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45화 (146/287)

< 플러스? 마이너스? (3) >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의 팬들이 열정적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미국 30개 구장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두 종류의 유니폼이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의 유니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하지만 메이저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팀이 그들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NPB의 한신 타이거즈가 열정적인 팬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결국 NPB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인 것처럼, MLB 역시 부동의 1위는 뉴욕 양키스다.

“하필 또 저 녀석이네.”

“난 쟤 싫더라.”

“아니, 쟨 우리랑 뭐 원수라도 진 거야? 왜 굳이 트레이드 거부까지 풀어가면서 여기로 온 거지?”

작년 월드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그들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선발투수가 이번에는 전혀 다른 팀의 개막전 선발로 찾아왔다. 양키스의 타자들이 투덜댔다.

“워워, 엄살들 부리지 말라고.”

“엄살이라니. 너도 지난 시리즈에서 7타수 1안타였잖아.”

“그거야 다저스 야수진이 워낙 사기라서 그랬던 거고, 삼진은 두 개밖에 없었다고.”

“그래그래, 삼진은 두 개였지만 내야 벗어난 타구도 딱 두 개밖에 없었지.”

“그러는 에노모토 너는 삼진만 네 개였잖아.”

“그야 난 너보다 한 타석 더 섰었으니까.”

확실히 지난 시리즈 성민이 그들에게 남긴 인상은 컸다. 에이스인 디아고 헤밍턴도 대단하긴 했다. 하지만 성민 쪽이 조금 더 골치 아팠다. 분명 디아고 헤밍턴은 완성도 높은 선발이었다. 하지만 완성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래도 패턴 자체는 익숙하다. 하지만 너클볼이라는 생소한 구종을 오프 스피드 피치로 사용하는 투수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거야.”

“당연하지. 저 자식 보스턴 온다는 소리 듣고 내가 아주 이를 갈았다고.”

하지만 위축되는 모습은 없었다.

그들은 뉴욕 양키스. 원정 경기 유니폼에도 등판에 이름을 새기지 않는 메이저 최고의 팀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오늘 경기를 손꼽아 기다려온 남자가 있었다.

욘 마르틴.

올해로 34세 시즌을 맞이하는 베테랑 투수. 전성기 최고 100마일에 달하던 구속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험으로 여전히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 자리를 지키는 사나이.

그가 마운드를 바라봤다.

‘김성민.’

지난 월드 시리즈.

아무도 욘 마르틴을 탓하지 않았다. 그는 매우 강력한 투수였으니까. 하지만 욘 마르틴 스스로의 프라이드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월드시리즈. 만약 욘 마르틴 자신과 성민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단순히 1인분을 해냈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욘 마르틴이 생각하는 에이스는 팀을 승리로 이끄는 투수였다. 물론 합리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다. 팀의 승리라는 것은 절대 투수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은 원래 비합리로 가득한 법이고, 욘 마르틴은 에이스라는 칭호는 그 비합리를 넘어선 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선발 투수가 싸워야 할 것은 상대 선발이 아닌 상대의 타선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그저 승부욕일 뿐이다. 마운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뜨겁게 타올랐다.

타석에 양키스의 1번 타자 에노모토 코이치가 올라왔다.

작년 올스타에 선정된 NPB 출신의 우익수로 6년 총액 1억3천만으로 포스팅 피만 2,137만5천 달러. 앞선 3시즌은 기대보다는 부진했지만, 작년에 마침내 폭발했던 타자다. 그리고 올스타전에서의 한 타석을 포함하여 양키스의 타자 중에서 성민을 가장 많이 상대해본 남자이기도 했다.

-저 녀석도 많이 준비했구나.

‘뭐가요?’

-몸이 아주 좋아졌어. 제대로 이를 갈았거나 정말 좋은 트레이너를 만난 것 같구나. 아니면 그 둘 다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필 니크로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몸이 훨씬 커졌다. 이치로 이후로 NPB 타자 중에서는 벌크업을 소홀하는 타자가 많았는데 예전의 에노모토 코이치 역시 웨이트를 완전히 등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몸을 키우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딱히 긴장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몸 만드는 거로만 치면 지금 옆에 둥둥 떠다니는 귀신을 따라갈 사람은 없다. 몸 내부를 생생하게 살펴보는 것은 기본이고 하루 24시간 거의 밀착 감시를 하며 식단까지 일일이 잔소리를 퍼붓는다.

