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56화 (57/287)

< 확장 엔트리 >

KBO와 MLB는 선수단 운영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KBO는 일단 1군이건 2군이건 상관없이 모두 해당 팀의 소속이다. 하지만 MLB의 경우 25인과 40인, 그리고 40인 외의 세 가지로 선수들이 구분 된다.

25인과 40인은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KBO의 1군 그리고 2군과 흡사하다. 하지만 40인 외 선수는 좀 다르다. 40인 외 선수나 ‘25인 외, 40인 이내’ 선수들이나 마이너에서 뛰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소속이 다르다.

그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메이저 팀 소속이 아니다. 메이저 팀과 계약한 마이너 팀 소속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KBO와 MLB의 9월 확장 엔트리에도 차이를 불러온다. 빅리그가 9월 확장 엔트리에서 25인을 40인으로 확대하는 것은 자기 팀 소속의 선수들을 모조리 불러와도 괜찮다는 의미다.

하지만 KBO의 경우 2군 선수들이 모두 KBO 팀 소속이다.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MLB가 9월 ‘니네 팀 선수 전부 불러와도 괜찮아.’라는 형태라면 KBO는 ‘9월이라 좀 지쳤으니까 사람 좀 더 써도 괜찮아. 5명 정도면 되지?’라는 형태다.

결과적으로 평소 27인 보유, 25인 출장이 원칙인 KBO는 9월부터 32인 1군 등록 30인 출장으로 변경 된다.

9월.

마린스 역시 다섯 명의 선수가 1군으로 올라왔다.

세 명의 투수와 두 명의 야수. 그중 넷은 시즌 중간중간 1군과 2군을 오갔던 전력, 그리고 단 하나만이 1군이 처음인 새내기였다.

“크, 이것이 1군 구장의 냄새입니까?”

“인마, 오버 떨지 마.”

“아, 형은 중간중간 1군 구장 올라오셨지만, 전 처음 아닙니까.”

2027년형 아반떼를 함께 타고 온 두 명의 야수가 차에서 내렸다.

“새끼, 하여간. 너 인마 나한테 이렇게 까부는 거 나는 봐주는데, 선배들 앞에서 이러지 마라. 특히 호섭 선배 앞에서 이따위로 굴면 너만 뒤지는 게 아니라 나도 뒤지니까. 알겠어?”

“넵!! 알겠습니다.”

박용철과 이진섭.

부경고 123기와 124기. 성민의 후배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 왔냐? 용철이 너 이 새끼, 소식은 들었다. 요즘 잘 나간다며?”

“어휴, 잘 나가기는요. 그냥 그때 선배님이 알려주신 힙턴 그거 주의해가면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 인마. 타격은 원래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 새끼. 잘하네. 그래, 얘가 진섭이구나. 반갑다.”

라커룸으로 가는 길.

갑자기 나타난 김호섭에게 이진섭이 90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부경고 124기. 이진섭입니다. 예전에 학교 오셨을 때랑 입단하고 회식 자리에서 몇 번 뵀었습니다!!”

“아, 그래그래. 맞다. 그 술 잘 마시고 소고기 좋아하고. 맞지?”

“저 술 잘 못 하는데요?”

박용철이 이진섭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선배님, 저희 일단 강용구 코치님 뵈러 가봐야 해서. 이따가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 그래. 용구 선배한테 먼저 인사해야지. 얼른 가 봐.”

눈치 없는 새끼.

선배 몸은 하나인데 후배라고 인사하는 애들은 수십이다. 너라면 그 애들을 어떻게 다 기억하겠냐. 대충 맞습니다. 이래야지, 왜 말하는 선배를 무안하게 만드냐. 너 나 먹이려고 작정한 거냐? 등등 용철이 진섭에게 잔소리를 쏟아내며 코치실로 향했다.

“어? 너희들?”

“서, 성민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이진섭입니다.”

진섭이 이번에도 꾸벅 허리를 굽혔다.

“용철아, 소식은 들었다. 너 열심히 했다며.”

“아닙니다.”

“아니기는, 짜식. 형 때문에 좀 힘들었을 텐데. 미안하다. 그나저나 형이 보내줬던 복어 즙은 다 먹었냐?”

“미안하시다니. 절대 아닙니다. 보내주신 복어즙은 잘 먹었습니다.”

