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49화 (150/287)

< 플러스? 마이너스? (7) >

에노모토 코이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앞서 몇 번이나 이야기했듯이 통계적으로 볼 때 세 번째 타순부터는 타자들의 성적이 유의미하게 향상된다. 타격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일이다. 투수의 타이밍이 몸에 익은 세 번째부터 타자가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너클볼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공이라고 해도, 그것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양키스의 타자들이 성민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같은 폼에서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13마일씩 차이 나는 너클볼의 영향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딱!!

[쳤습니다!! 하지만 1루 내야 관중석으로 빠지는 큼지막한 파울볼!!]

타이밍을 안다고 해도 저 기묘한 움직임은 정타가 나오는 것을 철저하게 막아냈다.

물론 지금까지 안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보스턴의 내야진은 빈말로도 좋은 상태라고 말하기 힘들었고, 특히 2, 3루 간을 지키는 유격수는 당장 양키스 AAA팀에서 뛰는 녀석을 데리고 와도 저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었으니까.

‘하필.’

다만, 1, 2루 간을 지키는 녀석은 조금 달랐다. 게다가 에노모토 코이치는 좌타자다. 강한 타구는 1, 2루 간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뻐엉!!

“스트라잌!!”

느린 너클볼 이후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높은 코스 속구. 존을 슬쩍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기에 참아봤지만, 심판의 손이 올라갔다. 사실 이번에도 역시 굳이 따지자면 존을 살짝 벗어난 공이었다.

-와, 에두아르도 크루즈 클래스 좀 보소.-

-왜? 이게 뭐가 어땠다고? 그냥 성민이가 잘 던진 거 아니야? 너클볼 받는 것도 아니고 속구 받은 거에 클래스 이야기할 건 아니지 않나?-

-쟤 지금 하는 짓 못 봤음? 너클볼용 미트 들고 미트질했잖아. 메이저에 역대급 수비형 포수 나왔다고 말이 많을 땐 그러려니 했는데, 이걸 보니까 진짜 클래스가 다르네.-

-확실히 다저스에 마이크 올리버나 에드 맥밀란이랑 비교해도 안정감도 다르고. 솔직히 보스턴 영 마음에 안 드는데, 포수 하나는 인정해야 할 듯.-

-쟤들도 과거에 데인 게 있는데 저 정도는 당연히 준비했겠지.-

-데인 거? 뭐? 성민이가 보스턴 안 간 게 포수 때문이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예전에 성민이 말고 윀옹 써먹을 때 너클볼 받는 포수 홀대했다가 크게 엿 먹었던 적이 있거든.-

-윀옹?-

-팀 웨이크필드 말하는 듯. 뭐 그 양반이랑 덕 미라벨리 일화는 워낙 유명하잖아. 덕 미라벨리 트레이드하고 팀 웨이크필드가 한 달 만에 1승 4패에 포일만 10개를 기록하고 덕 미라벨리 다시 데리고 왔던 사건. 당일 경기 뛰게 하려고 구단주 전용기까지 띄워서 모셔왔었음. 근데 그러고 보니 그때도 상대가 양키스였네.-

필 니크로가 만족을 표했다.

이놈의 팀 하여간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가도, 에두아르도 크루즈를 보면 너무 많은 것이 용서된다.

15개? 아니, 어쩌면 10개 미만이 가능할지도.

아무리 좋은 포수라고 해도 너클볼을 받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과거 팀 웨이크필드 시절 보스턴의 주전 포수였던 제이슨 배리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클볼을 받는 것은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는 것과 똑같다.”

물론 이것은 그가 너클볼을 너무 못 받아서 주전 포수임에도 불구하고 팀 웨이크필드와 호흡을 전혀 맞추지 못했기에 했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됐건 너클볼을 받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실제로 작년 마이크 올리버와 성민의 콤비 역시 와일드 피치와 포일을 합쳐 24개나 기록했다.

사실 엄청나게 큰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공을 던지는 투수의 안정감이 다르다.

필 니크로는 성민을 여러 가지 면에서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자만과 근면이라는 부분에서만큼은 여전히 경계를 놓치지 않고 있었는데, 두 가지 모두 정신적인 부분이다.

물론 평소 성민이 보여주는 멘탈리티를 생각하면 딱히 경계할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필 니크로가 볼 때 그것은 녀석의 멘탈이 너무 좋아서라기보다는 능력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성민은 남들이 보기에 힘든 상황도 녀석에게는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는 상황이기에 절망하지 않고, 덤덤하게 넘기는 것이다.

