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3화 (24/287)

< 야구란 게 원래 그래(1) >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레저다.”

애초에 스포츠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머저리의 유명한 개소리다.

경기 시간 동안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만을 스포츠로 정의해야 한다면 메이저 구기 종목 가운데 스포츠라고 할만한 것은 오직 농구뿐이다.

길게 봤을 때 야구는 충분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운동이다. 특히 야수들의 운동량은 상당하다.

많은 사람이 야수들이 필드에 가만히 서 있다 공이 오면 공을 받을 뿐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그 공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운드의 성민이 피칭을 준비했다.

그와 동시에 2루와 3루 사이의 동엽이 자세를 낮췄다.

어제의 실책이, 그리고 이번 시즌 벌써 2개나 되는 에러가 그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또한 지긋지긋한 댓글들.

특히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악플들과 감독과의 부적절한 성적 관계를 의심하는 악플들 역시 그를 힘들게 했다.

-딱!!!

모든 야수 가운데 가장 수비가 힘든 포지션은 유격수다. 우타자의 당겨친 타구가 향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재규어스의 4번 타자. 마크 톰슨의 낮게 깔린 타구가 강하게 날아들었다. 타구의 속도는 약 167km/h. 동엽이 타구의 방향을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은 0.04초. 그의 몸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젠장.’

하필 타구의 방향이 3루 쪽이다. 이건 백핸드로 받을 수밖에 없다. 어려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바닥을 한 번 찍은 타구의 움직임 역시 변수투성이이다. 만약 불규칙한 굴절이 일어난다면?

[아!!!! 박동엽. 글러브 맞고 빠진 공!! 다시 잡아서 1루로!!]

바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

동엽이 글러브를 빠져나간 공을 허겁지겁 다시 주워들고 1루를 향해 던졌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급해서일까?

[아!! 송구가 너무 빠졌습니다. 주자 1루 지나 2루로!! 3루!! 3루? 아 3루까지는 뛰지 않습니다. 무사에 무리하지 않겠다는 판단 같군요.]

[마크 톰슨 선수의 발이 느린 게 마린스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네요. 만약 발이 빠른 주자였다면 홈까지 노려볼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어요.]

“박동엽 저 미친 새끼가?”

경기를 직접 관전하던 팬들도

-박동엽 저 새끼. 글러브에 바셀린을 발랐나. 무슨 공이 매일 미끄러져.-

-공 감독은 대체 저 새끼랑 대체 무슨 관계길래 지금 다섯 경기 뛰는 동안 에러만 두 개를 저지른 새끼를 유격수 자리에 박아두는 거냐? 덕분에 여섯 경기 3 에러 에러율 5할을 달성했네? 개씨발 대기록 축하한다.-

-바셀린은 씨발 공 감독이랑 단 둘이 있을 때만 써야지. 왜 글러브에 바르고 지랄?-

-너무 그러지들 말자. 마린스에서 그나마 키워볼 만한 유격수 박동엽밖에 없는 거 잘 알면서.-

-시발 192.81 너 박동엽이냐? 하라는 야구는 안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댓글이나 다니까 니가 그따위로 야구 하는 거야. 개새끼야.-

TV 혹은 인터넷으로 경기를 보던 팬들도 모두 난리가 났다.

[물론 쉬운 타구는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거든요. 설사 힘들었다고 해도 공을 흘린 이상 이미 1루 출루는 확정이라고 봐야 하는데 거기서 저렇게 당황해서 어설프게 송구할 이유가 없었단 말이죠. 박동엽 선수, 판단이 너무 아쉽습니다.]

성민이 일단 하늘을 한 번 바라봤다.

푸르다.

박동엽 저 새끼, 내야 땅볼로 2루까지 주자를 보낸 게 시범 경기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그래, 유격수가 에러 좀 할 수도 있다. 설혹 에러가 아니더라도 주자의 발이 빠르면 내야 땅볼이 안타로 둔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라면 담장을 직격 하는 단타 같은 거나 칠 느림보들을 내야 땅볼에 2루까지 보내다니. 어깨가 좋으면 그냥 살살 던지면 되지, 대체 왜 송구를 저따위로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성민이 모자를 고쳐 썼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괜찮아. 괜찮아. 잘 막아보자.”

그보다 앞서 KBO를 평정하고 MLB로 떠났던 위대한 투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래, 투수는 수비 믿고 던지면 안 되지. 내가 잡아야지. 내가 이겨야 한다. 이 타자를 무조건 잡아야 한다. 삼진으로 무조건 잡아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그래 삼진 못 잡은 내가 잘못한 거지.’

