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칰꼴라시코(2) >
청주구장 그곳에 누가 봐도 나 스카우트요. 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동양인 남자 두 명이 있었다.
동아시아계 미국인 스카우트인 조프리 켄트와 제프 미야모토 였다.
“시설이 엄청 열악하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단 상태가 괜찮은데요?”
“이봐, 제프. 여긴 동북아시아라고. 게다가 이 경기는 프로 1군 경기라고. 미국으로 치면 마이너가 아니라 메이저 경기인 셈이지. AA의 경기장들과 비교하면 곤란해.”
“하지만 그래봐야 수준은 AA에도 미치지 못하는 리그 아닙니까. 저는 솔직히 조프리씨와 제가 둘 다 올 필요가 있는지도 아직 의문입니다.”
아직 어린 파트너의 이야기에 조프리 켄트가 인상을 굳혔다.
“제프. 이건 상부의 판단이야.”
“물론 저도 압니다. 윗선에서 구버전 스탯캐스트 자료 보고 흥분해서 지금 당장 확인해보라고 했던 거. 게다가 이 구장에는 그 구버전 스탯캐스트만도 못한 pitch f/x밖에 없어서 우리 둘 다 파견됐다는 것도요.”
“그러면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겠군.”
“하지만 오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랑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경기가 있는 날이잖습니까. 그리고 라쿠텐의 준이치와 후쿠오카의 다이스케. 그 두 선수 모두 우리가 눈여겨보던 선수들이잖습니까.”
“그쪽 경기는 어차피 이번에 도입한 최신형 트랙맨으로 다 촬영되잖아. 게다가 라쿠텐은 우리와 데이터도 공유하기로 했던 구단이고. 무엇보다 윗선에서는 지금 김성민을 확인하는 게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조프리의 이야기에 제프 미야모토가 투덜댔다.
“젠장. KBO에서 이제 몇 경기 반짝한 선수가 뭐 얼마나 급하다고. 하여간 이래서 숫자로만 야구를 보는 놈들이 꼭대기를 차지하면 안 된다니까요.”
“그 숫자로만 야구를 보는 놈들이 실제 성적을 내고 있잖아. 준이치랑 다이스케는 다음 기회를 노리도록 하고, 일단 오늘 일에 집중하자고. 응?”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기 전 한참을 투덜대던 제프 미야모토는 정확히 2회 말, 성민의 피칭이 끝난 직후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발, 이거 큰일인데요?”
“갑자기 뭐가?”
“이번엔 그 망할 숫자쟁이 놈들이 옳았어요. 이거 빨리 진행해야 하는 건숩니다.”
“이제 몇 경기 빤짝한 투수라며.”
“몇경기 빤짝은 맞는데, 이 친구 빤짝도 너무 빤짝했어요. 기록이 좋아서 다른 구단이랑 에이전트 놈들도 금방 관심 가질 겁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 트랙맨 데이터들 분석했던 거 죄다 틀렸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거 제가 보기엔 하위권 선발 혹은 롱릴리프나 할 수준이 아닙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저 정도면 지금 당장 메이저 데리고 가도 솔리드한 선발감이에요.”
그들은 성민이 퍼펙트를 했던 사직구장의 데이터를 아직 얻지 못했다. 그들이 얻었던 정보는 그 이전 경기에 대한 정보다. 그리고 거기서 성민은 평균 73.1마일짜리 좋은 너클볼과 평균 91마일의 쓸만한 속구, 그리고 84마일짜리 엉망진창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사실 이전 데이터만 보더라도 슬라이더는 버린다고 치고 너클볼과 속구만으로도 성민은 충분히 쓸만한 투수였다.
보통이라면 구사하는 공들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 아닌 이상 세 가지 정도의 구종은 갖춰야 선발의 자질이 있다고 보겠지만, 너클볼은 예외다.
그 경기들의 데이터로도 성민은 하위권 선발, 혹은 롱 릴리프를 기대해볼 만한 선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방금 저 너클볼 60마일쯤 되나요? 젠장, 최고 93마일짜리 속구를 던지는 너클볼러가 73마일짜리 너클볼이랑 60마일짜리 너클볼까지 던지다뇨.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습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로스터에 공 받는 것밖에 못 하는 머저리를 하나 넣더라도 무조건 데리고 가야 하는 투숩니다.”
“그 정도라고?”
“네. 물론 가격을 봐야 하겠지만, 연 500만 선에서 솔리드한 선발을 써먹을 수 있다면 서브 포수로 공받는 것밖에 못하는 머저리를 두는 것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고 봅니다. 혹시라도 에두아르도 같은 포수를 우리가 데리고 올 수 있다면 그 이상을 내더라도 데리고 가야 하는 투수고요.”
