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언론 이용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돌리죠.”
마케팅팀장의 이야기에 학준이 되물었다.
“스포트라이트?”
“지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건 닉 해리슨의 행동인데,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 김성민 선수가 잘 해결하는 훈훈한 이야기거든요.”
“그런데요?”
“작년이었다면 1선발인 닉 해리슨한테 성민이가 완전히 묻히겠지만 지금은 김성민 선수가 안 그래도 완전 핫 하잖습니까. 김성민 선수 공중파 인터뷰 보내서 훈훈한 이야기로 묻어버리죠.”
“그게 가능하겠어요?”
학준의 질문에 마케팅팀장을 대신해서 홍보팀장이 답했다.
“안 그래도 김성민 선수 퍼펙트하고 인터뷰 요청 들어온 건수 중에서 뉴스방에 생방송 패널 초대건이 있습니다.”
“뉴스방?”
“그거면 공중파보다 쎄네요. 그걸로 하시죠.”
“김성민 선수가 들어줄까요?”
“사실 김성민 선수 입장에서는 나쁠 것도 없죠. 자기 미담 이야기하고 몸값 올리는 건데요.”
학준이 잠시 고민 끝에 운영팀장에게 말했다.
“운영팀장님 부탁 좀 드리죠.”
“제가요?”
“우리 중에는 운영팀장님이 그래도 제일 김성민 선수랑 자주 만나잖습니까. 그 연습용 공 사인볼로 주는 것 때문에요.”
“그건 그렇지만.”
“그러면 이번 건은 그런 거로 하고, 홍보팀장님도 언론 좀 잘 움직여 주세요.”
***
“인터뷰요?”
“네, 좀 부탁드립니다.”
“으, 아무리 그래도 생방송은 좀 부담스러운데요. 그것도 8시 뉴스라니.”
“일단 기본적인 질답은 미리 제공될 겁니다. 팀의 사정이 사정인 만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운영팀장의 부탁에 성민이 잠시 고민했다. 뭐 성민은 요즘 잘 나가는 투수였고 그만큼 여기저기에서 밀려오는 인터뷰 요청들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 것처럼 커다란 건수는 처음이었다.
평소 언론을 환영하면 환영했지 거절하는 모습은 보여준 적이 없던 성민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필 니크로가 지금까지 봤던 모든 선수 가운데 가장 노련한 인터뷰어이기도 했다. 그런 녀석이 고민이라니.
필 니크로가 물었다.
-대체 뉴스방이 무슨 프로그램인데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이름 들어보니까 그냥 뉴스 프로그램 아니야?
‘케이블 뉴스 주제에 공중파를 제치고 한국에서 가장 시청률 높은 뉴스프로그램입니다. 뉴스에 대한 신뢰도 조사도 국내 뉴스 중에서 유일하게 30%를 넘는 프로그램이에요.’
-뭔가 대단한 것 같으면서 신뢰도 30%라고 하니까 굉장히 별로인 것 같은데. 그게 대단한 거 맞긴 한 거지?
‘뉴스방 제외하고 가장 신뢰도 높은 뉴스가 신뢰도 14%에요.’
전국민의 60% 이상이 불신하는 뉴스가 신뢰도 1위. 80% 이상이 불신하는 뉴스가 신뢰도 2위라는 현실에 개탄할 틈 따윈 없었다.
-그래서 거기 시청률이 높아서 부담스러운 거야?
‘그럴 리가요. 시청률이 높다는 건 사람들이 많이 본다는 건데 부담스러울 이유가 뭡니까. 사람들 눈 부담스러우면 프로 하면 안 되죠. 그보다 거기 나가는 게 나한테 얼마나 이득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크게 이득인가를 고민하는 겁니다.’
-일단 이득인 건 확정인 거야?
‘원래 유명해지는 건 무조건 이득이에요. 심지어 이번 건수는 리그는 개판인데 나만 훈훈하다는 이슈라서 이미지 관리로는 완전 최고죠.’
-그러면 고민할 것도 없는 거 아니야?
‘그렇기는한데 지금 내가 부탁을 들어주는 입장이잖아요. 원래 이렇게 시간도 좀 끌어주고 그래야 저쪽에서도 더 고마워하는 겁니다. 거기다가 이거 문제도 좀 있거든요.’
-문제?
필 니크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 상황은 인터뷰를 조지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성민이 운영팀장에게 답했다.
“좋습니다. 나가볼게요. 대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이요?”
“네, 홍보팀장님한테 이야기해서 기사 좀 내주세요.”
***
“오늘 준비된 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요, 오늘은 미리 예고드린대로 초대손님을 한 분 모시려고 합니다. 한국 야구를 보는 분들이라면, 아니 요즘 같아서는 한국 야구를 잘 모르는 분이라도 누구나 이름 정도는 들어보셨으리라고 생각하는데요. 부산 마린스의 김성민 선수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성민입니다.”
