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40화 (41/287)

< 에이전트(1) >

[내 사전에 패배란 없다!! 김성민 개막 이후 7연승!!]

[7이닝 5실점. 하지만 평균자책점은 0.53. 투수 자책점의 기준은?]

[해외 스카우트 A의 극찬 ‘그는 이미 KBO의 수준을 뛰어넘은 투수.’]

[야수의 에러에도 흔들리지 않는 김성민의 냉정한 시선]

[6회 고개를 떨군 장진철. 36세 에이스의 흔들리는 눈빛.]

[추정 몸값 최소 120억. 마린스는 과연 퍼펙트 투수 김성민을 잡을 수 있을까?]

-17:10? 이게 야구냐, 핸드볼이냐.-

-내가 보기엔 핸드볼도 아니고 배구임. 야수들 지가 공 안 받으려고 토스하는데 보다가 토할 뻔.-

-그 와중에 담담한 표정의 김성민 봐라. 저 정도면 거의 생불.-

-글쎄 난 담담 이라기보다는 4:3으로 역전당한 직후에 웃으면서 삼진 잡는데, 솔직히 좀 섬뜩했음.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역전 못 하기만 해봐라.’ 뭐 이런 느낌?-

-맞아. 솔직히 김성민도 인터뷰나 이전 행적들 보면 성격 없는 편은 아니지.-

-어쨌거나 확실한 건, 마린스는 김성민 이제 절대 못 잡음.-

-이제 두 달도 안 지났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솔직히 부상으로 드러눕지만 않으면 얜 무조건 외국 나갈 것 같다. 그리고 본인도 마린스는 탈출하고 싶을걸?-

-속보 ‘김성민 마린스 탈출을 위해 해외 진출 모색 중!!’-

***

“야, 확실하지?”

“아, 형님 저 못 믿습니까? 저 박경횹니다. 박경효. 부경고 109기 박경효.”

“그래, 인마. 넌 부경고 109기 박경효고, 난 부경고 100기 김현정인 거 나도 잘 알지. 근데 이번 거는 껀수가 워낙 크잖냐.”

“뭐, 요즘 얘가 체급이 워낙 커진 건 사실이죠. 근데 형님.”

박경효가 목소리를 낮췄다.

“얼마 전에 성민이가 일본 애들이랑 만났다는 소문 돌았던 거 기억하시죠?”

“너 설마?”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와, 너 걔랑 진짜 친하구나?”

“그렇다니까요. 걔랑 저랑 경기 끝나면 야식도 같이 먹고, 사우나도 같이 가고, 같이 클럽 갔다가 포장마차에서 국수도 한 사바리하고 우리가 그런 사이에요.”

묘하다.

뭔가 같은 팀이라면 당연히 다 하는 일들인데 박경효가 이야기 하니 정말 특별한 일 같다는 느낌도 든다.

“어쨌든 여기 앉히는 건 아주 걱정을 하지 마세요. 그보다 전 형님이 더 걱정입니다. 일단 불렀으니 나오기는 할 텐데 대체 어떻게 꼬실 생각입니까?”

“새끼가? 네가 날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에이전트 시험 그 해에 2등으로 통과했던 사람이야. 그리고 솔직히 이 바닥에서 지금 나만큼 잘나가는 사람도 드물어요. 거기다가 내가 관리하는 애들 면면을 봐라.”

“그야 그렇기는 한데.”

“거기다가 내가 어디 실적이 떨어지냐? 성종이 올해 3억 2천 받는 거 알지. 구단에서는 2억 8천 부르던 걸 내가 4천이나 올려준 거야. 뭐로? 철저한 분석과 어? 그러니까 그 세이버 매트릭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알죠. 저야 잘 알죠. 근데······.”

그 순간, 누군가가 꾸벅 인사하는 모습이 경효의 눈에 들어왔다.

성민이었다.

“어, 성민아. 이쪽이야. 이쪽.”

“선배!! 어, 근데 이쪽은?”

“아, 인사해. 이쪽은 우리 학교 100기 김현정 선배. 예전에 마린스에서도 잠깐 뛰었었는데. 그땐 네가 아직 어릴 때라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김현정이라고 합니다. 경효랑은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녀석이 김성민 선수와 친하게 지낸다고 하도 어찌나 자랑이 심하던지.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현정이 넙죽 손을 내밀었다.

‘아, 어쩐지 이 형이 비싼 곳에서 보자고 하더라니.’

-뭔데? 왜 그래?

‘에이전시에요.’

-에이전시? 그러니까 저 남자가 에이전트라고? 어떻게 알아? 아는 사람이야?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우리 학교 출신에 저보다 17기수나 선배라잖아요. 거기다가 야구 했던 사람이고.’

