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35화 (36/287)

< 외자 유치 >

“뭐라고? 빅리그?”

“워워, 진정하라고. 아직 그냥 스카우트 통해서 경기 데이터 좀 공유할 수 있겠냐고 문의가 온 정도야.”

“그래서? 설마 그걸 그냥 공유 해준 건 아니지?”

“글쎄, 뭐 일단 구단에선 아직 튕기는 중이기는 한데, 어차피 걔가 우리 구장에서만 뛰는 것도 아니고, 다른 팀에서 데이터 넘어갈 거 생각하면 오래 튕기지는 못할 거야.”

히로시마 도요카프의 스카우트 팀장 나카타 준페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봐, 어차피 김성민 그 친구 올해로 FA잖아. 그런 식으로 빅리그에 보내봤자 너희에게 돌아올 것도 없다고.”

“흥, 그래서 너희 팀으로 보내면 뭐 좋은 거라도 있고?”

“이거 왜 이러실까? 그때 이야기했을 땐 너도 동의했었잖아.”

“내가 그랬었나? 기억이 잘······.”

“망할 자식. 정말 이렇게 나오기야?”

“아, 맞다. 이제 기억나네. 근데 까놓고 말해서 그때랑 지금 우리 성민이도 급이 달라졌잖아? 무려 빅리그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템퍼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근데 그걸 고작 술 한 잔에 스프링 캠프로 퉁을 치자고?”

-끄응.

낮은 신음.

급이 달라졌다는 말은 옳았다. 나카타 역시 성민이 성공할 것을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 수준까지 폭발적으로 성공할 줄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성민은 내년 오키나와 스프링트레이닝 비용을 일부 감당해주는 정도로 템퍼링을 할만한 급이 아니었다.

“이봐, 아무리 그래도 어차피 FA는 선수의 권한이야. 너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슬쩍 미리 접촉시켜주고 이야기 좀 잘해주는 것 정도로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니야?”

“그게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는군. 이봐 나카타. 우리 마린스는 말이야. 그래, 너희 NPB로 치면 요미우리 같은 곳이야.”

“요미우리? 그렇다고 하기엔 너희 성적이······.”

“빌어먹을. 누가 성적이래? 내가 말하는 건 팀의 전통이나 문화 같은 거야.”

“전통?”

“우리 마린스는 팀에 충성을 다한 선수를 쉽게 버리지 않아. 선후배 간에 끈끈한 정이 있다고. 내가 그냥 스카우트라고 생각해? 성민이 그 녀석, 거의 내가 업어 키운 녀석이야. 그 자식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기부한 글러브 끼고 야구 했고, 프로 와서는 내가 사주는 족발 먹고 경기 뛴 녀석이라고. 우리가 어디 보통 사이 같아? 게다가 녀석도 결국 나중에는 마린스에서 감독까지 뛸 순혈이란 말이지.”

“그래서 확실히 네가 이야기 해주면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이야?”

“뭐, 나 혼자는 아니고, 또 너희도 금액 정도는 맞춰줘야겠지.”

“어렵군.”

NPB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빅리그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 NPB에서 가장 많이 받는 선수라고 해봐야 MLB 기준 QO의 1/4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어차피 빅리그도 KBO에 1년 반짝한 선수에게 그렇게까지 많은 금액을 쓰지는 않을 거야. 물론 그렇다고 해도 명색의 빅리그이니 부르기에 따라 2년이나 3년 천만 정도는 부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희도 그 정도는 가능하잖아?”

“확실히 3년 11억 엔이라면······.”

“거기다가 몇 가지 혜택만 덧붙이고 내가 설득만 한다면야.”

“아무리 그래도 빅리그 대신 우리에게 오려고 할까?”

“그건 일단 만나서 네가 노오력 해야 할 문제고. 어때? 해볼까? 말까?”

“그래, 알겠어. 성사만 된다면 내가 따로 섭섭하지 않게 해줄게.”

“O.K. 그러면 이제 나만 믿으라고.”

***

“일본이요?”

“네, 솔직히 지금 김성민 선수가 거두는 성적을 생각하면 국내 FA보다는 해외 쪽 진출이 유력할 텐데, 저희 사이에서 도는 소문으로는 NPB 쪽에서 김성민 선수에게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거든요. 게다가 최근에는 김성민 선수 측근에서 나온 소스라면서 김성민 선수 본인도 일본에 호의적이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인터뷰 도중 나온 희연의 이야기에 성민이 그저 웃었다.