“그래, 인마. 그거 진짜 귀한 거야. 그냥 가서 사면 그 정도로 찐한 놈은 주지도 않아요. 다 형이니까 그런 거 구해오는 거야. 알지? 다 먹으면 말해. 한 박스 더 구해다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래, 니들 보니까 마음이 든든하다. 올해 우리 통합 우승해야지. 이번에 우승하면 창단 이후 정규 시즌 첫 우승인 거 알지? 거기다가 코시 우승까지 해버리면. 어휴, 니들도 우리 구단 알잖아. 우리가 어? 미래를 보는 전략이랑 계획이 없지. 어디 돈이 없는 구단이냐? 니들은 이렇게라도 1군 올라왔으니 보너스도 두둑하게 나올 거다. 그러니까 잘 하자.”

“넵!!”

진섭이 소리 높여 답했다.

성민이 그런 진섭의 등을 툭툭 두들기고 자리를 떴다.

“와, 제가 성민 선배, 재작년에 부상 전에 뵙고 처음 뵙는 건데 몸 엄청 좋아지셨네요.”

“뭐, 그렇지. 지금 저 선배 KBO 역대 최고 소리까지 나오고 있잖냐. 재활 어마어마하게 했겠지.”

“근데 저 선배가 왜 형한테 미안하다는 겁니까?”

용철이 진섭의 뒤통수를 약하게 툭 두들겼다.

“너 이 새낀, 하여간 눈치가 하나도 없어요. 인마, 너 내가 왜 2군에 내려왔는지 기억 안 나냐?”

“그거야 혁준 선배한테 밀려서, 아!!”

“그래, 새끼야.”

“성민 선배 진짜 좋은 분이네요. 형이 공 못 받아서 밀린 거잖아요. 근데 비싼 복어즙까지 보내줘요?”

“이 새끼가 근데?”

“아, 형님도 본인이 공 잘 못 받는 거 인정했잖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일루도 중점적으로 연습했고요.”

“그래도 인마, 내가 내 입으로 말하는 거랑 네가 말하는 게 같냐? 하여간, 눈치도 없는 새끼가 싹수까지 없어서. 어휴, 내가 어쩌다 이런 놈이랑 이러고 있는지.”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희 61회 대통령배 우승의 주역들 아닙니까. 그것도 에이스랑 주전포수. 찐한 전우애. 동지 의식!!”

“그래, 그땐 그랬지. 어휴, 그러고 보니 기분 더 엿 같네. 에이스라던 새끼는 외야수가 됐고, 주전 포수 보던 새끼는 일루수가 되고.”

진섭이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뭐 프로가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우승 듀오가 이번에는 프로리그 우승의 주역이 돼보죠.”

“아오, 이 꼴통 새끼. 하여간.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그리고 코치실에서는 인사만 하고 입 다물고 있어라. 알겠냐?”

“넵!!”

***

-그때 네가 복어즙 보낸 게 저 녀석이었어?

‘네, 그거 나한테는 좀 안 맞더라고요.’

-근데 하필 왜 쟤야?

‘지가 공 제대로 못 받아서 2군에 간 거긴 한데, 또 당장 감정 상해서 내가 엿 같은 공을 던져서 지가 2군으로 갔다고 느낄 수도 있잖아요. 세상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이런 사소한 거라도 챙겨 주고 기분 풀어지면 좋은 거죠.’

-근데 그러다가 박경효가 자기가 준 거 그렇게 짬처리 했다는 거 알게 되면 어쩌려고?

‘먹어보고 너무 좋아서 하나 사서 보냈다고 그러면 되죠. 그래서 그때 어디서 산 건지도 물어봤잖아요.’

-이런 쓸데없이 치밀한 자식.

물론 확장 엔트리를 통해 전력을 보충한 것은 마린스만은 아니었다.

마린스와 함께 1위 다툼을 하는 재규어스 같은 경우 두터운 뎁스를 증명이라도 하듯 주전 야수들에 뒤지지 않는 수준의 즉전감 야수들이 셋이나 충원됐다.

-시부럴, 황규혁에 박치상에 박진호라고? 이거 왜 저쪽 팀 확장으로 올라온 야수가 우리 팀 주전인 김호섭이나 박동엽보다 좋아보이냐?-

게다가 아직 1위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은 돌핀스 역시 마린스에 온다면 당장 주전 불펜으로 써먹을 만한 불펜들이 둘이나 추가됐다. 또한, 4위, 5위를 다투는 4개 팀 역시 자신들이 올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력들을 불러들였다.

물론 모든 팀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네? 하지만 단장님!!”