초구.

오늘 경기 전 연습에서 가장 좋았던 공인 빠른 너클볼.

73.7마일의 공이 날았다.

에노모토 코이치가 성민의 공을 살폈다. 작년보다 더 길게. 부쩍 힘이 붙은 몸으로 휘두르는 배트의 스피드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위로, 아래로.

그리고 몸쪽으로.

그의 방망이가 성민의 공이 향할 곳을 예상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 직후.

‘역시!!’

성민의 공이 또 다시 크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작년 성민의 괴물 같은 피칭에 단단히 당한 이후다.

-부웅!!!

“스트라잌!!”

물론 놀라지 않았다는 말이 쳐낼 수 없는 공을 쳐냈다는 말은 아니었다. 시원한 스윙이 허공을 갈랐다.

두 번째.

마찬가지로 너클볼.

에노모토 코이치의 방망이가 같은 느낌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공이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61.8마일의 느린 너클볼.

-부웅!!

“스트라잌!!!”

헛스윙!! 에노모토 코이치의 자세가 조금 우스꽝스럽게 무너졌다. 그가 잠시 타석에서 물러나 헬멧을 벗고 머리를 휘휘 저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그래도 느린 너클볼과 빠른 너클볼은 조금 구별이 되었다. 물론 구별을 못 하는 선수들 역시 상당했지만, 에노모토 코이치정도의 선수는 그것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려워.’

사실 타석에 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벌크업을 통해 파워를 올렸고, 이전이라면 내야 땅볼로 끝날 타구도 제법 괜찮은 타구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게다가 보스턴 레드삭스는 LA 다저스와는 다르다. 설사 타구질이 조금 나쁘다고 해도 LA의 내야수들처럼 완벽하게 잡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온통 두 종류의 너클볼로 가득하다. 젠장.

성민이 에노모토 코이치의 복잡한 표정에서 그의 생각을 읽었다. 정확하게 그가 기대했던 반응이다. 성민이 에두아르도 크루즈에게 사인을 보냈다.

‘왜? 지금 잘 되고 있었잖아? 진짜? 이거로? 괜찮겠어?’

에두아르도 크루즈의 반문에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커다란 와인드업. 그리고 강력한 키킹. 제자리에 고정된 상체 아래로 엉덩이가 힘차게 밀려나갔다. 결과적으로 상체가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처럼 당겨진다. 이제 남은 것은 그렇게 축적된 에너지를 쏘아내는 것뿐이다.

전신의 힘을 한 점에 끌어모은 높은 코스 가장 빠른 속구.

두 가지 너클볼에 번민하던 에노모토 코이치의 판단이 늦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심판의 손이 올라왔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전하던 조이 제임스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보스턴의 열광적인 팬들이 그녀의 환호에 맞춰 성민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선두 타자 삼구삼진. 그것도 시원한 헛스윙 삼구삼진이다.

[높은 코스 89.1마일의 빠른 공에 헛스윙 스트라이크!! 코스를 크게 벗어나는 공에 에노모토 코이치 선수의 방망이가 따라 나왔습니다.]

[61.8마일 이후에 89.1마일. 이건 타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빠르게 느껴졌을 겁니다.]

불과 2년 전, 최고 94마일까지 나오던 구속을 생각한다면 좀 아쉽다. 하지만 아직 4월. 몸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1회 초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구속이었다.

‘그래도 시즌 중에 92마일까지는 충분히 나오겠네요.’

에노모토 코이치가 대기 타석에서 걸어오는 제이크 스컬리에게 말했다.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엿 같아졌어.”

“거기서 더 엿 같아질 게 남았었단 말이야? 사이 영 2위나 했던 새끼가?”

“그러게 말이다.”

고작 한 타자를 잡아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맥도웰 이 빌어먹을 새끼!! 난 네가 트레이드로 똥을 쌀 때도 널 믿고 있었다고!!”

“빌어먹을!! 6년!! 6년 만이야. 개막전 첫 타자를 이렇게 깔끔하게 잡아내다니!!”

무엇보다 상대가 양키스라는 점이 그들을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MLB 전체로 볼 때 보스턴은 양키스 바로 다음 가는 명문을 자처할만했다. 하지만 문제는 양키스 바로 ‘다음 가는’ 명문이라는 점에 있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뉴욕 양키스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다. 그들은 1년에 19번 뉴욕 양키스를 만난다. 창단 이후 뉴욕 양키스와 가장 많이 싸웠던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다.