-그게 왜?

‘보통 우리 학교 출신 야구부에 17기수나 선배면 매너 좋은 경우에 첫 마디가 ‘내가 선배니까 말 놔도 괜찮지?’거든요. 근데 존댓말을 썼다? 이건 백퍼 저한테 존댓말 할만큼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거고, 지금 상황에서 저한테 바라는 거 있는 야구계 선배면 뭐 에이전시죠.’

성민이 현정의 손을 맞잡았다. 두꺼운 손이다. 하지만 손에서 야구공을 놓은 지 오래됐는지 굳은살 하나 없이 말랑했다.

“성민아, 여기 생선이 아주 죽인다. 거기다가 술도 끝장이야.”

“선배, 그때 고기 먹을 때 말씀 드렸잖아요. 저 요즘 몸관리 때문에 술 안마신다고.”

“인마, 내가 다 알지. 아는데 이 술이 그냥 술이 아니에요. 약주야. 약주. 너 인마 고운 달이라고 들어봤냐? 이게 오미자로 만든 약주인데, 한 잔만 하면 아주 불끈이야. 가격도 가격인데 워낙에 인기라서 어디 가서 돈 주고 사기도 힘든 술이라고.”

“아니, 그래도.”

“마, 형이 언제 몸에 나쁜 거 권한 적 있었냐?”

많았다.

“경효야. 우리 김 선수가 난감해하잖냐. 그만 권해라. 요즘은 우리 때랑 달라. 술 억지로 권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 형님. 제가 억지로 권하는 게 아니라, 성민이 얘도 은근 주당이에요. 몸 생각해서 참고 있는 건데, 아시다시피 이게 보통 술이 아니잖습니까.”

“어휴, 형님 그러면 딱 한 잔만 주십쇼. 저 진짜 이번 시즌은 시작하고 아직 한 잔도 안 마셨는데.”

“그래, 인마. 너도 딱 맛보면 느낌이 올 꺼다. 이게 진짜 좋은 술이야.”

잔을 드는 성민을 보며 필 니크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술을 마시겠다고?

‘설마 마시겠습니까?’

-근데 왜 받아? 저기 저 사람이 네 편 들어주잖아.

‘저게 제 편들어주는 것 같습니까? 어지간하면 한잔하라고 돌려 말하는 거죠. 여기서 끝까지 못 마시겠다고 아옹다옹하느니 그냥 받아두는 게 편해요.’

별 것 아닌 이야기가 오갔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부 이야기. 프로에서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

“그러니까, 우리 때만 하더라도 법적으로 에이전트 같은 게 금지돼있어서 연봉협상이니 FA니 아주 개고생을 했다니까. 나야 뭐 그땐 야구만 하던 사람인데 그런 걸 알 방법이 있나. 구단에서 숫자 들이대면 그런갑다 했었지.”

“어휴, 형님 저라고 뭐 크게 다른가요. 에이전트 제도 있으면 뭐합니까. 연봉 조금 더 받아봐야 수수료 내면 도찐개찐이고, 괜히 구단한테 밉상으로 찍혀서 성적 못 나올 때 연봉 깎이는 금액이나 커지죠. FA 할 때 정도 아니면 엄두도 못 냈습니다.”

“알지, 알아. 너희 때도 에이전트 도입 초창기라서 진짜 거지같은 놈들 많았지.”

“그래서 형님 같은 분이 떡 하고 나선 거 아닙니까. 솔직히 구단 프런트에 그냥 있는 편이 훨씬 편했을 텐데 굳이 후배들 권리 지켜주겠다고 말이에요.”

성민이 둘의 대화를 지켜보며 웃었다.

‘주거니 받거니 잘하네요.’

-쟤들은 비즈니스를 하는데 지금 저런 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 보통은 통하죠.’

-통한다고? 저런 게?

성민이 필 니크로와 잡담을 나누는 사이, 현정과 경효의 대화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최저연봉 받는 후배들만 맡아서 해주고 싶어. 진짜 힘든 건 걔들이니까. 근데 너도 알다시피 KBO에서 에이전트 하나가 담당할 수 있는 선수의 숫자를 딱 정해놨잖냐.”

“그렇죠. 이게 참. 뭐 그딴 사소한 것까지 다 규제를 하는지. 하여간에 그런 거 보면 우리나라 야구는 아직 선진국 따라가려면 멀었다니까요.”

10개 구단.

쓸만한 선수의 숫자가 한정적인 KBO의 특성상, 한 에이전트가 특정 팀의 선수를 독점할 경우 구단이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진다.

에이전트가 담당할 수 있는 선수의 숫자로 팀당 3명, 전 구단 합쳐서 15명이라는 규칙이 정해진 이유다.

