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할(2) >
보스턴과의 개막전은 양키스의 선수들에게 생각보다 큰 반향을 안겨줬다.
다만 그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결국 양키스는 보스턴에게 2:1로 위닝 시리즈를 가지고 왔다. 게다가 이후 보스턴이 보여주는 모습은 지리멸렬 그 자체였다. 그 분위기가 오래 갈 수가 없다.
애초에 야구는 시리즈 3번의 경기 중에서 1번을 이기고 1번을 지는 게임이며,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나머지 1번의 경기라는 말이 있다.
맞는 이야기다.
‘그래, 오늘은 우리가 이겼어. 하지만 다음은? 그리고 그 다음은?’
하지만 한 사람.
양키스의 지난 10년을 책임졌다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사나이.
리암 루카스만큼은 여전히 양키스를 걱정했다.
21세기 초반, 뉴욕 메츠라는 터무니없는 왕조가 있었던 탓에 조금 평가절하되는 면이 있었지만, 사실 양키스의 최근 10년은 무척이나 대단했다.
10년 동안 여섯 번의 지구우승과 세 번의 와일드카드.
네 번의 월드 시리즈 진출.
그리고 두 번의 우승.
물론 현재도 양키스는 훌륭하다. 그들은 여전히 다저스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팀이며, 이번 시즌의 강력한 우승 후보다.
하지만 다저스 선수단의 평균 연령이 28.09세로 리그에서 여섯 번째로 젊은 팀인데 반하여 양키스의 평균 연령은 31.71세. 리그에서 가장 높은 평균 연령이다.
그리고 빌어먹을 보스턴 레드삭스는 고작 26.43세에 불과하다. 두 번째로 낮은 마이애미 마린스가 27.01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터무니 없다. 물론 평균연령이 낮다고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그 젊은 선수들이 그대로 성장한다는 보장도 없고, 성장을 했을 때 그 팀에 남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기에 이것은 그저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양키스는 항상 달리는 팀이고 그렇기에 언제나 기량이 가장 절정에 다다른 선수들을 ‘돈’으로 사 왔다. 미래를 기약하는 팀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팀이라면 당연히 평균 연령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리암 루카스는 밀려오는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지금의 양키스에서 2010년대의 양키스, 혹은 메츠가 떠올랐다.
고령화된 선수단. 탄생하지 않는 프랜차이즈. 돈으로 사온 고액 FA 선수들의 실패. 물론 그렇다고 해도 양키스는 양키스였고 메츠는 메츠였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가는 법이다. 그들은 201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강팀이었다.
하지만 데릭 지터가 있었던, 마리아노 리베라가 있었던, 프레스톤 윌슨이 있었던. 그리고 강진호가 있었던 시절의 모습은 찾지 못했다.
양키스가 다시 지금의 모습이 되는 데에는 거의 10년에 가까운 주춤거림이 필요했다. 메츠? 그들은 여전히 전성기의 반의반도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날은 리암 루카스가 은퇴한 이후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사실 그가 책임질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긴 시간 양키스라는 팀의 상징이었던 이 남자는 필요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
무엇보다 은퇴가 다가온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리암 루카스 역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후배의 모습에 뭐라도 한 마디를 건네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남자라는 점 역시 주효했다.
“내전근.”
“네?”
“지금 팔로우 스로우가 흐트러지는 거, 내전근 때문일 거라고.”
“아, 네. 감사합니다.”
양키스의 선수 가운데 가장 어린 찰스 워드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순순한 모습이다. 하지만 리암 루카스는 쉽게 눈치챘다. 이 녀석 지금 이 영감이 갑자기 무슨 개소리인가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21살의 어린 나이지만 빅리거다. 당연히 자신의 방법에 확신이 있을 것이다. 오히려 실패 없이 빅리그에 빠르게 올라온 만큼 그 확신은 더 강하겠지.
사실 지금 리암 루카스의 조언은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물론 리암 루카스의 조언으로 찰스 워드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더 나빠진다면? 심지어 도움조차 요청하지 않았는데?
