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48화 (49/287)

< vs MVP >

[메이저리그가 김성민을 주목했다?]

최근 KBO의 김성민 선수에게 다수의 메이저 에이전시가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또한, 그중에는 작년 계약 총액 10억 달러가 넘어가는 초대형 에이전시도 포함됐다고 한다.

김성민 선수는 별일이 없다면 올해를 끝으로 FA자격을 얻게 되며 현재 시즌 8경기 등판 8승 평균자책점 0.62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메이저? 김성민 NPB에 관심 있다고 하지 않았어?-

-뭐 요즘 우리 성민이 성적 보면 NPB보다는 메이저가 더 어울리긴 하지.-

-뭐 미국 에이전시라고 해서 NPB 못 가는 건 또 아니니까. 요즘 미국 에이전시 중에도 일본 시장에 발 걸친 곳 많잖아. 게다가 장기적으로 일본 잠깐 거치고 미국 갈 수도 있는 거고.-

-근데 너클볼러에 1년 반짝이라서 MLB 가능하려나?-

-NPB건 MLB건 아무 곳이나 상관없으니 제발 떠나기만 해줬으면······.-

-그냥 우리 팀 왔으면 좋겠다. 쓸만한 선발 하나만 보강하면 우리도 우승권인데.-

-어느 팀인데? 다저스? 내셔널스? 양키스?-

-레드삭스인데.-

-이런 양심 없는 봑을 봤나. 야, 니네는 지금 선발 하나 보강이 아니라 선발 중에 한 명 빼고 다 보강해야 우승권이야.-

-뭔 소리야. 우리 유망주 터지기 시작했거든? 이제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거든?-

-네, 양키스, 토론토까지 갈 것도 없이 탬파 선에서 정리되는 봑 이야기 잘 들었고요. 개인적으로 브레이브스도 괜찮음. 에두아르도 정도면 너클볼도 무난하게 잡을 것 같은데.-

-한국인이면 제발 메츠로 갑시다. 강진호 후계자 가즈아!!-

-무슨 개소리들이지? 김성민은 종신 마린스임. 이대로 마린스 은퇴해서 마린스에서 투수코치 거쳐서 감독까지 갈 것임.

-맞아, 내가 선수단에 아는 사람 있어서 아는데 김성민 선수 본인이 마린스에 남고 싶은 의지가 강하다고 들었음.-

-맞아, 솔직히 마린스만큼 프랜차이즈 잘 대접해주는 팀도 드물지.-

-네, 위에 티키타카 세 분. 같은 IP인 거 잘 봤고요.-

-ㅋㅋㅋ 마린스는 양심 있으면 김성민 해외로 보내 줘야.-

박희연 기자의 기사가 또 한 번 포털을 뒤흔들었다.

그녀의 기사를 따라 하는 수많은 카피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에 더해서 아니면 그만이지 하는 식의 각종 추측성 기사들 역시 범람했다. 분명, 이 순간. 스포츠계 최고의 화제는 성민의 해외 진출이었다.

물론 성민 본인은 그와 무관하게 묵묵히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성민의 다음 상대는 창원 블레이즈.

탄생부터 마린스와 라이벌일 수밖에 없는 가까운 이웃이었다.

-근데 어제는 왜 그냥 그렇게 온 거냐?

‘뭐가요?’

-아니, 그 여자는 아주 단단하게 각오를 하고 나온 것 같던데, 너 설마 진짜로 어디 문제라도 있는 거냐?

‘아,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냥 기분 나빠서 그랬어요.’

-기분이 나빠?

‘아니, 솔직히 나도 우리 엄마가 나 업어 키운 건 잘 아는데요. 저도 이제 다 컸는데 이건 아니죠. 엄마가 관리해도 되는 건 내 통장이랑 보험 그리고 위생까지만이에요. 연애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잠깐만, 근데 통장이랑 보험 위생도 관리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성민이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뭐, 솔직히 말하자면 그 속셈이 너무 빤해서 더 기분나쁜 것도 있었어요. 날 대체 언제까지 애송이로 생각하려는 건지. 생각같아서는 눈 딱 감고 확 저질러버릴까 싶었다니까요.’

-속셈?

‘그때도 이야기 했잖아요. 우리 엄마 기준으로 여자는 최소 페더급에서 시작이라고. 엄마 눈에 박 기자님은 너무 호리호리하게 약해요.’

-잠깐만. 너 지금 그 말은 설마?

‘맞아요. 엄마 지금 내가 이렇게 반발할 걸 예상하고 저지른 거예요.’

필 니크로가 혀를 내둘렀다.

