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반기(1) >
[김성민 4월 이달의 투수 선정!! 대한민국 역대 세 번째.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여섯 번째!!]
[6경기 5승 무패 37.1이닝 1.93. 김성민 순조로운 메이저 데뷔!!]
-우리 성민이 결국 이달의 투수 탔네. 근데 이게 뭐 얼마나 대단한 상이라고 이렇게 호들갑임?-
-대단한 상이긴 하지. 일단 공식으로 기록되는 상이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명전급 투수들도 보통 커리어 통틀어서 4개? 5개? 그 정도임. 근데 그걸 데뷔 하자 마자 첫 달에 따낸 거니까 대박인 거지.-
-원래 첫 끗발이 개 끗발이지.-
-너 어디서 김성민한테 맞은 적 있냐? 무슨 되지도 않는 악담을 하고 있어.-
-마지막 쿠어스필드 경기에서 6이닝 3실점이라 좀 불안했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거기 다저스랑 로키스 3연전 하는 동안 두 팀 합쳐서 103점을 냈음. 디아고 헤밍턴도 슈퍼 에이스라면서 점수 많이 내줘서 거품인가? 생각했는데 그냥 쿠어스필드가 미친 거.-
-그런 곳에서 그만큼 하다니. 성민이 자랑스럽다.-
-근데 그 와중에 김성민 깨알 타격 성적 보임? 0.150/0.150/0.350. 한 방에 OPS를 3배 올려버림 ㅋㅋ-
-근데 아시아 출신 중에서 이달의 투수 따낸 투수가 여섯이나 됨?-
-어, 일본에 셋, 그리고 한국에 둘. 이제 이걸로 3:3 됐네.-
다저스에서의 생활은 순조로웠다.
투수가 딱 1인분만 해도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니 역시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답게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아니, 메이저리그가 그런 의미에서 꿈의 무대는 아닌 것 같은데?
물론 KBO 시절과 다르게 이곳에서 항상 1인분을 한다는 것은 제법 힘든 일이었다.
[체력 문제? 메이저의 빡빡한 일정은 역시 무리였을까? 김성민 9차전 경기 2.1이닝 3피홈런 7실점 강판!!]
-원래 너클볼 투수라는 게 그런 거다. 평소랑 똑같게 던지는 것 같아도 아차 하면 그런 날이 오는 거지. 그래도 3피홈런이면 양호해. 나부터 시작해서 디키 녀석까지 1경기 4피홈런 안 해본 녀석이 없어.
“뭐, 저도 거기서 강판 안 됐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기는 했죠.”
-어쨌거나 어제 네가 특별히 잘못한 건 없어. 잘못이 있다면 건조해도 너무 건조했던 공기 정도겠지.
“위로해주지 않으셔도 되거든요. 저도 어제 제 상태가 베스트 아니었던 거 잘 압니다. 원정 일정이 빡빡한 건 알았지만 선발투수인데도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을 뿐이에요.”
메이저의 가혹한 일정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의 원정 일정은 기껏해야 사흘에 한 번, 버스로 최대 네 시간 정도 이동하는 게 전부다. 그나마도 서울, 부산, 서울, 부산 같은 일정은 그리 흔하지도 않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원정 일정은 조금 다르다.
성민은 최근 12박 13일 동안 비행기만 네 번을 탔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 무려 17시간. 전용 버스에서 전용기로 바로바로 이동했다고는 하지만 이동 시간만 꼬박 24시간쯤 사용했다. 그것도 자정까지 경기를 끝내고 시차가 나는 곳으로 이동하는 터무니 없는 일정들이었다.
“솔직히 비행기로 4시간 좀 더 걸린다고 하길래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 안 했거든요. 어차피 이동 시간만 따지면 비슷하잖아요. 한국에서도 서울 팀만 세 개고, 수도권 팀을 다 하면 딱 절반이니까요. 덕분에 대부분 팀이 부산에서는 제법 멀었단 말이죠. 그래서 뭐 기껏해야 버스랑 비행기 차이 정도겠지 했는데. 와, 이거 다르긴 다르네요.”