“뭐,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야. 그냥 늙은이의 오지랖 정도로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팔로 스로우가 제대로 몸에 안 감긴다고 그걸 고치려는 건 타격폼을 건드는 셈이야. 내가 볼 때 너 마이너 시절에는 팔로우 스로우에 아무 문제 없었을 것 같은데? 아니야?”
하지만 눈앞에서 폼이 흔들린다고 폼 자체를 건드리려는 멍청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마, 맞습니다. 그걸 어떻게? 혹시!!”
“혹시는 무슨, 내가 단장도 아니고 마이너 선수들까지 일일이 관심을 갖을 이유는 없지. 그냥 내 메이저 초년생 시절이 생각나서 그러는 거야.”
“루카스 씨의 초년생 시절이요?”
“소름 돋게 루카스 씨는 무슨. 그냥 리암이라고 불러. 아 잠깐만, 네가 21살이었던가? 그러면 그냥 계속 루카스 씨라고 불러라. 젠장.”
21살.
리암 루카스 본인보다 그의 아들 또래에 더 가깝다.
“그보다 루카스 씨, 대체 그 사실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너 겨울에 운동 열심히 했지. 뭐 당연히 평소에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유달리 더 열심히했잖아.”
“그, 그건, 또 어떻게? 네, 맞습니다.”
“그야 뻔하지. 주전 중견수이던 그레이엄 딜런도 필리스로 갔겠다. 작년 성적은 어마어마하게 나왔겠다. 덕분에 마이너에 딱히 너랑 경쟁할만한 중견수도 없었고. 잘하면 빅리그 올라올 기회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찰스 워드가 얼굴을 붉혔다.
“부끄러워할 이야기는 아니야.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지. 기회가 왔을 때 잡은 거잖아. 이 바닥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걸 제대로 하는 놈이 살아남는 거야.”
“네,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내가 볼 땐 그게 문제야. 겨울 동안 너무 열심히 한 거.”
“네? 하지만 딱히 몸에 피로는 없습니다. 트레이너를 통해서 확실하게 관리했거든요.”
“알지. 알아. 게다가 네 나이에는 겨울에 좀 무리했다고 시즌 초부터 퍼질 나이는 아니야.”
“그렇다면 대체?”
처음 건성으로 고개를 숙이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
리암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잖아. 내전근 문제라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전근이 지친 게 아니라, 밸런스가 깨졌어. 햄스트링은 쉽게 커지는 큰 근육이잖아. 햄스트링 성장에 비해서 내전근의 성장이 더뎠던 거지. 덕분에 고관절의 내전이 좀 부실해진거야.”
“네? 하지만 분명 트레이너가.”
“그 사람 갈아치워야겠어. 뭐 겉보기 나쁘지 않고, 실제로 일상 생활에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원래 너의 타격폼에 딱 맞는 비율의 성장이 아니었어. 뭐, 한 50대? 60대쯤 되는 경험 많은 트레이너를 가져다 쓴 건가?”
마치 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상황을 딱딱 알아맞히는 리암 루카스의 발언에 찰스 워드가 또 한 번 놀랐다.
“마, 맞습니다!! 그걸 대체 어떻게?”
“그냥, 왠지 최신 전자기기 습득에 게으른 트레이너인 것 같더라고. 물론 나이가 많아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보통은 그 나이대 양반들이 전통이다 뭐다 하면서 옛날 방식을 고수하더라고. 요즘 새로 나오는 기계들 좋은 거 많잖아. 처음 데이터 뽑아두고, 현재 데이터 뽑으면 바로 결과 나올 건데. 몸 성장 밸런스 깨졌다고 그렇게 폼을 수정하는 건 너무 구식이잖아. 아무리 네가 아직 성장기라고 해도 말이지. 연락처 하나 전송해줄 테니까 받아둬.”
“이건?”
“내 전담 트레이너 밑에서 일하던 녀석 연락처야. 그 친구 말로는 이제 자기보다 더 낫다고 하더라고. 뭐 그 친구 돈을 벌 만큼 벌었으니 이제 은퇴하고 싶어서 일을 미루려는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빈 말을 하는 친구는 아니니까 실력은 확실할거야.”
“감사합니다.”
