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s MVP(2)-무료 마지막입니다. >
마르타 노엘은 KBO 4년 차의 외국인 용병이다.
첫해에 그는 3할 1푼 3리에 24홈런을 쳤다. 물론 훌륭한 성적이다. 하지만 외국인 용병, 그리고 일루수로 써먹기에는 조금 애매한 성적이었다.
당시 블레이즈의 프런트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갔었다.
“24홈런이라니 조금 애매하군요.”
“타율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생각보다 장타력이 조금 부족하군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장타율이 0.496이 나온 타자가 장타력이 부족하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장타율 높은 건 빠른 발 때문에 단타를 이루타로 만들고 이루타를 삼루타로 만든 것 때문 아닙니까.”
“아니, 타자가 발 빠른게 뭐가 어때서요.”
“누가 뭐 어떻답니까? 물론 같은 값이면 발 빠른 타자 좋죠. 그런데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거포라고요. 거포.”
“OPS가 0.861입니다. 결장한 경기도 없고 포구도 좋아서 이루수랑 유격수 에러도 줄었습니다. 이런 일루수를 버리고 로또를 다시 긁어보자고요? 그 무슨 멍청한 소립니까.”
“멍청? 당신 지금 나한테 멍청이라고 그랬어?”
선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논쟁이 어느새 말다툼으로 변질됐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좀 앉으세요. 아니 지금 우리가 선수 이야기하자고 모였지 싸우자고 모였습니까?”
“아니, 운영팀장 저 양반이 지금 막말을 하니까.”
“저 양반? 야 박수철이. 너 많이 컸다? 저 양반?”
“두 분 다 자꾸 이러시면 내쫓습니다? 운영팀장님 비속어 쓰지 마시고, 스카우트팀장님도 선배인데 존중 좀 해주세요.”
두 사람을 진정시킨 블레이즈의 단장이 마르타의 자료를 다시 스크린에 띄웠다.
“그러니까 지금 마르타가 Good이기는 한데, 또 써먹기에 Good정도로는 부족하다 이 말 아닙니까.”
“아니, 솔직히 일루수 용병이라는 거 생각하면 낫배드 정도지 굿도 아닙니다.”
“저게 낫배드라니요. 당장 우리 계산에 따르자면 이번 시즌 KBO 거쳐간 타자 용병 열 두명중에서 마르타보다 확실히 나았던 애는 둘밖에 안 됩니다. 이걸 낫배드라고 하면 안 되죠.”
“운영팀장님. 그 계산이라는 거 설마 작년부터 만들어서 보완 중이라는 자체 WAR 그거 말씀하시는 거죠? 근데 그거 맞긴 한 겁니까? 홈런으로는 5등에 OPS로 따져도 딱 4등인데 심지어 일루수에요. 근데 어떻게 승리기여도가 타자 용병 중에서 3등이라는 겁니까?”
“그건 제가 대신 말씀드려도 됩니까?”
스카우트 팀장의 질문에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떡진 머리의 남자가 대신 손을 들었다.
“네, 전력분석팀장님. 말씀해주세요.”
“우선 WAR이 누적인 건 아시죠? 용병 타자 가운데 전 경기 출장한 선수는 딱 둘이고 그 둘 중 하나가 우리 마르타입니다.”
“거, 경기 많이 나가서 누적 많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스카우트 팀장의 궁시렁거림에 그가 답했다.
“경기 많이 나가서 누적 많으면 좋은 것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장 좋은 선수는 경기에 많이 나갈수록 더 좋은거죠. 그리고 이번 시즌 우리 팀에 마르타보다 좋았던 선수는 없었고요. 하여간 계속 말씀드리자면 여기 이 자료를 좀 봐주세요.”
“이게 뭡니까?”
“마르타의 타구분석 자료입니다. 그리고 현장 의견. 그리고 이건 이 친구가 왜 빅리그에서 성공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분석자료. 작년 12월 메디컬 자료와 올해 9월에 찍었던 메디컬 자료입니다.”
격렬한 토론이 오고갔다.
스카우트 팀장은 자기가 봐둔 선수가 있는데, 그는 마르타보다 훨씬 좋은 선수이고 100만 달러면 충분히 데리고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운영팀장은 그것이 도박이라 말했고, 전력분석 팀장은 마르타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선수이며 비록 28살이지만 아직 성장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의 의견에는 그 나름의 일리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번 건은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제가 결정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최종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돈’이었다.
3년 200만 달러.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그 미묘한 금액.
