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64화 (65/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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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 출루율, 장타율에 관한 논쟁들은 이제 너무 오래됐다.

2000년대 초반도 아니고, 이제 타율을 출루율과 장타율보다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여전히 출루율과 장타율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나오는 귀납의 원리로 두 가지를 바라볼 때 개인의 득점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출루율이다. 이 경우, ‘1루는 훔칠 수 없다.’는 오랜 격언이 딱 들어맞는다. 그렇기에 기존 OPS보다 출루율에 가중을 둔 GPA 같은 스탯이 존재한다.

하지만 팀의 총 득점으로 따졌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타율 쪽이 오히려 더 큰 영향을 준다.

하물며 KBO는 MLB와 비교했을 때 장타가 훨씬 귀하다. 그리고 서울 브레이브스는 그 귀한 장타를 가장 많이 때려내는 팀이었다. 실제 OPS에서는 재규어스 쪽이 약간 높다. 하지만 장타율만 따졌을 때 브레이브스 쪽이 재규어스보다 오히려 더 높다.

홈런 수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이는 재규어스가 사용하는 구장이 잠실이라는 한국에서 가장 파크팩터가 낮은 구장이라는 점을 고려되지 않은 수치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팀득점 2위가 836점인 상황에서 871점이라는 득점은 그들 타선의 힘을 증명하기 충분했다.

3년 연속, KBO에서 가장 많은 점수를 얻어낸 팀의 타자들이 각오를 다졌다.

마운드에 올라온 성민을 향해 부산 시민들이 아낌없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미 그들의 마음은 정규시즌 최초 우승!! 한국시리즈 직행이라는 장밋빛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29경기 등판에 24승이다. 노디시전 경기에서도 최종적으로 역전패했던 것은 고작 2경기에 불과했다.

게다가 오늘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2주는 푹 쉴 수 있다.

성민이 뒤를 생각하지 않고 9회까지 던져도 별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마운드에 선 성민이 사직에 가득 찬 팬들을 바라봤다.

지독한 사람들이다.

KBO에 원년팀으로 창단된 이후 무려 50년. 지금까지 정규시즌의 우승이라고는 아직 전반기 하반기로 리그가 나뉘어있던 1984년. 하반기의 그 모욕적인 밀어주기 우승이 전부다. 물론 당시 그 모욕적이었던 우승을 한국시리즈 승리로 갚아주긴 했지만, 유일한 정규시즌 우승이 본인들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50년 동안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횟수는 고작 2회. 심지어 마지막 우승이 5공화국 시절이다. 게다가 바로 작년까지 무려 13년이나 가을야구 구경도 못 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들은 겨울이 되면 달라진 마린스를 꿈꿨고, 봄이 오면 다시 사직구장을 찾았다.

누군가는 부산을 구도(球都), 공의 도시라고 지칭하는 것을 비웃는다. 매일 꼴찌나 다투는 팀의 도시가 어찌하여 공의 도시라 불릴 수 있느냐고.

하지만 성민은 그렇기에 더욱더 이곳이 구도라는 단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잘 나가는 사람을 응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이 사람들은 10년, 20년을 넘어 무려 40년이나 우승도 못 하는 팀을 응원해온 사람들이다.

뻔히 안될 걸 알면서도 멍청하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

성민이 모자를 벗어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옆에 선 필 니크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마땅히 그의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갑자기 왜 제 앞으로 오시는 겁니까?’

-아니, 뭔가 분위기상 나도 인사를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타석에 브레이브스의 타자 김승리가 들어왔다.

5년 전과 3년 전, 최다 안타 상을 받았던 타자다. 게다가 브레이브스의 타자답게 똑딱이도 아니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연평균 17개, 커리어 하이였던 2028년은 3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딱!!

하지만 수준이 달랐다.

의도대로 들어간 성민의 너클볼을 공략할 수 있는 타자는 KBO에 이제 몇 되지 않았다. 힘과 기술. 모든 것이 수준 이상에 도달한 타자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김승리는 그 몇 안 되는 타자에 속하지 못했다.