고작 2이닝의 피칭이 제프 미야모토의 머릿속에서 준이치와 다이스케를 지워버렸다. 조프리 켄트가 다른 의미에서 크게 흥분한 후배를 다독였다.
“자자, 일단 진정하고. 아직 경기 많이 남았으니 좀 지켜보자고. 제프. 넌 다 좋은데 성격이 너무 급해.”
“후, 알겠습니다. 이거 모처럼 경기 볼 맛이 나는군요.”
그렇게 누군가가 오늘 경기를 매우 흥미롭게 보는 이때.
-딱!!!
[쳤습니다!! 선두 타자 박동엽!! 우측 방면!! 우익수!! 우익수!!!!!!!]
동엽의 타구를 따라가던 우익수가 글러브를 쭉 뻗었다.
보통이라면 당연히 외야 플라이 아웃이 되는 타구.
하지만 오늘의 경기는 마린스와 피닉스의 경기다. 경기장을 채운 피닉스의 팬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양손을 끌어모았다.
‘제발!!’
그리고 피닉스의 우익수가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아!! 타구!! 글러브 맞고 크게 튕겨 나갑니다!!]
동엽의 시선이 주루 코치에게 꽂혔다.
그는 지금까지 아무리 아웃이 될 것 같은 타구에도 최선을 다해 달렸다. 안 그래도 오지게 욕을 먹는 상황에서 플레이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마음이 빛을 발했다.
“달려!!”
주루 코치의 손이 크게 돌았다.
동엽은 발이 빠르다. 그것도 매우 빠르다. 우타자인 주제에 1루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4.08초. 이건 메이저의 20-80스케일을 기준으로도 70점에 해당할 만큼 빠른 기록이다. MLB에서도 올스타급 이상이나 가질만한 능력이란 이야기다.
공을 치고, 7.74초가 지났을 때 동엽의 발은 이미 2루를 밟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하지만 3루 주루코치의 손은 여전히 돌고 있었다.
‘응?’
하지만 의문을 제시하지도, 등을 돌려 상황을 살피지도 않았다. 동엽이 그대로 3루를 향해 돌진했다.
-데구르르
바닥을 구르는 공을 피닉스의 우익수가 잡아들었다.
크게 한 걸음. 그리고 쓰로잉.
하지만 동엽의 발이 빨랐다.
피닉스의 삼루수가 팔을 크게 뻗었다.
[어? 어?]
흔히 보던 광경이다.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마린스의 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런 미친?”
“야, 아니야!! 지금 이거 우리 공격이야!!”
“어?”
벤트 레그 슬라이딩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던 박동엽이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홈에 못 박혔다. 공을 놓친 삼루수가 공을 향해 달렸다.
수많은 팬의 경악 속에 3회 초. 마린스가 1점을 추가로 득점했다.
-와 개쫄깃했네. 박동엽 이 새끼 내가 오늘은 크게 칭찬한다. 잘 했어.-
-박동엽이 잘 하기는. 그냥 피닉스가 피닉스한 거 운 좋게 받아먹은거지.-
-야, 받아먹은 게 어디냐. 저거 박태경 그 느림보였으면 2루도 못 갔음. 박동엽이니까 홈까지 돌아온 거지.-
-그래!! 이게 야구다.-
인터넷의 마린스 팬들이 크게 환호했다.
“시발 이게 야구냐!!”
“그래, 백번 양보해서 타구가 좀 까다로웠다고 치자. 못 잡을 수도 있었다고 치자고. 근데 송구가 저따위인 건 아니지. 애초에 늦었는데 3루까지 뭐하러 그렇게 급하게 던져? 제 어깨가 무슨 이치로도 아니고. 점수를 주긴 왜 주냐고.”
“아냐, 이게 현실일 리가 없지. 나는 행복 합······.”
그리고 피닉스의 팬들은 현실을 부정했다.
