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15화 (116/287)

< 보너스(2) >

20세기의 끝부터 21세기의 초까지.

뉴욕 메츠는 최고의 팀이었다.

그 시기 메츠에서 뛰었던 선수 가운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는 무려 다섯 명. 현재 메츠의 감독인 프레스톤 윌슨은 그중 하나이자,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반지를 손에 넣은 사나이였다.

“윌슨 그 자식은 선수일 때가 좋았어. 감독으로는 아주 엉망진창이야.”

“선수로 좋긴 개뿔. 그거 전부 강진호 빨이지 뭐. 22년이나 뛰면 누구나 안타 2,900개에 홈런 500개는 칠 수 있어.”

물론 몇몇 메츠의 팬들은 그의 반지 대부분이 강진호라는 걸출한 선수의 덕분이라고 폄훼했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그에 어울리는 위대한 남자였다.

22년이나 뛰면 누구나 2,987개의 안타와 501개의 홈런을 칠 수 있다? 물론 년으로 나누면 연평균 135.7개의 안타와 22.8개의 홈런에 불과하다. 프레스톤 윌슨이 커리어 내내 코너 외야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고 코너 외야수에게 기대되는 공격력을 고려하면 그리 대단한 수치는 아니다. 기껏해야 평균적인 수준의 선수다.

하지만 야구는 누적의 스포츠다.

1년에 162경기. 포스트시즌을 고려한다면 그 이상.

그 가혹한 일정을 22년이나 버텼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만들어낸 결과가 매년 평균 수준의 선수는 된다는 것 자체가 그의 위대함을 증명했다.

“엉망진창은 무슨, 강진호 은퇴하고, 윌슨 은퇴하고, 데이빗은 병으로 나가리 되고, 완전 깜깜 절벽 같았던 메츠를 추슬러서 2027년에는 우승도 한 번 했던 감독이 엉망이라니. 대체 언제까지 왕조 시절 메츠를 생각할 거야? 그냥 그때가 비정상적이었던 거라고.”

“하긴, 그 시절의 메츠는 무슨 전 우주가 돕는 것처럼 이상하긴 했지. 구단주부터 단장까지 모두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어.”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최정상에 군림했던 팀이다.

당연히 팬층 역시 매우 단단했다.

뉴욕과 LA.

미국 대륙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메츠의 팬들 상당수가 이번 디비전 시리즈를 관전하기 위해 비싼 암표를 감수하고 LA를 찾았다.

“뭐 뾰족한 수 같은 거 없습니까? 일본 만화 보니까 막 감독이 이상한 비책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고 그러던데.”

메츠의 수석 코치인 호세 레예스가 프레스톤 감독을 향해 깐족거렸다.

“아주 생활이 편하구나. 얼마나 편하면 시즌 중에 만화책이나 읽을 시간도 있고. 어?”

“아니, 퇴근 이후는 내 시간인데 만화책도 못 읽습니까?”

“그 시간에 어? 야구 공부나 좀 하고. 인마. 야구를 만화로 배우니까 지금 네가 이 모양이잖아.”

“내 모양이 뭐가 어때서요!! 그리고 사람이 어? 좀 생활도 하고 그래야지. 무슨 야구랑 결혼한 사람처럼 그게 뭡니까?”

“그렇게 했으니 그래도 이 만큼이나 하는 거다.”

프레스톤 윌슨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쨌거나 특별한 감독의 비책 같은 건 만화에서나 나오는 일이고, 현실의 야구에서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상대방 투수 잘 두들길 것 같은 타자를 라인업으로 뽑고······.”

“뽑고? 그다음은요?”

“그다음이 뭐가 있겠냐. 그냥 기도하는 거지. 제발 상대 팀 투수 컨디션 엉망이게 해주세요. 우리 팀 선수들 날아다니게 해주세요. 이렇게. 뭐 그리고 거기에 조금 더하자면 투수 교체하고 타자 교체해주는 정도?”

“그 조금 더 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닙니까?”

“그거야 뭐 순전히 운이랑 감 아니냐. 그러니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리 애들 잘하라고 응원해주고 빡세게 관리해주는 정도겠지.”