사실 구단 입장에서도 이런 어정쩡한 용병에게 다년 계약은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현장의 평가가 너무 좋았다. 또한, 전력분석팀 역시 그것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21세기 초반의 메이저리그가 그러했듯 블레이즈의 전력분석팀 역시 가장 좋은 대학을 졸업한 최고의 인재들이 ‘수학과 통계’를 통해 자기들만의 ‘혁신적인 공식’을 만들고 있었다. 또한, 혁신과 통계는 항상 윗대가리들에게 통하는 법이다.
마르타 노엘은 3년 계약을 체결했고 그 첫해에 리그를 박살 냈으며 두 번째 해에는 더 크게 박살을 냈다.
그리고 3년 차인 지금.
그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MLB에 진출할 것이 거의 확정적인 남자였다.
“잘 찍으라고.”
“에휴, 이게 대체 무슨 개고생인지. 그냥 돈 좀 주고 데이터 사오면 될 것을. 하여간 우리 구단 짠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글쎄다. 기본적으로는 나도 동감이긴 한데, 이번 경기 데이터 가격 들으면 너도 생각이 좀 달라질걸?”
“데이터 가격요? 뭐 비싸 봐야 KBO 경기죠.”
“그게 평소 10배 불렀다더라.”
“네? 10배요? 무슨 그런 미친?”
“김성민이랑 마르타랑 맞붙는 경기잖냐. 지금 블레이즈랑 마린스랑 잔여 경기가 7경기인데 남은 경기 중에 또 붙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KBO의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노이즈가 심하게 껴있다. 선수들 간의 수준차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루키부터 AAA까지의 마이너 역시 모든 선수의 수준이 균일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싹수가 보이면 바로바로 상위리그로 올리는 탓에 시즌을 통째로 보면 데이터의 신뢰도는 제법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KBO는 아니다. 어떤 투수의 FIP는 1점대고 어떤 투수의 FIP는 2점대인데 타자에게 필터링을 걸어보면 1점대 투수의 FIP가 4점대로 치솟고 2점대 투수의 FIP는 2점대 그대로인 일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오늘 경기에 메이저 스카우트들의 관심은 비상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자신의 기량을 증명했던 이번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 진출이 거의 확정적인 타자와 이번 시즌 리그를 폭발시키고 있는 투수의 맞대결.
물론 3타석에서 4타석의 작은 샘플이지만 단순히 그 맞대결의 결과가 아닌 그 결과가 있기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마운드의 성민이 가볍게 블레이즈의 타자들을 요리했다.
“와우, 진짜 대단한데요? 받아 봤던 스탯캐스트 자료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장비 차이를 감안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는데요?”
“분당 회전수가 몇이 나오는데?”
“73마일짜리 너클볼은 370회 정도. 63마일짜리는 150회 정도 나오고 있어요. 91마일짜리 속구는 2200 정도? 속구는 좀 평범하네요.”
“그러니까 더 대단한 거지. 젠장, 느린 너클볼이랑 더 느린 너클볼이 있는데 속구가 평범한 수준이라니.”
“아, 마르타 나오네요.”
“그래, 우리 오늘 여기 나온 거 이거 때문인 거 알지? 진짜 잘 찍어야 한다.”
“네네, 알겠습니다.”
이번 경기에 스카우트를 파견한 팀만 무려 일곱 개.
데이터를 구매할 팀까지 따진다면 메이저리그의 절반 이상이 성민과 마르타의 대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타석에 3번 타자, 마르타 노엘. 마르타 노엘 선수가 들어옵니다.]
[명실상부한 KBO 최고의 타자. 연습벌레로도 유명한 선수입니다. KBO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삼루수로는 출장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KBO 최고의 3루 수비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저 녀석이 그 녀석인가? 확실히 몸이 대단해 보이기는 하는군.
‘아주 괴물입니다. 분명히 존 밖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그걸 밀어서 넘겼다니까요.’
-글쎄다, 그걸로 괴물이라고 하기엔 네 슬라이더가 영······.
‘아니, 저도 2년 전에는 슬라이더도 괜찮았거든요? 그냥 너클볼이랑 메커니즘이 영 달라서 예전 같은 각이 안 나오는 것뿐이거든요?’
타석에 선 마르타 노엘이 양다리를 넓게 펼쳤다. 스트라이드를 거의 가져가지 않는 특유의 자세다. 다리를 움직여 타이밍을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힘이 실리기 힘든 자세다. 하지만 마르타의 강력한 힙턴은 그 단점을 완벽하게 상쇄시켰다. 마치 전성기의 푸홀스를 보는 것 같은 자세다.
