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75화 (76/287)

< 언플(2) >

성민의 인터뷰가 자극한 것은 마린스 팬들의 트라우마만이 아니었다.

트래픽을 먹고 사는 인간들 역시 크게 자극됐다.

[에이스 투수의 혹사. 괜찮을까?]

[토미존 서저리 이후 불과 1년. 144경기 체제 속에서 30경기 202이닝 등판한 김성민.]

사실 일곱 번의 경기에서 성민을 세 차례 등판시키겠다는 것은 그저 김호산 사장의 지시일 뿐. 아직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정상적이라면 사실 이렇게 화제가 될 만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성민의 화제성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데요?”

-생각보다?

“네, 기자들이 이렇게까지 받아쓰기하고 거기다 자발적으로 확대생산까지 해줄 줄은 몰랐어요.”

-안 좋은 일이야?

“그럴리가요. 당연히 좋은 일이죠. 애초에 KBO 기자들한테 바로 소스 못 준 것도 내가 혹사를 꺼린다는 게 알려지면 안되서기도 하고, 애초에 제가 기자들이랑 잘 지낸다지만 전 이제 떠날 사람이잖아요. 그 분들은 계속 KBO랑 함께하실 분들이라 구단 편을 들 확률이 더 높아서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알아서 화제가 되면 저야 좋죠.”

물론 마린스 프런트라고 가만히 앉아있지만은 않았다.

“김 기자.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아니, 정론은 무슨 정론이야. 이건 누가 봐도 우리 성민이 노리는 기사잖아. 애초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갖고 이러기야? 우리가 평소에 뭐 섭섭하게 했어?”

“아니, 박 기자. 그러지 말고, 어휴, 알지. 알아. 내가 나중에 훨씬 기깔찬 놈으로 줄테니까 이건 그냥 좀 내리자. 응?”

물론 사건의 시발은 성민의 인터뷰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우승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수의 투지를 욕할 수는 없었으니까. 다만 마린스 프런트 입장에서 그 투지가 혹사라는 표현으로 바뀌는 것은 곤란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기사의 확대를 막았다.

“어휴, 그럼요. 정규시즌도 아니고, 막판 끝장승부인데 혹사는 무슨 혹사입니까. 게다가 어디 메이저라고 그런 적이 없답니까? 죄다 실패요? 어휴, 아닙니다. 거 2001년 커트 실링 아시죠. 네, 그 막말하는 공화당 영감님이요. 그 양반 월드시리즈에 3일 등판으로 3경기 21.1이닝 동안 꼴랑 4실점 하고 그다음 해에 WAR 기준으로 커리어하이 찍었잖습니까. 네네, 그러니까 좀 그런 식으로 잘 부탁합니다.”

“곽 기자. 왜 이래. 선수끼리. 너클볼러들 어깨랑 팔꿈치 훨씬 덜 쓰는 거 곽 기자도 잘 알잖아.”

동시에 한국시리즈의 중요성. 그리고 3일 등판의 성공사례, 너클볼러의 특수성을 부각한 기사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더블헤더 2연전에 모두 선발 등판했던 너클볼러 윌버 우드. 너클볼러가 연투에 강한 이유!!]

[2001년의 위대한 승리를 기억하는가?]

-뭐야? 메이저에도 1, 4, 7차전 선발 등판하고 잘던졌던 경우가 있구만. 게다가 다음 해에는 또 쌩쌩하게 던졌다네.-

-너클볼러가 연투에 강한게 이런 이유구나. 그러면 성민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멍청한 소리들 한다. 그거야 빠른 공 아예 안던졌던 경우고. 성민이는 140 후반의 공도 레퍼토리에 섞어놓잖아. 존나 빡세다고.-

-존나 실패한 경우는 다 무시하고 메이저 역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레드넥 할배 하나만 갖고 이야기 하면 설득력이 어지간히 있겠다. 상식적으로 천명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겠냐? 아니면 999명이 될 가능성이 높겠냐?-

-우리 성민이면 할 수 있거든?-

-우리라는 말 붙일꺼면 좀 아껴나 주고 말하자. 재작년 가을에 수술한 애를 1년 만에 대체 얼마나 혹사시키려는 거야? 그러다가 메이저 못 가거나 가서 부상으로 골골대면 신경 써줄 것도 아닌 새끼들이.-

***

재규어스의 회의실.

