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1화 (12/287)

< 목표(1) >

2주 만의 한국 땅.

공항에서부터 스포츠 전문기자 몇 명이 그들을 반겼다.

“김성민 선수. 여기에요. 여기.”

“박 기자님.”

그리고 그중에는 성민이 유망주이던 시절부터 그를 취재했던 기자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본래 성민은 기자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기자들을 싫어했다.

전성기 시절 제구가 조금 문제이긴 했지만 그래도 성민은 이 악물고 던지면 150 중반의 구속을 찍던 몇 안 되는 토종 파이어볼러였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뇌의 필터링을 걸치지 않은 그의 인터뷰는 트래픽을 갈구하는 기레기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레기들에게 당했던 그가 기자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오늘 공항까지 나온 박희연 기자는 그런 기레기들과 조금 달랐다. 그가 힘들었던 시절, 그를 위해 변명해주던 기자는 오직 그녀뿐이었다.

박희연 기자는 그가 경기 망친 날 악플을 읽고 술집에서 술 마시다 꽐라된 사진이 SNS에 올라갔던 때에도 그를 위한 변명 기사를 써줬던 사람이다.

“소식은 들었어요. 재밌는 공을 던지기 시작하셨다고요. 그런 좋은 소스는 저 주시기로 하셔놓고는 좀 섭섭해지려고 하는데요?”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서요.”

성민이 턱을 긁적였다.

제대로 너클볼을 던진 것은 이번 마무리 캠프가 처음이니 거짓말은 아니다.

“소문에 의하자면 청백전에서 성적이 굉장히 좋았다던데, 짧게 인터뷰 좀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벌써 그 소식이 박 기자님 귀에까지 들어가다니 소문이 비행기보다 빠르네요.”

“아휴, 이 바닥 좁은 거 잘 아시면서.”

박희연 기자의 눈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이제 서른 중반을 향해감에도 젊은 시절부터 이름을 떨치던 미모는 전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가 시작됐다.

“사실 너클볼이라면 보통 더는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는 선수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길이잖아요.”

“뭐, 보통은 그렇죠.”

“이전에 듣기로는 분명 수술은 잘 됐다고 들었는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아뇨, 수술이랑 재활 모두 잘 됐습니다. 당장 마무리 캠프에서 던진 공도 144인가까지 나왔어요. 몸만 더 올라오면 150도 자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강속구를 놔두고 대체 왜 너클볼을?”

성민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고 답했다.

“그냥요.”

“그냥이요?”

“네, 그냥 던져봤더니 공이 좀 쩔어주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너클볼 던지기로 했어요.”

“그건, 뭐랄까······, 정말이지 김성민 선수다운 패기 넘치는 답변이군요.”

이후로도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더 오갔다.

“내년 시즌을 끝으로 FA인데,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각오라. 뭐 각오라면. 역시 이번 시즌 엄청나게 잘 던져서······.”

“잘 던져서?”

“메이저리그 진출?”

개정된 FA 등급제에서 B등급은커녕 C등급이 거의 확정적인 성민이었다. 그런 성민이 메이저리그라니. 성민과 희연이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메이저리그라. 좋은 포부네요. 그러면 저도 메이저리거 전담 기자가 될 수 있는 건가요? 그렇게 되면 김성민 일기는 저에게 맡겨주시는 거 맞죠?”

“뭐, 하시는 거 봐서요.”

[김성민, 수술 경과는 성공적. 2032시즌도 문제없다.]

-이제 막 재활 끝내고 합류한 마무리 캠프에서 144 던졌으면 시즌 중에 몸 최대한 끌어 올리면 150도 충분히 가능하겠네.-

-150 던지면 뭐하냐. 얘 제구가 형편없잖아.-

-형편없기는. 김성민 원래는 제구도 괜찮은 녀석이었어. 2026년 아시안게임 때가 진짜 대박이었는데.-

-그게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 김성민은 그때랑 다른 투수라고 봐야 함. 많은 것도 안 바란다. 그냥 내년 시즌 50이닝 평자책 3.5만 찍어다오.-

-내가 어디서 듣기로는 김성민 너클볼을 익혔다는 소문이 있던데?-

-완전 헛소문이네. 150 던지는 투수가 너클볼을 왜 던짐.-

-그냥 연습에서 몇 번 던진 거겠지. 원래 투수들 연습에서는 이것저것 던져본다잖아.-

박희연 기자의 기사에 성민의 너클볼에 관한 이야기는 실리지 않았다.

마무리 캠프에서 고작 2주 던진 공이었다. 게다가 팔꿈치도 144까지 뿌릴 만큼 멀쩡해졌다. 박희연 기자가 판단하기에 이건 성민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그냥 한 때의 헤프닝 정도다.

