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98화 (99/287)

< 데뷔전(1) >

[김성민 오는 29일 파드리스와의 2차전 선발 등판 예고]

-역시 아무리 김성민이라도 디아고 헤밍턴 몰아내고 개막전 선발은 무리였네.-

-디아고가 지금 실질적 메이저 원탑 투수인데 그걸 바라는 건 에바지.-

-이제 꼴랑 5년 차인 디아고가 무슨 원탑임? 부동의 에이스 알레한드로도 있고 알동의 최강자 에스떼반도 있는데.-

-어휴, 그놈의 알동 부심 진짜.-

-그보다 성민이 피홈런이 좀 걱정되던데? 7경기 25이닝 하는 동안 피홈런만 네 방이야.-

-어쩔 수 없지. 상대가 메이저 타자들인데. 한국이라면 그냥 뜬공으로 끝날 것도 넘어가는 게 정상이야. 근데 사실 별걱정은 안 됨.-

-나도 그럼. 성민이는 왠지 걱정이 안 돼.-

-걱정 안 되는 게 정상임. 메이저 타자들은 강해졌지만, 야수들도 마린스에서 다저스로 바뀐 거라고. 평자책 오히려 더 떨어질 수도 있음.-

-에이, 현대 야구에서 어떻게 평자책이 그보다 더 떨어지겠냐. 근데 난 진짜 팀감독 말처럼 성민이가 사이 영 경쟁할 것 같음.-

-사이 영 경쟁은 솔직히 잘 모르겠고 난 그보다 드디어 경기 전부 다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시범 경기 중계 안 해주는 거 진짜 짜증났음.-

-아침에는 성민이 경기, 저녁에는 마린스 경기. 당분간 엄청 바쁘겠네.-

-아침에는 천국, 저녁에는 지옥인가요?-

한국에 있던 시절, 성민은 필 니크로에게 브레이브스를 미국의 마린스라는 말로 놀리곤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브레이브스는 미국의 마린스라고 놀릴 만한 구단은 아니다.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는 브레이브스보다 월등하게 성적이 나쁜 팀이 몇 개 존재한다. 당장 창단 이후 단 한 번도 우승해보지 못한 팀만 여섯 팀이다. 그래도 브레이브스는 창단 이후 세 번이나 우승을 해봤다.

그리고 이번 시즌, 다저스의 개막전 상대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그 우승을 해보지 못한 여섯 팀 중 하나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을 밟았던 1969년 창단하여 지금까지 무려 65년. 지금까지 그들은 월드 시리즈에는 총 두 번 진출해봤지만, 두 번 다 우승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하위권을 전전하며 높은 순위의 드래프트권을 얻었지만, 모조리 꽝. 메이저 30개 구단 가운데 24년이나 1라운더를 붙박이 주전감으로 써먹지 못한 것은 파드리스가 유일했다.

마운드의 디아고 헤밍턴이 현역 최고의 투수라는 평가에 걸맞게 압도적인 피칭으로 파드리스의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삼진, 그리고 또 삼진.

-나왔다. 바로 저 녀석이다.

‘저도 눈 있거든요.’

무려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하위권을 전전하던 리그 최약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작년 와일드카드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타석에 파드리스의 3번 타자 로베르토 부시가 들어왔다.

‘분명 작년에 내셔널리그 전체 승률 1위였던 다저스랑 고작 3승 차이로 와일드카드였죠.’

-그래, 만약 파드리스가 동부나 중부지구였다면 지구우승이었겠지.

2025년의 드래프트 1라운드.

2027년 처음으로 메이저에 올라와 올해로 메이저 7년 차. 외야수 올스타만 여섯 번. MVP 2위에 2번. 그중 한 번은 만약 파드리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더라면 충분히 1위도 가능했다는 평을 받을 만큼 훌륭했다.

디아고 헤밍턴의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4년간 총 47타석. 0.308/0.362/0.615.

평범한 투수를 상대로도 훌륭한 성적이다. 디아고 헤밍턴을 상대로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성적이다. 파드리스의 홈구장인 펫코 파크가 극도로 투수 친화적인 구장임을 고려한다면 이건 더욱더 놀랍다.

디아고 헤밍턴이 로베르토 부시를 향해 95.1마일의 속구를 뿌렸다.

-딱!!

[로베르토 부시!! 초구 그대로 받아쳤습니다. 높게 뜬 타구!! 좌측 담장!! 좌측 담장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갑니다!! 홈런, 홈런입니다.]

