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70화 (71/287)

< 한국시리즈(1) >

한국시리즈까지 닷새.

미야자키로 떠났던 마린스의 선수들이 돌아왔다.

3경기를 내리 패배하며 걱정을 모았던 마린스는 다행스럽게도 남은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물론 우연은 아니었다. 아무리 연습경기 삼아 참가한 경기라고 해도 연패만 주르륵하는 것은 기세에 문제가 생긴다. 공 감독은 마지막 두 경기를 모두 잡기 위해 충분히 쉬었던 주전급 투수들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마린스의 하위 선발과 불펜들이 아무리 욕을 먹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KBO 1군 투수들이다.

그들은 NPB의 2군 타자들을 상대로 두 경기 6점만을 내주며 선방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경기에서 이진섭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브레이킹 볼을 상대로는 조금 고전했지만, 속구에 있어서만큼은 기가 막힌 타격을 보여준 덕분이었다.

-역시, 우리 진섭이. 훌륭해.

‘아니 그러니까 걔가 왜 우리 진섭이냐니까요.’

모처럼 라커룸이 북적북적해졌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베테랑들은 잠깐 사이 반질반질해진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고, 일본에서 연습경기를 하고 돌아온 멤버들 역시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훈련을 떠나기 전 공감독의 이야기처럼 연습 경기의 승패보다 선수들의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것에 더 초점을 뒀다는 것이 확실히 눈에 보였다.

모처럼의 팀 훈련.

그리고 자체 청백전까지.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

플레이오프 5차전.

돌핀스와 재규어스의 경기.

마린스의 선수들이 라커룸에 모여 TV로 경기를 관람했다.

“성민아 넌 어디가 올라왔으면 좋겠냐?”

“글쎄요, 제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돌핀스가 편하죠.”

호섭이 질문을 바꿨다.

“아니 편한 거 말고 우리가 우승하려면 어느 팀이 올라오는 게 더 좋겠냐고?”

“그거라면 당연히 재규어스죠.”

“와, 이 새끼. 뻔뻔한 것 보소. 타자들 강한 건 네가 막을 수 있으니까, 타자들이 더 세더라도 투수가 좀 약한 팀이 올라오는 게 낫다 이거네.”

“뻔뻔은 무슨 뻔뻔입니까. TV 뉴스 보면 전부 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구만.”

“그야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좀 겸손한 맛이 있어야지.”

“겸손이야 마이크 들이대면 떠는 거로 충분하고요. 선배랑 나 사이에 무슨 겸손입니까.”

호섭이 성민의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하여간, 새끼가 말 하나는 진짜. 너 인마 내가 너 지금까지 엄청나게 봐줬던 거는 거 잘 알지?”

“알죠. 저도 밑으로 애들이 몇인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저 신인 시절부터 형이 저 엄청 커버쳐줬었잖아요.”

“그래서 내년에 갈 팀은 어디 정해둔 곳 있냐? 너 그거 잘 정해야 된다. 새로 간 팀에 나같은 선배가 또 있으리란 법이 없어요.”

성민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요. 그리고 선배는 무슨 선뱁니까. 이제 어딜 가건 제가 선배죠.”

“인마, 메이저는 또 달라요. 거긴 지네 말고는 전부 마이너로 취급하잖아.”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데요. 요즘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뛰고 온 것도 다 짬밥으로 쳐 준답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어휴, 하여간에. 내가 어? 말년에 후배 덕 좀 보나 했더니. 이건 뭐 잘해도 좀 잘해야지. 하여간 애새끼가 어떻게 중간이 없어요. 중간이. 갑자기 1년 만에 메이저가 뭐냐 메이저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 짓는 호섭의 옆구리를 성민이 쿡쿡 찔렀다.

“흐흐, 형님.”

“징그럽게 붙지는 말고. 어휴, 하여간 나중에 실패하고 투수코치 시켜달라고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지 마. 이왕 메이저 가면 어? 크게 성공하고. 그러고 금의환향, 어? 그거 하는 거야. 알겠어?”

“그 무슨 당연한 말씀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고 그러십니까. 그리고 아직 남았잖아요. 제일 중요한 녀석이.”

