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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볼-27화 (28/287)

< 잇몸이 너무 강함(2) >

작년까지 마린스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호크스의 경기는 보통 타격전이었다.

물론 타자들이 잘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투수들이 워낙 못했다는 이야기다. 작년 그들의 팀 평균자책점은 4.67. 선발로만 한정 짓는다면 4.78까지 올라간다. 그중 3.31과 3.94를 기록했던 용병 투수들의 기록을 제외한다면 선발의 평균자책점은 5.01까지 상승한다.

그것이야말로 호크스가 작년 9위를 한 비결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리그 전체의 평균자책이 4.18. 선발의 평균자책이 4.20이었다.

“잭슨 저 자식 공이 꽤 좋은데?”

“그렇긴 한데 쟤 커리어 대부분이 계투로 뛰던 애라서 오래 못 던집니다. 조금만 더 두들기면 불펜들 올라올 겁니다.”

형진의 대답에 공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민이는 좀 어때?”

“그 녀석이야 뭐. 여전하죠.”

5회 초. 마린스의 공격 타이밍.

전광판에 새겨진 점수는 1:1

-나쁘지 않았어.

‘이제 마린스맨 다 되셨네요. 그걸 나쁘지 않았다고 하시다니.’

-기준을 KBO. 아니 마린스로 뒀을 때 그 정도 수비면 선방한 거지. 다만 점수지원이 좀 아쉽군.

4회 말, 마린스의 야수진이 또 한 번 마린스 했다.

평소였다면 성민이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막아냈겠지만, 오늘 성민의 몸 상태로 마린스의 야수들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결국, 성민은 호크스의 타자들에게, 아니 마린스의 야수들에게 1점을 내주고야 말았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딴 수비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에러가 아닌 안타로 기록됐다는 점이었다.

타석에 박동엽이 올라갔다.

[5회 초, 마린스의 공격. 타석에 박동엽이 올라옵니다. 앞선 타석에서는 빠지는 공에 헛스윙 삼진, 그리고 우측 외야 플라이를 기록했습니다.]

[이 선수 최근 성적이 0.213/0.238/0.404죠? 타출이 모두 평균을 밑도는 선수입니다만 장타력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박동엽 선수 같은 경우는 단순히 컨택의 문제라기 보다는 선구안 쪽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 보시면 바깥쪽 빠지는 공들에 방망이가 나간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동엽의 시선이 덕아웃의 성민과 마주쳤다. 경기장의 시끄러운 소음 탓에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왠지 성민의 입이 ‘파이팅’이라고 격려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기 시작 전 성민이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너 기자들이랑 친하냐?”

“기자들이요? 아뇨. 딱히······. 몇 분 얼굴 정도는 아는 분 있는데 친한 분은 없어요.”

“그래, 그래 보이더라. 그러니까 널 커버쳐주는 기사 하나 나오는 게 없지.”

“네? 커버요?”

“그래, 너 우리 중견수 호섭이 형 나쁜 기사 뜨면 바로 몇 시간 뒤에 그거 커버하는 기사들이 뜨는 게 우연같냐? 내가 볼 때 저 형 기자들한테 일 년에 한 300은 떡값으로 돌릴걸?”

“떡값이요?”

“뭐냐? 그 시선은? 나도 돌리는지 묻는 시선이냐? 아냐 인마. 내가 떡값 돌렸으면 술 한 잔 마셨다고 바로 뉴스에 떴겠냐? 그리고 떡값 돌리라는 이야기 할 거면 너 붙잡고 이야기도 안 해. 너 상무 가기 전에는 2군 연봉이었고 지금도 1군 최저 받는데 떡값은 무슨 떡값이냐. 니 장비값 대기도 빡빡할 텐데.”

동엽이 고개를 떨궜다.

“그냥 떡값까진 안 돌리더라도 기자들 보면 싹싹하게 인사하고, 커피 같은 것도 좀 내밀고 하란 말이야. 그래야 기사에 개새끼라고 쓸 거, 그냥 새끼로 넘어가기도 하고 그런다고. 나도 기레기 새끼들 아주 싫은 사람이야. 근데 봐봐. 항상 싹싹하게 웃으면서 기자님, 기자님 해주잖아.”

“그건 그렇죠.”

“어휴, 하여간. 그쪽 라인 형들은 그게 문제야. 어차피 프로는 언론에 얼굴 내미니깐 프로인건데 아주 방망이만 매일 존나 휘두르면 다 되는 줄 안다니까. 파벌 싸움을 할 거면 좀 상대나 되게 잘하던지. 아무튼, 넌 오늘 경기 끝나고 잠깐 남아. 알겠어?”

궁금했지만 이유는 묻지 않았다.

