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 스타(2) >
‘흥, 어디 왕년에 못 나갔던 선수도 있나?’
오늘 재규어스의 선발 투수인 이관호가 야구공을 움켜쥐었다. 앞서 같은 삼자범퇴였음에도 관중 반응의 수준이 다르다는 점이 그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
그도 역시 10년 전만 하더라도 수많은 얼빠팬들이 보내는 카메라 플래시의 집중을 받았던 남자다. 지금 얼굴을 보면 믿기 힘들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를 잠실 박서준이라고 불렀었다.
‘그리고 어디 야구가 뭐 얼굴로 하는 건가? 야구선수는 말이야 야구만 잘하면 원래 얼굴도 잘생겨 보이고 뭐 그런 거야.’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잘생김을 연기하는 것처럼 야구를 잘하는 야구선수는 얼굴조차 잘생겨 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관호가 잠실 박서준이라 불린 비결이었다.
이관호의 속구가 미트를 꿰뚫었다.
-뻐엉!!
149km/h.
그것은 ‘어떠냐. 오늘 경기의 주인공은 김성민 혼자가 아니다. 잠실의 마운드에는 나 이관호도 있다.’라고 외치는듯한 공이었다.
“야야, 저기 봐봐. 울 성민 오빠. 덕아웃에서도 존잘이야.”
“역시 자태가 다르다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다. 블루석 1렬에 앉은 팬들은 대포 카메라로 덕아웃에서 쉬고 있는 성민을 찍기 바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프로는 기본적으로 관심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설사 타인의 관심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가 무대에 서있는데 무대 밖의 사람에게 관심을 주는 상황을 달갑게 생각할 사람은 드문 법이다.
이관호가 젖먹던 힘을 다해 공을 뿌렸다.
-따악!!
마린스의 4번 타자 박태경이 이관호의 공을 그대로 두들겼다. 크게 퍼올린 타구. 재규어스의 중견수 김규찬이 빠르게 질주했다. 어깨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재규어스에서 중견수 자리를 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빠른 발이다.
아웃!!
1루로 달려나간 박태경이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하, 저 새끼 저거 아주 이를 악물고 달리네.”
“요즘 니들 하는 거 보면 이 악 물어야지.”
박태경의 말에 재규어스의 일루수 백일우가 답했다.
“아니, 매년 우승 후보에, 작년엔 우승까지 했던 양반들이 13년 만에 간신히 한 번 가을야구 했던 팀 상대로 이 악무는 건 반칙 아니요?”
“우는 소리 하기는. 인마, 요즘 TV고 인터넷이고 죄다 우승 후보 1순위로 니들 꼽는 거 모르냐? 시부럴. 누가 보면 지금 1등 니들이 하고 있는 줄 알 정도로 떠들더라.”
“아, 그거야 매일 상위권 하는 형네 팀이 1등 하는 것보다 우리가 하는게 더 재밌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요. 형님도 프로야구의 부흥을 위해서 협조 좀 하는 게 어떻수.”
“하여간 우리 태경이는 개소리도 아주 그럴싸하게 잘 씨불인다니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아는 법이다. 우승 역시 마찬가지다. 2015년 이후 가장 많은 우승을 해본 재규어스였기에 우승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그 한 걸음 앞에서 넘어졌을 때 안타까움이 얼마나 큰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시즌 가장 큰 걸림돌이 될지 모르는 마린스를 향해 재규어스의 선수들이 집중력을 발휘했다.
마린스의 용병 타자 맷 데이비스 역시 외야 플라이로 물러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6번 타자는 앞선 수비이닝 놀라운 집중력과 어깨로 김규찬을 잡아냈던 박동엽이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깔끔한 헛스윙 삼진.
“저 새낀 또 저러네.”
“야, 그래도 너무 그러지마. 그래도 평소보단 좀 나았잖아.”
“낫긴 뭐가 낫단 말이야. 또 헛스윙 삼진이구만.”
“중간에 공 두 개나 더 봤잖아. 파울도 하나 있었고.”
“그건 또 그렇네. 아냐 잠깐만. 시부럴. 왜 헛스윙 삼진인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
이제는 폭풍같은 3구 삼진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 다행이라는 감정을 심어주는 동엽의 타석이 끝나고 성민의 차례가 돌아왔다.
