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나 합시다 >
[‘지금 마린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장타력’ 박동엽 선수의 진정한 가치.]
일반적으로 야구에서 강한 타구가 가장 많이 날아오는 것은 2루와 3루 사이다. 그렇기에 세이버 매트릭스에서도 2루와 3루 사이를 지키는 유격수는 포수와 함께 가장 높은 수비 가중치를 받는다.
그렇다면 그런 유격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타구의 방향을 파악하는 판단력? 0.01초의 짧은 순간에 몸을 날릴 수 있는 순발력? 강한 타구를 잡아낼 수 있는 운동 능력? 아니면 1루로 질주하는 주자를 잡아낼 수 있는 강한 어깨?
정답은 모두 다다.
좋은 유격수는 그 모든 것을 갖춰야 한다. 그렇기에 좋은 유격수는 드물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 부산 마린스의 주전 유격수를 맡고있는 박동엽 선수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
우선 운동능력은 훌륭하다. 그는 팀 내에서 33미터를 가장 빠르게 달리고, 서전트 점프 역시 두 번째로 높게 뛴다. 어깨 역시 매우 강하다. 투수의 피칭과 야수의 쓰로잉은 다르다지만, 그가 두 번의 도움닫기로 던지는 공은 160km/h에 달한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타구를 판단하는 능력과 타구를 향해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 미숙함을 드러낸다. 게다가 송구 역시 강하기만 할 뿐,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기 일쑤다.
그 결과가 26경기 5에러. 이번 시즌 가장 많은 실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린스의 프런트는 박동엽의 기용을 멈추지 않는다. 프런트가 마린스 팬들의 피를 말려 죽이고 싶어서일까? 그럴 리가.
박상현 수비코치의 말을 들어보자.
“그러니까 만약 서른 살즈음 된 선수 중에 툴이 좋고 스킬이 부족한 선수, 그리고 스킬이 완벽한데 툴이 좀 부족한 선수가 있다면 후자를 씁니다. 서른까지 스킬이 부족하면 걘 그냥 평생 부족할 애라는 뜻이거든요. 근데 스물네 살짜리가 그것도 군필이 툴은 좋은데 스킬이 좀 부족하다? 제 경험상 그런 놈들은 굴리다 보면 결국 한 사람 몫은 합니다. 운 좋으면 뭐 대박 터지는 거고요.”
그의 이야기에 따르자면 타구 판단능력과 이후 대처능력은 기술의 영역. 운동능력과 어깨는 툴의 영역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타구판단능력 역시도 툴의 영역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마린스의 현장은 어느 정도는 기술적인 부분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물론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니, 맨날 그놈의 유망주 키우기만 하면 대체 우승은 언제 합니까? 유망주는 2군에서 키워야지 무슨 1군에서 유망주를 키우고 난리야!!”
맞는 이야기다. 애초에 2군을 만든 목적이 무엇인가? 아직 1군에서 뛸 역량이 되지 않는 선수를 육성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마린스 공필승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동엽이는 지금 마린스에 꼭 필요한 타자입니다.”
“박동엽 선수가요? 박동엽 선수 지금 성적이 0.218/0.241/0.426 아니던가요?”
“맞습니다. 타율이 매우 낮죠. 리그 평균보다 4푼 9리나 낮습니다. 하지만 장타율을 보시면 다릅니다. 장타율은 리그 평균보다 4푼 1리가 높죠.”
“장타율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동엽이의 심각한 문제는 타율보다는 출루율 쪽입니다. 사실 타율은 그리 중요한 수치가 아니에요. 타율과 팀 득점의 상관계수는 0.822밖에 되지 않습니다. 반면 출루율은 0.885. 그리고 장타율은 0.910이나 되죠.”
“상관계수요?”
“쉽게 설명하자면 타율은 득점의 0.822*0.822. 즉 67.56%밖에 연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반면 장타율은 0.910*0.910. 82.81%나 되죠. 팀의 득점을 위해 중요한 건 장타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엽이는 현재 마린스에게 꼭 필요한 조각이고요.”
공 감독의 말이 맞는지를 실제로 체크해봤다.
