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2화 (23/287)

< 되는 팀 vs 안 되는 팀 >

종종 야구를 보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되는 팀은 뭘 해도 그냥 된다.

서울 재규어스만 봐도 그렇다.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매년 줄줄이 FA 선수를 놓치고, 겨울만 되면 ‘재규어스의 새 시즌 괜찮을까?’ 같은 기사들이 넘치지만, 시즌이 끝날 즈음이 되면 가을야구는 기본이요, 준플옵 직행 이하는 쳐다보지도 않는 저력을 발휘한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코치진의 실력 차이일까?

그럴 리가.

재규어스는 각 팀의 철밥통 공무원 소리를 듣던 무능함의 대명사 같은 코치들을 영입하여 성적을 내왔다.

당장 작년 재규어스의 우승 시즌에 수석 코치를 맡았던 강경호는 마린스에서 무려 10년을 수비코치로 있으며 욕이란 욕은 다 먹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드래프트에서 특별히 대단한 자원만을 뽑아온다고 보기에 재규어스의 드래프트 픽은 항상 낮았으며, 그 낮은 순번에서도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기묘한 픽이라기 보다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합리적인 선택들이었다.

그런 주제에 FA로 올스타급 선수가 나가면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어느새 그 빈 자리를 메운다.

야구를 지켜보는 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안되는 팀에는 뭘 해도 안 된다.

FA에 가장 많은 돈을 쓰면 뭐 하겠는가.

매년 꼴찌 해서 고교 최대어를 쓸어오면 또 뭐하겠는가.

FA 선수는 드러눕고 고교 최대 유망주는 부상으로 몇 년 버리고, 군대 갔다 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을.

그리고 그런 팀에 당장 MLB를 가더라도 선발 한 자리는 너끈할 만큼 대단한 투수가 들어온다? 과연 그것으로 팀의 우승이 가능해질까?

라커룸에서 필 니크로가 말했다.

-니네 정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개판이구나.

‘상상력이 너무 부족하셨네요.’

-그러니까 지금 이게 내 상상력의 문제였다는 거냐?

정확하게 3시간 전.

서울 원정 경기.

오늘 경기의 선발인 닉 해리슨은 6이닝 1실점으로 상대를 완벽히 틀어막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마린스가 마린스를 했다.

야수는 실책을 범했다.

실점으로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투수의 멘탈은 흔들렸다. 그리고 흔들린 멘탈을 따라 공도 함께 흔들렸다. 물론 성민의 너클볼처럼 좋은 의미로 흔들렸다는 말은 아니었다.

-딱!!

안타가 나왔고

-뻐엉!!!

볼넷이 남발됐으며

[아!!!! 박동엽!!! 박동엽!!!!]

몸을 날린 야수의 글러브 위를 타구가 지나갔다.

그렇게 지옥 같은 7회와 8회가 끝나고, 마린스에게 9회 말 수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라커룸.

이미 오늘의 선발인 닉 해리슨은 경기 중반에 라커를 걷어차고 숙소로 떠났다.

그리고 선수단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패배한 팀의 분위기가 너무 심하게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시발, 지금 니들은 웃음이 나오냐? 우리 역전패당했어. 역전패. 너희는 선발 보기도 부끄럽지 않냐?”

시작은 투수조의 최고참인 진명규부터였다.

경기에 지고도 낄낄거리는 야수 둘에게 역정을 내는 그에게 주전 포수이자 팀의 주장인 박태경이 만류했다.

“명규 형. 거기까지 하죠. 야수 애들은 내가 잘 추스를게요. 그리고 솔직히 오늘 불펜도 잘한 건 없었잖아요.”

“잘한 게 없다고? 태경야 너 말이 조금 거시기하다?”

“아닌 말로 불펜이 점수를 조금만 덜 내줬어도 오늘 경기 역전패당하는 일은 없었죠.”

“어처구니없네. 인마. 내야수들이 에러를 그렇게 내는데 멘탈 멀쩡하게 던질 투수가 어딨다고 그래? 마리아노 리베라가 마운드에 올라와도 그건 안 돼.”

“에러라고 해봐야 점수에 영향 없는 에러였잖아요. 솔직히 8회 그걸 야수 탓을 하시면 안 되죠.”

“뭐 이 새끼야?”

“형, 우리 욕은 하지 말죠. 애들 보잖습니까.”

대부분 보통의 직장이 그렇듯 야구단 역시 짬밥과 쌀밥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밥 만으로 움직인다던가. 밥을 먹는 동안 쌓아 올린 커리어. 그리고 현재의 폼. 거기에 어느 학교 출신인지까지.