굳이 사람들의 구설수에 그를 올리고 싶지 않았다.

‘올해는 김성민 선수에게 진짜 중요한 해니까.’

프로 야구 선수 평생의 기회라고 볼 수 있는 FA.

희연이 마음속으로 성민을 응원했다.

***

-야, 그런데 아까 인터뷰하던 중에 나왔던 C등급이 뭐야? C급이라고 하니깐 뭔가 어감이 별로인데, 그거 좋은 건 아니지?

“으음, 뭐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죠. 사실 FA를 코앞에 둔 입장에서는 그리 나쁜 건 아니에요. 나 하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대박을 노릴 수도 있달까?”

-그러니까 그게 뭐냐니까.

“그게 그러니까.”

2021년.

KBO는 긴 시간 말 많고 탈 많던 FA 제도를 개정하는데 성공했다. 선수들의 등급을 나누고 등급에 따라 보상규정을 차별화한 것이다.

최근 3년간의 연봉을 평균 냈을 때,

자기 구단 연봉 3위 이내, 전 구단 연봉 30위 이내를 동시에 충족하는 선수는 A급.

구단 연봉 10위 이내, 전 구단 연봉 60위 이내를 충족할 경우 B급.

그 외에는 C급으로 책정된다.

-와, 그러니까 너 FA선수들 제외하고도 연봉이 구단에서 10위 밖이라는 소리야? 올해로 서비스 타임 말년인데?

“고과 제도가 직전 해에 못 하면 좀 깎이고 그래서 그래요. 저도 잘 나갈 때는 연 2억6천까지도 받았었다고요.”

-2억 6천만원이면 달러로 20만 달러 정도인가? 서비스타임도 끝나지 않은 선수에게는 확실히 적지 않은 금액이었네. 그러면 지금은?

성민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2030년에는 구단 기준으로는 9위인가 그랬으니까 제법 많이 받는 편은 많이 받는 편이었죠. 그때도 전 구단으로 따졌을 때는 60위는 좀 힘들었지만.”

-KBO도 생각보다 크구나. 서비스 타임이 한참 남은 선수가 20만 달러나 받다니.

“달러로 따졌을 때 10만 달러 이상 받는 선수가 그래도 170명은 되요.”

-10개 구단에 28인 로스터니까 와우, 더블A 수준의 리그에서 전체의 30% 이상이 10만 달러라는 소리네. 이거 마이너 돌던 애들이 KBO에 용병으로 가고 싶어 할만한데?

생각보다 높은 연봉에 감탄하는 필 니크로에게 성민은 차마 용병은 최저 30만 달러, 평균 연봉이 100만 달러가 넘는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

“아들 왔어?”

“엄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성민을 그의 어머니 권미영 여사가 맞이했다.

“엄마가 갑자기 여긴 어쩐 일이야?”

“아니, 넌 어떻게 2주 만에 엄마 얼굴을 보고 어쩐 일이냐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니.”

“우리 바로 어제도 통화했었거든? 어제 분명 집에 온다는 말 없었잖아.”

“2주나 집을 비웠으니 집안 꼴이 얼마나 개판이겠어. 엄마가 청소도 좀 해주고. 그리고 너 훈련 가서 빨래 잔뜩 쌓아왔을 테니 빨래도 좀 해주려고 왔지.”

“청소야 어차피 로봇청소기가 하는 거고, 빨래도 세탁기에 집어넣고 그냥 건조까지 돌리면 되는데.”

“어휴, 하여간에. 그런 거 대충대충 하는 건 꼭 제 아빠를 닮았어요. 어디 청소가 바닥 청소가 끝인 줄 아니? 게다가 빨래도 그래. 종류별로 잘 분류해서 해야지, 그렇게 막하면 못 써. 그리고 건조가 옷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 줄 아니? 빨래를 했으면 그저 햇볕에 짱짱하게 말리는 게 최고야.”

권 여사가 쉴새 없이 잔소리를 쏘아붙이며 자연스럽게 성민의 가방에서 빨랫감들을 꺼내 들었다.

“아, 엄마!! 빨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뭐 때문에 온 건지나 말해요.”

“아니, 얘는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아주 빨래 두 번 해줬다가는 엄마를 잡아먹겠네.”

“엄.마.”

“알았다. 알았어. 그냥 별 건 아니고. 너 엄마랑 같이 일하는 미정이 이모 알지?”

“그 식단조절과 운동이 좀 필요해 보이는 이모요?”

