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04화 (105/287)

< 국적 없는 기레기(4) >

경기를 중계하던 토니 이시카와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이루타를······.’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시청자 수에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한 척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실시간 채팅창은 이미 토니 이시카와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했다.

애초에 그의 영상을 보는 사람 절반가량은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의 트래픽도 결국 돈이다. 토니 이시카와 입장에서는 그들도 똑같은 고객이었다.

토니 이시카와가 이를 악물고 중계를 이어갔다.

이어지는 1번 타자. 마르타 블랑코.

2루의 성민이 자세를 낮췄다.

-부웅!!

“스트라잌!!”

시원한 헛스윙.

-누누히 말하지만 차라리 아웃을 당하면 당했지 슬라이딩은 금물이다.

성민이 필 니크로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마운드의 알렉스 다니엘이 두 번째 공을 던졌다.

-딱!!

이번에도 스타트가 조금 늦었다. 하지만 괜찮다. 성민의 달리기 속도는 메이저 평균에 육박한다. 3루의 더그웰 코치가 힘차게 손을 돌렸다.

[김성민 3루 지나 홈까지!!]

3루까지 달리던 힘이 너무 강하다. 전력으로 질주하던 몸을 일순간에 트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성민이 본능적으로 몸을 왼편으로 기울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넘어질만큼 왼쪽으로 기운 몸.

하지만 단단하고 유연한 발목의 근육과 놀라운 균형감각이 그 동작을 무리 없이 수행케 했다.

저 뒤편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공을 주워들고 홈까지 던지겠지. 홈을 향해 달려가는 성민의 눈에 홈플레이트의 절반 조금 넘는 범위를 가로막은 포수가 보였다.

-슬라이딩은 안 돼!!

‘말 안해도 그럴 생각입니다.’

달리던 기세를 줄이지 않았다.

더그웰 코치도 성민이 투수라는 것을 감안 했을 것이다. 성민에게 슬라이딩을 기대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그냥 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부러 포수의 몸에 충돌할 필요도 없었다. 성민의 오른발이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60야드. 54.86미터.

소요된 시간은 고작 7.72초. 작년 메이저 평균보다 0.04초나 빠른 속도였다.

“세이프!!”

성민이 프로에 데뷔한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발로 1점을 얻어냈다. 마운드에서 타자들을 잡아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성민은 평소 훈련에서 셔틀런을 빼먹지 않는다. 심폐지구력 단련을 위해서다. 하지만 그런 훈련이 무색하게도 고작 8초 남짓한 전력 질주의 결과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세차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성민!!!”

“요, 맨!! 와우!! 미쳤군!! 아니, 투수가 그렇게 잘 치고 달리면 우린 어쩌라는 거야?”

“여기, 이거 마시고 얼른 쉬고 있어. 힘들 텐데 우리가 잠깐 쉴 시간을 만들어줄게.”

덕아웃 앞까지 마중 나온 다저스의 선수들이 성민을 환영했다.

그리고 중계 카메라가 그 흐뭇한 광경을 전 세계로 송출했다.

[다저스의 선수들이 정말 격렬하게 환영을 해주는군요.]

[저런 걸 보면 참 우리 김성민 선수가 융화력이 좋아요. 신인급 선수들부터 베테랑까지 지금 두루두루 나와서 축하를 해주고 있거든요.]

[하하, 물론 융화력도 융화력이지만 이 모든 것은 전부 김성민 선수의 ‘실력’때문이라고 봐야겠죠. 팀의 우승을 위해 필요한 동료를 싫어하는 선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한국의 중계진들이 화색이 된 것과 달리 토니 이시카와의 표정은 안쓰러울 만큼 일그러졌다. 그가 사람들의 어그로를 끌고 있는 이유는 결국 돈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의 말이 틀려서야 어그로조차 끌 수 없다.