[1회 초, 로베르토 부시의 선제 솔로 홈런포!! 파드리스가 다저스를 1:0으로 앞서갑니다.]

[참 아슬아슬한 공이었어요. 만약 저녁 경기였다면 또 달랐을 텐데 디아고 헤밍턴으로는 참 안타까운 피홈런일 겁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다저 스타디움이 투수 구장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낮 경기 데이터만을 따로 살펴본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이는 다저 스타디움 고유의 특성 덕분이다.

사실 일반적인 투수 구장과 달리 다저 스타디움은 작은 편에 속한다. 보통 외야가 좁은 구장의 경우 홈런이 많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지만, 다저 스타디움의 경우 하강기류로 인해 홈런이 억제되고, 작은 구장 특유의 쉬운 수비로 장타가 억제된다. 덕분에 다저 스타디움은 다른 구장들보다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홈런 수는 평균 수준을 유지한다.

하지만 낮 경기의 경우 언덕의 데워진 공기가 상승 기류를 형성한다. 낮과 밤의 홈런 펙터가 완전히 달라지는 이유다.

디아고 헤밍턴이 기습적인 솔로 홈런에도 불구하고 당황하지 않고 이닝을 잘 마무리 지었다. 아직 어린 느낌이 강하지만, 그래도 2년 차부터 에이스 소리를 들어가며 성장한 투수다. 슬슬 관록이라는 것이 붙을 시기였다.

“잘했어.”

“잘하기는요. 어휴, 상쾌하게 무실점으로 시즌을 좀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하여간 저 아저씨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투덜대는 디아고에게 라티노 그룹의 중심인 마르타 블랑코가 헬멧과 배트를 챙겨 나가면서 서투른 영어로 말했다.

“무실점은 몰라. 대신 승리는 주도록 하지.”

낮의 다저 스타디움은 투수에게 가혹했다. 그것은 현역 최고의 투수조차 피해갈 수 없는 가혹함이었다.

-딱!!

[쳤습니다!! 마르타 블랑코!! 우익수 머리를 넘기는 강한 타구? 넘어가느냐? 넘어갑니다!!]

[선두타자의 솔로 홈런!! 1회 말, 다저스가 곧바로 파드리스를 따라잡습니다.]

하물며 고작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에이스가 그 가혹함을 피해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개막전.

다저스가 파드리스를 11:6으로 쓰러트렸다.

-우아, 뭔가 보고 있으니까 잘하는데 더 잘하고, 더 잘하는데 더더 잘한다는 느낌이었음.-

-저게 잡혀? 하면 잡히고, 저건 안 잡히겠지? 하면 잡히고, 저거 설마 넘어가나? 하면 넘어감.-

-근데 막, 말도 안 된다는 수준까진 또 아니던데? 그냥 KBO 올스타급 정도 되는 느낌? 그 정도면 우리 성민이도 딱히 뒤질 이유는 없겠던데?-

-KBO 올스타를 대체 얼마나 대단하게 보는 거냐?-

-그게 다 잘하는 애들끼리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임. 저기 마린스 애들 가져다 두잖아? 저건 잡겠지? 하면 못 잡고, 설마 저걸 휘두르나? 하면 휘두름.-

-마린스는 KBO에서도 그러거든?-

-근데 진짜 과장 아니라 KBO 올스타 저기 가져다 두면 그냥 마린스 됨.-

-마린스 까지 마라 이것들아!!-

파드리스와의 2차전.

다저 스타디움의 마운드 위에 성민이 섰다.

‘흐음.’

-어떠냐? 메이저리그 데뷔전은?

‘아직 공도 하나 안 던졌거든요?’

이곳은 전 세계 야구를 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꿈과 같은 무대였다.

-그래도 메이저의 마운드인데 뭔가 감흥은 있을 거 아니냐.

‘두근거립니다. 항상 꿈꾸던 무대에서 이렇게 공을 던질 수 있다니, 어린 시절의 꿈이 이뤄진 것 같습니다.’

-인터뷰용으로 준비한 대사 말고.

‘그냥 뭐, 똑같죠. 타자는 저기 서 있고, 야수들은 뒤에 서 있고, 포수는 미트 내밀고 있고. 나는 이제 공을 던져야죠.’

역시, 이 녀석은 타고난 너클볼 투수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한다. 그것은 쉬운 것 같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쓸데없는 걱정에 함몰되어 시간을 허비하는가.