“전력분석 팀장님.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 김성민이 3번 올라오는 게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아무리 그 친구가 대단한 선수라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세 번이나 올라오면 우리 타자들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물론 그건 그렇습니다만.”

“다만?”

“그게, 저희 계산식대로면 3일 휴식하고 4차전 등판할 김성민은 4일 휴식한 닉 해리슨이랑 엇비슷한 수준이고, 거기서 또 3일 휴식하고 7차전 등판할 경우도 게릭 벨이랑 엇비슷할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결론이 뭡니까.”

“마린스 4선발이랑 5선발 기량을 생각하면, 그냥 3선발로 돌려버리는 게 저희에게는 더 위협적일 겁니다.”

재규어스의 이단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멀뚱하게 앉아있는 홍보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박 팀장님 들었죠?”

“네?”

“아니, 그쪽 3선발로 돌리는 게 더 위협적이래잖습니까. 놀꺼에요? 기자들한테 연락 안 돌려요?”

“아, 아. 넵!! 지금 바로 연락 돌리겠습니다.”

“혹사에 초점을 맞춰주세요. 그리고 아, 다나카. 다나카 마사히로나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야기 같은 것도 좀 팍팍 넣으라고 하시고요. 자국 리그에서 혹사당한 투수가 메이저에서 망한 그런 이야기요.”

“그런데 단장님.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부상이라기 보다는······.”

“아니,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늬앙스. 늬앙스가 중요한 거 아닙니까.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

“네, 네!! 죄송합니다.”

기사를 내리려는 자들.

새로운 기사를 올리려는 자들.

혹사라 말하는 자들과, 포스트시즌의 특수성을 이야기하는 자들.

-성민아, 그런데 정말 이 정도로 괜찮겠어? 이 정도면 마린스 놈들이라면 눈 딱 감고 그냥 내보낼 것 같은데.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끝난 게 아니면?

***

KBO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은 엘리츠, 마린스, 호크스 3대 팀이다.

물론 팬덤 역시 어느정도 성적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재규어스는 지난 17년 동안 무려 여덟 번의 우승을 차지한 이 시대의 왕조다.

하지만 팬덤과 팬덤의 싸움에서 원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마린스의 독한 팬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야구와 크게 상관이 없는 대형 커뮤니티.

본래라면 특정 야구선수의 이야기는 그리 큰 관심을 받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커뮤니티들에는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

글을 쓸 때 사진과 함께 그림파일로 올려라.

그것이 무엇이든 사진과 함께 하는 긴 글은 무조건 관심을 갖는다. 내용과 상관없이 미남 미녀의 사진이라면 더 좋다.

때마침 성민은 미남이었다.

당장 화장만 제대로 먹여준다면 모델 옆에 서도 크게 꿀리지 않을 만큼 비율도 좋다.

“어휴, 우리 아들 진짜 누가 낳았는지 참 잘생겼네.”

권여사가 차마 양심상, 자신을 닮았다는 이야기는 못 했다. 어딜 봐도 젊은 시절 자신이 쟁취했던 남편을 닮은 얼굴이다.

“뭐, 그래도 체격은 날 닮았지.”

성민의 사진에 각종 뾰샤시한 효과가 더해졌다. 젊은 시절 프로필 사진으로 사기치던 솜씨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위에 기사에서 추출한 각종 자극적인 글귀들이 더해졌다.

[김성민 혹사설.jpg]

일단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끄는 이야기다. 당연했다. 그냥 야구 선수도 아니고 성민은 메이저리그의 진출이 확정적이라고 볼 수 있는 최근 가장 뜨거운 선수였다.

거기에 가입한지 10년도 더 된 오랜 MiniMom이라는 아이디가 공신력을 더했다.

거기서부터는 이제 일사천리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가장 뜨거운 게시글은, 누군가 퍼가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불과 몇 시간. 인터넷의 각종 대형 커뮤니티의 대문을 그 뽀샤시한 사진과 자극적인 글귀들이 차지했다.