“그러니까 최저연봉 받는 애들만 잔뜩 케어할 수 없는 게 현실이야.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 애들한테 수수료를 어떻게 받겠냐고. 그러니까 좀 잘 나가는 애 하나랑 계약하고 최저연봉 받는 애들은 거의 자원봉사 한다는 느낌으로 가는 거지.”

“크, 야구계의 발전을 생각하면 KBO는 진짜 형님 같은 사람한테 상 줘야 해요.”

필 니크로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진짜 저런 게 통한다고?

‘이게 이 바닥에서 지연이랑 학연이라는 게 생각처럼 간단한 게 아니에요. 야구 일이 년 할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지금 쟤한테 맡기겠다는 소리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까?’

-지연이랑 학연이라는 게 생각처럼 간단한 게 아니라며.

‘지연이랑 학연도 쎄긴 쎈데, 그래도 다 방법이 있죠.’

그 사이 그들의 이야기는 점입가경으로 흘러갔다.

“들었지, 성민아. 이 형님이 이런 사람이에요. 어? 저번에 철호형 4년 70억. 그것도 다 이 형님 작품이야.”

“그래, 그때 받은 수수료 덕분에 우리 부경고 출신 최저 받던 애들 세 명이나 내가 수수료 없이 무료로 해줬었지.”

“크, 형님 역시 멋지십니다. 성민아. 뭘 고민을 하냐. 어차피 너도 지금 에이전트 없겠다. 이 형님 회사도 마침 딱 한 자리 비었겠다. 솔직히 이 형님 에이전시에 한 자리 비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휴, 뭘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그러나. 에이전트야 널린 게 에이전트고, 진짜 귀한 건 우리 김 선수 같은 선수지. 어디 해외로 진출하는 선수가 흔한가.”

“형님. 사람이 너무 겸손해도 안 되는 겁니다. 어디 해외 진출 선수만 귀합니까. 해외까지 두루 봐줄 수 있는 에이전트도 귀한 건 마찬가지죠. 형님 인맥이 어디 보통 인맥입니까. 일본에 쫙 깔린 게 형님 지인들 아닙니까.”

“커흠, 뭐 그건 그렇지. 내가 프런트 직원 할 때 두루 친했던 일본 애들이 지금은 다들 자기 구단에서 방귀 꽤나 뀌고 있으니까 말이야.”

이제는 흡사 성민이 도장을 안 찍으면 마치 손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성민이 웃었다.

“아이참. 뭐가 그렇게 급합니까. 그리고 경효 형, 형도 그래요. 내 사정 잘 알면서 이러면 제가 곤란하잖습니까.”

“네 사정?”

“제가 왜 혼자 연봉협상 하러 오는지 그때 말씀드렸었잖아요.”

경효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설마? 너 아직도?”

“아직도는 무슨 아직돕니까. 제가 보기엔 저 은퇴 할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끝이 없을 거예요.”

“뭔데? 둘이서 지금 무슨 이야기 하는 건데?”

현정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여간, 그러니까 경효 선배. 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두 분 이야기 더 나누세요.”

“아니, 김 선수 이렇게 갑자기?”

“죄송합니다. 선배님. 이건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는 조금 민망해서요. 자세한 이야기는 경효 선배한테 들으시면 될 거에요.”

성민이 야무지게 참치 한 조각을 더 입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성민이 떠난 자리.

술을 한잔 들이킨 현정이 경효를 다그쳤다.

“대체 무슨 이야기였던 거야? 무슨 사정인데?”

“그게, 형님. 사람을 잘못 고른 것 같습니다.”

“사람을 잘못 고르다니?”

“성민이랑 계약하려면·····.”

***

-대체 마지막에 그건 무슨 이야기였던 거야?

“그냥, 핑계 댄 거예요. 아시다시피 전 이런 상황에서는 무적이나 다름없는 핑계가 있어서요.”

-무적이나 다름없는 핑계? 그게 뭔데?

“엄마요.”

프로야구선수는 에이전트를 둘 수 있다.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서는 KBO에서 시행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2032년.

지금까지 권미영 여사는 그 시험을 무려 여덟번을 치렀다.

물론 결과는······.

“그래서 아직 공식 에이전트가 아니라서 협상장은 못 나오지만. 어쨌거나 뭐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아직?

“네, 내년에 또 보실꺼래요.”

-허, 이놈의 집안은 대체······.

성민이 그렇게 자신의 어머니를 방패로 삼는 사이, 김현정 같은 얼치기가 아닌, 물 건너 진짜 제대로 된 에이전시 역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에이전트(1) > 끝

ⓒ 묘엽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