얼굴에 연예인용 화장을 한 성민이 웃으며 인사했다.
본판부터가 나쁘지 않았던 성민이다. 평생 하지 않던 파데에 하이라이트니 쉐딩이니 뭐니를 거친 그의 얼굴은 과장 조금 보태 준연예인급이라고 할 만큼 훌륭했다.
“반갑습니다. 김성민 선수. 최근에 KBO 최초로 퍼펙트 경기를 하셨죠? 사실 저도 야구를 보는 사람이라서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오늘 이 뉴스를 보는 시청자분들 가운데서는 그걸 모르는 분도 계시거든요. 잠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최근 성민의 대단한 기록과 너클볼에 관한 이야기가 잠시 오고 갔다. 야구를, 그리고 성민을 아는 사람이라면 뭐 이런 걸 묻고 그러나 싶은 수준의 질문이었지만 애초에 이 뉴스를 보는 시청자 가운데는 그런 기초적인 정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허, 정말 그 정도로까지 힘들게 운동을 하신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야구선수라고 하면 다른 운동에 비해 조금 체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네,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죠. 하지만 이게 또 그걸 운동을 덜 한다고 보면 곤란한 것이 아무래도 운동의 목적이랄까? 그런 게 좀 다르거든요. 아무래도 축구나 농구 같은 종목은 거의 1시간 이상 뛰어다녀야 하는 운동이잖아요. 대신 경기의 텀이 좀 길고요. 반면 야구는 매일매일 일 년에 150경기 가깝게 소화를 해야 하는 운동이에요. 거기다가 코너 내야수의 경우는 주루를 제외하면 거의 뛸 일도 없고요. 요구되는 능력이 다른 거죠. 마치 무제한급 역도선수와 마라톤선수처럼 말이죠.”
“아, 그러니까 야구의 코너 내야수, 그러니까 일루수나 삼루수는 일종의 무제한급 역도선수와 같은 거군요. 한순간 힘을 쏟아내는 것에 더 중점을 맞춘 그런 선수요.”
“네, 그렇죠.”
성민의 이야기에 앵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확실히 야구 선수와 농구 선수에게 필요한 신체 능력은 다르지.
‘맞는 말은 저 앵커가 하는 말이 맞는 말이죠.’
-응?
‘솔직히 지방도 어느 정도 필요한 건 맞는데 우리 팀 정현이 형도 그렇고 대부분 그냥 야식 많이 먹고 운동 덜해서 찐 겁니다. 아시잖아요. 같은 돼지도 근육 돼지가 있고 그냥 돼지가 있는 거.’
-그, 그건 그렇지.
‘우린 대부분 그냥 돼지예요.’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별개로 성민의 립서비스는 쭉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성민이 이곳에 나오게 된 진짜 목적이 앵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조금 예민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대답하기 조금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와, 지금까지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여기서 이제 더 힘들어질 거라니 이거 겁나는데요?”
“다름이 아니라, 최근 KBO의 팬서비스에 관한 이야깁니다.”
사실 앵커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미 프런트를 통해 질답지가 오고 간 내용이었다.
“아, 그 부분에 관해서는 제가 할 말이 좀 있습니다.”
“네?”
하지만 앵커가 묻기도 전에 성민이 먼저 두 팔을 벌리고 나서는 것은 애초의 계획에 없던 내용이었다.
“사실 이런 말을 하면 ‘동업자끼리 너무 감싸준다.’ ‘그놈이 그놈이다.’ 뭐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기철이, 아니 김기철 선수가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애초의 계획대로라면 닉 해리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성민의 선행으로 당사자끼리는 잘 마무리가 됐고, 그 아이가 조만간 시구까지 하기로 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로 뉴스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사건의 시발점이기는 했지만, 워낙에 사인을 안 해주는 것이 일상인지라 묻혀버린 토종선수에 관한 이야기는 애초에 나눌 계획조차 없었다.
하지만 계획에 있건 없건 지금은 생방송이었다. 앵커가 자연스럽게 성민의 말을 받았다.
“아, 네. 호크스의 김기철 선수 말씀이시군요.”
“사실 이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물론 아무리 스윕패를 당했다고 해도, 양손에 짐이 있다고 해도 프로선수로서 팬들을 무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게 기철이 혼자의 잘못이냐 하면 그건 또 좀 갸웃하단 말이죠.”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기철이는 이제 24살. 1군에서 뛴 지도 2년밖에 안 된 선수예요. 위에 선배들이 줄줄이 있단 말이죠. 제가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미 다른 선수들은 전부 버스에 탄 상황인데 거기서 혼자 남아서 사인해주고 있으면 그게 참, 사회생활 해보신 분들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그게 좀 그래요.”
처음에는 곤란해하던 앵커의 얼굴이 흥미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역 선수의 업계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라니. 뻘소리를 하면 시간을 핑계로 적당히 끊으려던 그가 이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성민의 말에 호응했다.