-그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냐?

‘아, 그런 게 있어요. 마린스의 에이스급 투수라면 숙명적으로 안고 가야 할 금과옥조와 같은 그런 거.’

성민이 자신의 말을 실행에 옮기기라도 하듯, 곧바로 헛스윙 삼진을 하나 잡아냈다.

그리고 타석에 재규어스의 6번 타자가 들어왔다.

투수의 스탯 중에는 자책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투수의 잘못으로 내준 점수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말은 점수를 내줬음에도 투수의 잘못이 없는 점수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을 의미한다.

오늘 성민의 경우처럼 말이다.

[아!!!!]

“아!!!!!!”

-아 씨발!!!!!!!

해설자와 직관하는 관중과 인터넷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하나가 됐다.

유격수의 에러에 이어 좌중간으로 날아오는 뻔한 타구를 좌익수와 중견수가 한마음 한뜻으로 양보하는 광경은 절대 흔치 않은 광경이었으니까.

당연히 플라이 아웃이 되겠거니 하고 태그업을 시도할까 말까 망설이던 마크 톰슨이 화들짝 놀라 3루를 향해 질주했다.

무안타. 원아웃에 주자 1, 3루.

필 니크로의 시야에 성민의 심장이 쿵덕쿵덕 뛰는 것이 들어왔다. 강렬한 분노가 느껴졌다. 앞서 동엽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에도 화를 내지 않았던 성민이었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르다.

‘아, 저 새끼들. 그래도 동엽이는 손꾸락이 삐꾸라서 최선을 다하고 병신 짓을 했다지만, 저 새끼들은 진짜. 에휴.’

물론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

에러이기는 한데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없었습니다. 혹은 실력이 아주 조금 부족했습니다. 같은 이야기는 용서받을 수 없다.

설렁설렁 라면을 먹는 것 같은 수비라고 해도 수비에 성공하면 장땡이다.

하지만 같은 에러라고 해도 어차피 그래도 부족하지만, 흙투성이가 되도록 뛰다가 놓치는 것과 쟤가 잡겠지 하다가 놓치는 걸 지켜보는 사람의 감정이 같을 수는 없다.

명백히 후자 쪽이 더 개새끼다.

성민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빌어먹을. 4월의 하늘은 여전히 청명하다.

‘하늘은 더럽게 푸르네. 시발. 식빵이나 구워야지.’

-갑자기 웬 식빵?

‘뭐, 그런 게 있어요. 한국 프로 스포츠계에 유서 깊은 관습 같은 건데 빡치면 원래 입으로 식빵 한 장씩 구워줘야 하거든요.’

“식빵!!!”

힘있게 식빵을 외친 성민이 재규어스의 7번 타자를 준비했다.

현대 야구에서 감독은 코치가 아니다.

물론 한국 야구의 경우 조금 많은 권한이 주어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야구에서 감독이 하는 일은 매니지먼트. 선수의 관리에 국한된다.

좋은 야구 감독은 결국 선수들의 컨디션을 잘 관리하고 그들이 최선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감독이다. 축구나 미식축구, 혹은 농구의 감독처럼 신들린 전술을 짜는 것은 불가능하다.

축구만 하더라도 11명의 선수가 필드 위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어느 지점을 강화하고 어떤 식의 플레이를 강요하여 이득을 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야구는 기본적으로 투수와 타자의 1:1 승부에서 시작된다.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가장 컨디션 좋은 타자를 적절한 타순으로 배치하는 것뿐이다.

“오늘 일우는 좀 어땠어?”

“아까 케이지 연습할 때는 컨디션 아주 괜찮았습니다.”

“준비시켜.”

물론 아주 예외적으로 야구에서도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하기는 한다.

[아!! 재규어스 덕아웃이 움직입니다. 이제 고작 2회 초인데 굉장히 빠른 움직임이네요.]

[그만큼 김성민 선수의 공이 까다롭다 그런 이야기겠죠. 재규어스 입장에서는 에러 두 개로 얻은 천재일우의 기회인데 쉽게 놓칠 수는 없을 겁니다.]

[타석에 7번 타자 박차현을 대신해서 백일우 선수가 들어옵니다. 작년 74경기 273타석에서 홈런만 13개를 쳤던 거포입니다.]

교체 카드.

2회 초. 재규어스가 점수를 뽑아내기 위해서 일찌감치 주전 이루수의 수비를 포기했다.

-부웅!!!

“스트라잌!!”

큼지막한 어퍼스윙이 존을 가로질렀다.

초구 헛스윙 스트라이크.

어떻게든 외야로 크게 한 번 퍼 올려 보겠다는 의도가 뻔했다.