즉, 필 니크로가 볼 때, 성민의 멘탈이 마냥 강철같이 단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에두아르도 크루즈는 더 소중했다. 너클볼 투수가 마음 놓고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매우 큰 축복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딱!!

1, 2루 간으로 흐르는 타구. 제롬 스튜어츠가 가볍게 공을 주워 랄로 가야르도에게 톡 던져주었다. 송구에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랄로 가야르도였지만 포구는 또 제법 하는 편이다.

“아웃!!”

세 번째 타순임에도 불구하고 성민이 효과적으로 양키스의 타자들을 막아냈다. 안타는 종종 나왔지만 적절한 땅볼이 점수가 나는 것을 억제했다. 물론 충분히 병살로 만들 수 있는 타구로 선행 주자만 잡아내는 상황은 종종 벌어졌다.

그때마다 경기를 관전하는 팬들의 가슴은 터져 나갈 것처럼 답답했다. 하지만 애초에 보스턴의 내야진에 그리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 않았던 성민은 아, 또 이러는구나. 하며 담담하게 상황을 넘겨버렸다.

‘어차피 다저스의 선발 투수 김성민이 아니라, 김성민이 뛰는 팀이 보스턴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온 거잖아요. 이 정도면 나쁠 건 없죠.’

6회 초 양키스의 공격이 잔루 1루를 남기고 종료됐다.

보스턴의 감독인 엔리케 로만이 성민을 힐끔 살폈다. 작년 팀을 그렇게 개판을 만들었음에도 자리를 보존하고 있는 이 사내는 그야말로 무능력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남자였다.

그가 자리를 보존한 것은 애초에 계약이 올해까지였다는 점. 그리고 팀이 그렇게 분열되는 상황에서도 우습게도 그를 싫어하는 선수는 하나도 없었다는 점, 심지어 팬들조차도 그딴 성적이 나오는 와중에 모두가 욕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무엇보다 그는 선수 시절 대단한 기록을 세웠던 남자였다.

비록 명예의 전당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명예의 전당이 15수까지 있던 시절 15수를 꽉 채울 만큼의 성적은 기록했다. 아예 성적이 안 되는 선수들은 첫 턴에 광탈을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위원회를 통해 구제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던 셈이었다.

필 니크로가 혀를 찼다.

-쯧, 저 녀석도 현역 시절에는 제법 단단하고 좋은 녀석이었는데 어쩌다 저 꼴이 됐는지.

‘왜요? 제가 보기엔 충분히 대단한데요.’

-대단해? 대체 뭐가?

‘뭐 능력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는 거라지만, 본인도 자기 능력이 부족한 거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잖아요.’

-최선?

‘남들은 다 갈려 나가는데 자기 명예도 지키고 자리도 보존하고, 그 와중에 이미지 관리도 깔끔하게 잘해서 재취업까지 크게 문제없게 세팅했잖습니까. 저 양반, 앞으로 또 감독은 못 할 수 있다고 해도 어디 적당히 수석 코치로 가는 건 문제 없잖아요.’

-확실히 그런 부분이라면······.-

처신이 대단한 남자다. 성민은 엔리케 로만이 마음에 들었다. 쓸데없이 명장 병에 걸려 팀을 좌우하는 감독보다는 엔리케 로만 같은 감독이 더 성민의 구미에 맞았다. 뭐,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성민만은 아닐 것이다. 저 윗선의 프런트에서도 엔리케 로만의 남은 1년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저만한 커리어를 갖고 있음에도 저런 식으로 처신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성민이 엔리케 로만을 바라보며 힘있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1이닝 정도는 충분히 더 뛸 수 있다는 의사 표시다. 엔리케 로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딱!!

6회 말.

보스턴의 타선이 또 한 번 성민을 도왔다.

아무리 욘 마르틴이라고 해도 슬라이더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커터로 꾸역꾸역 버텨내는 것은 타순 두 바퀴가 한계였다. 그는 추가점을 내준 상황에서 이미 진즉에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불펜으로 올라온 투수가 깔끔하게 승계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양키스가 2점을 더 내줬다.

그리고 7회 초.

선두 타자로 Mr. 양키스 리암 루카스가 올라왔다.