“그래, 당연히 감사해야지. 내가 신인이던 시절에 나 같은 선배가 있었으면 난 지금보다 훨씬 잘됐을 거야.”
이미 명예의 전당 첫 턴이 예약된 남자가 더 잘될 수 있었을 거라니. 리암 루카스의 말을 농담으로 알아들은 찰스 워드가 멋쩍게 웃었다.
“농담 아니라 진짜야.”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간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그 시대에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였다는 의미다.
물론 첫 턴이나 마지막 열 번째 턴이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최초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던 다섯명의 선수를 기린다는 이상한 이유로 기자들은 첫 턴 투표에 유독 더 엄격했다.
그렇기에 명예의 전당 첫 턴 투표를 통과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건 간에 그 선수가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상징성을 지닌 선수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명예의 전당 첫 턴보다 더 대단한 선수?
단순히 이 시대가 아닌, 150년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힐만한 선수.
그래 예컨대
“뭐, 물론 강진호 정도 되는 대단한 선수까지 말하는 건 욕심이겠지.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에 버금가는 수준은 되지 않았을까?”
“······.”
“하지만 21살에 양키스에서 주전 중견수로 데뷔한 선수라면 그 정도는 목표로 삼아봐야지. 안 그래? 마침 포지션도 강진호 선수랑 같은 중견수인데 말이야.”
보통의 선수였다면 그 커다란 스케일에 쫄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찰스 워드는 불과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마이너를 졸업하고 21살의 젊은 나이에 뉴욕 양키스라는 명문 팀의 주전 중견수로 낙점을 받은 남자였다.
“재밌네요.”
***
양키 스타디움.
조지 슈타인브레너라는 위대한 시대의 거인이 지은 그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로 뉴욕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후우.’
지금까지 욘 마르틴이 뛴 경기 수는 총 411경기.
그중 양키 스타디움에서 뛴 경기만 무려 187경기에 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대에 서는 날은 항상 새롭다.
욘 마르틴이 언제나처럼 마운드에 서기 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나는 욘 마르틴. 세계 최고의 투수다. 오늘도 나는 경기를 지배한다.’
그라운드 위에 홀로 솟은 마운드.
10인치.
다른 야수들보다 10인치 높은 책임감을 안고 욘 마르틴이 마운드에 올랐다.
욘 마르틴은 이미 지난 경기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라운드 위 보스턴의 야수들은 대부분 머저리다.
하지만 타자 박스 안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타자 박스 안의 녀석들은 제법 훌륭하게 사람 구실을 한다.
욘 마르틴의 공이 스트라이크 존 안팎을 공략했다.
-딱!!
물론 보스턴의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비록 디아고 헤밍턴에게는 꽁꽁 묶였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분명 좋은 타자들이었다.
안타, 삼진, 안타, 희생플라이. 내야땅볼.
보스턴이 1회 초 성민에게 선취점을 선물했다.
-후, 확실히 공격 때는 괜찮단 말이야. 공격 때는.
‘아직 어려서 그렇지 재능은 있는 애들이라니까요. 수비도 점점 괜찮아 질 겁니다.’
-2년 전 그 재능이 있다던 박동엽이 어땠는지 기억하지?
‘시즌 말미에는 에러도 별로 안 하고 괜찮았죠.’
-그거야 운이었지. 그 녀석 작년에도 에러는 21개로 리그 2위였다. 게다가 지금 시즌 시작하고 이주 지났는데 에러가 벌써 3개야.
공수교대.
성민이 마운드에 올랐다.
양키 스타디움에 가득한 팬들 가운데서 성민을 모르는 팬은 없었다. 바로 작년, 그들의 우승을 방해했던 1등 공신.
월드 시리즈의 MVP. 그리고 그들에게 개막전 패배를 선물했던 악당.
보스턴은 그저 양키스에게 가장 많이 패배한 팀일 뿐.
양키스의 라이벌이 아니다.
오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그 양키스의 팬들이 적대감 어린 눈으로 성민을 바라봤다.
그리고 타석에 에노모토 코이치.
양키스의 1번 타자가 올라왔다.
< 3할(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