커뮤니티들을 모두 단속하는 것은 기자를 설득해서 기사를 내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인터넷 여론이 완벽하게 돌아섰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부산 마린스의 우승을 간절하게 기원하는 팬 상당수는 성민의 1, 4, 7차전 등판을 원했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전체 팬 숫자에 비하면 그들은 매우 적은 숫자에 불과했다.

사실 구단으로서는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부산 마린스에게 돈을 벌어다주는 것은 마린스의 팬들이다. 그들이 아닌 이제 마린스가 아닌 메이저 어느 팀의 선수가 될 선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부산 마린스의 수익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입장료 수익이 아닌 모기업의 광고비였다.

그리고 마린스의 모기업은 마린스의 팬만이 아닌 전국민을 고객으로 하는 대기업이었다. 그 대기업은 소수의 마린스 팬이 아닌 국민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었다.

자본의 논리가 구단을 움직였다.

그리하여 3차전의 아침.

“공 감독. 지금 우리 2승이나 거뒀으니, 이제 김성민이 확실하게 1승 한다고 치면 나머지 4경기 중에서 1경기만 이겨도 우승 맞지?”

서울까지 경기를 보러 온 박호산 사장의 질문이 공필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

잠실구장에서의 3차전.

재규어스의 야수들이 각오를 다졌다.

“홈 팬들이 지켜보고 있다. 우리 쪽팔리지 말자.”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정신 차리자. 일곱 번 중에 두 번 먼저 이기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누가 네 번을 먼저 이기느냐가 중요하지.”

오늘 재규어스의 선발인 김지승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뚱뚱한 체격. 구속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더러운 구위로 땅볼을 유도해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투수다. 잠실, 그리고 재규어스의 탄탄한 내야진을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다.

그의 공이 마린스의 타자들을 억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딱!!

[박동엽!! 쳤습니다!! 높게 뜬 타구. 쭉쭉뻗어나갑니다.]

[이 선수, 이번 시리즈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요.]

주은철이 힘껏 달렸다. 높게 뜬 빠르고 강한 타구.

하지만 사직과는 달랐다.

이곳은 잠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외야를 가진 구장이었다. 재규어스의 젊은 외야수들이 보여주는 넓은 수비 레인지가 빛났다.

사직이었다면 넘어갔을, 마린스의 외야수였다면 놓쳤을 타구가 주은철의 글러브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은철의 놀라운 점핑 캐치!! 박동엽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군요.]

마린스의 선발인 게릭 벨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애초에 압도적인 기량을 보이는 투수가 아닌, 견적이 나오는 2선발로 평가를 받던 게릭 벨이었다.

리그 최고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재규어스의 타선을 완전히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재규어스의 타자들에게는 그들을 돕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잠실의 넓은 외야.

그리고 중견수를 제외한다면 제대로된 수비를 보여주지 못하는 마린스의 외야진.

김호섭이 최선을 다해 외야를 뛰어다녔지만, 늙고 살찐 그의 몸은 잠실의 넓은 외야를 커버하기에 역부족이었다.

11:4

재규어스가 한국 시리즈 첫 승을 거뒀다.

***

[마린스, 4차전 선발로 문규환 낙점!!]

[공필승 감독 ‘특정 투수에게 무리한 부담을 씌우지 않더라도 마린스는 충분히 강하다.’]

-미쳤네. 우승 포기하겠다 이거네.-

-솔직히 생각이 있으면 4차전 김성민, 5차전 닉 해리슨, 6차전 게릭 벨, 다시 7차전 김성민 해야 하는 거 아님? 문규환 이번 시즌 평자책이 4.61임.-

-생각이 있으니까 이렇게 한 거지. 어차피 이미 2승이야. 성민이랑 닉 해리슨 휴식 충분히 주면 투수 대 투수로 붙으면 우리가 더 쎄니까 한 경기 주고 그렇게 이기겠다는 거잖아.-

-포시에서 한 경기를 주긴 뭘 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너무 그러지들 마라. 마린스 작년에 성민이 없이도 3등했다. 마린스도 충분히 강하다.-

-강하긴 개뿔.-

그리고 4차전.

마린스가 팬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15:3 대패.

시리즈 스코어가 2:2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실의 마운드에 성민이 올라왔다.

< 언플(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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