짬밥과 쌀밥에서는 진명규가 최고였지만 커리어는 비슷한 수준. 하지만 현재의 폼에서는 박태경이 조금 낫다. 무엇보다 그는 부산지역 야구 명문 고교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딱 붙어 있다.

대체 프로리그에 출신 고교가 무슨 상관이겠냐 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 한국 사회가 지연을 빼고 돌아가는 동네던가. 마린스 코치진의 8할이 부산과 경남권 고등학교 출신이고 그 중 특정 고등학교가 절반이 넘는다.

게다가 마린스의 가장 큰 팬 사이트 역시 그 고등학교 출신 사람들이 거진 점령하고 있다.

성골 프랜차이즈.

박태경은 팀 내 최대의 파벌을 이끄는 리더다. 즉 실세라는 이야기다.

짬밥과 쌀밥도 실세 앞에서는 무력한 법이다.

무엇보다 박태경의 뒤에는

“이 새끼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코치님!!”

“경기 졌다고 뒤숭숭한 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똘똘 뭉쳐야지. 누구 탓하고 그러면 되겠어? 그만 들 하고 내일 경기 준비하자. 어?”

차기 감독 후보 1순위.

마린스의 전설적인 선수 강용구가 버티고 서있었다.

-그러니까 코치진까지 파벌이 있다는 거네? 이거 정말 상상을 초월한 진짜 개판이잖아.

‘뭐 고작 이 정도를 가지고.’

-칭찬 아니거든?

‘저도 칭찬 아닌 거 알거든요.’

-야구 하라고 모아놨더니 대체 왜 정치를 하고 있는 거야? 게다가 강용구인가 저 녀석은 우승하고 싶어서 아주 안달 났던 녀석 아니야? 너한테도 꽤 잘해줬었잖아.

‘뭐, 저한테 잘 해주긴 잘 해주시죠.’

-대체 왜?

‘그야, 뭐.’

-그야 뭐?

성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성민아, 이리 와라. 같이 저녁이나 먹고 가자.”

“저녁이요?”

“그래, 인마. 오늘 너 좋아하는 소고기 사줄테니까 얼른 따라서 와.”

“넵, 알겠습니다.”

성민이 자신을 부르는 박태경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저도 부경고 출신이거든요.’

안되는 팀에 지금 당장 MLB를 가더라도 선발의 한 자리는 너끈할 만한 투수가 떨어졌을 때 벌어지는 일이 마린스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

본래 문화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인구수다.

그것은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종종 로컬 맛집이라는 단어에 열광하지만 사실 대한민국에서 맛집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서울이다.

마린스의 선수들이 서울 원정을 올 때마다 찾는 소고기 전골집을 찾았다.

“이모, 여기 모둠으로 푸짐하게. 좋은 놈으로 챙겨 주세요.”

“술은?”

“어휴, 저희 오늘 경기도 졌는데 술은 무슨 술이에요. 그냥 간단하게 맥주나 몇 병만 주세요. 딱 목만 축이게”

“까스? 화이트?”

“테란으로요.”

주문을 끝낸 박태경이 성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맞다. 성민이 넌 내일 선발이잖아. 술은 좀 그런가? 음료수 시켜줄까? 콜라? 사이다?”

“그냥 물 주세요.”

“물? 그걸로 괜찮겠어?”

“저 내년에 FA잖아요. 관리 빡세게 해야죠.”

“하긴, 요즘 너 던지는 거 보면 진짜 대박도 가능하겠더라.”

상석에 앉은 강용구가 헛기침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자자, 다들 일단 먹고 이야기하자고. 그리고 성민이 넌 딱 지금처럼만 해. 구단 윗선에서도 눈여겨보고 있어. 물론 아직 먼일이기는 하지만 너도 길게 봐야지.”

그 모호한 이야기에 필 니크로가 성민에게 물었다.

-저게 무슨 헛소리냐?

‘평생 선수만 할 거 아니고, 선수 생활 잘 마무리하면 코치도 해야 하니까 알아서 줄 잘 서라는 소리죠. 겸사겸사 내년에 마린스에 꼭 남으라는 이야기도 포함됐고’

-자기가 뭔데 그런 소리를 해?

‘뭐긴요. 내년 감독이죠. 솔직히 작년에 우리 준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가서 제일 화난 사람은 준플레이오프 못 간 팀원들이 아니라 저기 강용구 코치님일걸요?’

-그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냐? 자기 팀 성적이 좋은데 왜 화가 나? 아 설마 거기까지밖에 못 가서 화났다는 이야기야?