대체 이건 뭐 하는 모자지간인지.

한쪽은 여자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반발하길 기대하면서 부자연스러운 응원을 보냈고, 다른 쪽은 그걸 알면서도 반발했다.

-그러면 그걸 눈치챘으면서 대체 왜 이런 거냐?

‘말했잖아요. 박 기자님은 제 타입 아니라고요. 거기다 이 바닥 좁습니다. 여긴 미국도 아니고 아랫도리 함부로 놀렸다가 망한 선수가 하나둘이 아니에요. 참을 수 없는 거면 몰라도 지금처럼 잘 나가는데 참을 수 있는 건 참아야죠. 게다가’

-게다가?

‘지금 이렇게 순순히 멍청하게 당해주는 척을 해야지 나중에 미국으로 떴을 때 진짜 자유를 쟁취하죠. 이게 바로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는 겁니다.’

다만 한 가지 필이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김성민이라는 이 끔찍한 혼종을 만든 것이 단순히 마린스만은 아니었다는 점 정도였다.

***

창원시 블레이즈 파크.

이제는 지어 진지 10년이 넘어가는 구장이지만 그래도 KBO에 손꼽는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다. 게다가 부산에서 가장 가까운 만큼 마린스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원정 구장이기도 했다.

화요일 경기. 창원 블레이즈 파크의 2만 2천 석이 매진됐다.

개막전, 포스트시즌, 혹은 제2 구장에서 열리는 경기가 아닌 평범한 정규 시즌 경기, 그것도 평일 경기가 매진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물며 오늘 창원구장의 매진은 조금 더 특별했다.

“형 지금 밖에 보셨어요?”

“어, 아주 난리 났더라. 오늘 블레이즈 팬보다 우리 팬들이 더 많은 것같아.”

“성민 선배 인기가 진짜 무섭기는 무섭네요.”

“프로야구 출범하고 선발이 0점대 기록한 건 선 감독님 이후로 처음이잖냐. 거기다가 그분 뛰던 시절은 벌써 4, 50년 전이고.”

비인기 구단의 홈 경기에 원정 팬이 더 많은 경우 역시 종종 존재한다. 하지만 2만 2천석 중 무려 1만 7천 석을 원정 팬이 차지해서 매진시키는 일은 흔치 않다.

그리고 오늘 마린스의 팬들이 그 흔치 않은 일을 해냈다.

“나 이제부터 성민이 경기는 다 봐두려고.”

“왜?”

“올해를 끝으로 외국 나갈 게 뻔한데, 이런 에이스가 있었다는 걸 전부 직접 봐 둬야지.”

“성민이 안 나간다는 소문도 있던데?”

“넌 그걸 믿냐? 우리가 FA한테 돈 좀 넉넉하게 쓰긴 하지만 그래도 외국 나갈 선수 잡을 급까지는 아니지.”

성민의 해외 에이전시 접촉 뉴스에 이제 한국에서 성민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팬들은 물론이거니와

“야, 이거 진짜 실화냐? 시즌이 30%가 지났는데 우리가 아직도 2위야.”

“내가 말했잖아. 올해는 느낌이 좋다고. 내가 40년 동안 부산 은행 마린스 가을야구 가자 정기예금 특판을 넣었는데 마지막 0.1%를 받을 것 같은 느낌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니까.”

“아니 근데 너 그 느낌은 매년 봄마다 받던 거잖아.”

“그래, 봄에는 매년 받지. 근데 지금까지 그런 느낌 받는 건 올 해가 처음이라고.”

대체 무슨 말을 주고받는 건지, 아직 경기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2리터짜리 생수병에 담아온 소주를 2할쯤 비워버린 중년 남성들까지.

창원 블레이즈 파크에 가득 찬 팬들이 마린스를 응원했다.

“후우.”

그리고 그 가운데 눈에 띄게 긴장한 선수가 보였다.

“야, 박동엽.”

“네, 네!!”

“뭘 이리 긴장하고 그래. 경기 하루, 이틀 뛰는 것도 아니고.”

“아닙니다!!”

“왜? 오늘 호창 형이 선발 출장이라 그래? 인터넷에 아직도 호창 형이랑 너랑 비교하는 댓글들 가득한데 실수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하고 그러는 거야?”

“아닙니다!!”

“새끼가 아니기는.”

현정현이 동엽의 어깨를 꽉 잡았다.

“내가 어제 호창이 형 봤거든. 그 형이 너 칭찬하더라.”

“그렇습니까?”

“그래, 인마. 그러니까 쫄지 말고 가서 하던 대로만 하자. 뭐 실수하면 성민이한테 고개 팍 숙이고 오늘 펑고 좀 빡세게 받으면 되는 거 아니겠냐?”