현재 마린스의 팀 득점은 103점. 10개 팀 가운데 6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중 박동엽의 타점은 무려 19점으로 21타점을 올리고 있는 팀의 4번 타자 박태경의 뒤를 이어 2위다.
“실책을 저지를 때마다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야구를 좋아하고, 마린스에서 뛰는 것을 좋아합니다. 꼭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야구는 숫자만으로 하는 경기가 아니다. 프로 스포츠의 궁극적인 목적은 엔터테인먼트. 즐겨보는 관중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시커먼 남자 18명이 모여서 하는 공놀이일 뿐이다.
하지만 이 엔터테인먼트의 궁극적인 즐거움은 타자들이 얼마나 많이 공을 두들기냐가 아니다.
우승.
그 절대적인 명제를 위해서라면 큰 것 한 방을 위해 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는 타자를 조금은 참아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뭐야? 박동엽이 마린스 타점 2위였어?-
-아, 진짜 마린스 타자 놈들 진짜 개노답. 타율 0.218짜리가 타점이 2위라고?-
-이 무슨 철지난 투승타타 이론이냐. 타점은 그냥 앞에 얼마나 주자가 많이 나갔느냐의 문제임.-
-그건 그렇지만 실제로 장타율은 팀 득점이랑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는다잖아. 생각해보면 확실히 장타가 나와야 점수가 날 확률이 높아지긴 하지.-
-그러고 보니까 박동엽 ISO가 0.206네. 슬러거는 슬러거네.-
-슬러거 같은 소리 하네. 저 새끼는 그냥 공갈포임.-
-그러고 보니 발도 빠르네. 근데 이 새끼 타율이랑 출루율이 왜 이 모양임?-
-선구안이 장애인이라 그럼. 이 새끼 존 밖으로 빠지는 공에 방망이 절반만 덜 휘둘러도 지금보다 2배는 좋은 타자 가능함.-
-박동엽보다 2군에 류진상이 더 포텐셜 높음. 공감독은 박동엽 내리고 류진상을 올려야함.-
-저 새끼 갈마출신 난민이네. 류진상 부경고 출신이라고 빠는 것 보소.-
-갈마출신이 저러는 거 보니까 박동엽이 정답 맞는 듯. 오늘부터 박동엽 지켜보겠음.-
성민의 등판 당일.
희연의 기사를 본 동엽이 그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뭐가?”
“그냥, 전부 다요.”
“싱겁기는. 그냥 네가 말을 잘한 거지. 코치님이랑 감독님도 널 잘 봐주신거고. 그쪽에 가서나 고맙다고 그래.”
“아뇨, 선배님 덕분입니다. 사실 그날 저렇게 말을 잘하지도 못했는데, 기자님이 제가 했던 말을 너무 잘 적어 주셨어요. 이런 건 처음입니다.”
“내가 시킨 대로 커피라도 한 잔 가져다줬나 보네. 잘했어. 운동선수가 무슨 변호사도 아니고 말을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냐. 기자들이 알아서 저렇게 잘 포장을 해줘야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꼭 열심히 해라. 너 새끼 오늘 내가 지켜본다. 알겠냐?”
“넵!!”
꾸벅 인사를 한 동엽이 후다닥 배팅 케이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너 뭐냐?”
“호섭 형?”
“요즘 모임도 매일 슬금슬금 빠지더니 너 설마 쟤한테 뭐 해줬냐?”
마린스의 우익수. 성골 계파의 3인자. 김호섭이었다.
-야, 이 새끼 뭐야? 오늘 너 등판인데 왜 와서 시비질이야. 아무리 마린스라도 선발 투수한테 시비라니. 미친 건가? 아냐, 마린스라면 이게 정상일 수도 있지. 여긴 내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곳이니까.
필 니크로가 지금 상황에 놀랐다가 홀로 납득했다.
“어휴, 해주긴 뭘 해줘요. 박기자님이 쟤 좀 소개해달라고 해서 그거 해준 게 다예요.”
“그래? 그런 거치고는 요즘 너 저쪽 애들이랑 너무 친한 것 같던데.”
호섭이 성민을 미심쩍게 바라봤다.
“아니, 형님 섭섭하게 저 못 믿습니까? 저 부경고 117기 김성민이에요.”
