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94화 (95/287)

< 캑터스리그(3) >

다저스의 야수조들이 합류하고 본격적인 PFP 훈련이 시작됐다.

“와우, 대단한데?”

운동능력에서 중간 수준의 평가를 받았던 성민이었다. 하지만 수비 훈련에서는 그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훈련의 차이 때문이었다.

메이저에서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을 던지는 것이다. 수비 상황에서의 훈련에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팀은 많지 않았다. 퀵모션 같은 부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KBO는 다르다.

그리고 비슷한 재능이라면 역시 많이 경험한 쪽이 능숙하기 마련이다. 성민의 운동능력은 평균은 됐다. 몇몇 특출난 선수들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애초에 투수의 수비에서 유격수나 이루수가 보여주는 화려함을 기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의 건실한 수비에 코치진이 만족을 표했다.

‘투수가 수비만 잘해서 뭘 하려고.’

‘그러니까. 게다가 그 너클볼도 별 건 없더만. 에드도 처음에는 좀 힘들어하더니 이제는 거의 다 잡아내잖아.’

일주일의 훈련.

그리고 마침내 시범경기의 시간이 돌아왔다.

[김성민 첫 홈 경기 등판 예정?]

[디아고 헤밍턴에 이은 두 번째 선발 등판 유력.]

[2선발 문제 없다. 김성민 출격 준비 완료!! 상대는 신시내티 레즈.]

-성민이 몸값으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디아고 헤밍턴 다음 2선발은 유력하다고 봐야지.-

-근데 성민이 너클볼 받을 포수는 준비됐으려나?-

-한국에서는 권혁준도 받았는데 무슨 걱정임.-

-혁준이 무시 ㄴㄴ함. 솔직히 혁준이 아니었으면 마린스도 성민이 제대로 못 썼음. 거기다 권혁준도 초반에는 공 제법 뒤로 빠트렸고.-

-그러면 혁준이 데려다 쓰면 되겠네.-

-일단 포스팅 자격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KBO에서 1할 4푼짜리 포수를 메이저에서 왜 가져다 씀. 타격 아예 안 하고 너클볼만 받으려면 권혁준보다 좋은 포수도 널렸을걸? 최소한의 타격은 되는 선수 중에서 찾아야 하니까 문제임.-

-지금 소식 나온 거로는 에드 맥밀란이 공 받는다던데? 에드 맥밀란이면 그래도 MLB 최고 포수 중 하나잖아. 충분히 받지 않으려나?-

-하긴 공격적인 부분이 너무 돋보여서 그렇지 에드 맥밀란 정도면 수비도 나무랄 곳 없는 포수지. 개인적으로는 에두아르도 크루즈를 더 선호하긴 하지만 말이야.-

-솔직히 작년에 성민이 득점 지원 빈약했던 거 권혁준 때문도 있었잖아. 이번 기회에 빠따 되는 포수 써서 성민이도 마음 편하게 야구 좀 해보자.-

홈에서 열리는 첫 시범 경기.

40인 로스터는커녕 아직 트리플 A도 한 번 밟아본 적 없는 다저스의 네 번째 옵션 마이크 올리버가 감독의 부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네? 준비요? 그러니까 내일이요? 내일 원정이 아니라 홈인데요?”

“그래, 홈 경기.”

일반적으로 시범경기에서 홈에서 등판하는 것은 25인에 가까운 선수들이고, 원정에 등판하는 것은 40인 외, 혹은 논인바이티드 로스터 선수들이다. 물론 캑터스 리그는 그레이프푸르트 리그보다 경기장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그렇게까지 엄격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도 홈 첫 경기였다. 세 번째도 아닌 네 번째 옵션인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올 만한 경기는 절대 아니다.

대체 뭐 때문일까?

그는 자기 자신의 주제를 확실하게 파악하는 남자였다.

물론 포구는 자신 있다. 재능도 나쁘지는 않다. 아마 이대로 무난하게 성장한다면 다저스, 그게 아니더라도 룰5드래프트로 적당한 팀으로 적을 옮겨 두 번째 옵션의 포수로 적당히 4, 5년 정도. 운이 좋다면 짧게나마 FA도 한 번정도는 타먹을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다저스의 메인 포수인 에드 맥밀란은 너무 대단한 포수였다. 게다가 두 번째 옵션과 세 번째 옵션 역시 포수가 부족한 팀이라면 풀타임을 뛸 만한 선수들이다. 부상과 같은 이슈가 아니라면 도저히 본인이 파고들 구석이 없었다.

“성민이 네가 제일 편하다고 하더군.”

“성민이요?”

최근 며칠.