초구
121km/h의 빠른 너클볼.
흔들리는 성민의 공을 마르타 노엘이 지켜봤다. 세상에 완벽한 폼이란 존재하지 않았지만, 특정인에게 가장 완벽한 폼은 존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마르타 노엘의 폼은 완벽에 가까웠다.
가장 늦게까지 공을 지켜볼 수 있었으며, 그런 주제에 그의 막대한 힘을 거의 온전하게 방망이에 실을 수 있었다.
지켜보고 지켜봤으며 그리고 그 마지막 한계에서 그가 몸을 움직였다.
살짝 들린 오른발이 바닥을 찍었다. 옹골차게 꽉 조인 엉덩이에서 시작된 막대한 힘이 그의 방망이에 실렸다.
-딱!!
마르타 노엘의 방망이가 성민의 공을 두들겼다.
타구는 빠르고 강했다. 하지만, 안타가 되기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젠장.’
1루로 달리던 마르타 노엘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를 보기 위해 찾아온 메이저 스카우트들이 한가득이다. 그에게 25인 안에 들 잠재력이 없다고 판단했던 머저리들의 궁둥이를 걷어차 줄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다.
[높게 뜬 타구!! 우익수 김호섭, 가볍게 잡아냅니다.]
역시 너클볼이라고 해야 할까? 마지막 순간, 공이 마르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덜떨어졌다.
“타구 속도는 88.7마일입니다.”
“빠른데 느리군.”
메이저의 평균적인 타구 속도는 88마일가량. 분명 타구각에만 문제가 있었을 뿐, 속도 자체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르타 노엘이 보여준 평균적인 타구 속도는 93.7마일. 그를 기준으로 할 때 이건 분명히 빗맞은 타구다.
경기가 이어졌다.
매우 오래간만에 터진 메가 마린스 포는 대단했다. 이게 자주 안 터지는 게 문제지, 일단 터지면 역시 화끈하다.
2회, 3회, 4회 연달아 점수를 기록하며 점수는 무려 11:0까지 벌어졌다.
-개새끼들. 오늘 메이저 스카우트들 있다더니 아주 신났네.-
-뭐야? 웬일로 메가 마린스포가 터졌나 했더니, 메이저 스카우트야? 하여간 저 놈들은 저런 거 없으면 잘 치는 날이 없다니까. 그래봐야 메이저 갈 깜냥도 안 되면서.-
사실 스카우트고 뭐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잘 치는 날이었던 마린스 타자들로는 조금 억울한 일이었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일이 있었던 만큼 어쩔 수 없는 오해였다.
그리하여 4회 말.
성민과 마르타의 맞대결이 다시 돌아왔다.
조금은 태만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메이저 스카우트들이 다시 촉각을 곤두세웠다.
초구.
느린 너클볼.
-딱!!
마르타가 공을 건드렸다. 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1루 내야 관중석으로 들어가는 파울. 성민의 심장이 고요했다.
-타자가 괴물이라고 하더니 또 긴장은 안 하네?
‘11:0에 주자도 없는데 긴장할 게 뭐 있습니까. 어차피 넘어가 봐야 1점인데요.’
-메이저 스카우트들이 지켜보고 있잖아.
‘그게 뭐요. 어차피 투수가 뽈 던지다 보면 맞기도 하고, 맞다 보면 재수 없으면 넘어가기도 하는 거죠. 쟤들이 봐야 하는 건 거기까지 제가 공을 던진 과정이지 결과가 아닙니다. 만약 한 타석 결과 갖고 판단하는 머저리가 있다면, 그런 머저리가 있는 구단은 제 쪽에서 사양하고 싶네요.’
-하여간, 말 하나는 청산유수라니까.
성민이 두 번째 공을 준비했다.
몸쪽 깊숙한 코스를 날카롭게 노리는 148km/h의 속구.
물론 노렸다고 다 들어가지는 않는 법이다. 적당히 몸쪽 낮은 코스로 제구된 속구가 스트라이크 존을 스치듯 날아갔다.
마찬가지로 마르타가 노리던 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련된 그의 감각이 충분히 쳐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르타 노엘의 방망이가 움직였다.
-딱!!
하지만 이번에는 방망이가 너무 높았다.
낮게 깔린 타구가 1, 2루 간으로 향했다.
정엽이 몸을 날렸다.
