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58화 (159/287)

< 라이벌(6) >

야구를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데리고 야구장에 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야구는 이해하기 어려운 스포츠다.

투수가 공을 던지고 타자가 공을 친다에서 시작하는 단순한 스포츠지만 그 세부적인 규칙은 상당히 방대하다. 당장 스트라이크와 볼, 안타와 범타, 도루, 아웃의 형태 등 기본적인 규칙을 숙지하는 것도 야구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

거기에 내야 뜬공 규정부터 보크, 각종 에러, 폭투와 포일의 차이 등등. 조금 깊숙한 규칙으로 들어가면 야구를 제법 많이 본 사람조차 헷갈릴 수밖에 없다.

“와우, 이것 참 어메이징한데? 대체 저게 뭐 하는 짓이지?”

허버트 로렌스가 보스턴의 플레이에 경악했다.

물론 수비는 생각보다 어렵다. 멀리서 볼 때는 저걸 왜 못 잡지 싶은 공도 직접 잡으려면 제법 힘들다. 공에 먹힌 회전과 바닥의 굴곡이 공의 방향을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튀게 만드는 탓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을 받는 선수 입장이고 보는 관객의 눈에는 빤히 보이는 공을 못잡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저, 저, 저?”

그리고 점수가 난다. 또 난다. 또 난다.

“뭐야? 그러니까 저게 안타라는 거잖아? 그리고 투수는 점수를 내주는 거고. 와, 야구 뭐 이래? 투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저렇게 패배투수가 되는 거야?”

허버트 로렌스가 함께 온 여자친구인 글로리아에게 대충 들은 야구의 룰대로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글로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또 조금 달라.”

“다르다고?”

“음, 저건 야수 에러라서 안타로 취급되지 않고, 투수도 실점은 했지만, 자책점은 없어.”

“자책점이면 투수가 책임지는 점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점수가 있단 소리야? 그러면 성민은 패배한 게 아닌가?”

“아니, 그건 아니야. 패배는 자책 비자책 무관하거든.”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인가.

허버트 로렌스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성민의 이야기처럼 그는 야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났으며, 그 재능은 저 엉망진창인 상황에서도 홀로 반짝반짝 빛날만큼 특별하다는 사실이었다.

***

LA에서 토론토로.

원정에서 원정으로 이어지는 일정은 언제나 힘들다. 단순히 이동 거리도 거리지만, 익숙한 홈구장은 선수에게 제법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많은 메이저 구단이 그 익숙함을 위해서라면 큰돈을 들여서라도 스프링 트레이닝을 치르는 구장을 자신들의 홈과 똑같게 꾸미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보스턴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성민의 경우는 과거 필 니크로를 만나기 전부터 그 부분에서는 제법 초탈했다. 그의 타고난 방심왕적인 기질이 거기서는 유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하지만 보스턴의 애송이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홈에서 뛰어도 에러 투성이인 녀석들이다. 하물며 익숙하지도 않고, 더 긴장이 가득한 원정이라면?

[보스턴 레드삭스!! 에러!! 또 에러!! 21세기 최악의 수비를 보여주다.]

[토론토 3연전 동안 에러만 네 개를 추가한 보스턴 레드삭스. 보스턴 레드삭스의 내야진은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메이저 팀들이 1년에 평균적으로 기록하는 에러의 숫자는 100개 남짓이다.

라이브볼 시대 이후 200에러 이상을 기록했던 팀은 총 8개 팀. 횟수는 12번뿐이다. 그나마도 가장 최근에 200 에러 이상을 기록했던 것은 62년과 63년의 메츠가 마지막이다.

21세기 들어 가장 많이 기록한 에러라고 해봐야 150개가 채 되지 못 한다. 메이저 팀이 1년이 치르는 경기가 162경기이니 경기당으로 나누면 평균 1개 미만이다.

개막전 이후로 지금까지 아홉 경기.

그들이 기록한 에러의 숫자는 무려 13개에 달했다.

