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적 없는 기레기(1) >
1차전이 끝나고 닷새 뒤.
성민의 두 번째 등판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3차전 홈 경기였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성민은 사고를 하나 저질렀다.
[7.1이닝 무실점. 김성민 시즌 2승 수확!!]
[8회 초, 김성민 선수의 퍼펙트를 무너트리는 아쉬운 안타.]
[2경기 14.1이닝 5피안타 1볼넷 1실점. 평균자책점 0.63. 그리고 시즌 2승. 김성민 2,200만 달러의 가치를 증명하다.]
-김성민 진짜 미친 듯. 솔직히 KBO 폭발시키고 미국 갈 때 좀 기대하기는 했지만, 이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성적임.-
-연 1,500이 명백한 오버 페이라고 지껄이던 새끼 빨리 나와봐라. 8회 원아웃까지 퍼펙트 하는데 진짜 내가 이거 보다가 수업 25분 지각함.-
-괜찮아. 어차피 출결 한 번으로는 학점 크게 빵꾸 안 남.-
-아니, 교감한테 걸려서 시말서 썼는데?-
-미친, 너 선생이야?-
-멍청하게 그걸 솔직히 말하냐? 난 그냥 배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었다고 둘러댔음. 근데 옆 부서에 내 썸녀가 요구르트 선물해줌. 이거 그린 라이트 맞지?-
-아니, 그거 신호등 부서진 거야.-
-나 내 버킷 리스트에 오늘 새로운 거 하나 추가했다. 다저스 스타디움에 가서 성민이가 등판하는 LA다저스 경기 보는 거.-
-나도 진짜 직관하고 싶어지더라. 국뽕이 미친 듯이 차오름. 근데 이건 여담인데, 다저스 스타디움이 아니라 다저 스타디움임. ㅇㅋ?-
-성민이 경기가 아침 경기라서 너무 좋고, 마린스도 예전으로 돌아가서 더 좋음. 이제 소개팅 마음껏 해도 걱정이 없더라.-
-아침 경기인데 소개팅 마음껏 해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니······. 눈물이 난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어차피 소개팅은 저녁에 하는데 아침이 대체 무슨 상관이야?-
-(묵념)-
-(묵념)2-
7.1이닝 퍼펙트.
한국에서와 다를 바 없는 그 압도적인 활약에 한국의 팬들은 열광했다.
“어휴, 시부럴. 내가 어? 아침에 성민이 경기 보고 저녁에 우리 팀 경기 직관을 가면 암이 생겨요. 이게 진짜 같은 야구라고? 박동엽 그 쌍노무 새끼랑 페데리코랑 같은 유격수라고? 요즘 성민이가 왜 매일 웃고 다니는지 이해가 된다니까?”
“그거 네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하기는 뭘 잘못해.”
“아침에 성민이 경기를 보고 저녁에 우리 팀 경기를 봐서 그런 거잖아.”
“그러면?”
“일단 저녁에 우리 팀 경기를 직관하고 다음 날 성민이 경기를 봐야지. 그러면 생성되던 암세포가 사라짐. 근데 대신 마린스 경기를 닷새에 한 번씩만 봐야 함.”
열광한 것은 한국의 팬들만이 아니었다.
“처음에 웬 한국 녀석을 6,600만 달러나 주고 데리고 온다고 할 때는 케빈이 드디어 미쳤나. 이렇게 생각했었지. 그런데 역시 케빈이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지. 아니 어떻게 그 지구 반대편의 녀석을 데리고 올 생각을 했는지.”
“그러니까 단장 아니겠어?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우승할 시기라고.”
미국의 팬들 상당수는 일반적인 상상보다 훨씬 더 정보에 어둡고 멍청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굳이 무언가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뉴스나 신문에 나온다고 해도 굳이 머릿속에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알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일 년에 다저 스타디움에 20번 이상 오는 팬들 가운데서도 작년 아메리칸리그의 MVP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1할을 넘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민은 아무리 지역지에서 다른 팀에서도 노리는 대단한 선수라고 떠들어본들 그냥 아시아에서 온 선수 A였다. 그런 그들에게 성적을 내놓기 전 성민의 2,200만 달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언가였다.