-당연히 다르지. 버스 이동 시간도 있고, 몇 시간 단위기는 하지만 시차라는 건 생각보다 피곤하니까. 무엇보다 KBO에서는 연속 원정이라고 해봐야 얼마 안 되잖냐. 거기다가 그 연속 원정이라는 것도 서울, 서울, 인천같이 가까운 지역을 연속으로 도는 게 대부분이고.
“어쨌거나 아직 5월도 다 안 지나갔는데 벌써부터 좀 힘드네요. 한국에선 그래도 한 7월, 8월은 되야 좀 빡세구나 싶었는데 말이에요.”
-뭐, 처음 풀시즌을 해보는 루키들에게는 이즈음이 슬슬 힘들어질 시기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야. 6월 즈음 되면 더 힘들어질 거다. 그래도 7월 올스타 브레이크 때 쉬면서 한숨 돌리고, 8월 한 달 버티면 이제 순위도 얼추 결판나고, 거기다가 9월에는 애송이들도 확장 로스터라고 올라와서 방망이 붕붕 돌리면서 쉴 시간을 줄 거다.
필 니크로의 이야기에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경기를 망치기는 했지만, 바꿔 말한다면 이제 고작 한 경기다. 작년 KBO에서 완벽하게 망한 경기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더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즌을 썼다는 선수들의 1년을 돌아봐도 망한 경기는 꼭 있었다.
하물며 성민은 필 니크로를 만나기 전 10년의 KBO 커리어를 가진 남자였다. 몇 경기 망했다고 징징거리기에 그가 씹어삼킨 눈물 섞인 짬밥은 너무 많았다.
시즌이 흘러갔다. 메이저리그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KBO와 달랐다. 하지만 이곳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 야구를 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그리고 성민은 사람들을 상대하는데 전문가에 준하는 실력을 갖춘 남자다.
LA 다저스는 나름의 체계가 잡힌 팀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민은 연고는 없지만, 적당한 베테랑. 실력으로도 팀에서 손가락에 드는 괜찮은 투수라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부산 마린스에서 성민이 원래 차지하고 있던 위치와 상당히 비슷했다. 실제로 2032시즌 폭발적인 성적을 기록했던 해를 제외한다면 부산 마린스의 성민은 지금보다 실력은 부족했지만, 팀 내 황금 계보라는 점에서 상당히 단단한 입지를 갖고 있었다.
“헤이, 성민. 제시가 내일 시합 끝나고 저녁이나 대접하고 싶다는데 어때?”
“내일?”
“어, 모처럼 휴식일도 끼어있고 우리 등판이랑도 빗나가는 흔치 않은 날이잖아.”
“괜찮겠어?”
“괜찮아. 괜찮아. 제시가 이전에 네가 줬던 선물도 너무 고마웠다고 그러더라고.”
“그래? 그러면 이번엔 더 좋은 걸 선물해줘야겠는데?”
다저스의 에이스인 디아고 헤밍턴이 성민에게 식사를 제의했다. 그는 성민보다 3살이 어렸지만, 벌써 결혼한 지 5년이나 된 두 아이의 아빠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메이저에 자리를 잡은 직후 곧바로 결혼을 한 경우였는데, 메이저리그에 그리 드문 케이스는 아니었다.
“어서 와요. 성민.”
“제시, 오래간만이에요. 이건 선물.”
“와우, 지난번에 선물했던 그 김 피클도 너무 맛있었는데, 고마워요.”
LA 외곽의 커다란 집.
디아고 헤밍턴의 아내 제시 헤밍턴이 성민을 반갑게 맞이했다.
“애들은?”
“아빠 보고 잘 거라고 칭얼대기는 했는데, 벌써 잠들었지. 오늘 낮에도 옆집 애들이 놀러와서 하루종일 뛰어놀았거든. 피곤했을 거야.”
저녁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보통 사람들이라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지만, 프로야구선수들에게는 이제 막 저녁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수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제시가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잡담을 이어갔다.
그녀는 빈말로도 아름답다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빨간 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 학교에 다닐 적에는 치어리더도 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이 두 명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 그 자체였다.