“김 감독님, 저도 이러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위에서도 그러고 있고 솔직히 윗선도 자기 마음대로 그러는 거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팬들 시선도 생각해야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감독님, 솔직히 이런 말까진 그렇지만 우리가 올해 야구를 좀 못했잖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가능성이라도 보여줘야죠.”

“오히려 잘 크고 있는 선수들 기만 죽을 수도 있습니다.”

“큰물을 경험하고, 아 야구가 이렇구나 각성할 수도 있죠.”

꼴찌를 경쟁 중인 엘리츠와 피닉스.

두 팀은 모두 20대 초반, 아직 1군 무대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유망주들을 확장 엔트리로 끌어올렸다.

[대전피닉스, 10년의 초석을 다진다!! 31년 드래프트 1라운더 김병석 콜업!!]

[대전 피닉스의 2033시즌이 기대되는 이유]

-뭐지? 타임머신인가? 아니면 데자뷰? 나 뭔가 이미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이야.-

-작년 기사 제목 기억나냐? ‘대전 피닉스 10년의 초석을 다진다!! 그들의 2032시즌이 기대되는 이유’ 이거.-

-아니, 우리 도대체 몇 년째 초석만 다지고 있는 거냐?-

-이미 다져둔 초석만으로 돌집 한 채 지었을 듯.-

-그래도 김병석이면 좀 기대 해도 될거임. 얘가 31년 전체 2순위잖아. 개인적으로 그때 마린스가 뽑아갔던 백도형보다 얘가 더 좋은 투수였다고 생각함.-

-그래 봐야 이제 21살짜리잖아.-

-그러니까 경험을 먹이고 키워야지.-

-아니, 뭐 1군 시켜본다고 다 크나? 그렇게 다 컸으면 우리랑 마린스는 진작에 1등 했어야지.-

-마린스 지금 1등 경쟁중이잖아.-

-아, 시발 그러네. 걔들은 왜 1등 경쟁 중이냐?-

9월 초.

대전 피닉스 파크.

-뻐엉!!

151km/h의 속구가 불펜 포수의 미트를 두들겼다.

“나이스!!”

2031년 드래프트 1라운더 김병석.

197cm에 112kg. 심지어 좌완이다.

“병석아 좋은데, 지금 몸을 너무 끌고 나오고 있어. 그러니까 제구가 들쭉날쭉한 거고. 몸을 좀 덜 끌고 오면 제구가 훨씬 잘 잡힐 거다.”

“네, 선배님.”

옆에서 공을 던지던 진철이 한마디 던졌다. 그가 보기에도 병석은 좋은 재목이었다. 제대로 크기만 한다면 어쩌면 그 김성민도.

‘아니지, 그 녀석은 너무 규격 외지.’

그래, 어쨌든 최소한 자신의 전성기보다는 좋은 투수로 자랄 것이다. 비록 장진철이 지금 퇴물 소리를 듣고 있긴 하지만 FA만 두 번을 한 투수다. 그가 자신보다 좋은 투수로 자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병석을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먼저 훈련을 시작했던 진철이 자리를 떴다.

양순한 표정으로 곱게 고개를 끄덕였던 병석이 침을 퉤 뱉었다.

“시발, 공도 못 던지면서 같은 선수끼리 왜 이래라 저래라야. 저러니까 다른 선수들이 싫어하지.”

바로 옆자리에서 연습하던 그의 3년 선배 김민우가 그를 달랬다.

“아무리 뜨내기라고 해도 짬밥 있는 선배다. 잘 참았어.”

“아니, 민우 형. 솔직히 저 선배 전성기에도 최고 구속 145 간당간당하지 않았습니까? 저랑은 스타일 자체가 다르잖아요. 강속구 투수한테 구속을 좀 포기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든 끌고 나가면서 제구를 안정시킬 방법을 찾아야죠.”

“저 형은 그냥 고만고만하고 길게 가는 걸 우선으로 삼았던 형 아니냐. 실제로 기록도 그렇고. 그냥 자기가 했던 대로 알려주는거지 뭐.”

“전 선수 생활 절대 그렇게 안 할 겁니다. 남자라면 어? 이왕 선수 시작했으면 저기 마린스에 김성민 선배처럼 한번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돌아오는 금요일.

성민의 등판이 예고됐다.

장소는 대전 피닉스 파크. 상대 선발은 대전 피닉스의 기대주 김병석이었다.

< 확장 엔트리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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