성민은 에드 맥밀란 뿐만 아니라 모든 포수에게 공을 던졌다. 하지만 마이크 올리버 본인이 특출났었나를 생각하면 딱히 그것도 아니었다. 주전 포수인 에드 맥밀란을 비롯한 모두가 무난하게 공을 받아냈다.

“왜? 싫어?”

“어휴, 그럴 리가요. 저야 너무 좋죠. 내일 경기 철저하게 준비해두겠습니다.”

하지만 의문은 나중에 풀어도 늦지 않다.

잡아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기회가 온 것은 사실이다. 마이크 올리버가 뜻밖의 행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

신시내티 레즈는 30개 구단 중에서 손에 꼽힐 만큼 작은 권역을 가진 스몰 마켓팀이다. 밀워키야 워낙 작으니 제외한다 치고, 클리블랜드와 캔자스시티 정도만이 신시내티와 비교할 만하다. 인구수로 따진다면 부산권역보다 오히려 더 작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시내티는 강팀의 이미지가 있다. 역사를 통틀어 총 다섯 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빅 레드 머신이라 칭해지는 전성기 역시 존재했다.

작년에도 아깝게 와일드카드에 실패할 만큼 탄탄한 팀이었고, 올해에는 작년보다 1,100만 달러를 더 투자하여 확실한 전력 보강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런 탄탄한 팀을 상대로 디아고 헤밍턴은 2이닝 동안 6명의 타자를 상대로 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단 하나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대단하군.

‘불펜에서 공을 던질 때와는 또 느낌이 다르네요.’

-슬라이더는 조금 안 좋았던 것 같은데, 커브와 커터만으로도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어.

‘뭐, 아무래도 저쪽도 원정이라고 주전 선수는 안 데리고 왔잖아요.’

-그건 그렇지. 근데 그러면 오늘 굳이 에드 맥밀란 대신 마이크 올리버를 지목할 필요가 있었나? 오늘 저 정도가 상대면 그냥 에드로 충분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녀석도 초창기 혁준이 놈만큼은 받아주는 것 같던데.

‘처음에는 그냥 호가호위로 만족할 생각이었는데, 조금 짜증나서요.’

-짜증?

‘네, 어차피 나랑 같이 뛸 것도 아닌 녀석들이라고 무시할 생각이었는데, 뭐 힘숨찐도 아니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싶더라고요. 게다가 시범경기라고 해도 데뷔전이라면 데뷔전인데 이왕이면 화려한 게 더 좋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

다저스의 공격이 끝나고, 성민의 차례가 돌아왔다.

보통 시범경기에 먼저 출장하는 선수는 경기가 끝나기 전에 퇴근을 한다. 오늘 같은 경우 먼저 등판했던 디아고 헤밍턴과 에드 맥밀란이 퇴근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 둘 다 덕아웃을 지켰다.

‘어디 한 번 보여줘 봐. 에드를 물 먹인 피칭을 말이야.’

‘빌어먹을.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똑똑히 지켜보겠어.’

마운드의 성민이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카멜백 랜치-글렌데일을 가득 메운 다저스의 13,000여 팬들이 성민에게 집중했다. 무려 6,600만 달러를 투자한 새로운 투수다.

초구.

90.1마일 존을 슬쩍 빠져나가는 빠른 공.

-딱!!

높게 뜬 타구가 1루 파울라인을 벗어났다.

성민이 고개를 돌려 두 번째 공을 준비했다.

“아웃!!”

‘어?’

-어?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상황에 성민도, 필 니크로도 모두 당황했다. 물론 그라운드에서 이 상황에 당황한 것은 오직 그 둘 뿐이었다.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팬에게 방금 그것은 당연히 잡아야 할 공을 잡아낸 것이었으니까.

-지금 성민이 표정 봤냐?-

-나 성민이가 마운드에서 당황하는 거 처음 봄.-

-뭐지? 왜 이게 아웃이지?-

-마린스의 행복 수비에 너무 적응해버렸어. 이제 정상적인 수비를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거야.-

-매일 마린스 수비 보다가 이거 보니까 안구랑 마음이 모두 정화되는 느낌이다. 그래 이게 야구지.-

-나 이제 큰일난 듯. 벌써부터 걱정된다.-

-뭐가?-

-이런 경기를 봤는데 앞으로 마린스 경기를 직관 가야 하잖아. 속 터져 죽을 듯.-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타석에 신시내티의 7번 타자가 들어왔다.

‘와, 이걸 잡네요?’

-그러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저런 공 정도는 잡아주는 게 당연한데, 현정현 그놈을 너무 오래 봐서 그런가? 나도 조금 당황스럽군.

‘오늘 원래 막 6타자 연속 탈삼진 이런 거 하고 싶었는데. 이거 다른 의미에서 힘들겠는데요?’

