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은 떡볶이 맛집부터(1) >
성민의 공을 직접 상대해본 이형진이 목에 핏대를 높였다.
“감독님, 저 자식, 저거 무조건 통합니다. 공 날아오는 거 보셨잖아요.”
“그래, 보기야 봤지.”
“오카다가 NPB에서 13승 했던 거 기억하시죠. 제가 보기엔 성민이 저 자식 공 오카다 이상입니다. 저 공, KBO에서는 무조건 통해요.”
공필승이 자신의 턱을 문질렀다.
“오카다라······. 형진아. 너 그 녀석이 13승 한 다음 해에 어떻게 됐는지 기억하냐?”
“네? 그야 뭐······.”
“2승 8패. 평자책 5.97을 찍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2경기 4이닝 15.75 찍고 2군으로 내려갔고. 그리고 그대로 은퇴했지.”
“하지만!!”
“오카다가 끝이 아니야. 미국에서는 더했어. R.A 디키가 2017년에 은퇴하고 스티븐 라이트가 잠깐 활약하나 했는데 결국 폭망했잖냐. 그 이후로도 너클볼 던진다고 깔짝거리는 애들 몇 명 있었는데 누구 하나 메이저에 제대로 뛴 녀석이 없어.”
형진이 항변했다.
“1년 반짝하고 마는 투수가 너클볼러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너클볼러라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죠.”
“너클볼러라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너클볼러가 더 그렇다는 건 사실이지.”
그의 이야기처럼 너클볼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누구나 아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기복이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기복이 있다. 프로선수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너클볼은 그 특성상 그 기복의 널뛰기가 매우 심하다.
손끝에 조금이라도 힘이 더 들어간다면, 혹은 덜 들어간다면 그것만으로 너클볼은 배팅볼이 돼버리는 탓이다.
“그거야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여기가 빅리그도 아니고, 솔직히 성민이가 너클볼 던져서 준수한 4선발, 5선발만 해줘도 우리로는 큰절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아니더라도 컨디션 좋은 날에 불펜으로 이닝만 먹어줘도 땡큐고요.”
“그래, 4선발이나 5선발쯤 되면 괜찮지. 그런데 불펜은 아니야. 형진아 너도 잘 알잖냐. 너클볼을 던지려면 받을 놈이 필요하다는 거.”
“그건······.”
너클볼의 단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2010년대 이후 MLB에서 로스터 한자리의 가치는 매우 빠르게 상승했다.
설사 연 2천만 달러를 주는 선수라고 해도 1인분이 안 된다면 그 선수의 반등을 노리고 로스터에 내버려 두느니, 2천만 달러를 포기하고라도 로스터의 한 자리를 비우는 팀이 나올 만큼 말이다.
물론 KBO의 경우 1군과 2군의 오르내림이 MLB보다 훨씬 자유롭고 선수의 풀이 좁은 만큼 로스터의 한 자리의 가치는 MLB보다 훨씬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1군 로스터의 한 자리에 쓸모없는 선수를 박아놓을 만큼 여유롭다는 말은 아니다.
“너 우리 주전 포수인 태경이가 너클볼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냐? 용철이는 또 어떻고. 결국 성민이가 너클볼 던지게 두려면 혁준이를 1군에 박아둬야 하는 건데 혁준이 작년 타율이 몇이었지?”
공감독의 질문에 형진이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9푼이었죠.”
“그래, 1할도 아니고 9푼이다. 9푼. 불펜 하나 쓰자고 9푼짜리 포수를 1군에 어떻게 박아두냐.”
“잠깐만요 감독님. 지금 그건 성민이가 선발로 뛸 만큼 너클볼을 못 던질 때 이야기잖아요. 성민이 너클볼이 1군에서 선발로 통할 수준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태경이나 용철이가 성민이 너클볼 받을 수 있으면 되는 거고요.”
형진의 항변에 공필승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혹은 혁준이 방망이가 좀 사람 같아지는 방법도 있지.”
“그러면 됐네요. 이번 마무리 캠프부터 해서 제가 성민이랑 혁준이 그리고 용철이 집중적으로 마크 좀 하겠습니다.”
“네가?”
“네. 우리 팀도 이제 우승 한 번 해야죠. 꼴린스 소리 듣는 거 저도 진짜 지겹습니다.”
의욕을 보이는 형진의 모습에 공감독이 웃었다. 어차피 그도 성민이 너클볼을 던지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시즌 시작까지는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지켜보자는 의견이었을 뿐이다.
형진이 의욕을 보이는데 굳이 만류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혁준이 방망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좋겠군.’
물론 그가 기대하는 쪽은 성민이 아닌 혁준 쪽이었지만 말이다.