-뭐야? 김성민 등판일정 가지고 팀에 무리한 거 요구해서 불화 일으키고 있다고 하더니 팀원들이랑 사이 좋아보이는데?-

-얘 말을 믿었냐? 그냥 애초부터 뇌내망상 지껄이던거임. 물론 2,200만 달러가 큰돈이긴 하지만 다저스는 그보다 더 받는 선수가 널렸음. 그게 뭐라고 지 마음대로 감독한테 입김을 불어 넣겠냐.-

-아니, 아무리 불화라고 해도 점수 냈으니 응원을 해줄 수는 있지.-

-쪽바리들은 이 와중에도 정신승리를 하고 있네? 역전도 아니고, 이미 이기던 상황이었음. 그런 상황에서 점수 냈다고 덕아웃 밖까지 뛰쳐나와서 방방 뛰고 있는데 이게 그냥 해주는 응원이냐? 저기 페데리코 수는 아예 음료 셔틀까지 해주고 있잖아.-

실시간으로 번역되는 채팅이 순식간에 올라갔다.

몇몇 사람들이 이시카와의 의견을 애써 옹호하려 애썼지만 소용 없었다. 애초에 토니 이시카와는 성민의 피칭이 아닌 그 외의 것을 까는 것에 중점을 맞춰왔다. 단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서 비난하는 머저리들이 열광한 지점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토니 이시카와의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시카와 본인도 더이상 뭐라 방송을 진행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젠장, 이거 생방송을 시도한 건 무리수였어.’

그의 시선이 채널의 구독자와 조회수로 향했다.

그래,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이걸로 더 큰 이득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일단 규모를 키운 이상 돈을 벌 길은 널렸으니 다음을 찾으면 된다.

다저스의 타자들이 알렉스 다니엘을 두들겼다.

그것은 쿵쾅거리던 성민의 심장이 가라앉고 그의 전신에 힘이 돌아올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김성민 3타수 1안타 1득점!!]

[6이닝 4피안타 1실점 지금까지 3경기 20.1이닝 0.89. 김성민 메이저 성공적 안착?]

이번에도 어김없이 성민의 유튜브에 토니 이시카와의 영상이 추천 영상으로 올라왔다.

[김성민의 실질적 평자책이 3점에 육박하는 이유!!]

“와, 이거 진짜 눌러보고 싶은 제목인데요?”

-가만히 있을꺼냐?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그게 이 자식이 원하는 거라니까요. 애초에 이런 애들이 원하는 게 당사자가 자기 언급 해주는 일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자식들은 대성공이라고요.”

-0.89에 1.7을 더하는데 어떻게 3점에 육박이냐? 초등교육 못 받았냐? pdy2007-

“박동엽 이 멍청이는 진짜. 어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기분이 안 좋은데.

“에이, 누가 그냥 내버려 둔답니까?”

-그러면?

“원래 움직일 때는 상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

성민의 세 번째 등판 이후로 일주일.

토니의 동료가 곤히 잠들어 있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토니!! 이봐 토니!!”

“야, 나 어제 밤새 영상 편집하다 이제 잠들었어. 잠 좀 자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거, 이거 보라고!!”

“뭔데?”

[사용자가 게시한 자료와 관련하여 저작권 침해에 대한 제3자 신고가 여러 건 접수되어 계정이 해지 되었습니다.]

“시발, 잠깐만. 이게 무슨 개소리야? 저작권 침해라니?”

“너 스트리밍할 때 혹시 경기 영상 가져다 썼냐?”

“그럴 리가 있겠냐? 이거 대체 뭐지? 하던 대로 했는데 왜 갑자기 정지를 먹은 거야?”

“빨리 문의부터 넣어보자. 어?”

“그래, 이거 분명 뭔가 착오일 거야.”

어딘가에 문의할 때 가장 짜증 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 부분은 내부규정에 의해서 알려드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 내부규정이 뭐냐니까요.”

“그 부분은 내부규정에 의해서 알려드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죄송합니다.”

“아오 미치겠네. 이봐요.”

내가 지금 자동응답과 대화를 하는지, 아니면 사람이랑 대화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 토니 이시카와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면 이번 달 정산은요. 그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직 당월정산은 이뤄지지 않은 상황임으로 수익금 분배는 불가능합니다.”

“와, 미치겠네. 아니 근데 저작권 침해면 관련 동영상만 내려야지 대뜸 계정 정지는 뭡니까.”

“관련 규정에 의거하여 절차대로 처리된 부분입니다. 업로드하셨던 거의 모든 동영상에 저작권 관련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자, 잠깐만요. 거의 모든 동영상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성민이 토니 이시카와의 쪽박을 완벽하게 깨버렸다.