덕분에 몇몇 양키스 팬들은 보스턴을 가리켜 양키스에게 가장 많이 패배한 팀이라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창단 이후 지금까지 133년 동안 그들은 정규시즌에서만 총 2516번을 만났고 그중 보스턴은 1366번 패했다. 고작 1130번 이기는 동안 말이다.

승률이 4할 5푼이 채 안 된다. 앞으로 12년 동안 한 번도 경기에 패배하지 않아도 5할을 채울 수 없다.

핏속 깊숙하게 흐르는 양키스에 대한 적대감이 성민에 대한 격렬한 응원으로 이어졌다. 그 격렬한 응원 속에서 양키스의 2번 타자 제이크 스컬리가 타석에 섰다.

올스타만 지금까지 3회.

내셔널리그에 페데리코 수가 있다면 아메리칸리그에는 제이크 스컬리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격수다. 실제로 두 선수의 대체선수 승리기여도는 얼추 비슷하다. 다만 그 스타일은 완전히 극과 극이다.

페데리코 수가 놀라운 수비와 준수한 타격으로 리그 최고의 유격수 소리를 듣는다면 제이크 스컬리는 빅마켓 유격수치고는 조금 부족한 수비와 놀라운 타격으로 리그 최고의 유격수 소리를 듣고 있다. 과거 양키스를 이끌었던 캡틴 데릭 지터를 연상케 하는 스타일이다.

방망이를 단단하게 쥔 그가 타석에서 성민을 노려봤다.

‘더 엿 같아졌다 이 말이지.’

단단한 각오. 성민이 크게 와인드업했다.

초구. 빠른 너클볼.

알고도 공략할 수 없는 그 공이 파울로 이어졌다.

방망이의 영 좋지 않은 곳을 맞은 탓인지 손이 얼얼했다. 두 번째. 이번에도 같은 공. 하지만 다른 브레이킹볼과는 달랐다. 다른 브레이킹 볼이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공이라면, 너클볼은 던지는 법은 같지만 결과는 제 멋대로인 엿같은 공의 총칭이었다.

같지만 같지 않은 공이 제이크 스컬리의 헛스윙을 끌어냈다.

볼카운트 0-2.

성민이 세 번째 공으로 느린 너클볼을 선택했다.

앞선 너클볼들과 구분할 수 없는 공이 날아왔다. 아직 몸이 다 열리지 않은 순간, 제이크 스컬리는 눈치챌 수 있었다. 엿됐구나. 이거 방망이를 움직인 타이밍이 너무 빨랐다.

멈출까?

아니, 안된다. 그러면 루킹 스트라이크다.

반쯤 어거지로 방망이를 조절했다. 자세가 완벽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어떻게라도 공에 방망이를 가져다 대면 가능성이 0은 아니다.

-딱!!

형편없는 스윙에 형편없는 타구.

제이크 스컬리가 뒤를 살피지 않고 1루를 향해 질주했다.

일루수인 랄로 가야르도가 공을 잡기 위해 서둘러 달려나왔다.

공을 던진 직후에도 흐트러짐은 없었다. 민첩하게 일루 커버를 달려갔다. 그 자리에 서서 글러브를 들고 랄로 가야르도의 송구를 기다렸다. 급할 것은 없다. 시간은 여유롭다. 안전하게 송구하기만 하면 된다.

바닥을 구르는 공을 줍는 랄로 가야르도의 손이 다급했다. 다행히 더듬지는 않았다. 괜찮다. 아직 여유가 있다. 천천히. 안정적으로!!

랄로 가야르도가 등을 돌려 그대로 공을 집어 던졌다. 망할 자식. 성민이 판단했다. 베이스를 밟은 채 공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럴리가!! 이걸 제 자리에서 받으려면 윙스팬이 2.5미터쯤 되지 않고는 어림도 없다. 성민이 두 걸음 자리를 옮겼다.

-뻐엉!!

그리고 다시 1루로. 돌진해오는 제이크 스컬리의 몸이 거의 동시에 1루를 통과했다. 결과는?

“세이프!!”

-이 망할 새끼가?

감정이 실린 필 니크로의 절규. 어쩐지 2년 전 매일 보던 것 같은 그 익숙한 모습에 성민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 플러스? 마이너스? (3)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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