그렇기에 두 번째.

존 밖으로 슬쩍 빠지는 빠른 속구.

-뻐엉!!

백일우가 방망이를 참았다. 나이를 먹었지만, 전성기 7년 연속 3할을 쳤던 선구안은 살아있다.

그렇다면 역시 존 밖으로 살짝 빠지는 너클볼이다.

성민이 세 번째 공을 뿌렸다.

공이 춤을 췄고, 백일우는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으며 권혁준의 몸은 슬쩍 바깥으로 움직였다.

-부웅!!!

하지만 시원한 헛스윙 다음 이어져야 할 찰진 포구음이 들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성민이 던진 세 번째 공이 향한 곳은 포수의 미트가 아닌 그 뒤의 잔디였으니까.

[제3구!! 헛스윙!! 하지만 빠졌습니다!!!]

마스크를 벗어 던진 혁준이 재빨리 뒤로 돌아 공을 주웠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3루의 마크 톰슨은 홈까지. 1루 주자 역시 2루까지 진루했다.

에러에 에러에 포일.

보통의 무자책은 에러로 나간 주자를 투수가 불러들인 다던지, 혹은 정상적으로 출루한 주자를 에러로 불러들이는 완벽히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점수를 의미한다. 즉 일정 부분은 투수의 과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늘 성민이 내준 이 1실점은 달랐다. 이것이야 말로 보기 드문 투수 귀책 사유 0%의 완벽한 무자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야, 이거 한문철 변호사 홈피에 올려도 과실률 100:0 인정 가능?-

-제가 볼 때는 저 실점을 어떻게 피하느냐?. 저건 어느 투수가 올라와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고요. 당연히 100:0 비율 잡혀야 합니다. 투수, 아무 잘못 없습니다.-

-우리 성민이 실성한 것처럼 하늘 보고 웃고 있네. 아까 전엔 그래도 식빵이라도 구웠는데, 이건 진짜 해탈인 듯.-

-시발, 내가 야구를 보다보다 투수가 안타나 볼넷을 하나도 안 내줬는데 실점하는 꼬라지는 또 처음 본다.-

-야구 덜 보신 듯. 마린스 연례행사임.-

-에이, 연례행사는 아니지. 마린스 투수는 보통 에러 두 개 연속 보고 나면 먼저 터져서 볼질 한 번 정도는 해 주잖아.-

-오늘 경기 끝났네. 아무리 김성민이라도 이건 어렵지.-

-부처님이 와도 이건 멘탈 터질 수밖에 없음. 이건 멘탈 터져도 까방권 줘야 함.-

팬들마저도 이 대환장파티를 인정했다. 아무리 멘탈갑 투수라도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니 이성을 잃지 않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성민이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그래, 시발. 포수가 공을 놓칠 수도 있지. 이건 그거 배려해가면서 삼진 못 잡은 내가 잘못이지. 반성하자.’

-드디어 네가 미쳤구나.

심지어 완벽한 자아 성찰까지 해낸 성민은 이어지는 타자를 모조리 삼진으로 잡아내며 2회를 1실점으로 막아냈다.

2회 수비이닝을 끝낸 마린스의 덕아웃.

안 그래도 분위기가 좋지 않던 마린스였다. 2회 말의 연이은 실책에 마린스 덕아웃의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히는 분위기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 성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의기소침과 죄책감으로 표정을 굳힌 박동엽이 앉아있었다.

“야, 성민아 잠깐만. 일단 진정 좀 하고.”

비주류파의 누군가는 성민을 말리기 위해 일어났다.

“어휴, 일단 좀 지켜보지? 성민이가 뭐 때리는 것도 아니고. 성민아, 너도 여긴 카메라 있으니까 그냥 잠깐 뒤로 가서 이야기하고 와.”

숙취로 고생하던 박태경은 성민의 편을 들었다. 공 감독이 한 발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 강 코치가 웃는 낯으로 이 정도는 애들한테 맡기는 게 좋다고 만류했다.

한 마디로 덕아웃 전체가 개판이었다.

그리고 그 개판 속에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동엽에게 다가간 성민이 그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인마, 네가 무슨 나라라도 팔아먹었냐? 시발, 야구 열심히 하다 보면 내야석으로 송구도 좀 하고, 공이 좀 빠지기도 하고 그런 거지. 뭐 그런 거로 사내새끼가 죽상을 하고 있어.”

“네?”

지금 이게 돌려 까려는 건가, 아니면 격려를 하려는 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요상한 분위기 속에서 성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 야구란 게 원래 그래(1)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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