TV속 방망이가 공을 후려쳤다.

-딱!!

빨랫줄처럼 쭉 뻗는 타구.

잠실의 넓은 외야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시리즈를 결정짓는 석점포.

마침내 마린스의 한국시리즈 상대가 결정됐다.

서울 재규어스.

그들은 지금까지 있었던 KBO의 여느 왕조들처럼 짧은 기간 단번에 우승을 몰아치듯 달성한 팀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17년. 8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재규어스는 매년 가을 야구에 참여했다.

그렇게 성민의 사춘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재규어스는 매년 KBO의 우승 후보였고 실제로 가장 많은 우승을 가져갔다.

부산 마린스. 무려 40년만의 우승 도전이다.

그 험난했던 여정의 마무리가 쉬운 것은 재미없다.

그렇기에 상대는 이 시대 최강. 유종의 미를 거두기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상대는 없었다.

마린스의 선수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시리즈까지 사흘.

아직 몸을 달굴 시간은 남아 있었다.

***

10월 24일.

싸늘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기.

부산 사람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시계에 답답함을 느꼈다.

일 분,

십분,

한 시간.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기다렸던 한국시리즈 1차전의 무대가 사직에서 시작됐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한국 시리즈 1차전. 부산 마린스와 서울 재규어스의 경기. 이곳은 사직. 사직구장입니다.]

사직구장에 앉아서 직관을 하며 동시에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중계를 듣는 관중들.

너무 치열한 경쟁 탓에 결국 표를 구하지 못한 채, 사직구장 앞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

일상의 빡빡함에 치여 경기장을 찾지 못한 많은 팬까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마 그런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저 의례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단순한 한 마디가 그들의 가슴을 너무나도 먹먹하게 만들었다.

84년 무쇠팔이 홀로 시리즈의 55%를 책임지며 처음 마린스에게 우승을 떠먹였던 당시 맥주병을 부딪치던 20대 청춘들은 이제 일흔이 훌쩍 넘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당시를 추억했다.

92년 안경을 낀 신인 에이스가 자신의 어깨를 불태워 마린스에게 마지막 우승을 선물하던 당시에 새내기 신입생이던 어린 학생들은 이제 환갑.  은퇴를 코앞에 둔 나이가 됐다.

마흔 살 미만의 팬이라면 단 한 번도 우승을 본 적이 없는 팀.

오랜 시간을 기다린 부산의 팬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냈다.

그리고 마운드 위로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바라던 에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장이 조금 빠르군.

‘오늘은 좀 빨라도 됩니다.’

-하긴.

성민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으며 부산에서 야구를 했다.

그가 태어난 해에 부산은 KBO 최초로 3년 연속으로 꼴찌를 달성했고, 그 이듬해에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불멸의 기록인 4년 연속 꼴찌를 달성했다.

이것은 9개 구단 체제에서 신생으로 만들어졌던 돌핀스도 깨지 못한 말 그대로 역사적인 위업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떤 할 일 없는 연구자의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것은 프로스포츠의 열정적인 팬들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관한 연구였다.

그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열성적인 팬들이 형성되는 시기는 5살에서 13살. 이성이 만들어지고 2차 성징이 찾아오기 전 바로 그 시절이다.

사람은 자기가 그 나이일 때 가장 강력하고 가장 멋진 팀의 팬이 되고, 그것은 평생이 지나도록 바뀌기 힘들다.

그리고 하필 성민이 여섯 살. 한창 야구에 눈을 뜰 나이에 부산은 그들 역사에 없었던 부흥기를 맞이했다.

5년 연속 가을야구.

성민의 인생은 어쩌면 그 순간 결정된 것일지도 몰랐다.

중학교 시절 야구팀의 동료였던 김수현을 비롯한 몇몇 아이들이 서울로 유학을 결정할 때에도 성민은 부산에 남아 최고의 투수가 되어 1차 1라운드로 마린스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가 부경고에 진학했던 2019년.

부산 마린스는 역사에 다시 없을 시즌을 기록 한다.

KBO 최초 144경기 체제 최초 50승 미만.

KBO 최초 5선발 전원 두 자릿수 패배, 10승 미만.