“실수 절대 안 하겠습니다.”

경기가 시작됐다.

1회 초.

언제나와 같은 자세로 덕아웃에 앉아있던 성민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옆에 둥둥 떠다니던 필 니크로 역시 뜻밖의 상황에 크게 당황했다.

‘응?’

-으으응?

선두 타자 볼넷.

그리고 이어지는 진루타, 안타, 이루타. 그리고 맷 데이비스의 투런 홈런.

폭풍 같은 삼자 범퇴.

혹은 분명 안타를 치는데 점수가 안 나는 변비 같은 장면이라면 익숙했다. 하지만 이렇게 호쾌한 선취점이라니.

그것도 무려 4점이나.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8번이나 9번에 배치해야 한다는 안티들의 목소리는 높았다.

하지만 낮은 타율과 출루율에도 불구하고 그걸 커버하는 높은 장타율로 어느새 OPS 0.8고지를 밟은 6번 타자 박동엽이 타석에 들어왔다.

시원한 헛스윙 한 번.

그리고 살짝 몰린 두 번째 속구를 상대로 -딱!!

1회 초

마린스가 성민에게 무려 5점을 안겨주었다.

-뭐지 이건? 설마 탈출할 거라는 기사가 났다고, 어떻게든 회유해보려는 마린스의 술책인가?

‘술책은 무슨 술책입니까. 상식적으로 전부 똑같은 프로선수에 같은 방망이 들고 경기하는 데 이런 날도 있어야죠.’

-그래, 나도 얼마 전까지 그런 상식을 믿었던 순진한 시절이 있었지······.

필 니크로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잡담을 뒤로하고 성민이 마운드로 올라갔다.

그의 등 뒤, 그라운드 위로 살짝 상기된 표정의 야수들이 글러브를 두들기며 서 있었다.

앞선 타석에서 시원한 초구 내야 땅볼로 물러났던 혁준이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성민의 공을 기다렸다.

혁준은 이제 9푼이는 아니라지만 여전히 타자로는 엉망진창이었다. 아마 그에게 성민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소한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꾸준히 기회가 주어질 테니까.

물론 그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전적으로 그의 능력에 달린 일이겠지만.

‘뭐, 나한테도 혁준이가 우리 팀인 게 행운이긴 하지.’

너클볼을 받을 수 있는 포수가 팀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타격 성적은 엉망이지만 아직 어린 나이의 ‘포수’였기에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 모두 성민에게는 행운이었다.

아마 혁준이 없었더라면 성민이 공을 던지는 것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저 녀석이 공격의 맥을 툭툭 끊어준 덕분에 네가 득점 지원이 적었던 것도 생각해야지.

혁준이 마스크를 쓰기 위해서는 주전 포수인 박태경을 쉬게 하던지 일루나 지명 타자로 출전시켜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빈약한 마린스 타선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자원들이다.

그렇듯 성민이 득점 지원이 빈약했던 것은 마린스의 타선이 부실한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을 해줄 자원이 항상 하나씩 빠졌던 점 역시 간과할 수 없었다.

‘득점 지원이야 뭐. 솔직히 많이 필요 없잖아요.’

-정상적으로 수비만 돌아가면 그렇다고 볼 수 있긴 하지.

5:0

그리고 김성민.

성급한 블레이즈의 몇몇 팬들은 1회 백투백 홈런에서 이미 탄식을 하며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는 시원했다. 하지만 그 시원함도 그들의 타는 속을 달래줄 수는 없었다.

“야, 근데 저기 저거 스카우트인가?”

“신경 꺼. 어차피 우리 애들 보러 온 것도 아니야. 김성민이 요즘 잘 나간다던데 걔 보러 왔겠지.”

“왜? 우리도 타자 중에는 잘하는 애들 있잖아.”

“걔들은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았잖아.”

“아니, 토종 애들 중에야 그렇지만 우리도 마르타가 있잖아.”

“망할. 잊고 싶었는데 왜 그걸 이야기를 꺼내고 있어!!”

창원 블레이즈의 덕아웃

검은 피부 아래 탄력 넘치는 근육이 요동쳤다.

현 KBO 외국인 선수 가운데 유일한 다년 계약자.

역대 외국인으로는 여덟 번째.

역대 외국인 타자로는 세 번째.

그리고 역대 모든 외국인 선수 가운데 유일무이한 연속 수상까지.

작년과 재작년의 KBO리그 MVP.

마르타 노엘이 성민을 바라봤다.

< vs MVP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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