곳곳에서 카메라 셔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성민이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
모자를 슬쩍 들어 1루와 3루 내야의 카메라를 지그시 바라보는 성민에게 필 니크로가 물었다.
-지금 뭐하냐?
‘팬 서비스요.’
사실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인기는 처음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의 인기가 조금 더 폭발적이기는 했지만, 과거 2026년 당시 사윗감 삼고 싶은 남자 3위에 랭크 됐던 시절 역시 상당수의 얼빠들이 성민을 찾으러 야구장에 왔었다.
‘뭐, 솔직히 야구장 분위기 안 좋게 만든다 어쩐다 말은 엄청 많았었거든요. 우린 야구하러 야구장에 올라오는데, 쟤들은 야구보러 야구장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제 얼굴 보러 야구장 오는 거라서요.’
-흐음······.
‘근데 저한테는 크게 도움이 됐어요. 27시즌 이후로 너무 크게 폭망했을 때 그래도 쟤들이 꾸준히 야구장 나와준 덕분에 마케팅 측면에서 제가 1군에 좀 더 붙어 있었던 것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전 영감님이 뭐라고 하시건 간에 이런 모자 잠깐 들어서 사진 포즈 잡아주는 서비스 정도는 계속 할 겁니다.’
-뭐 나쁘지 않지.
‘네?’
필 니크로가 말했다.
-TV가 나온 이후로,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전에도 같은 값이면 잘생긴 선수가 더 인기 있는 건 당연했어. 프로는 엔터테인먼트야. 괜히 메이저 스카우트들이 비슷한 포텐셜이면 금발에 잘생긴 백인 남자를 뽑았던 게 아니라고.
‘뭔가 영감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좀 이상한데요?’
-이상하기는. 물론 야구 선수는 야구를 잘하는 게 최우선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좋은 야구선수는 될 수 있어도 슈퍼스타는 되지 못하는 법이야. 난 네가 슈퍼 스타가 되기를 바란다.
‘슈퍼 스타라.’
-테드 윌리엄스는 훌륭해. 하지만 그가 조금만 더 너를 닮았더라면 조 디마지오에게 그렇게 터무니없게 MVP를 뺏기는 일들은 없었을 거다. 난 네가 마이크 트라웃 같은 선수보다는 데릭 지터, 스즈키 이치로 같은 선수가 되길 바란다. 뭐 지금 하는 꼴을 보니 크게 어렵진 않은 바람 같군.
성민이 웃었다.
‘아니, 선수들 수준은 둘째치고 트라웃이랑 데릭 지터면 선수로서 수준 차이가 너무 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차이면 전자 쪽 선수가 되길 바라주셔야죠.’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거다. 스타일. 뭐 어느 수준의 선수가 될지는 네 녀석이 노력하기에 따라 달라지겠지.
‘이왕이면 마이크 트라웃 같은 성적에 데릭 지터같은 인기를 가진 선수면 완벽하겠군요.’
-그래. 미스터 메츠. 강진호 같은 선수라면 만족스럽겠지.
‘그건 일단 얼굴은 제 압승이니까 실력만 좀 어떻게 하면 되겠군요.’
-글쎄다.
재규어스의 4번 타자 마크 톰슨이 타석에 들어섰다. KBO 3년 차의 용병. 작년 우승에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 시즌 160만 달러의 연봉을 수령하는 거포다. 당장 메이저에 간다고 해도 40인 로스터에는 충분히 이름을 올릴만한 실력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성민이라는 투수가 얼마나 까다로운 투수인지를.
평범한 속구, 느린 너클볼, 더럽게 느린 너클볼.
타이밍을 교란하고, 방향을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차라리 사직 원정이었다면 조금 나았을지도.’
게다가 오늘 경기장은 한국에서 가장 넓은 잠실 구장. 잠실의 광활한 외야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가 아닌 퍼 올리는 타구는 어지간하면 외야 플라이로 둔갑시킨다.
흔들흔들
성민의 너클볼이 춤추듯 날아왔다.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공을 향해 마크 톰슨의 방망이가 빠르게 움직였다.
-부웅
“스트라잌!!”
존을 빠져나가는 공이었다.
두 번째 공을 기다렸다.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공.
하지만 조금 약하다.
‘젠장.’
실투였다.