바로 2,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리그 에이스 소리를 듣던 욘 마르틴이 개막전에서 5.1이닝 만에 5실점을 하고 내려가는 장면은 리암 루카스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역시 두 타석 연속 삼진으로 물러났기 때문일까?

‘너희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마치 야구의 신이 그에게 그렇게 직접 속삭이는 것 같았다.

리암 루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이다.

아직 방망이를 휘두를 두 팔의 힘이 남았고, 1루까지 전력으로 달릴 수 있다. 리암 루카스가 마운드의 성민을 무섭게 노려봤다.

‘나는 펜웨이파크의 악몽 리암 루카스다.’

마운드의 성민이 그의 소리 없는 외침에 피칭으로 응답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직 힘이 떨어지지 않은 73.4마일의 쌩쌩한 너클볼. 몸쪽으로 올 듯하다가 땅바닥으로 뚝 떨어진 그 공에 리암 루카스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부웅!!

“스트라잌!!”

이전이었다면 조마조마하게 바라봐야 할 공이었다. 하지만 에두아르도 크루즈는 마치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을 것 같은 반사신경으로 성민의 공을 받아냈다.

속구, 느린 너클볼, 느린 너클볼, 속구, 그리고 고속 너클볼.

여섯 번째 공이 꾸역꾸역 버텨내던 리암 루카스의 방망이를 또 한 번 헛돌게 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흥청망청 술을 마실 나이가 될 때까지. 그 긴 시간 동안 펜웨이파크의 악몽과도 같았던 Mr. 양키스가 개막전 3타수 무안타 3삼진을 기록하며 쓸쓸하게 물러났다.

보스턴의 관중들이 마치 이미 오늘 경기에 이기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아니 어쩌면 오늘 경기에 이긴 것보다 더 기쁜 일 일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뉴욕 양키스가 엿을 먹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양키스를 대표하던 투수가 무너진 것에 있어서, 양키스를 대표하던 타자도 깔끔하게 물러났다.

성민이 양키스의 일곱 번째 공격마저도 완벽하게 막아내며 자신의 몫을 끝냈다.

7이닝 무실점 9삼진.

‘아, 그런데 아까 보스턴이 마린스랑 같으면서도 다르다고 했었잖아요. 수비는 엉망이지만 그래도 타격은 다르다고요.’

-그래, 그랬었지.

‘근데 한 가지를 빼놨던 것 같아요.’

-뭐가?

불펜

라루사리즘 이후 불펜의 개념은 선발로 뛰지 못하는 선수였다. 더 좋은 선수가 많은 이닝을 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빌리 빈의 머니볼이 그것을 한층 더 가속했다.

하지만 더 정밀한 측정 도구와 분석 도구가 나온 이후. 그리고 유행이라는 것이 한 바퀴를 돌아버린 이후. 그런 분위기도 크게 바뀌었다.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수준 대비 승리기여도) 가 아닌 WPA( Win Probability Added, 승리확률 기여도) 가 불펜을 평가하는데 더 적절한 지표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벌써 15년도 더 된 이야기다.

불펜의 몸값은 이제 더 이상 똥값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존 맥도웰은 선택했다. 어쩌면 이것은 현대 이론에 대한 반론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불펜의 몸값은 과대평가 되어있고, 차라리 선발과 야수들에게 더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성민과 에두아르도 크루즈. 그리고 앞으로 줄줄이 인상될 일만 남은 유망주들의 몸값을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딱!!

2이닝 동안 무려 7실점.

보스턴의 팬들은 새삼스럽게 자기 팀의 내야 수비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양키스의 타선이 어째서 양키스인지. 그리고 앞서 등판했던 저 낯선 사이 영 2위 투수가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딱!!

어찌 됐건 그 쓰레기 같은 수비에도 불구하고 왜 저 녀석들이 꾸역꾸역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으며 앞서 5점을 내줬던 양키스의 욘 마르틴도 여전히 쓸만한 투수였다는 사실도 덤으로 깨달았다.

[보스턴 레드삭스 5년 만의 개막전 승리!! 11:7 대승!!]

[김성민 훌륭한 보스턴 데뷔!! 7이닝 무실점. 승패 없음.]

[공격력은 합격. 하지만 불안을 드러내는 수비와 형편없는 불펜. 보스턴 레드삭스. 과연 올해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시부럴. 성민이는 노디시전. 니들이 무슨 보스턴 마린스냐?-

< 플러스? 마이너스? (7)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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