성민은 마린스의 성골 출신에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선수였으며 동엽보다 한참 선배였다. 무엇보다 성골 중에 유일하게 그를 진심으로 챙겨 주는 선배이기도 했다.

“네, 알겠습니다.”

***

마운드의 잭슨 스콧이 이를 악물었다.

KBO에 온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작년 메이저에서 세 경기를 뛰었음에도 그가 수령했던 총 연봉은 고작 6만 3천달러. 그런 그에게 100만 달러는 그가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벌었던 총금액과 맞먹는 거액이었다.

게다가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KBO에서 눈부신 활약을 할 경우 스플릿이 아닌 메이저 계약으로 MLB에 복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KBO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마이너리거에게는 꿈과 같은 땅이다.

초구.

바깥쪽 낮은 코스 149km/h의 속구.

메이저에서는 구속도, 무브먼트도 좋지 못한 40점짜리 평균 미만의 속구였지만, KBO에서는 최소 55점짜리 평균 이상의 속구다.

-부웅

박동엽의 방망이가 크게 돌아갔다.

“스트라잌!!”

두 번째.

바깥쪽 낮은 코스 127km/h짜리 체인지업.

젠장, 몰렸다.

-딱!!

하지만 존의 중앙으로 몰렸음에도 타이밍은 완벽하게 빼앗았다. 높게 뜬 타구가 1루 내야관중석을 직격했다.

볼카운트 0-2

세 번째.

몸쪽 높은 코스. 가장 빠른 속구.

그의 결정구다.

152km/h.

하지만 이번에도 공이 좀 몰렸다.

괜찮다.

KBO의 평균구속은 140에 불과하다. 이 곳에서 150이 넘는 공은 MLB를 기준으로 한다면 100마일짜리 공이나 다름없다.

박동엽은 고졸 드래프트 2차 4라운더였다.

2군에서 2년을 썩었고, 1군 무대를 몇 번 밟았다. 그리고 22살에 상무에 입대를 했다.

본래라면 이렇게 빨리 군대에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3년 전 새로 부임했던 공필승 감독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젊은 선수들의 군문제 해결이었다.

그리고 전역과 동시에 마린스의 주전 유격수였던, 이제는 FA로 블레이즈에 이적한 백차승의 빈 자리를 차지했다.

상무에서 그는 타격에 눈을 떴다. 물론 1군에 와보니 그것도 많이 부족했지만. 어쨌거나 지난 2년간 그가 거뒀던 성적은 157경기 0.316/0.363/0.648.

사실 타율과 출루율은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상무에는 프로 1군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도 많았고, 상대는 모두 2군 선수들로 가장 뛰어난 투수라고 해도 1군에서 불펜으로 뛰기 버거운 선수들이었으니까.

당장 같은 기간 그보다 타율이 높았던 선수의 숫자는 무려 26명. 그 중에는 4할 타자도 존재한다, 또한 출루율이 높았던 선수는 43명에 달했으며 장타율 역시 그보다 높았던 선수가 셋이나 됐다.

하지만 단 하나.

홈런

박동엽은 2년 내내 퓨처스리그의 홈런왕이었다.

-딱!!

가운데로 몰린 152km/h의 속구를 동엽이 제대로 받아쳤다.

빨랫줄 같은 타구가 쭉쭉 뻗어 그대로 담장을 넘어갔다.

시즌 성적 0.221/0.245/0.442. 그리고 26경기 5홈런.

박동엽이 멋지게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았다.

“새끼 잘했어.”

“어제 특타 쳤던 보람이 있구나.”

몇몇 선수들이 달려나가 동엽의 헬멧을 두들겼다.

스코어는 다시 2:1

뒤이어 폭풍 같은 뜬공 아웃과 삼진이 끝나고 성민의 차례가 돌아왔다.

-하여간, 이놈의 팀은 홈런 아니면 점수가 안 난다니까.

‘그래도 홈런이라도 이렇게 나오니 다행 아닙니까.’

-그래, 저놈이 그래도 용하긴 용해. 수비야 좀 그렇다지만 잘하라고 좀 갈구면 이렇게 결과를 내잖아.

‘그러니까요. 인상 좀 쓰면서 ‘잘하자.’이랬더니 바로 홈런을 딱 쳐내고. 앞으로도 좀 종종 갈궈야겠어요. 역시 사람은 갈구는 만큼 한다니까.’

-그건 그렇고 오늘 쟤는 또 왜 남으라고 했던 거야? 쟤도 특타 할까 봐?

‘아뇨, 어차피 오늘 특타 안 한다고 해도 내 경기 등판하기 전날에 하면 말짱 꽝인데 그런 거 때문은 아니고요. 박 기자가 인터뷰 좀 하고 싶다고 혹시 다리 놔줄 수 있냐고 부탁해서요.’

