에는 충분히 적응했다.

‘불규칙한 바운드가 없으니 오히려 더 편하더라고요.’

그는 인조 잔디에 적응 못 해서 뒤로 공을 흘리는 다른 내야수들이 들으면 기가 찰만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뱉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이야기가 허풍이 아니었음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빠르게 날아오는 땅볼 타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타구를 낚아채 마치 연결 동작처럼 1루의 랄로 가야르도에게 공을 토스했다.

“아웃!!”

원아웃.

시작이 산뜻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타구의 방향이 2, 3루 간이 아닌 1, 2루 간으로 향했다는 점이었다.

-네 계획대로라면 저기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살다 보면 운이 없는 날도 있는 거죠. 그래도 진짜 이번 경기만 참으면 끝이잖아요.’

보스턴의 2루와 3루 사이.

본래 일정대로라면 부상에서 돌아온 후안 칼초가 있어야 할 그 곳에는 여전히 루시 알베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토론토에서 합류하기로 했던 후안 칼초는 컨디션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은 탓에, 리햅 경기를 몇 경기 더 치르고 홈인 보스턴에서 합류하기로 결정이 났다.하필 루시 알베리 녀석의 마지막 경기까지 책임져야 한다니. 성민으로는 조금 유감스러운 결과였다.

경기가 계속됐다.

분명 토론토의 최근 성적은 괜찮았고 기세 역시 매서웠다. 하지만 성민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최강팀인 양키스를 상대로도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줬던 투수였다. 게다가 오늘 그의 상대인 토론토는 성민을 처음 상대해보는 상황이었다. 선수 대부분이 제대로 된 너클볼 투수는 처음 경험해본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삼자범퇴.

마운드의 성민이 토론토의 타자들을 가볍게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

피터 스테빙슨은 맥스 슈피겐에게 매우 충분한 자료를 뽑아냈다.

자신의 발언이 어떤 식으로 기사화 될지도 모르는 저 순진한 어린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아, 진짜 이 이야기는 기사로는 쓰시면 안 됩니다. 아시죠?”

“당연하죠. 기사에 맥스 슈피겐 선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말이 나가면 팀에서 곤란해지잖습니까.”

“아니, 뭐 곤란해질 건 없지만, 어쨌든 남 험담하고 다니고 그러는 건 좀 그렇잖아요.”

“걱정하시는 일은 절대 없을테니 안심하세요.”

물론 그가 맥스 슈피겐의 이름을 언급할 일은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보스턴의 ‘모 선수’라는 말 정도? 아마 그 ‘모 선수’가 맥스 슈피겐이라는 신뢰성 높은 이야기는 그와 아무 상관없는 미국 IP를 쓰는 누군가가 댓글로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다.

< 팀 동료(3)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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