타구에 힘이 부족했다. 이제는 손쉬운 타구 정도는 실수없이 처리하는 박동엽이 가볍게 공을 잡아 1루에 뿌렸다.

-뻐엉!!

“아웃!!”

산뜻한 출발.

경기가 계속됐다.

-이거 오늘 경기 솔직히 이길 수밖에 없겠네.-

-이제 1회 시작했는데 그건 무슨 개소리죠?-

-네, 아직도 현실 파악 못 한 재규어스 팬님. 어서 오시고요.-

-김성민 등판한 경기 중에서 마린스가 졌던 경기 지금까지 딱 2경기임. 이 정도면 설명 끝난 거 아닌가?-

-브레이브스도 만만한 팀 아니잖아.-

-멍청하기는. 그러니까 더더욱 쉽지. 오늘 브레이브스 출장 명단 좀 봐라. 쟤들 지금 4위 확정이잖아. 당장 모레 와일드카드 나가야 하는 애들인데 순위랑 상관없는 경기에 전력을 다하겠냐? 그냥 적당히 체력안배 하는 거지.-

-김승리랑 서경혁, 박두찬은 나왔잖아.-

-걔들은 타이틀 경쟁하는 애들이잖아.-

-근데 내 생각에는 김승리랑, 박두찬 정도만 나와도 됐을 듯, 어차피 비율 스탯은 김성민 상대하면 더 떨어질 것 같은데. 안타랑 홈런이나 어떻게든 노려봐야지.-

-서경혁 비율 스탯 말고 득점왕 노리는 것임. 박두찬이 홈런 빵빵 때려줘서 지금 득점 109점으로 1위잖아.-

과거의 야구는 3번과 4번 5번 타자를 클린업 트리오라고 하여 가장 강력한 타자들이 위치했다.

하지만 출루율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실제 점수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인간의 연역적 사고가 아닌, 귀납적 통계로 어느 정도 증명이 된 현재, 1번, 2번, 3번에 가장 강력한 타자들이 배치되는 것은 이제 MLB에서는 상식이나 다름없다.

물론 아직 KBO에서는 선수의 풀과 여러 가지 제반여건을 이유로 그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토론하고 있었지만, 브레이브스같은 경우 MLB의 그것을 따라가고 있었다.

타석에 2번 타자 서경혁이 들어왔다.

김승리보다는 조금 공을 못 치는, 하지만 더 멀리 쳐내는 타자다. 존을 구분하는 능력 역시 김승리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 김승리가 컨택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타자라면 서경혁은 타격의 모든 필요한 부분에 골고루 포인트가 맞춰진 타자라고 볼 수 있다.

-부웅!!

“스트라잌!!”

그렇기에 부족했다.

그는 분명 만능형 타자라고 부를 만했다. KBO 대부분 투수를 상대할 때 그는 대부분의 능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성민을 상대로는 모든 부분에서 근소하게 부족했다.

성민의 공이 흔들리는 움직임을 따라가기에 그의 협응력은 조금 부족했고, 받쳐놓고 방망이를 휘두르기에 그의 배트 스피드는 조금 느렸다. 그렇다고 순간적인 흐름에 맞춰 방망이를 움직이기에는 배트 컨트롤이 부족했다.

-딱!!

101km/h의 너클볼을 건드린 힘 없는 타구가 내야 관중석을 넘어갔다.

“휴.”

서경혁 본인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타이밍, 스윗 스팟 모든 것이 완벽하게 먹혔다. 솔직히 그대로 내야 뜬공 아웃이 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단지 김성민의 공이 그의 예상보다 더 격렬하게 움직인 덕분에 오히려 더 방망이 중심에 가까운 곳에 맞아 들어갔다. 천운이었다.

마운드의 필 니크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공이 좀 뻗는구나. 어깨가 부드러워.

‘날이 좋네요.’

10월 초.

짧아진 가을이, 그래도 나도 하나의 계절임을 주장하며 마지막 사력을 다했다. 저녁 6시 30분임에도 영상 22도의 선선한 날씨.