“우리 성민이 잘하겠지?”

“내가 시범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들 봤는데 메이저 애들 상대로도 잘하더라.”

“근데 홈런만 네 방을 맞았다며, 거기다가 이야기 들어보니까 다저 스타디움 크기도 쬐까나던데 괜찮을까?”

“부산 마린스를 멱살 잡고 우승까지 시킨 투수잖어. 걱정을 말어.”

오히려 걱정하는 쪽은 이른 아침,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의 팬들이었다. 박찬화 이후로 얼마나 많은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로 건너갔던가. 하지만 그중 유의미한 성적을 거둔 선수의 숫자는 한 손에 꼽을 만큼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성민은 KBO를 박살 내고 MLB에 진출한 투수다. 지금 경기를 지켜보는 KBO의 팬들에게 성민이 MLB에서 깨지는 것은 KBO가 깨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타석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1번 타자 안토니오 패트릭이 들어왔다.

3년 800만 달러의 33세 타자다.

크게 성공한 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나이까지 메이저에서 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성공이다.

그는 KBO에 오는 용병들보다 한 단계 정도 높은 수준의 타자라고 볼 수 있었다.

마운드의 성민이 크게 와인드업했다.

초구.

73.7마일의 빠른 너클볼.

-뻐엉!!

“스트라잌!!”

초구를 그냥 흘려보냈다.

‘역시 너클볼이라 이거네. 터널 포인트라는 게 아예 없군. 젠장.’

야구에는 피치 터널이라는 것이 있다.

투수가 공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타자가 공의 구질을 구분하기까지 구질이 파악되지 않는 구간을 의미한다. 당연히 그 구간이 길면 길수록 좋은 변화구다. 이것은 단순히 공의 궤적만이 아니라 투수의 투구 자세, 그리고 릴리즈 포인트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통상적으로 그 피치 터널의 끝부분을 터널 포인트라고 하는데, 너클볼의 경우 그 터널 포인트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변화구의 경우 일단 터널 포인트를 지나면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너클볼은 홈플레이트를 지나는 그 순간까지도 자기 마음대로 방향을 바꾼다.

‘그래도 구속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미리 연습했던 투수보다 움직임은 덜 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다저스와 같은 지구에서 무려 15번을 붙어야 하는 팀이었다. 다른 변화구라면 그 수준의 차이는 있더라도 마이너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해봤지만, 너클볼은 아예 경험조차 하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이다.

파드리스에서는 구단 차원에서 너클볼 투수를 고용하여 원하는 선수에 한해서 직접 너클볼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저스의 2,200만 달러 투자에 대한 그 나름의 대비인 셈이다.

두 번째.

또 한 번 73.2마일의 빠른 너클볼이 날아왔다.

-부웅!!

“스트라잌!!”

공이 방망이와 10cm는 떨어진 곳으로 빠져나갔다.

볼카운트 0-2.

안토니오 패트릭이 마운드의 성민을 살폈다.

자신만만한 표정.

처음부터 존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공을 던졌다는 의미다.

‘젠장.’

팀에서 고용했던 너클볼 투수의 이야기가 기억났다.

“네? 스트라이크 존에 계속 던져달라고요? 어휴, 그게 됐으면 제가 지금 여기서 배팅볼을 던지겠습니까? 당장 메이저리거 도전하죠.”

그의 이야기처럼 너클볼은 애초에 스트라이크 존에 꾸준히 집어넣을 수만 있어도 빅리그에 도전해볼 만하다. 그런데 지금 마운드의 녀석은 그걸 존 안과 밖에 마음대로 집어넣었다 뺐다 하고 있다.

세 번째.

어지간한 공이라면 다 커트를 해보겠다.

방망이를 단단히 움켜쥐고 성민의 공을 기다렸다. 마운드의 성민이 언제나와 같은 폼으로 힘차게 공을 뿌렸다.

-부웅!!!

몸쪽 높은 코스. 91.8마일의 빠른 공. 최근 메이저리그 우완 투수의 속구 평속은 94마일을 넘어선다. 그걸 생각하면 느린 공이다.

하지만 73마일짜리 공을 기다리던 타자에게는 반응하기 힘들 만큼 너무 빠른 공이었다.

“스트라잌!! 아웃!!”

삼구삼진.

성민이 메이저 데뷔 첫 번째 타자를 가볍게 삼진으로 잡아냈다.

< 데뷔전(1)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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