일본이라니.

“글쎄요. 뭐 모르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기왕 해외로 갈 거라면 빅리그를 가야죠. NPB는 솔직히 매리트가 떨어지죠.”

“역시 그렇죠? 휴, 다행이다.”

“뭐가 그렇게 다행이에요?”

“솔직히 제가 보기에도 지금 김성민 선수 페이스면 NPB가 아니라 빅리그도 가능할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가 생각해도 이왕이면 NPB보다는 빅리그죠. 물론 아직 여섯 경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2032년에 KBO에서 전성기 선태양 선수 성적을 찍고 있는데 NPB는 좀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잖아요.”

“그것도 그렇죠.”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른셋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귀여움이다.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쓸데없이 돌고 있는 이 소문들, 그냥 한방에 잠재워 드릴게요.”

성민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빅리그 갈 거라는 이야기는 인터뷰에 싣지 마시고 소문도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아!!”

희연이 곧바로 성민의 이야기를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일본 쪽 애들을 떡밥으로 쓰겠다. 이 말이네요.”

“네, 뭐 겸사겸사요.”

성민의 대답에 필 니크로가 물었다.

-잠깐만, 떡밥이라는 말은 NPB 쪽 애들 이용해서 몸값 후려치려는 애들을 막겠다는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겠는데, 겸사겸사라는 말은 또 무슨 소리냐?

‘아이, 참. 박 기자는 한 번에 이해한 걸 왜 나랑 매일 붙어 지내는 영감님이 이해를 못 하는 겁니까. 보세요. 기자들 사이에 소문이 돌고 있다잖아요.’

-그런데?

‘게다가 측근이 이야기했다잖아요. 그러면 이건 뭐 백 프로 선배 중 누군가가 작업 들어간 건데. 그 선배 얼굴도 좀 생각해줘야죠. 거기에 겸사겸사 나도 일본 애들한테 비싼 밥 얻어먹으면 좋은 거고요. 이런 게 다 외자 유치 아니겠습니까.’

-일본은 갈 생각도 없다면서 만나서 밥은 얻어먹겠다고?

‘그게 다 오고 가는 정 아닙니까. 그리고 어차피 걔들도 다 법카로 사는 겁니다. 그거 다 비용처리에요.’

-오고 가는이라고? 내가 보기엔 오기만 하고 가는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더 좋은 거죠.’

***

“성민아!!”

“선배.”

박경효.

성민의 부경고 8년 선배로 3년 전 마린스에서 은퇴한 선수로. 보통 은퇴한 선수들이 밟기 마련인 지도자 코스 대신, 스카우트팀을 선택했다.

“짜식, 요즘 잘 던지는 거 보니까 이 형이 아주 마음이 크게 놓이더라. 그때 형이 줬던 복어 즙은 다 먹었어?”

“어휴, 아주 잘 먹었습니다. 그거 먹으니까 아주 힘이 불끈한 게 좋더라고요.”

“그래, 인마. 그거 형이 한참 현역 뛸 때 먹던 건데, 귀한 거다. 그냥 가서 사면 그 정도로 찐한 놈은 주지도 않아요. 다 형이니까 그런 거 구해오는 거야. 내가 조만간 한 박스 더 구해다 줄 테니까 잘 챙겨 먹어.”

“감사합니다. 역시 선배밖에 없습니다.”

“새끼, 하여간 말 하나는 이쁘게 한다니까. 이래서 형이 너를 좋아하는 거야 인마.”

그리고 성민이 추측하기에 NPB와의 커넥션을 퍼트린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나랑 친분이 있는 프런트 중에서 가장 최근에 일본 쪽 연수 다녀온 형이에요. 생각이 단순하고 욕심 좀 많고 허풍이 세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대체 난 너의 그 나쁜 사람 기준을 모르겠다.

‘그야 당연히 나한테 도움이 되면 좋은 사람이고 아니면 나쁜 사람이죠.’

-······. 성민아 언제나 말하지만, 넌 진짜 대단한 놈이야.

성민의 추측은 옳았다.

과거 자신이 성민에게 베풀었던 이야기 몇 가지로 운을 띄우던 박경효가 슬그머니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다.