마운드의 성민이 최선을 다해 공을 잡아챘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몸쪽 깊숙한 곳을 공략하는 148.7km/h의 속구.

해설자들이 그 숫자에 흥분했다.

[김성민!! 정말 대단합니다. 시즌 막판, 구속이 떨어지는 게 정상인 시기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148.7km/h 거의 150에 근접한 구속이 나왔어요. 그것도 아직 몸이 덜 풀린 1회 초에 말이죠.]

[제가 김성민 선수의 미국행을 기대하는 이유도 바로 이겁니다. 전 김성민 선수가 7이닝 8이닝씩 아무렇지 않게 계속 소화하는 걸 볼 때마다, 이닝 소화력이 대단하다는 느낌보다는 힘을 아끼면서 영리하게 던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러니까 더 힘껏 던질 수 있는데 영리하게 경기를 운영한다 이 말씀이네요.]

[네, 바로 그거죠. 김성민 선수의 경우 이번 시즌 속구 평속이 145.3km/h로 리그 2위인데 전 이것도 아직 여력을 남긴 거라고 봅니다. 매 경기 7~8이닝 혹은 완투를 하겠다는 느낌 말고 6이닝 정도 확실히 책임지겠다는 느낌으로 던지면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봐요.]

타석에 브레이브스의 세 번째 타자 박두찬이 들어왔다.

작년과 재작년 2년 연속 KBO MVP를 차지했던 마르타 노엘.

타격과 주루, 수비까지 그는 거의 완전체에 가까웠다. 하지만 마르타 노엘조차도 2년 내내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타이틀이 존재했다.

홈런.

박두찬은 지난 4년 내내 KBO의 홈런왕으로 군림했다. 이번 시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르타 노엘이 43개로 바짝 따라오고 있었지만, 45개를 기록 중인 박두찬을 이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무리였다.

-부웅

가벼운 연습 스윙.

필 니크로가 감탄했다.

-몸의 중심 이동이 자연스럽군. 근육의 두께와 근신경 망의 발달 역시 훌륭해. 저 정도면 메이저에서도 보기 드문 힘이겠는데?

‘실제로 빅리그 스카우트들도 파워툴은 75점 줬었어요.’

20-80 스케일 상에서도 75점은 상위 2.5%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평범한 야구선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표본 자체가 메이저 40인이다. 즉 고르고 고른 메이저리거들 가운데서도 상위 2.5%라는 이야기다.

힘에서는 메이저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만하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도 메이저에 진출했었지.

‘네, 잠깐요.’

-실패 이유가 컨택이었던가?

‘그렇죠. 저 형, 97마일 이상 빠른 공에 너무 약했어요. 레파토리에 97마일 이상 공만 포함되면 아주 힘을 못 썼죠. 거기다가 그 동네는 97마일짜리 속구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커터가 97마일로 들어오는 동네잖아요.’

-근데 넌 97마일짜리 못 던지잖아.

‘저도 한참 어릴 때는 막 던졌었거든요? 제가 98마일까지도 던졌던 사람입니다. 저 형 미국 진출 전에 내가 신인왕 따고 그럴 때 완전 내 밥이었어요.’

-그 먼 과거가 뭐가 중요하냐. 너 구속 잃어버렸던 재작년엔 어땠는데?

성민이 대답 대신 공을 움켜쥐었다.

성민에게 157km/h짜리 속구는 이제 없다.

하지만 157km/h짜리 속구를 뿌리던 신인왕 시절의 김성민과 지금 157km/h짜리 속구를 던지지 못하는 김성민 중 누가 더 훌륭한 투수인가에 대한 질문은 너무 명백했다.

상대의 약점이 156km/h 이상의 속구다?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97마일 이상의 속구가 약점인 타자를 향해 61마일짜리 너클볼이 날아들었다.

타자의 방망이는 공을 스치지 못했다.

-부웅!!

“스트라잌!!”

75점짜리 파워? 약점은 97마일 이상의 속구?

성민이 웃었다.

‘맞습니다. 그 먼 과거가 뭐 중요합니까. 지금이 중요하죠.’

사직구장이 끓어올랐다.

< 0.1%(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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