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88화 (89/287)

< 윈터 미팅(2) >

“어휴, 진짜 처음에는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어. 애새끼들은 아주 제멋대로지. 그런 주제에 또 지들이 엄청 잘난 줄 알아요? 이래서 리빌딩을 하더라도 베테랑 코어 한, 둘은 남기고 해야 한다니까.”

오토 람머마이어가 작년 보스턴에 입단한 이후 경험했던 일들을 풀어놨다. 현 단장인 존 맥도웰이 팀을 맡은 이후 고강도의 탱킹을 실시했던 보스턴은 양질의 유망주들을 잔뜩 모으는 데는 성공했다. 물론 작년 뒤에서 두 번째라는 승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양질의 유망주들이 영 터지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막판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어. 애들도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고, 폭발의 기미도 보인단 말이지. 무엇보다 구단에서도 돈을 아낌없이 풀 예정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알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보스턴이 팬층이 또 엄청 단단하거든.”

오토의 이야기에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전해진다고 느낀 그가 신이 나서 보스턴의 이야기를 떠들었다.

사실 그가 여기에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이번 시즌 본인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따로 훈련을 할 생각인 건 맞았다. 하지만 그 장소가 굳이 이곳일 이유는 없었다. 그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단장인 존 맥도웰의 부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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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은 다른 어느 팀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할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수 영입이라는 게 그런 것만으로 되는 건 아니죠.”

“뭐, 그건 그렇죠. 돈도 중요하지만 우승할 수 있는 팀도 중요하니까요.”

“팀의 일원이니 누구보다 잘 아실겁니다. 이번 시즌 저희 성적은 불운했지만, 하반기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보면 확실히 좋아진 부분들이 있습니다. 부족한 조각들만 맞출 수 있다면 내년부터는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를 설득해달라는 말이로군요.”

처음 존 맥도웰이 부탁한 것은 전화 정도였다. 하지만 오토 람머마이어는 직접 날아왔다.

모든 선수는 높은 연봉과 우승을 원한다.

7년 1억 8천만으로 높은 연봉은 이미 쟁취했다. 오토 람머마이어에게 남은 것은 우승.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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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론은 우리 보스턴도 이제 폭발할 준비가 진짜 다 끝나있다 이거지.”

“아, 그렇구나. 좋은 정보 고마워. 아 그리고 이것도 고맙다. 역시 현역 메이저리거라 그런지 보충제도 좋은 걸 쓰네.”

“어휴, 별것도 아니야. 그냥 한 팩에 120달러? 뭐 필요하면 한 박스 가져온 거 있는데 줄까?”

“나야 고맙지. 잘 먹을게. 땡큐.”

성민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건 이야기가 잘 통한 것이다. 오토 람머마이어가 기쁘게 자신의 보충제 박스를 성민에게 넘겼다.

-너 솔직히 쟤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안 들었지.

“아뇨, 듣긴 엄청 잘 들었는데요.”

-잘 들었다고?

“네, 근데 뭐라고 하는지 잘 이해는 안 되더라고요. 시설 사람들은 천천히 잘 이야기해줘서 대충 알아듣겠던데, 역시 배려 없는 영어를 알아듣는 건 아직 무리인가봐요. 앞으로는 전부 통역 좀 부탁드릴게요.”

-좋은 정보 고맙다는 말은?

“120달러짜리 선물을 그냥 받았는데 그 정도 인사는 해야죠. 그리고 인사했더니 좋다고 10개들이 박스도 하나 공짜로 줬잖아요.”

필 니크로가 딱히 놀라지 않았다.

이놈은 원래 이런 놈이다.

다만 이런 놈인 것도 모르고 멀리서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1,200달러 치 선물을 하고 사라진 오토 람머마이어가 불쌍할 뿐이었다.

-아니지, 어떻게 생각하면 처음 당한 건데 1,200달러면 싸게 먹힌 거지.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아니다. 근데 너 브레이브스는 정말 관심 없냐? 솔직히 보스턴보다는 상황이 나은 것 같던데.

필 니크로가 은근히 자신의 고향팀을 권했다.