‘아뇨. 그럴 리가요. 그냥 떨어졌으면 감독 경질되고 곧바로 감독 됐을 텐데. 13년 만에 준플레이오프 나가서 나가리 됐다 뭐 그런 소리죠.’

필 니크로가 헛웃음을 지었다.

-잠깐만, 그러면 지금 그 말은 저 녀석은 팀이 나쁜 성적을 거두기를 바란다 이 소리인 거네?

‘에이. 뭐 올해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어차피 공 감독님 계약이 올해로 끝이거든요.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우승 못 하는 이상 재계약은 없을 거예요.’

-니들 13년 만에 준플레이오프 나간 팀이라며. 우승은 40년 동안 못했고. 그런데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우승 아니면 재계약은 없다고?

‘어쩌면 우승해도 짤릴 수도 있어요.’

-우승을 해도?

‘원래 라인과 파벌이라는 건 실력보다 우선되는 거라고요.’

성민이 환장할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야무지게 전골에서 소고기만 골라서 챙겨 먹었다. 이미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한 다른 선수들의 얼굴은 불콰했다.

“태경아 너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냐?”

“어차피 내일 선발 성민이잖아요. 어지간하면 전 나갈 일도 없어요.”

“그런가?”

-미쳤어. 미쳤어. 여긴 정말 미쳤어. 이 정도면 진짜 답이 없는 수준이야.

‘글쎄요.’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안되는 팀은 뭘 해도 안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마린스가 하던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2차전.

1회 초.

마린스의 타자들이 방망이를 붕붕 휘둘렀다.

“스트라잌!! 아웃!!!”

저 머나먼 남쪽 끝 부산에서 올라온 팬들이 탄식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부산의 팬들이 화를 냈다.

하지만 그 탄식과 분노는 오래지 않아 금방 사그라들었다.

어차피 오늘 그들이 보러 온 것은 방망이 붕붕 돌리는 멍청한 타자들이 아니다.

김성민

마운드에 그들이 기다리던 성민이 올라왔다.

물론 성민은 이제 고작 한 경기를 뛰었을 뿐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도 한 경기 정도는 잘 던지는 날이 있다.

하지만 성민에게는 화제성이 있었다. 과거의 토종 1선발급 투수이자 국가대표 에이스. 몇 년을 부진했지만, 팔꿈치 수술을 통해 되돌아왔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보통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나 선택하는 너클볼을 들고 돌아온 주제에 최고 구속은 여전히 150까지 나온다.

이건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화젯거리 그 자체다.

[자, 1회 말. 마운드에 김성민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지난 경기 7이닝 4피안타 무실점. 삼진을 일곱 개나 잡았었죠.]

[하지만 오늘 상대인 재규어스의 타선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작년 10개 팀 가운데서 팀 OPS로 따지면 단연 1등이에요.]

-쟤들 상태 봤냐?

‘봤죠. 엉망인 거.’

-술 처마신 것들이야 그렇다고 치자. 아니 어제 술도 안 마신 놈들은 대체 왜 저리 비리비리한 거냐?

‘에이, 맥주 한두 잔이 무슨 술입니까. 그냥 소고기에 음료수 몇 잔 한 거지.’

-그래도 술은 술이잖아. 어제 술 안 마시고 푹 쉰 놈들이 대체 왜 더 비리비리하냐고.

‘쟤들 푹 안 쉬었어요. 아마 끝나고 특타 했을걸요?’

-특타? 경기 끝내고 연습을 또 했다고?

‘그렇죠. 뭐 쉰 거로 따지면 어제 그 자리에 있던 애들이 더 푹 쉬었을 겁니다.’

막장 밑에 더 큰 막장을 암시하는 성민의 이야기에 필 니크로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머리를 움켜쥘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냐, 생각해보니 어차피 우리 목표는 이 막장 팀의 우승이 아니잖아. 그냥 너만 잘해서 MLB 진출하면 되는 거 아냐.

‘아닌데요.’

-아니라고?

‘네, 프로가 시즌을 뛰는데 당연히 우승을 목표로 해야죠.’

-이런 팀에서?

‘네. 이런 팀에서’

-대체 어떻게?

‘글쎄요.’

성민이 대답 대신 크게 와인드업했다.

초구 너클볼.

그의 손끝에 단단히 잡혀있던 공이 두둥실 하지만 느낌보다는 훨씬 빠르게 날아들었다.

-부웅!!!

“스트라잌!!!”

‘일단은 이 경기부터?’

성민의 시즌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 되는 팀 vs 안 되는 팀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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