***
연습용 마운드에 선 성민이 한순간 느꼈던 그 감각들을 되새겼다.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고, 또 어디서는 어떻게 힘을 줄지. 손끝을 튕겨내는 감각은 어떠해야 하는지.
오늘 필 니크로가 그에게 보여준 것은 일종의 완벽한 공략집과도 같았다. 그것도 그대로 실행에 옮기기만 한다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는 공략집이다.
다만 문제는 그 실행에 옮기는 난이도가 불지옥 급이라는 점이었다.
성민의 공이 연습용 마운드 반대편의 연습용 타겟벽을 두들겼다.
-퍼억!!
“이게 아닌데.”
-퍼억!!!!
“이것도 아니고.”
필 니크로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 지금 뭐 하냐?-
“뭐 하긴요. 보면 모릅니까? 너클볼 연습하잖아요.”
-그게 너클볼이라고? 진짜? 내가 보기엔 그냥 81마일짜리 배팅볼인데?-
필 니크로의 이야기처럼 성민이 던지는 공은 너클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밋밋했다.
하지만 지금 단순히 회전만을 생각하며 슬슬 공을 던지기는 싫었다. 이미 성민의 머릿속에는 필 니크로가 마지막에 보여줬던 전력을 다해 던지는 고속의 너클볼이 가득했다.
그만큼 필 니크로가 마지막에 보여줬던 그 공은 정말 대단했다.
아마 그 공을 던질 수 있다면 골든글러브? MVP? 아니 메이저 진출, 나아가 메이저에서 성공도 꿈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말이다.
성민이 불퉁하게 대꾸했다.
“잘못하니까 연습하는 거죠. 잘하면 누가 연습합니까?”
-내가.
“네?”
-나는 잘할 때도 연습했다고.
“영감님······.”
-내가 말했지.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고. 그래서 이제 됐다 싶을 때 조금 더 연습하고 그러면 이제 내 실력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 거라고. 네가 마지막에 경험한 그 공은 거기서 조금 더 연습했을 때 나온 공이야. 그나마도 나 역시도 현역시절에는 제대로 던지지 못했던 공이지.
필 니크로가 말을 이어갔다.
-기지도 못하는 녀석이 뛰려고 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그러니까 마지막 그거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일단은 초반에 내가 보여준 수준만 노려. 마지막 그건 그냥 그런 것도 있다는 걸 보여준 거니까.
“아니, 그래도 미슐랭 쓰리스타를 보여줘 놓고 동네 분식집 떡볶이 만드는 거에 만족하라고 하시면 그게 만족이 됩니까?”
필 니크로가 클클 대며 웃었다. 묘한 만족감이 서린 웃음이었다.
-누가 만족하라던? 당연히 만족하면 안 되지. 단지 방법의 문제라는 거다. 일단 동네 분식집 떡볶이를 만들고, 또 만들면서 실력을 쌓아. 그러다 보면 언젠가 미슐랭 쓰리스타에 닿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떡볶이로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결국 그 공을 던질 수 있다 이 말이죠?”
-그래.
사실 단순히 형진을 상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필 니크로는 마지막 그 공까지는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전성기의 형진은 메이저를 노려볼만한 타자였지만, 은퇴한지 2년이 지난 지금의 형진은 KBO의 평균을 오가는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필 니크로가 그 공을 던진 것은 형진을 손쉽게 잡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성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없이 완성에 가까운 너클볼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그리고 ‘네가 앞으로 목표해야 할 공이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성민의 반응을 보자면, 역시 마지막에 그 공을 보여준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아무리 귀한 보물을 보더라도 거기까지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하다면, 그리고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주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그냥 애새끼였다. 좋은 것을 보면 가지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른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하건 간에 일단 덤벼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자면 단순히 뱃속 그득한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머저리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필 니크로는 알고 있었다.
이 바닥에 크게 이름을 새기는 인간은 대부분 그런 욕심 그득한 머저리들이다.
보통이라면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마지막까지 손을 뻗는 부나방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 부나방은 불에 타 스러진다.
하지만 그렇게 스러지는 부나방들 가운데 오직 한 줌.
그래, 그것은 정말 하늘이 내린 재능과 천운을 타고난 한 줌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직 그런 한줌의 부나방만이 마지막까지 남아 쿠퍼스에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을 올리는 법이다.
성민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필 니크로라는 행운 역시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손을 뻗는 멍청함뿐이었다.
그리고 필 니크로의 ‘완벽에 한없이 가까운 너클볼’이 그의 멍청함에 불을 붙였다.
< 시작은 떡볶이 맛집부터(1)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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