“네, 안 갑니다. 메이저의 마린스들에는 관심 없습니다. 돌아가세요.”

물론 이번에도 답변은 칼 같았다.

***

“그러니까 현재까지 필리스, 내셔널스, 다저스, 레드삭스가 가장 적극적이라 이 말이네요. 조건은 각각 이런 식이고요.”

“네, 아무래도 조건이 불리한 필리스와 레드삭스 쪽에서는 계약기간도 길고, 금액도 큽니다. 무엇보다 옵션 없는 순수보장금액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옵션까지 붙이면 더 큰 금액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성민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양하겠습니다.”

빅터 모리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이런 선수들이 있다. 특정 팀이 너무 좋거나 너무 싫다든지, 혹은 꼭 우승을 하고 싶다든지 하는 선수들. 전자의 경우는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이고, 후자의 경우는 늙은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어린 선수들의 경우는 어차피 드래프트로 입단하는 만큼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물론 외국의 독립리그 등을 거치는 꼼수가 있긴 하지만, 손해가 막심하다. 그냥 땡깡이라고 보면 된다.

늙은 선수의 경우 정말 연봉 삭감을 각오하고 컨텐더 팀을 선택한다. 게다가 그런 선수들은 평소 했던 이야기가 있기에, 컨텐더 팀들 역시도 선수의 경향을 알고 있다. 배짱을 튕겨서 몸값을 팍팍 깎아내린다. 에이전시로는 참 싫은 경우다.

하지만 성민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나이상으로 전성기의 한가운데에 있는 선수다. 게다가 그가 정확히 어떤 것을 원하는지에 대해 일체 발설한 것이 없다. 필리스, 내셔널스, 다저스, 레드삭스와 접촉이 빈번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AVV나 총액 기준으로 가장 높은 팀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에 불과했다.

사실 성민이 가장 베스트로 생각하는 계약은 3년이었다.

첫해는 적응을 위한 기간. 그리고 2년 차와 3년 차는 자신의 기량을 증명하는 기간이다. 물론 성민이 KBO를 거의 박살을 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KBO를 박살냈다고 곧바로 MLB에서 발군의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성민은 아직도 필 니크로가 던졌던 그 환상적인 너클볼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간신히 메이저 공인구에 적응하고 있는 성민에게는 아직 요원한 공이었다.

또한, 필 니크로 역시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 네가 던지는 공은 20년 전 RA 디키에 버금간다.

당시 RA 디키는 사이 영 위너였다. 대단한 칭찬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20년 사이에 야구는 또 한 번 발전했다. RA 디키 이후로 제대로 된 너클볼러가 나오지 못하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지.

그 말은 결국 이 시대의 메이저에서 군림하기 위해서는 필 니크로가 보여줬던 그 환상적인 너클볼이 필수라는 뜻이었다.

내년 시즌을 기준으로 성민의 나이는 만 30세. 3년 계약을 끝낸다고 해도 만 33세로, 엘리트급 선수를 기준으로는 충분히 장기 계약을 따낼 수 있는 나이다.

무엇보다 성민은 너클볼 투수였다. 필 니크로가 40대에 121승을 거뒀고 RA 디키는 만 38세에 첫 사이영을 얻었다.

“그러면, 일단 나올 수 있는 최대치의 금액은 나온 것 같으니 필리스나 레드삭스를 대상으로 기간을 줄이는 대신 AVV를 높이는 계약을 유도해보겠습니다. 거기에 옵션을 조금 더 얹어보죠.”

“다저스나 내셔널스가 반응할까요?”

“할 겁니다. 뭐 금액적으로는 아마 짜낼 만큼 짜낸 금액이라 더 올리기는 힘들겠지만요.”

다저스와 내셔널스는 필리스, 레드삭스보다 부자다. 마켓의 크기만 따지면 워싱턴, 필라델피아, 보스턴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일단 워싱턴은 구단주가 부자고 중계권 계약갱신을 매우 잘했다.