“확실히 선후배 간의 위계라는 것이 그런 면이 있죠.”
“보시면 팀마다 분위기라는 게 좀 있어요. 우리 팀 같은 경우는 10년 전부터 해서 그런 건 좀 참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거든요. 물론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어디나 돌출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죠. 저희 해리슨처럼요.”
“아!!”
“물론 최근 KBO는 구단 차원에서 그런 행동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관리를 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해리슨도 아마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번 사건이 알려진 뒤 벌금을 맞은 거로 알고 있고 김기철 선수도 벌금을 맞았을 겁니다.”
“그렇군요.”
“제가 알기론 김기철 선수 올해 최저보다 조금 더 받는 거로 아는데. 닉 해리슨이야 그렇다치고 참 안타까운 일이죠.”
성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생방송을 보고 올라가는 기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빠른 완성된 기사들이 인터넷에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김성민 ‘팀의 구조적인 문제가 선수 개인에게 전가되는 것은 가혹하다.’]
[좋은 개인으로는 안 된다. 문제는 팀 문화!!]
[10년 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부산 마린스의 팬 서비스. 그 근간에는 팬을 생각하는 베테랑들의 철저한 교육이 있었다.]
[김성민 신인 시절 주장이었던 이형진 선수의 말버릇 ‘팬이 없으면 프로는 존재할 수 없다.’]
[파도 파도 미담뿐. 김성민 10년간 이어진 아름다운 팬서비스.]
언론은 본래 더 자극적인 사건을 쫓는다.
그리고 KBO의 선수가 사인을 안 해준 사건은 용병투수가 사인을 피해 달아난 것에 비하면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언론의 포화가 닉 해리슨에게 쏠린 이유다.
프런트에서는 그것을 성민의 미담으로 덮으려 했다.
순진한 생각이다.
‘가능할 리가.’
미담은 아름답다. 하지만 용병 투수가 사인을 피해 달아난 것에 비하면 너무 순하다. 이슈를 덮기 위해서는 더 자극적이고 화끈한 이슈가 필요한 법이다.
마지막 인사를 요청하는 앵커에게 성민이 강한 어조로 답했다.
“프로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팬입니다. 팬이 없다면 프로 야구는 그냥 조금 더 잘 던지고 조금 더 잘 치는 동네 야구와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민이 마린스로 쏠린 이목을 덮어주기 위해 더 화끈한 폭탄을 터트렸다.
-근데 너 괜찮냐? 이 바닥 좁고, 야구 하루 이틀 할 거 아니라고 매일 이야기했잖아. 그런데 그렇게 저쪽 구단 하나를 통째로 욕해도 괜찮겠어?
‘원래 욕은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칭찬은 누군가를 꼭 집어서 정확하게, 그리고 비난은 태도는 강경하게 하지만 내용은 두루뭉술 애매모호하게. 인생의 기본이죠.’
-그게 인생의 기본?
‘원래 누군가에게 내 욕을 먹으면 두고두고 원한으로 남는 법입니다만, 내 직장 문화를 욕하는 거야 뭐 시간 지나면 까먹기 마련이죠. 어차피 대부분 선수는 이게 자기 이야기라고는 생각도 안 할걸요?’
성민의 말이 옳았다. TV에서 누군가가 직장 내 꼰대 문화가 문제라고 떠들어봤자 누구도 그것이 자신에게 하는 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민의 인터뷰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얘들아 이번에 KTBS. 뉴스방에 야구선수 나온 거 봤어?-
-야구선수? 왜? 뭔데?-
-나 봤어. 완전 심쿵. 존잘이더라. 말도 엄청 스마트하게 잘함.-
-존잘이라고? 어떻게 생겼는데. 니들만 알지 말고 나도 좀 보여줘.-
-기다려봐. 내가 김성민 짤방 공유할게.-
-와, 이렇게 보니까 진짜 존잘이네.-
-너희들 몰랐구나. 얘 얼굴보다 몸이 더 죽여줌. 예전에 더 뽀송할때 국가대표시절부터 유명했어. 아마 예전에 여성지 화보도 찍었을걸?-
-와, 쟨 팬한테 침 뱉어도 무죄.-
-저 선수 팬서비스 잘하기로 유명하데. 근데 저 얼굴로 잘못했던 친구들 감싸주는데. 역시 얼굴이 잘생겨서 인성도 좋네.-
-얘 지금은 부산 마린스라는 팀에 투수라고 하더라.-
-부산 선수야? 되게 멀리서 경기하네.-
-아냐. 야구는 원정이라고 돌아가면서 경기하는 게 있어서 서울에서도 경기한다고 하더라. 아마 이번 주에 서울 경기일걸?-
-진짜?-
그리고 그 성공적인 인터뷰가 얼빠팬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수요를 불러왔다.
< 인터뷰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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