“그러니까, 솔직히 지금 네 사이즈가 KBO에서 뛸 사이즈는 또 아니잖냐. 쩐으로 봐도 그래요. 형진이 형 봐라. 해외에서 몇 년 뛰다 삼십 한참 꺾이고 왔는데도 팀에서 두둑하게 챙겨줬잖아.”

“그건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너도 형 인맥 알지? 내가 또 엄청 마당발이잖냐. 인맥이 아주 글로벌해요.”

“어휴, 저도 잘 알죠.”

“그래서 말인데, 형이 NPB쪽에 친한 고위직이 하나 있는데, 너한테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고. 밥이나 한 끼 어떠냐?”

“근데 선배. 이제 시즌 초반인데 아무리 그래도 벌써 템퍼링은 좀 이르지 않을까요?”

“야, 그냥 형이랑, 형 아는 사람이랑 해서 밥이나 한 끼 하는 건데. 그게 무슨 템퍼링이야. 안 그래? 성민아, 너 이렇게 빡빡하게 나오면 형이 막 섭섭해진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내가 또 우리 선배님 섭섭하게 할 수는 없죠.”

“그러면 내일 저녁 콜?”

“네, 대신 좀 칸막이 있고, 음식도 퀄리티있고 아시죠?”

“마, 그런 건 말 안 해도 형이 딱 알아서 하지. 너 형 스타일 잘 알면서 이런다?”

***

안경을 쓴 중년 남자가 쉬지 않고 열심히 떠들었다.

그리고 성민의 젓가락 역시 쉬지 않고 열심히 움직였다.

물론 중간중간 ‘호오.’ ‘그렇습니까?’ ‘아!!’ 같은 추임새는 필수였다.

1인분 150g 12만 원짜리 한우가 16인분이 들어왔다.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음에도 셋이서 고깃값으로만 200만원을 뽑아낸 성민이 흡족하게 배를 두들겼다.

만남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간 나카타가 스마트폰을 펼쳤다. 스마트폰 너머 회의실에는 히로시마 도요카프의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미팅은 어땠나?”

“첫 만남치고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반응도 호의적이었고 특히 저희 팀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들이 리그에 쉽게 적응했다는 부분에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잘됐군.”

“다만 미리 말했던 것처럼 금액적인 부분에서는 역시 빅리그에 필적하는 수준의 오퍼, 그러니까 3년 12억 엔 정도는 각오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허, 3년 12억 엔이라니.”

“그나마도 그 선수가 너클볼러이기에 가능한 금액입니다. MLB 쪽에서도 관심을 가질만한 투수이긴 합니다만, 너클볼을 받을 포수를 로스터에 넣는 것 자체가 이중의 부담이라 실제 가치만큼 큰 금액을 오퍼 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12억조차도 싸다는 말에 몇몇 프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가치만큼 오퍼를 못한 금액이 12억 엔이라 이 말인가?”

“KBO의 수준이 더블A라고 했을 때 더블A를 이만큼 박살 낸 투수라면, 너클볼러만 아니라고 한다면 천만 달러가 아니라 그 서너 배도 찔러볼 구단은 많습니다.”

“연 4억 엔이면 팀내에서 네 번째로 높은 연봉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지금 이 선수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대로라면 우리 팀, 아니 NPB 최고의 투수도 가능할 겁니다.”

“좋아. 한번 진행해보자고.”

그리고 같은 시간.

“어우, 엄청 잘 먹었네. 고기가 아주 살살 녹네. 나중에 돈 크게 벌면 엄마도 한 번 데리고 와야겠다.”

-설마 너 그 스카우트가 말한 NPB를 거쳐 MLB로 간다는 말에 혹한 건 아니겠지? 물론 너클볼러의 수명을 생각할 때 NPB에서 더 성장해서 더 좋은 조건을 받고 MLB로 간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긴 했다만······.

“아, 고기 먹느라 제대로 못 들었는데.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군요. 그리고? 그리고 또 뭐라고 했었어요?”

-이런 대단한 새끼······.

성민이 외자 유치를 통해 맛있게 먹은 한우가 피가 되고 살이 될 무렵.

성민의 선발 경기가 돌아왔다.

그 상대는 엘리츠, 마린스, 호크스와 함께 KBO의 막장을 담당하고 있는 팀 대전 피닉스.

그리고 무대는 한국의 쿠어스필드라 불리는 청주구장이었다.

< 외자 유치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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