하지만 동시에 다저스와 내셔널스는 필리스, 레드삭스보다 여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지금까지 꾸준히 달려왔다. 반면 필리스와 레드삭스는 최근까지 제 자리에 서서 숨을 골랐다. 여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거기서 이제 옵션 장난을 칠 여력이 나오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사실 다저스나 내셔널스 같은 구단은 한정적이건 뭐건 트레이드 거부권은 어지간하면 잘 주려고 하지 않는단 말이죠.”

[필라델피아 필리스, 김성민에게 옵션 포함 3년 6,000만 제시.]

-뭐야? 이거 진짜야?-

-벅홀츠면 필리스 쪽으로는 엄청 신뢰도 높은 기자임. 그 기자 트윗이라니까 거의 사실이라고 봐야지.-

-크, 김성민 클라스 진짜 지리네. 빅리그 밟아보지도 못했는데 3년 6천만이라니. 그것도 너클볼 투수가.-

-Kia~ 주모, 여기 국뽕 한 그릇 시원하게 말아 주시오.-

-김성민 ‘난 절대 메이저에서는 마린스 같은 팀은 가지 않아.’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

-아, 근데 좀 아쉽다. 난 그래도 우리 성민이가 강팀에서 뛰는 게 보고 싶었는데.

***

“결국, 총액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AVV가 높은 쪽을 원한단 말이로군. 실력에는 자신이 있다 이 말인데······. 지금 우리 당장 내년 가용한 금액이 얼마나 되지?”

“당장 내년에는 사치세 라인까지는 6,700만으로 조금 여유가 있습니다만 후년이랑 내후년이 문제입니다. 그때부터 연봉협상자격을 얻는 선수들이 나오기 시작할 테니까요. 연평균 2천만 선이면 후년에는 사치세 라인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대형 FA를 잡는다면 당장 내년부터 위험할 수도 있고요. 제 생각에는 만약 AVV를 높여서 잡으려고 한다면 2년 계약을 노려보는 것도······.”

“아니, 그건 멍청한 짓이야.”

현재 메이저리그의 모든 단장 가운데 성민의 성공을 가장 강하게 확신하는 쪽은 보스턴의 단장인 존 맥도웰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가 던진 5년 8천만이 누군가에게는 과감한 승부수일 수 있지만, 존 맥도웰에게는 연평균 2,500만 이상의 활약이 가능한 투수를 싸게 잡는 일이었다.

“지금 실적이 부족해서 가치가 높지 않을 때 최대한 길게 잡는 게 유리해.”

“하지만 메이저에서 보여준 것도 없는 투수인데 성공을 꼭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메이저에서 보여준 것이 있는 투수라고 해도 항상 성공을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리고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래 봐야 하위리그에서 보여준 성적입니다.”

“누가 성적 따위를 본대? 중요한 건 숫자라고. 녀석이 던진 공의 속도, 움직임, 회전. 그리고 그 공이 만들어낸 타구의 경향성.”

턱을 괸 오른손의 검지를 잘근잘근 깨물던 존 맥도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성민도 보스턴에 관심이 있다고 했지?”

“네, 람머마이어 선수가 설득했을 때 관심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텃세를 부릴 선수가 없고, 선수들의 잠재력이 크다는 부분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렇지. 외국 리그에서 경력을 쌓고 온 선수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일 거야. 게다가 사실상 팀의 리더인 람머마이어가 직접 찾아온 것부터가 클럽하우스에서도 본인을 강하게 원한다는 느낌을 줬을테고 말이야.”

부족한 팀의 성적이 발목을 잡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결국 돈과 조건의 싸움뿐이다. 짧은 기간과 더 높은 수준의 AVV를 원한다고? 좋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다 충족시켜주는 계약을 제시하겠다.

“6년 보장 1억. 4년 차에 옵트아웃 조건을 걸지. 1,500으로 4년. 그리고 2천만으로 2년. 옵션으로는 사이 영 3위 이내와 이닝 보너스로 1,000만을 더하자고.”

“네?”

윈터 미팅까지 남은 기간은 하루.

그 폭탄 같은 오퍼가 야구계를 뒤흔들었다.

< 윈터 미팅(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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