-박 기자면 그때 그 여자 기자? 그 여자가 대체 왜?

‘그냥 개인적으로 관심이 좀 간다고 하더라고요.’

-관심?

타석에 호크스의 1번 타자가 들어왔다.

벌써 세 번째 타석이었다. 오늘 경기 성민의 공이 그리 좋지 못했던 덕분일까? 경기 초반 쫄아 있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마음에 안 드네.’

-왜? 그 여자가 다른 남자한테 관심을 줘서?

‘무슨 헛소립니까. 저 자식 표정이 마음에 안든다는 소리에요. 그리고 전 연상 관심 없습니다.’

-왜? 생긴 것도 예쁘고 네가 좋아하는 여리여리한 사람이더만.

‘뭐 그건 그렇죠.’

-이미 까였구나!?

‘아, 헛소리 그만하시고 타자한테 집중 좀 합시다.’

성민이 공을 움켜쥐었다.

자신을 마주한 타자가 보여야 하는 표정은 저런 표정이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해도 되는 것은 오직 공을 던지는 성민 본인뿐이다.

타자라면 무릇 대체 어떤 공이 올까, 어떻게 쳐야할까 고민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법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만들어줘야지.”

성민의 손을 떠난 야구공이 조용히 날아갔다. 그의 손에서 혁준의 미트까지 총 2회전 하고 1/3. 공기의 흐름을 타고 움직인 야구공이 타자의 감각을 현혹했다.

-부웅!!

“스트라잌!!”

[김기철 선수!! 스윙!!! 스트라이크. 117km/h!! 너클볼입니다. 평소 너클볼 구사율이 80%에 달하는 김성민 선수. 오늘은 지금까지 40%가 채 되지 않았거든요.]

[오늘은 속구 위주로 경기를 가져갔는데 결과는 사실 나쁘지 않습니다. 슬라이더가 좀 많이 두들겨 맞긴 했지만, 그래봐야 1실점이거든요. 오늘 김성민 선수는 너클볼을 제외해도 자신이 매우 강력한 투수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줬어요.]

경기가 계속됐다.

분명 재작년까지만 해도 쏠쏠하게 던졌던 슬라이더는 영 엉망진창이었다. 그 뒤로도 두 차례 더 슬라이더를 던져봤지만 한 번은 파울, 또 한 번은 안타를 허용했다.

-그거 안 된다니까 고집스럽기는.

‘사나이가 그래도 삼세번은 해보고 접어야죠.’

-세 번은 애진작에 지난 것 같은데?

‘원래 삼세번은 3 곱하기 3해서 아홉 번입니다.’

-그거 내 번역기에는 아무리 들어도 세 번으로 들리는데?

‘그러면 그건 번역기 고장이네요.’

필 니크로와는 계속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그것은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성민은 본래 수다스러운 성격이었고 이런 잡담은 오히려 그의 집중력을 높여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7회 말.

성민이 세 번째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7이닝 1실점 8삼진.

승리투수의 요건을 충족시킨 성민이 마운드를 내려왔다.

-와, 호크스 상노무 새끼들. 제발 목포대교에서 단체로 투신이나 해라. 이걸 역전을 못 해? 노아웃 만루 무득점 뭔데?-

-8회에 만루 채웠을 땐 진짜 오늘 경기 질 줄 알았는데. 오늘 상대가 호크스라 살았다. 호크스야. 고맙다.-

-오늘 경기 1등 공신은 김성민 2등 공신은 호크스 타자들.-

-김성민은 진짜 소름 돋네. 얘 이번 시즌 지금까지 전승인 거 암?-

-평자책이 0.77인데 전승해야 정상 아니냐?-

-지금 마린스 무시하는 거냐? 마린스라면 9이닝 무실점도 노디시전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확실한 건 오늘 승리에 마린스 타자 놈들은 기여한 게 없음. 마린스 타자 새끼들은 아주 팀배팅이라는 걸 몰라. 맨날 영웅스윙이야. 이런 개부랄 같은 놈들.-

-대체 개부랄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마린스 타자 같은 놈들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솔직히 오늘 까방권 받을 타자는 박동엽뿐임. 1:1에서 역전 홈런은 시원했다.-

-까방권 같은 소리 하네. 그 새끼도 똑같아. 오늘 뽀록 홈런 하나 빼면 4삼진임. 특히 마지막 타석 투아웃 주자 2루에서 포풍 같은 헛스윙 삼진은 어휴.-

김성민

5경기 선발 등판. 35이닝 평균자책점 0.77

그리고 5승.

시즌이 이어졌다.

< 잇몸이 너무 강함(2)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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