라이브볼 시대 이후 세계 최초 100-100클럽 개설(101폭투 112실책)

그리고 KBO 최초 구단 페이롤 1위로 꼴찌까지.

그런 처참한 현실 속에서 자라난 한 명의 마린스 어린이는 매년 영웅처럼 부산 마린스를 한국시리즈로 이끄는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이룰 수 없는 꿈이 이뤄졌다.

[물론 이곳은 지어진 지 4년밖에 안 된 새 구장이긴 합니다만, 기존의 사직구장 역사를 함께 봤을 때 사직에서 한국시리즈가 열린 것은 1999년 10월 23일 이후 무려 33년 하고도 12일 만의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린스의 팬들에게는 참 여러모로 뜻깊은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딱 여기까지였어요.’

-뭐가?

‘제 상상이요. 사직구장에서 한국시리즈 무대에 선발로 올라서는 것까지. 이상하게 그 이후는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당연하지

‘당연한 겁니까?’

-세상 어느 멍청한 선발 투수가 경기가 끝난 다음을 상상할까.

‘그런가요?’

-제일 즐거운 순간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순간이다. 이기고 지는 건 그다음이야.

성민이 고개를 돌려 그의 등 뒤에 펼쳐진 사직의 그라운드를 살폈다.

외야에도 빼곡한 관중들. 그리고 넓은 그라운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푸는 동료들이 보였다.

-이 정도면 KBO의 은퇴 무대로는 최고의 무대다. 빌어먹을 마린스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이런 팀이 뭐가 좋다고 꾸역꾸역 모여든 팬들에게는 보답은 해야지.

‘그러게요. 게다가 여기 있는 마린스 팬에게도 보답을 하긴 해야죠.’

-여기?

잠시 버벅 거리던 필 니크로가 소리쳤다.

-아니다. 악마야!! 내가 마린스의 팬이라니!!

‘미운 정도 정입니다.’

타석에 타자가 걸어 들어왔다.

[자 타석에 재규어스의 1번 타자 김규찬 선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김규찬 선수 지난 플레이오프 여섯 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해서 27타석 24타수 9안타 0.375/0.444/0.417의 아주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공을 잘 보고, 어떻게든 방망이에 맞추는 능력이 있는 타자예요. 발도 빠르고 말이죠.]

김규찬이 침을 꼴깍 삼켰다.

이번 시즌 성민은 압도적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투수였다. 실제로 김규찬 본인도 지금까지 상대해본 모든 투수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투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성민의 이름을 내밀 것이다.

‘젠장, 쫄지 마. 어차피 몇 번이나 서본 무대잖아. 한국시리즈 별거 아니야.’

김규찬은 데뷔 이후 7년 동안 한국시리즈만 무려 다섯 번을 경험했다.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 짓는 무대라지만 그만큼 경험을 했으면 이제 긴장을 하지 않을 때도 됐다.

게다가, 시즌 중에 두 경기나 상대를 해본 성민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사직구장에서 성민을 상대해보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일까? 원정 경기이기 때문에 더 긴장이 된 것일까? 그래 그럴 것이다.

저 멀리 선 투수가 바로 코앞에 선 것 같은 위압감이라니.

세상에 그런 것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태어나 처음 한국시리즈를 경험하는 투수가 천천히 공을 움켜쥐었다. 우둘우둘한 실밥이 손끝을 스쳤다.

초구는 가장 좋은 공으로.

김규찬의 직감이 소리쳤다.

너클볼이다.

조금 느릿해 보이는 여유로운 와인드업.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적인 움직임. 성민의 손에서 야구공이 쏘아졌다.

김규찬이 오랜 시간 단련해온 자신의 박자에 맞춰 방망이를 움직였다.

하지만 공이 오지 않는다.

폭발적인 움직임과 어울리지 않는 느린 너클볼.

애초에 타이밍을 맞춘다고 해도 쳐내기 힘든 공이었다.

하물며 타이밍조차 맞지 않았다.

-부웅!!

“스트라잌!!”

초구 스트라이크.

한국시리즈 1차전.

성민이 가벼운 스트라이크로 경기를 시작했다.

< 한국시리즈(1)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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