“그런 게 아니라.”
“형님, 4년 전 기억하시죠. 형님이 그때 FA 1년 앞뒀을 때, 그때 제가 다 커버쳐드렸었잖아. 근데요, 저 내년이면 FA입니다.”
“크흠, 새끼가 뭐 고리짝 적 얘기를 끌고 오고 그래. 인마 그래서 내가 너 잘 안해줬냐?”
“그러니까 하는 이야깁니다. 형님 상상을 좀 해보세요. 앞으로 한 8년 뒤에 우리가 어떻게 돼 있겠습니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성민이 슬금슬금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때 되면 용구 선배는 감독하다가 슬슬 은퇴해서 해설 같은 거 하고 있을 거고, 태경 선배는 뭐 감독 각 보고 있겠죠. 그러면 형님은 뭡니까.”
“나야 뭐.”
“2군 감독 아니면 수석코치 아닙니까. 전 그때쯤이면 슬슬 은퇴 앞둔 투수 최고참일거고. 그러면 절 누가 끌어줍니까. 당연히 형님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수석 코치, 2군 감독. 김호섭의 입이 슬쩍 벌어졌다.
“어디 제가 그러면 가만히 있습니까? 저도 물심양면 형님 밀어드려야죠. 그러면 형님 감독하고, 저 투수코치 하다가 네? 잘 알잖아요.”
“미안하다. 내가 요즘 영 컨디션이 별로라서 좀 예민했나 봐.”
“아 형님,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우리 사이에 뭐 이런 거로 미안하다고 그럽니까.”
-와, 이 대단한 새끼.
애초에 KBO에 남을 생각이 전혀 없는 주제에 마치 정말로 마린스의 감독 자리를 노리는 야심가라도 되는 것처럼 음흉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절로 감탄이 튀어나온다. 게다가 결국 사과까지 받아냈다.
단순히 철이 덜 든 애새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놈은 프로 생활을 하는 동안 프로의식 대신 줄타기를 익힌 놈이다.
그야말로 마린스라는 특별한 팀이 만들어낸 혼종이다.
-그나저나 잘 마무리하긴 했지만, 쟤 맨날 수비나 뻥뻥 뚫리는 놈이 제 놈 훈련이나 하지 뭐 이딴 걸 상관하려고 그래?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호섭이 형이 좀 배운 게 없고 성격 급하고 게을러서 그렇지 사람은 좋아요. 사람은.’
-대체 네 이야기 어디에 좋은 점이 있다는 거냐?
‘그래도 저 형도 전성기에는 국가대표 우익수 소리 듣던 양반이에요. 그 시절에는 우리들 고기도 잘 사주고 나쁘진 않았어요. 그냥 이제 슬슬 선수 생활도 끝물이고, 다음 자리 챙기려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지금 저 형 위치가 그래요.’
-그걸 보통 나쁜 놈이라고 하지 않냐?
필 니크로의 질문에 성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나쁜 놈은 내 반대편에 서서 그런 짓 하는 놈이 나쁜 놈이죠. 나랑 같은 편에 서서 그러는 건, 그냥 세상이 다 그렇게 돌아간다고 해야죠?’
-뭐냐 그 이중 잣대는?
‘에이, 세상이 원래 다 그렇게 돌아가는 겁니다. 내가 뭐 차별받는 것도 아니고, 괜히 오지랖 넓게 정의의 마음으로 그런 거 마음에 안 든다고 다 때려 고치려면 야구 절대 못 해요. 그냥 그런 거 고치는 건 그런 거 고치라고 돈 받는 프런트나 하라고하고 우린 그냥 야구나 하죠.’
성민이 모자를 고쳐 썼다.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팀의 체질을 바꾸는 것은 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선발 투수가 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오늘 경기에서 가장 먼저 마운드에 올라가 상대 타자들을 짓누르는 것뿐이다.
가장 뜨거운 화제를 뿌리는 토종 선발 투수.
성민을 보기 위해 수많은 부산의 시민들이 사직을 찾아왔다.
오늘 상대는 몇 년째 용병 투수가 에이스가 아닌 매우 특별한 팀.
대구 그리핀즈.
경기가 시작됐다.
< 야구나 합시다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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