-근데 그러면 이거 호텔 세운 거임? 동엽이 7호 홈런은 인사이드 파크 호텔인거야?-
-아니지, 야수 에러잖아. 호텔은 아니고 모텔이지.-
-솔직히 모텔도 아님. 애초에 저거 정상적인 팀이었으면 그냥 외야 플라이일걸? 이건 인사이드 파크 여관이지.-
-호텔? 모텔? 여관? 이게 무슨 소리임?-
-그건 설명충인 나 스피드왜건이 설명해주지. 담장 안 넘어가는 그라운드 홈런을 원래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라고 하는데, 이걸 누가 잘못 해설해서 인사이드 더 파크 호텔이라고 했었음. 그 이후로 그라운드 홈런은 호텔, 에러가 추가되면 모텔, 애초에 출루 자체가 에러로 시작된 거면 여관이 되는 거다. 그럼 이만!!-
-호텔이건 모텔이건 여관이건 뭣이 중허냐. 지금 1점이 추가로 난 것이 중허제. 안타를 여덟 개나 치고 2점 내던 경기에서 안타 없이 1점이 났어. 이제 잘 봐라. 마린스 공격에 맥이 트인 거니까.-
-하여간 박동엽, 이 새낀 운빨 하나는 죽여준다니까. 어떻게 거기서 여관을 세우냐.-
마운드의 장진철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수비를 어떻게 하기에 이따위로 하냐고 욕을 내뱉고 싶었다. 아마 전성기에 괄괄했던 그라면 저질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참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137km/h의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파고 들었다. 방금의 사건에서 크게 기가 오른 마린스의 타선이 그 공을 시원하게 두들겼다.
안타, 병살, 안타.
그리고 마지막 시원한 외야 플라이.
3회 초 마린스의 공격이 또 찝찝하게 끝났다.
-야, 2안타 하고 1점이면 그럴 수 있다고 납득이 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글세, 그 1점이 2안타랑 1도 상관없이 나온 1점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마린스를 물로 보지 마라. 고작 그 정도로 맥이 트일 거라면 애초에 마린스가 아니었으니까.-
-현재까지 10안타 1볼넷. 아웃 카운트 9개에 타자가 2순을 했는데 왜 점수는 3점이죠?-
-정답!! 부산 마린스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참을 수 없는 찝찝함 속에 성민이 다시 마운드에 올라왔다.
‘너무 그러지 마시라니까요. 그래도 3점이에요.’
-아니, 점수를 낸 과정도 영 느낌이 구리다니까. 내가 저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냐?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요?’
-저건 남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호섭이 형은 저런 플레이는 안 하죠.’
-객관적으로 봤을 때 걔 외야 수비 실력은 오늘 저기 피닉스 우익수보다 훨씬 못하거든?
‘그건 맞죠.’
-근데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플레이는 안 한다고 확신하는 거냐?
‘영감님은 팀원에 대한 믿음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전 호섭이형을 믿습니다. 저 형은 저런 급박한 상황, 아니 저것보다 훨씬 여유로운 상황이라도 절대 3루에 보살을 시도할 리가 없어요. 저 형은 우익수라고 믿기 힘든 소녀 어깨라서 안전하게 이루수나 유격수한테 중계플레이만 한다고요.’
-그러니까 지금 그게 믿음이라고?
성민의 확신 가득한 말에 순간 이걸 과연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맞는지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다.
‘팀원을 굳게 믿는 마음. 신뢰의 정신. 그것이 바로 야구의 기본이죠.’
-저기 성민아.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그런 소년 만화의 주인공 같은 대사랑 지금 네가 했던 말의 내용은 전혀 안 맞는 것 같은데?
‘아, 타자 들어옵니다. 자자. 그런 사소한 건 일단 제쳐두시고 경기에 집중하시죠. 일 년에 몇 경기 보지도 못하는 청주 팬들을 위해 최고의 경기를 보여줘야죠.’
3회 말.
삼진 하나. 안타 하나와 내야 땅볼 병살.
마린스가, 아니 성민이 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다.
-야, 나 좋긴 좋은데, 이상하게 지금 느낌이 좀 쎄하거든. 이거 왜 이러지?-
-어? 너도 그러냐? 나만 그런 거 아니었어?-
-그러게, 우리 팀이 왜 병살 플레이를 저렇게 깔끔하게 해낸 거지? 솔직히 여기서 몸개그로 1점 정도는 내줬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우리도 프로인데 저 정도는 해야지. 불안하긴 뭐가 불안하다는 거야-
-아냐, 느낌이 이상해. 내 마린스 40년 팬질의 역사가 경고를 보내고 있어. 시발, 뭔가 어마어마한 것이 적립되고 있는 기분이라고.-
-다들 너무 불길하게 그러지 말라고. 오늘 우리 선발 성민이잖아.-
이어지는 4회 초. 4개의 안타. 그리고 무득점.
누적 안타 14개. 점수는 여전히 3:0
다시 성민의 차례가 돌아왔다.
< 칰꼴라시코(2)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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