성민의 활약은 그런 사람들조차 돌려놓을 만큼 대단했다.
“이봐, 성민. 왜 표정이 별로야? 설마 지난 경기 퍼펙트 깨진 것 때문에 그런 거야?”
“에이, 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게다가 퍼펙트니 뭐니 해도 그날 솔직히 페데리코 너랑 마르타 아니었으면 점수를 내줬어도 이상하지 않았어.”
“칭찬은 어제 사줬던 스테이크로 충분해. 물론 우리가 좀 잘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네 피칭이 환상적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페데리코 수의 이야기에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마린스를 기준으로 한다면 점수를 내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여럿 있긴 했지만, 정상적인 수비였다면 적당히 출루 몇 번 허용하고 완벽하게 틀어막을 만한 경기였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나저나 퍼펙트 깨진 것 때문 아니면, 요즘 분위기도 괜찮은데. 왜 그런 거야? 내가 듣기로는 너 유니폼 판매량도 지금 3위라고 하던데? 위에서는 조만간 버블 데이라도 하나 할 기세라고.”
“버블 데이?”
“어, 몰라? 경기장 찾아온 사람들에게 버블 인형 나눠주는 이벤트인데. 하여간 그거 아니면 티셔츠 데이라도 할 기세였어.”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애초에 LA는 미국에서도 한인들의 티켓 파워가 제법 되는 동네다. 그들이 2,200만 달러라는 금액을 질렀던 것은 성민의 실력 외에도 그런 이유가 포함됐을 것이다.
하지만 성민이 인상을 찌푸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누누이 타격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잖냐.
‘저도 타격 성적은 별로 신경 안 씁니다. 그냥 그 흐름이 깨지는 게 조금 짜증 나는 거죠.’
어제 경기.
성민의 컨디션은 괜찮았다. 경기의 흐름도 훌륭했다. 가장 어려운 고비인 4번 타자까지의 3번째 타순도 넘어섰다.
‘차라리 다른 이유면 괜찮죠. 근데 그건 너무 명백하게 실투였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너클볼 투수라도, 아니 아무리 대단한 투수라도 100번을 던지면 두세 번은 실투가 나오기 마련이다.
성민이 고개를 저었다.
어제 그 실투는 그저 100번을 던지면 두세 번쯤 나오는 그런 실투가 아니었다.
‘거기서 공을 두들겼던 게 영향을 줬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네 손가락은 아주 멀쩡했다.
‘분명히 찡하는 감각이 있었어요.’
-그래, 치는 순간에는 잠깐 놀라긴 했지. 하지만 마운드에 올라갈 때는 이미 진정이 된 다음이었어.
그날 경기에서 성민은 상대 투수의 공을 건드렸다. 물론 안타로 이어질 만한 좋은 타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문제였다. 빗맞는 타구는 방망이를 통해서 타자의 손에 충격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신경 쓰인다면 역시 정답은 하나뿐이겠지.
‘네. 제가 별로 좋아하는 정답은 아닙니다만 역시 정답은 하나뿐이겠죠.’
훈련.
‘무엇보다 지난 두 경기에는 별일이 없었습니다만, 언제까지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하긴, 아무리 못 친다고 해도 선발로 뛰는 이상 언젠가는 너도 1루에 나가겠지.
작년 내셔널리그 투수들의 평균 타율은 0.107. 어찌 됐건 열 번을 들어가면 한 번은 친다는 뜻이다.
-하지만 너무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건 곤란하다.
‘저도 압니다. 시간과 체력은 한정적인 자원이라는 거요.’
필 니크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거나 투수에게 타격은 부수적인 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시합 중에 안전하게 타석을 넘기는 것. 그리하여 피칭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성민이 본격적으로 방망이를 쥐었다.
***
조금은 공교로운 일이었다.
콜로라도와의 4연전.
중간에 하루의 휴식일이 있었지만, 팀 베이크 감독은 디아고 헤밍턴과 성민의 등판 로테이션을 하나 당기는 대신 5일 휴식을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성민은 세 번째 등판도 원정이 아닌 홈에서 치르게 됐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김성민 3번째 선발 등판 휴스턴과의 홈 경기 1차전 예고!!]