투수는 신이 아니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0.5점대의 터무니없는 평자책을 기록 중인 성민이었지만 그간의 피칭에 실투 역시 적지 않았다.
-딱!!
마크 톰슨의 방망이가 성민의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높게 뜬 타구가 1루 파울라인을 넘어갔다.
마크 톰슨이 인상을 찌푸렸다.
124km/h는 너클볼이라기에는 충분히 빠른 공이었다. 게다가 완전히 손에서 빠진 실투도 아니다. 흔들림이 조금 덜하다고 바로 쳐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공이 아니었다.
‘어쨌든 오늘은 실투를 던지기는 던진다는 이야기네.’
지지난 경기, 퍼펙트게임의 경우 거의 실투가 없다시피 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늘 경기는 그래도 해볼 만하다.
마크 톰슨이 세 번째 공을 기다렸다.
-어휴, 하여간 저 돼지 새끼. 저걸 못 잡네.
필 니크로가 막간을 이용해 파울 플라이를 놓친 현정현을 욕했다.
그리고 세 번째.
성민이 공을 뿌렸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와우, 방금 150.1km/h가 찍혔습니다.]
[지난 돌핀스전에서 던졌던 151km/h의 공 이후로 가장 빠른 공이네요.]
느린 너클볼을 노리던 마크 톰슨이 방망이조차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물러났다.
오늘 성민은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보통의 투수라면 컨디션이 좋은 날 성적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민은 보통의 투수가 아닌 너클볼러다.
‘어우, 이거 오늘 공이 생각보다 더 뻗는데요?’
-지금 허리랑 어깨 회전이 평소보다 좋다. 손끝으로 튕겨내는 힘을 조금 더 줘야겠구나.
너클볼의 컨트롤이 까다로워진 대신 속구의 위력이 좋아졌다. 느린 너클볼을 본격적으로 몸에 익힌 이후 150이 넘는 공을 던진 적이 없었는데 150.1이 찍혔다.
마린스와 대포 카메라를 든 모든 팬들이 크게 환호했다.
마린스의 팬들은 그 시원한 삼구삼진에, 대포 카메라를 든 팬들은 전력을 다한 성민의 멋진 포즈에.
경기가 계속됐다.
***
“이거 생각보다 야구 열기가 훨씬 대단하군요.”
“아무래도 야구는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스포츠니까요.”
물 건너 미국에서 건너 온 갈색머리의 외국인이 잠실의 열기에 감탄했다. 쿵쿵거리는 대형앰프의 소리는 야구에 방해가 될 만큼 시끄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나름의 맛이 있었다.
마치 축제에 온 것 같은 기이한 열기.
그리고 그 속에서 그가 목표로 하는 선수가 연신 위력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KBO 출신으로 MLB에 진출하는 선수들의 경우 가외수입이 상당한 편이었는데, 지금 열기를 보니 이해가 가는군요.”
“성적만 낼 수 있다면 CF를 통한 수입도 상당할 겁니다. 물론 그걸 위해서는 한국 쪽에 상주하는 직원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부분은 저도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당장 한국 쪽에 따로 사무실을 내고 직원을 상주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지금까지 한국에 투자한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그보다 저희 쪽 정보에 따르자면 코스크만 코퍼레이션에서도 이번에 한국에 입국을 했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들도 김성민 선수를 노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코스크만에서도요?”
코스크만 코퍼레이션은 동아시아쪽 선수들에 관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에이전시로 작년 계약 총액 10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달성한 여섯 개의 회사 중 하나였다.
모리스 그룹이 최근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곤 하지만 아직 규모 면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센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딱!!
그리고 이번 경기 재규어스의 세 번째 안타가 터졌다.
이루타.
마운드의 성민이 어깨를 돌렸다.
“안타로군요. 4.1이닝 동안 3피안타라. 확실히 좋은 투수는 좋은 투수입니다.”
일본 쪽에서 합류한 동아시아 직원인 무라카미 에른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요.”
“물론 빅리그를 기준으로 하신다면 눈에 안 차실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KBO의 타자 수준은 AA에 근접했다고 봅니다. 오늘 상대인 재규어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타선이고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면?”
한센이 계산하기로 오늘 성민은 3피안타가 아니었다.
‘저 우익수랑 이루수가 평균적인 수준만 됐다면, 이 경기 아직 노히트야.’
< 슈퍼 스타(2)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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