***

“그 자식들 방송국을 너무 우습게 봤어요.”

-경기를 직접 중계하지 않았는데 저작권 침해가 된다고?

“중간중간에 제 사진이랑 영상이 들어갔잖아요. 물론 사용해도 별 트집을 안 잡는 게 일반적이기는 한데 그래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거든요. 게다가 보니까 이전에 NBA나 NFL쪽도 상당히 올렸던데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라서요.”

애초에 성민이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대형 방송사나 유명한 기자라면 또 모를까. 기껏해야 악플러의 발전형 같은 놈에 불과하다. 차라리 노리는 것 없이 악플만 다는 녀석이 더 귀찮다. 이렇게 명확하게 돈을 노리는 놈이라면 그저 돈줄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닥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게 효과가 있긴 한 거야? 그냥 채널 다시 만들어서 떠들면 그만이잖아. 저작권은 이제 더 조심할 테고

“애초에 악플이 목적인 놈이면 그렇겠죠. 근데 얘는 돈을 노리고 그런 거잖아요. 그러면 해결책은 간단하죠.”

-간단?

***

“토니 이시카와 씨라고 했나?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니 반갑네.”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이시카와 씨가 죄송할 건 없지. 다 먹고 살자고 했던 일인데. 나도 다 이해한다고. 오히려 그 사람들을 선동하는 힘이 참 마음에 들었어.”

토니 이시카와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앞으로 쭉 그렇게 수고를 좀 해 줘. 물론 이번에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말이야.”

성민이 토니 이시카와를 고용하는 것은 매우 쉬웠다.

그는 돈과 관심을 원했다.

그리고 성민은 그 모든 것을 충족해줄 수 있는 고용주였다. 우선 성민은 돈이 많았다.

그것도 토니 이시카와의 연봉 따위 세금으로 내야하는 돈에 비용처리를 해버리면 티도 안날만큼 매우 많았다.

-그러니까 진짜로 얘를 고용 한다고?

‘그냥 내버려 두면 앙심을 품은 유능한 악플러. 이렇게 고용하면 푼돈으로 제 이미지를 관리해줄 유능한 관리인. 고용하는 게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확실히······. 근데 쟤도 이렇게 쉽게 네 밑에서 일하겠다고 했다고?

‘방구석에서 얼마 안 되는 유튜브 수익으로 살아가던 녀석이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죠.’

-대체 얼마를 제시했길래?

‘뭐, 21살짜리 백수한테나 큰돈이지 저한테는 얼마 안 돼요. 어차피 세금으로 내야 할 돈 정도? 거기다가 3년짜리로 계약했으니 나중에 업계 표준 금액 알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겁니다.’

게다가 토니 이시카와가 원하는 유명세를 얻는 것 역시 0에서 다시 유튜브를 시작하는 것보다 유명인의 옆에서 알짱거리는 쪽이 훨씬 빠르다.

-근데 그거야 그만두면 그만 아니냐?

‘그만두려고 해도 계약서에 퇴직 시 위약금 지불 의무도 넣어놨거든요. 불법이긴 하지만 뭐 알게 뭡니까. 어차피 법적 지식도 없는 녀석인데요.’

-이런 악마 같은 자식!!

성민이 토니를 향해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SNS에 업데이트 하기 전에는 나한테 컨펌 받는 거 잊지 말고.”

“네!!”

“자, 그러면 일 시작해보자고. 우선 첫 일은 으음, 악플러조차 용서하고 고용한 마음씨 넓은 고용주의 미담부터 가보자고.”

“네?”

“뭐해? 일 시작 안 하고?”

하지만 토니 이시카와는 알지 못했다. 그 유명인 옆에서 알짱거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무엇보다 그 유명한 고용주가 작정하고 자신을 갈구려고 들면 얼마나 힘들지를 말이다.

“다시 해 와. 이건 문구가 영 별로잖아. 이런 거 말고. 그 있잖아. ‘김성민의 실질적인 평자책이 3점에 육박하는 이유.’ 같은 자극적이고 신박한 걸로 좀 짜내보라고.”

앞으로 3년.

토니 이시카와의 고생이 시작됐다.

< 국적 없는 기레기(4) > 끝

ⓒ 묘엽

작가의 말

여러 의견들 감사합니다.

조금 더 좋은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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