[팀 베이크 감독 ‘다저스는 강한 팀. 시즌 초반부터 굳이 특정 선수들에게 더 큰 부하를 가할 필요는 없다.’]
“이거 재밌겠는데?”
“토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재미라니? 너 야구는 취미 아니잖아. 네가 그때 그랬잖아. 야구는 그냥 NBA 시즌이 끝나고 NFL이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존재하는 레저 스포츠라고.”
“그건 사실이지. 하지만 어디 일을 종목 보고 들어가나. 돈 보고 들어가는 거지.”
“돈? 야구로? 뭐 다저스가 큰 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게 돈이 될까? 기껏해야 오만 뷰쯤 나오면 잘 나오는 거 아니야?”
기본적으로 MLB를 보는 관중들은 보수적이다.
물론 2032년 현재, MLB도 케이블 TV에 못지않게 인터넷 중계가 활성화되긴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 대부분은 경기를 인터넷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유튜브로 선수나 팀을 평가하는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었다.
“미국만 보면 그렇지. 하지만 세계는 넓다고.”
“에이, 그래 봐야 클릭당 금액이 다르잖아.”
“그래, 클릭당 금액이 다르지. 그런데 말이야. 클릭당 금액이 미국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 주제에 야구에 환장하는 나라들이 있단 말이지.”
하지만 트래픽을 사랑하는 유튜버 토니 이시카와가 보기에 그것은 사람들을 도발하기에 아주 적절한 소재였다. 무엇보다 그의 부계는 일본이었으며 그는 일본과 한국의 감정을 아주 잘 이해하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유튜브 계정의 프로필을 일장기로 바꾸고 김성민이라는 이름을 크게 내걸었다.
[김성민 3경기 연속 홈 경기? 다저스의 배려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투수들의 무덤을 피해간 김성민의 등판 일정.]
[유명 유튜버 토니 이시카와 ‘그는 좋은 투수의 재목이다. 하지만 쿠어스에서 뛸 만큼 성숙하지는 못했다. 그는 아직 다저 스타디움이라는 아늑한 엄마 자궁이 필요한 태아에 불과하다.’]
-저 쪽바리 새끼가 무슨 헛소리지?-
-2경기 14.1이닝 1실점에 평자책 0.63 기록 중인 투수가 뭐? 개 미쳤네.-
-근데 토니가 쪽바리는 아니지. 일본계 5세대에 일본은 가본 적도 없는 친구인데. 저건 그냥 객관적인 이야기임.-
-객관? 쪽바리들 미국에서 지들끼리 뭉치는 거 생각하자. 그리고 쟨 할아버지 대까지는 일본인끼리만 결혼했던 집안이잖아. 지금 피부색이 까만색이라고 일본인 아니라고 하긴 그렇지.-
-근데 선발 일정을 성민이가 정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뭐 누가 특별히 선발을 당긴 것도 없이 그냥 로테이션 돌리다 보니 계속 홈이 걸린 건데?--토니 이시카와 말도 일단 들어보면 일리는 있음.-
-토니 이시카와 말에 일리가 있다니. 그것참 맞는 말이네. 처맞는 말.-
LA 다저스의 팬들은 저게 무슨 개소리인가? 정도로 토니 이시카와의 이야기를 흘려넘겼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논쟁할 이유도 없는 완벽한 헛소리였으니까. 그저 몇몇 팬들, 그리고 몇몇 야구 커뮤니티를 통해 약간의 언급이 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상황이 바뀐 것은 토니 이시카와만큼이나 트래픽에 목을 매는 쓰레기들이 그것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한국의 기레기들에게도 일본의 기레기들에게도 이것은 꽤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토니 이시카와가 원하던 일이었다.
“와우, 토니. 이거 봐봐. 대박이야. 벌써 80만 뷰가 넘어간다고.”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일본이고 한국이고 야구라면 환장을 한다니까. 그러면 영상 찍을 준비 하자고.”
“영상? 또 무슨 영상?”
“무슨 영상이기는. 물 들어왔으면 노를 저어야 할 것 아니야.”
2033년 4월 10일.
성민이 다저 스타디움의 마운드에 올랐다.
< 국적 없는 기레기(1)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