[아!! 빠졌습니다. 마르타 노엘 1루 지나 2루로!! 정위치보다 뒷쪽에 서있던 우익수 김호섭 선수 달려와서 공을 주워들었습니다만 늦었습니다. 2루타!! 마르타 노엘 선수가 2루타를 만들어냅니다.]
스카우트들이 빠르게 결과를 확인했다.
“역시 속구 쪽이 조금 약하군요.”
“내가 봐도 대비하고 있다면 충분히 칠 수 있는 공이야. 하지만 애초에 저 공은 타이밍을 교란하는 용도야. 지금 정도면 충분히 할 일을 해냈다고 볼 수 있지.”
“이루타인데요?”
“타구 속도를 좀 봐.”
“타구 속도가 그러니까 80.1마일?”
“그래, 자 상상해보라고. 지금 저 자리에 우리 팀의 이루수인 앤더슨이 있었다고 말이야.”
“아웃이네요.”
스카우트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경기에 다시 집중했다. 과연 등 뒤에 빠른 주자를 내보낸 투수의 피칭이 어떻게 변할것인가.
마운드의 성민이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아쉬운 결과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마르타 노엘이 그를 찍는 수많은 카메라를 바라봤다.
어떠냐, 이것이 바로 마르타 노엘이다. 그가 자신의 가슴을 쿵쿵 두들겼다.
경기는 계속됐다. 마르타 노엘에게는 아쉽게도 그의 빠른 발을 뽐낼 찬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성민의 피칭이 블레이즈의 타자들을 꽁꽁 묶었다.
그리하여 7회 초.
점수는 여전히 11:0
마르타 노엘의 세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괜찮아?
‘아직은요.’
세 번째 타순.
평범한 투수라면 이제 슬슬 힘들어질 타이밍이다.
마르타 노엘의 시선이 힐끔 스카우트들을 향했다. 성민은 대내외적으로 메이저 하위 선발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를 상대로 완승을 거둔다? 이건 매우 훌륭한 쇼케이스다.
마르타 노엘의 방망이가 성민의 공을 기다렸다.
초구, 몸쪽 빠른 공.
이미 최상을 지나 지치기 시작한 몸이었지만 여전히 147.3km/h의 빠른 공이 존을 스쳤다.
-뻐엉
“스트라잌!!”
존의 구석을 파고드는 잘 제구된 공에 마르타 노엘이 방망이를 내밀지 않았다. 까다롭더라도 속구에 방망이를 내밀어봤어야 했나?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카운트는 여유롭다. 굳이 어려운 공을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두 번째.
너클볼
마르타 노엘의 방망이가 움직였다. 빠르고 강력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타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트스피드가 아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타이밍. 그가 노리던 공은 120km/h의 너클볼이었다.
그러나 성민이 던진 공은 96.3km/h의 느린 너클볼.
성민이 마르타 노엘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느리다.
배트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딱!!
힘없는 타구가 그라운드를 굴렀다.
마르타 노엘이 빠르게 1루를 향해 질주했다. 마치 짐승 같은 탄력이다.
하지만 성민 역시 만만치 않았다. 7회, 이미 지쳐가는 몸이었지만 공을 던진 직후의 자세는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데구르르 굴러오는 공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그리고 반 바퀴 몸을 돌려 그대로 공을 뿌렸다.
-뻐엉!!
잠깐의 정적.
심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웃!!”
성민이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괜찮다고 그러더니 마음에 담아뒀구나?
‘담아두긴 뭘 담아둡니까. 그냥 모든 타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거지.’
마르타 노엘이 아쉬운 표정으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세 번 들어서서 이루타 하나.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타구가 그리 좋지 못했다는 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남은 경기 중에서, 혹은 가을 야구에서, 혹은 더 큰 무대에서.
마르타 노엘이 다음을 기약했다.
시즌이 계속됐다.
성민의 공은 흔들렸다. 그 공을 상대하는 타자들의 마음 역시 흔들렸다. 많은 타자가 그의 공을 헛쳤다.
때론 그렇게 친 타구가 안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성민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9승, 10승, 11승······
그렇게 시즌이 흘러갔다.
더운 여름이 찾아왔고, 선수들은 지쳐갔다.
하지만 프로야구를 찾는 팬들의 열기는 그 더위보다 한층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 프로 야구가 흥행하려면 엘 마 호가 살아나야 한다고.
2032시즌. 근 10년 이내 가장 높은 평균 관중수를 통해 마린스가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하여 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8월의 중순.
마린스의 팬들은 여전히 야구장을 찾고 있었다.
< vs MVP(2)-무료 마지막입니다. > 끝
ⓒ 묘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