-시부럴, 9경기 13에러면 234에러 페이스 아님?-

-에이, 그건 너무 주먹구구식 계산이잖아. 그런 식으로 따지면 개막전 홈런 친 타자는 162홈런 페이스게?-

-그거랑 이거랑 같냐? 한 경기가 아니라 무려 아홉 경기잖아. 그리고 아홉 경기 동안 9홈런이면 162홈런 페이스 맞지.-

-내가 생각해도 거기까진 좀 오버인 듯. 근데 진짜 234 에러면 역대 최고 수준의 기록 아님?-

-글쎄다. 야구는 데드볼 시대에 워낙 변태같은 기록이 많아서.-

-데드볼 시대 빼도 역대 최고 기록은 아님. 1921년에 필리스가 235에러 기록한 적 있음.-

-와, 그러면 지금 역대 최고는 아니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상황인 건가?-

-아니, 깰 거면 좀 좋은 걸로 역대 최고 기록 깨면 안 되냐? 어디서 찾아보기도 힘든 팀 최다 에러 기록 같은 걸 왜 도전하냐고.-

-근데 보스턴은 보면 에러로 기록 안 되는데 에러에 가까운 플레이들도 겁나 많잖아.-

-아, 화난다. 이번에 돌아오는 경기가 양키스전인데 또 에이스 맞대결인데!! 얘들은 아주 글러 먹었어.-

팬들의 절망과 좌절을 등에 업고, 보스턴의 전용기가 JFK 공항에 내렸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시간.

인천에서 출발한 어느 비행기 역시 JFK 공항에 착륙했다.

“여기!! 여기야.”

“아이, 참. 안 나와도 괜찮다니까. 괜히 사람들이 알아보면 어쩌려고 그래요.”

“은퇴하고 20년이 다 돼가는데 이제 선글라스만 끼고 다녀도 알아볼 사람도 없어. 그리고 또 좀 알아보면 뭐 어때? 알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러고 사인이나 하나 해드리면 되지.”

“누가 그게 문제래요? 안 그래도 유명한 아들 둬서 어디 다니기 번잡스러운데 더 번잡스러워질까봐 그러죠.”

“흐흐, 걱정하지 말라고.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내가 뭐 진호 그 녀석도 아니고 신문까지 탈 일은 절대 없으니까. 그보다 오는 길은 괜찮았어? 입국 심사에서 귀찮게 하는 녀석들은 없었고?”

“귀찮을 게 뭐 있겠어요?”

“여긴 non US 줄이 너무 길고 까다롭잖아. 유럽처럼 퍼스트나 비즈니스를 따로 먼저 해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줄이 좀 길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줄이 길 거에 대비해서 이렇게 책도 한 권 챙겨왔고 게다가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비하면 양반이던데요.”

“뭐, 그쪽 동네랑 비교하면 더 나쁜 곳을 찾기도 힘들지.”

프레스톤 윌슨이 자연스럽게 권 여사의 캐리어를 받아들었다. 두 달 전 한국에서 본 이후 처음이었다. 어차피 스프링트레이닝을 성민과 함께 플로리다 그레이프푸르트 리그에서 맞붙었던 만큼 놀러 오라고 몇 번 꼬셔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빴던 사업은 잘 되고 있고?”

“어휴, 말도 말아요. 성민이가 메이저 진출하고 나서 나도 입소문을 좀 타는 바람에 아주 바빠 죽을 것 같아요. 뭐 늘그막에 일복이 터진 셈이죠.”

권 여사의 엄살에 프레스톤이 웃었다. 남자친구를 보러 오는 것보다 자신의 일을 우선시 하는 모습에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동시에 멋지다고 느낀 탓이다.

“여보, 저거 윌슨 감독 아니야? 뭐지? 옆에는 여자친구인가?”

“뭐라고요? 윌슨 감독이 여자친구가?”

프레스톤 윌슨의 생각과 달리 고작 선글라스 하나는 그의 유명세를 가리기에 너무 부족했다. 저 멀리 유럽이나 혹은 미국의 다른 도시라면 또 몰랐다.

하지만 이곳은 뉴욕 퀸스.

16년 전의 그가 11번째 반지라는 위대한 전설을 만들었던 곳이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이곳 퀸스의 모든 아이는 그의 경기를 보고 자랐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모른 척해주자고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윌슨 감독 사인이야 뭐 우리가 경기장에 가면 이제 쉽게 받을 수 있지만, 저 양반이 여자친구를 사귀는 꼴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잖아.”