“뭐, 그거라면 선배가 좀 잘하는 일이기는 하죠.”

좋은 선수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체로 맞는 이야기다. 쉽게 배운 사람들은 어렵게 배우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역 시절의 프레스톤 윌슨은 자신보다 대단했던 누군가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남자였다. 그는 현역이라면 누구나 존중할만한 위대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자신의 한계에 고통받는 선수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지도자였다.

야구의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축구나 미식축구의 감독처럼 번뜩이는 전술 능력이 아닌 선수들의 관리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프레스톤 윌슨은 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훌륭한 감독이었다.

“자, 이제 시리즈 두 개 남았다. 처음인 녀석들도 있을 거고, 슬슬 익숙하게 느껴지는 녀석도 있을 거다. 그래, 거기 마이클 너. 너 말이다. 처음 포스트시즌 치를 때는 바지에 똥이라도 지릴 것처럼 긴장하더니 이제는 아주 여유만만이구나. 내가 그때 너 똥 지릴까 봐 기저귀 사러 갔던 건 기억하냐?”

“어휴, 당연히 기억하죠. 그래서 제가 그 보답으로 제 차에 항상 감독님을 위한 노인용 기저귀를 준비해두고 있는 것도 잘 아시잖아요.”

감독과 캡틴의 가벼운 농담에 라커룸에 작은 웃음이 감돌았다.

“얘들아, 우리는 시즌을 제압하고, 디비전을 승리한 팀이다. 물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지. 게다가 돈 지랄로는 저기 양키스 못지않은 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커리어가 달라. 21세기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위대한 팀은 우리 뉴욕 메츠다. 쫄아야 할 건 우리가 아닌 저쪽이란 말이다. 가서 하던 대로 방망이를 힘껏 휘둘러라.”

“넵!!”

“가자, LA 촌놈들 엉덩이 걷어차 주러.”

프레스톤 윌슨이 선수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수석 코치를 챙겨 먼저 덕아웃으로 향했다.

“이번 시리즈 우리가 이기겠죠?”

“뭐 가능성이야 충분하지. 디아고 헤밍턴이 교통사고가 난다든지, 김성민이 손가락 염좌로 시즌 아웃된다든지, 다저스 야수들이 단체로 식중독에 걸리는 것도 괜찮겠군.”

“그게 뭡니까. 정상적으로는 이기기 힘들다는 소리잖아요.”

“내가 보기엔 지금 저 녀석들은 지난 2011년에 우리나 2018년에 보스턴 정도는 와야 상대해볼 만해.”

“그 정도라고요? 근데 잠깐만요. 지난 2018년에는 우리가 보스턴 이기고 우승했었잖아요.”

프레스톤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었지. 우리는 기적을 이뤘었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저 녀석들을 믿어보자고. 꼭 내 새끼들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법 괜찮은 녀석들이잖아.”

“뭐, 그건 그렇죠.”

경기가 시작됐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자리에 앉아 경기장을 응시하던 프레스톤 윌슨이 한숨을 집어삼켰다. 감독은 팀의 중심이다. 어려운 경기라고 함부로 한숨을 내쉴 수는 없었다.

그가 뛰었던 시대에는 괴물과도 같은 투수들이 참 많았다. 로저 클레멘스,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시대가 아니라 메이저 전체 역사를 뒤져도 넉넉히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만한 투수들만 무려 넷이나 같은 시대를 풍미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으로 보기에 지금 저 마운드에 있는 디아고 헤밍턴이라는 놈은 그들의 전성기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괴물이라는 이야기다.

이번 시즌 메츠는 다저스와 총 여섯 번을 싸웠고 세 번을 이겼다. 하지만 그 싸움 중에 디아고 헤밍턴이 출장했던 경기는 단 한 경기, 성민의 경우는 한 경기도 출장하지 않았다. 시즌 중에는 참 다행스러운 일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포스트시즌에 저 괴물을 보고 있자니, 차라리 시즌 중에 좀 얻어터지더라도 몇 번 더 만나봤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가 뛰었다면 더 재밌었을 거야.’