“그래, 잘 알고 있네. 다름이 아니라 미정이네 둘째가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고 글쎄, TK 화학에 취업했다지 뭐니.”

불길했다.

성민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엄마의 입에서 엄마 친구 자식 이야기가 나와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엄마 친구의 아들들은 언제나 능력자에 효도로 무장한 이길 수 없는 상대였고, 엄마 친구의 딸들은······.

“그래서 말인데, 이번 주 일요일에 약속 잡아놨으니까 나가봐라.”

“아, 엄마!!”

잠재적 맞선 상대다.

“아니, 네 나이도 이제 내일모레면 서른이야. 엄마도 언제까지 네 뒤치다꺼리 하면서 살 수도 없고. 그 누구냐 곽 경준인가? 너랑 한 살 차이나는 그 선수는 벌써 애를 둘이나 낳아서 텔레비전에 맨날 나오더라.”

“엄마 말했잖아. 나 올해만 뛰면 FA라고. 엄청 중요한 해라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장가를 가야지. 본래 바깥일도 집안이 안정돼야 든든하게 잘 되는 거야. 곽 경준이도 봐라. 마누라가 든든하게 내조하고 토끼 같은 자식들이 옹알거리니까 야구도 더 잘하잖아.”

“엄마 일단 경준이가 아니라 경진이고, 걔 이번 시즌 성적 완전히 죽 쒔거든? 괜히 육아 예능 나와서 성적 떨어졌다고 백만 안티 양성 중이거든?”

물론 성민의 항변 따위 맞선을 입에 올린 권여사에게 완벽하게 무시당했다.

“그러지 말고 여기 사진 좀 봐라. 얼마나 예쁘냐. 너 어디 가서 이런 며느릿감 구하기 힘들다. 이 엄마도 이제 징그러운 다 큰 아들내미 말고 귀여운 손주 재롱을 보고 싶어.”

“아니, 아기랑 그렇게 놀고 싶으시면 나한테 미루지 마시고 직접 해결하시라니까. 난 28살 차이나는 막둥이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열린 사람이라고.”

-짝

성민에 등짝에 어머니의 사랑이 담뿍 담긴 스파이크가 작렬했다.

“이놈의 자식이. 아주 엄마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아, 아파. 나 몸이 재산인 사람이거든?”

“어차피 그 재산 전부 엄마가 물려준 거 아니니?”

“아니 물려준 지 30년쯤 됐으면 이제 생색 그만 내실 때도 됐거든요.”

“에휴, 자식 낳아서 쌔빠지게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더니. 머리 좀 컸다고 엄마한테 말 한마디를 안 지려고 하네.”

“아니, 대체 요즘 누가 서른도 안 돼서 결혼한다고 그래요. 요즘 대한민국 평균 결혼 연령이 35.4세거든요.”

“그야 군대 다녀와서 대학 졸업하고 스물일곱, 여덟에 취업하는 평균적인 사람들 이야기지. 넌 운동선수야. 언제 은퇴 당해서 백수가 될지 모르는데 직업이라도 있을 때 장가가야지.”

“은퇴는 누가 은퇴한다는 거예요. 저 내년에 FA 대박 내고 엄청 잘 나갈 예정이거든요.”

“아들, 난 우리 아들 자신감은 참 좋지만 그래도 이제 현실을 깨달을 때도 됐다고 생각해.”

“아, 몰라. 아무튼, 나 절대 안 나갈 거야.”

성민이 때려죽여도 맞선을 나갈 수 없다며 뻗댔다.

하지만 권 여사는 성민을 29년이나 키워온 성민의 프로였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성민이 거절할 수 없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성민 아버지. 왜 이렇게 일찍 갔어요. 당신만 있었더라도 성민이가 이렇게까지는 엇나가지 않았을 텐데. 역시 여자 혼자서 애를 키운다는 건 무리이었나 봐요.”

“아, 엄마!! 그거 이제 안 통하거든?”

“역시 아들은 엄마가 집에서 케어를 해줘야 하는 법인데, 내가 일하러 다닌다고 성민이 뜨신 밥 한 끼 못 차려 준 게 이렇게 돌아오나 봐요.”

“어차피 밥은 쿡쿠가 매일 뜨듯하게 유지해줬거든요?”

“아이고 성민 아버지!!”

뻔한 눈물 연기였다. 하지만 이건 자식으로서 절대 이길 수 없는 뻔함이다. 성민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아, 알았어요. 알았어. 그거 맞선 나갈게. 나가면 되잖아.”

“일요일. 해운대 파크하얏트 30층 라운지. 박보람.”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 사진을 들이미는 권 여사의 모습에 성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 목표(1)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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