불과 2년 전 인터뷰에서 메츠의 수석 코치인 호세 레예스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윌슨 감독이요? 어휴, 그 양반은 말도 마십쇼. 아주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팀밖에 몰라요. 이제 선수도 아니고 말이야. 은퇴하고 감독을 하고 있으면 어? 배 좀 두드리고 그래야지. 하여간 그러니까 10년째 데이트도 한 번을 못······, 아 잠깐만. 이건 편집하고 다시 가죠. 너무 프라이버시를 밝혀버렸네요.”

“레예스 코치님? 이거 생방······.”

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레스톤 윌슨을 보며 살아왔던 수많은 메츠의 팬들은 그 인터뷰에 짠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0년. 맙소사 10년째 데이트 한 번을 못 하다니.

뉴욕의 팬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그들이 사랑하는 남자의 데이트를 못 본 척 눈 감았다.

***

-뻐엉!!

93.1마일.

연습용 마운드 위에 선 욘 마르틴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공이었어.”

“정확히는 나쁘지 않은 공이었죠.”

“이봐, 욘. 네 나이에 나쁘지 않은 공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공이라고 할만해. 나는 네 나이 때 완전히 은퇴할 뻔했었다고.”

“엄살은. 그 다음 해에 바로 멋지게 부활했잖습니까.”

“멋진 부활은 무슨. 그냥 어영부영 커리어 4년 더 채우고 은퇴한거지.”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함부로 하지 마십쇼. 겸손이 아니라 잘난 척으로 들리니까요.”

어영부영 4년?

물론 그의 기준으로는 어영부영 4년 일 수도 있다. 그의 전성기를 생각한다면 어지간한 1선발급 성적은 어영부영 이라 할만했으니.

2000년대 가장 강력한 선발 투수 중 하나이자 명예의 전당 첫 턴 헌액자.

C.C 사바시아가 욘 마르틴에게 다가가 충고했다. 그것은 마이너 시절부터 무려 15년 가깝게 이어온 인연이기에 할 수 있는 충고였다.

“거 참. 욘. 넌 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없다니까? 나야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지만 넌 지금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강력한 투수라고.”

“충분히 경쟁력 있는 걸로는 부족합니다. 그리고 누가 스타일을 완전히 바꾼답니까? 그냥 레퍼토리만 조금 추가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 예전에 말씀하셨던 그거요.”

“새끼가. 나랑 지금 말장난 하자는 건가. 인마 그게 스타일을 바꾸는 거지. 그리고 그 이야기 했던 건 벌써 7년 전 팔팔할 때잖아. 지금은 이미 네 스타일 그대로 완성이 됐고. 이미 완성된 투수가 거기에서 빠지는 것 하나 없이 더하기만 된다? 아주 세계 최강 투수 탄생하시겠다? 근데 너도 알잖냐.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거. 조금만 삐끗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고. 그냥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예전만 못해지는 건 당연한 거야. 욘. 너도 이제는 그냥 천천히 착륙을 할 시기라니까.”

사바시아의 말은 옳았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20대가 치고 올라가는 나이라면 30대는 이제 버티는 나이다. 더 오래 버티는 쪽이 승리자다. 부족한 힘으로 20대처럼 치고 올라가려 한다면 오히려 굴러 떨어질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욘 마르틴은 지금까지 사이 영을 무려 두 개나 탔으며, 아마 이대로 천천히 연착륙을 한다면 명예의 전당 첫 턴도 어렵지 않을 부족함 없는 남자였다.

욘 마르틴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코치님은 나이를 먹으면 예전만 못해지는 게 당연하다고 포기했었습니까?”

“지금 몇 번을 말하냐. 넌 나랑은 다르다니까. 난 그러지 않으면 당장 은퇴라도 할 상황이었고, 욘 너는 그게 아니잖냐.”

“코치님. 가슴이 뛰는 상대를 만났습니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욘 마르틴의 시선에 C.C 사바시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사실 거짓말이다.

그냥 천천히 연착륙하면 그만이다? 정상을 맛본 사람이 거기서 미끄러지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있을리 만무하다.

“아, 거 새끼 참. 마이너 시절부터 그러더니 말 더럽게 안 듣네. 아니, 하고 싶으면 겨울에나 그러던지, 개막전까지 다 지나고 이게 대체 뭔 짓이야.”

“죄송합니다.”

“어휴, 아 몰라.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다시 원상 복귀하는 거다. 알겠어?”

“네.”

“그리고 인마. 사람이 가슴 안 뛰면 죽어. 가슴이 뛰는 상대는 개뿔.”

< 라이벌(6)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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