“맞다, 자기야. 아까 릴리가 그러던데 혹시 내일 수족관 가기로 약속했어?”“어, 같이 애니메이션 보다가 물고기가 보고 싶다고 그래서. 왜?”
“아니, 모처럼 하루 쉬는 날인데 애들이랑 놀러 나가도 되나 싶어서.”
“에이, 뭐 그래 봐야 차 타고 갔다 오면 금방이잖아.”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와 함께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디아고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부럽냐?
‘부럽기는 뭐가 부럽습니까.’
-딱 봐도 부러워하는 것 같구만. 하긴 네 녀석도 슬슬 결혼을 생각할 때가 되긴 됐지.
‘아니거든요. 한국에서는 30대 초반이면 아직 한창 날아다닐 땝니다. 결혼은 무슨.’
성민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지금 메이저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에요.’
-연애에 때가 어딨다고. 원래 전쟁통에도 하는 게 연애다.
‘아니, 무슨 엄마도 아니고. 제가 미국에 와서 영감님한테까지 그런 잔소리 듣고 싶진 않거든요?’
-잔소리라니!!
성민이 필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렸다.
물론 항상 그를 챙겨 주던 권 여사와 마린스의 오래된 동료들 그리고 친구들이 있던 한국을 생각한다면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 미국에서의 생활이 종종 외롭게 느껴지기는 했다.
특히나 저렇게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린 나이에 두 아이의 아버지로 알콩달콩 살아가는 디아고의 모습을 볼 때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아직이다.
그는 지금 연 2,200만 달러가 아깝지 않은 프론트 라이너였다.
만약 필 니크로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지금 이 정도 위치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민은 이미 너무 대단한 것을 목표로 삼아버렸다.
세계 최고.
그것은 당장 전성기의 필 니크로가 돌아와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그저 허황된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민은 이미 마린스의 우승이라는 불가능에 한없이 가까운 일을 만들어낸 기적의 사나이다.
-그래, 마린스 우승에 비한다면 사이 영 상 한두 개 정도야 뭐.
시즌이 계속됐다.
성민은 때론 아슬아슬했지만, 등판 전날과 등판 당일에는 한국의 포털 메인 페이지를 차지할 만큼 훌륭한 성적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6월도 절반이 넘게 지나간 시점.
슬슬 올스타전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KBO에서 올스타란 일종의 인기투표다. 인기 있는 팀 소속일 경우 성적이 더 좋은 선수를 제치고 올스타에 선정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메이저리그 역시 야수들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곳도 빅마켓의 인지도 있는 선수가 표를 휩쓸어간다. 팬층 자체에도 차이가 있을뿐더러, ESPN을 통해 전국 중계로 노출되는 빈도에서도 차이가 있다. 스몰마켓에 성적이 더 좋은 선수들이 볼멘소리를 내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하지만 투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투수 올스타의 경우 철저하게 감독 추천, 그리고 사무국과의 협의로만 선정이 된다.
“성민이라······. 이 선수를 빼놓기는 어렵지. 커리어는 짧다지만 다저스 소속이라 전국 방송에도 두 번이나 얼굴을 비쳤고, 너클볼 투수는 확실히 화제성이 있으니 말이야.”
“실제로 성적도 아주 괜찮습니다.”
“뭐 그거야 당연하겠지. 성적이 안 좋은데 감독 추천이 올라올 리가 없잖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벌어들이는 가장 쏠쏠한 수입은 역시 올스타전과 포스트시즌 게임이다. 그렇기에 사무국에서는 될 수 있으면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성민은 이제 3개월 차의 메이저리거였다. 하지만 KBO라는 외국 리그의 슈퍼스타였고 300만에 달하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채널을 끌어올 수 있는 흥행력을 지닌 선수였다.
게다가 그는 너클볼 투수였으며 빅마켓 소속의 선수였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성적’이 있었다.
성민이 올스타에 선정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역대 한국인 다섯 번째!! 김성민 올스타전 출장 확정.]
< 하반기(1)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