-그래, 성민아. 여기는 마린스가 아니다. 수비가 파울라인을 벗어난 뜬 공을 잡을 가능성도 존재해.

초구.

72.3마일의 빠른 너클볼.

가볍게 던진 공이 춤을 추며 날아갔다. 마이크 올리버의 미트가 성민의 공을 따라 움직였다.

-딱!!

타자의 방망이가 휙 하고 떨어지는 성민의 너클볼을 건드렸다.

낮게 깔려 날아가는 힘 없는 타구.

다저스의 주전 유격수인 페데리코 수가 빠르게 전진했다.

인조 잔디 위를 통통 튕겨오는 야구공이 페데리코 수의 오른손에 마법처럼 쏙 들어갔다.

‘어?’

-어?

그리고 그대로 점프를 하며 반 바퀴 턴.

휙하고 던진 야구공이 일루수의 미트로 빨려들어갔다.

“아웃!!”

압도적인 수비.

하지만 그 압도적인 수비를 해낸 페데리코 수는 마치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얼굴로 자기 자리에 돌아갔다.

-야, 지금 이거 뭐야?-

-내가 뭘 본 거지?-

-촌스럽게 뭐 이런 거로 당황하고 그래. 우리 동엽신도 이런 수비 종종 보여줬다고.-

-동엽신 같은 소리 하네. 박동엽이면 저기서 공 잡은 다음에 1루 관중석으로 집어 던져서 인정 이루타 만든다고.-

-아니, 물론 동엽이도 분명 하이라이트 수비 보면 가끔 이런 수비를 보여주긴 하거든? 근데 지금 저 유격수는 그냥 되게 일상인 것처럼 수비하고 들어갔어.-

-에이, 아무리 메이저라고 해도 이런 수비가 일상이겠어?-

-메이저라고 해도 일상인 건 아닌데, 페데리코 수한테는 일상임. 쟤 하이라이트 보면 더 놀랄걸? 이제 24살인데 벌써 안드렐톤 시몬스급이라는 이야기 나오는 애임.-

-성민이 얼굴 지금 감동받은 얼굴 맞지?-

-너라면 감동 안 받겠냐? 동엽이 새끼랑 야구 하다가 지금 안드렐톤 시몬스급이랑 야구 하는데?-

-만약 마린스 수비가 저랬잖아? 성민이 진짜 0점대 초반 평자책도 가능했을 것 같다.-

-ㅇㅈ-

성민이 조금 다른 의미에서 위기감을 느꼈다.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줄 요량이었는데 이건 뭐 수비가 다 해 먹는다. 뭔가 기쁘면서도 묘하게 찝찝한 느낌이다.

세 번째 9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왔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지금 삼진 잡고 싶으면 괜히 카운트 잡으려고 하지 말고 전력으로 헛스윙을 유도해야 할 것 같은데?

초구 90.3마일의 빠른 공.

존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가는 공이 타자의 방망이를 끌어냈다.

-부웅!!

“스트라잌!!”

두 번째.

61.1마일의 느린 너클볼

-부웅!!

“스트라잌!!!”

완벽하게 타이밍을 빼앗긴 타자가 대체 이게 뭔가 하는 눈빛으로 성민을 바라봤다. 속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자세에서 나온 너클볼의 위력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73.4마일의 빠른 너클볼.

공을 던지는 그 순간 성민은 확신했다.

이번엔 제대로다.

마이크 올리버가 마지막까지 공을 지켜봤다. 보통은 이쯤에서 미트를 들이대면 되지만, 가끔 성민이 던지는 공 가운데 더 늦게까지 기다렸다가 변화하는 공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은 공에 맞춰 미트를 움직였지만, 몇 번 그 공에 당한 이후에는 그 공에 맞춰 미트를 움직이는 버릇을 들였다.

그리고 지금 그 버릇이 빛을 발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덕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에드 맥밀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 공이었다. 그가 마이크 올리버에게 포수 마스크를 양보하게 만든 빌어먹을 공. 어찌어찌 잡아낼 때도 있지만 미트의 끄트머리로 간신히 받아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는 팀의 주전 포수이자 가장 강력한 타자 중 하나다. 손가락 부상의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었다.

“좋은데? 에드, 우리 올해는 반지 낄 수 있겠는데?”

“흥, 아직이야. 우리가 반지를 끼려면 내가 저 공을 받아낼 수 있어야지. 올리버 저 녀석이 타석에 들어가는 건 타자 일곱 명이서 경기를 뛰는 거나 다름 없을 거라고.”

2이닝 3탈삼진 0피안타.

성민이 첫 번째 시범경기를 무사히 끝냈다.

< 캑터스리그(3)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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