2011년.

그와 그의 동료들이 보여줬던 전성기의 마지막, 그리고 메츠의 왕조를 이어줄 줄 알았던 얼간이들의 전성기가 막 시작되던 그 무렵의 메츠였다면 어땠을까?

프레스톤 윌슨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상념에 고개를 휘저었다. 지금은 그런 IF나 생각할 시기가 아니었다.

대기 타석으로 나가는 선수들을 독려하고, 그가 생각하는 가장 적절한 순간에 마운드 위로 투수 코치를 올려보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야구에서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거기까지였다.

6:0

다저스의 괴물은 8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경기를 강제로 승리시켰다.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 디아고 헤밍턴 8이닝 14삼진 2피안타 무실점!! 다저스 승리!!]

[뉴욕 메츠 감독 프레스톤 윌슨 ‘오늘 디아고의 컨디션은 환상적이었다. 유감스러운 결과이지만 시리즈는 아직 충분히 많이 남아있다. 챔피언십 시리즈는 누가 먼저 1승을 거두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 4번째 승리를 거두는 것은 우리 메츠가 될 것이다.’]

[김성민 뉴욕 메츠와의 2차전 출장!!]

[Mr. Mets 강진호 ‘김성민은 아주 흥미로운 투수.’]

[김성민 선수를 현역 시절에 상대했다면 어땠을 것 같냐는 질문에 웃음으로 답하는 강진호!!]

-거의 사이 영 컨텐더 급 투수인데 아무리 강진호라도 당연히 난감한 질문이지.-

-이건 또 무슨 신박한 헛소리? 강진호 전성기 성적이나 좀 보고 오지? 역대 최고의 야구 선수 꼽으면 항상 꼽히는 양반을 이제 메이저 1년 차 투수에 비비고 있네.-

-커리어만 따지면 당연히 못 비비지. 근데 현재 폼만 따지면 비빌 만한 거 아님? 아무리 강진호가 역대급이라고 해도 김성민도 이번 시즌 사이 영 컨텐더임.-

-아니, 그러니까 강진호는 20년 커리어에서 부상으로 빠졌던 해 빼고는 WAR로 김성민 올 해보다 낮았던 해가 없다니까.-

-WAR이야 애초에 타자한테 유리하게 나오잖아. 맞상대하는 거랑은 이야기가 다르지.-

성민이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다.

-뭐가 그리 좋으냐?

“강진호 선수가 절 아주 흥미로운 투수라잖아요. 게다가 사람들 댓글도 좀 보세요.”

-흥, 뭐 고작 그 정도로 헤벌쭉한 거냐.

“영감님 공 던지는 거 보고 테드 윌리엄스가 ‘필 니크로는 매우 흥미로운 투수다.’라고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거기다가 필 니크로랑 테드 윌리엄스랑 승부하면 누가 이길까로 사람들이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해보시고요.”

-그런 비유를 듣고 보니 충분히 좋아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 것 같구나.

필 니크로가 빠르게 인정했다.

-그래서, 뭐 그 녀석이 뛰었던 팀이라서 좀 살살 해주기라도 할 생각이냐?

“에이, 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좋아하던 선수가 뛰었던 팀이니 아주 더 크게 박살을 내줘야죠. 그래야 사람들이 ‘아 그래도 강진호가 있던 시절이 좋았지.’하고 회상할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리고?

성민이 고개를 돌려 경기 전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다저스의 선수들을 바라봤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해도 지금 우리 팀이 지는 건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단 말이죠.”

경기가 시작됐다.

뉴욕 메츠는 나쁘지 않은 팀이었다. 아니 좋은 팀이었다.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우승자였고, 디비전 시리즈의 승리자였다. 그들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다저스와 겨룰만한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프레스톤 감독이 폐부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그가 기억하는 역사상 가장 무서웠던 원투펀치는 역시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 콤비였다.

그리고 2033년 가을.

“시발,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무슨 랜디 존슨 다음에 커트 실링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의 심정을 호세 레예스가 대신 떠들어주었다.

김성민

9이닝 4피안타 무실점 완봉승.

< 보너스(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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