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5화 (6/287)

< 너클볼의 경험(1) >

성민은 이전까지 하던 대로 열심히 운동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근력운동을 하고 다시 스트레칭을 했다. 충분히 보람찬 운동량이었다. 하지만 필 니크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살아생전 필 니크로는 이런 말을 했었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해라. 그래서 이제 됐다 싶을 때 조금 더 연습해라. 그러면 이제 내 실력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거기서 조금만 더 연습해라. 그러면 성공할 수 있다.

성민이 항변했다.

“아니, 그런 고리짝 적 정신론이 혁파된 지가 언젠데요. 근육이란 건 원래 충분한 영양과 휴식이 있어야 회복되는 겁니다. 무리를 해봤자 제 팔꿈치 인대 나간 것처럼 회복되지 않는 부위가 영영 나갈 뿐이라고요.”

물론 성민의 말 역시 옳았다.

강철조차 한계를 넘어서면 부러진다. 한계 이상으로 몰아붙인 육체가 계속해서 강해지는 것은 소년 만화의 주인공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의 인간이 그런 연습을 한다면 실력이 성장하기는커녕 마운드에 서기도 전에 쓰러진다.

-그거야 그만큼 운동을 하는 애들 이야기지. 넌 거기 해당 없어.

“저 요즘 엄청 열심히 운동하고 있거든요?”

-이게 열심히 운동하는 거면 예전에는 대체 얼마나 개판으로 했다는 이야기냐.

“개판이라뇨. 한국의 운동부 연습이 얼마나 빡센지를 모르시나 본데 이래 봬도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훈련을 빠진 날이 없었거든요. 뭐 프로가 된 다음에는 아주 조금 게을렀던 적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열심히 했었다고요.”

필 니크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문장이 제일 큰 문제다.

“열심히 연습한 거요?”

-아니.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부분이.

근육이란 충분한 영양과 휴식이 있어야 회복되는 것이고, 현실의 인간은 강철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 70억의 사람은 모두가 그 한계가 다르다.

만약 성민이 70년대생, 혹은 80년대생. 아니 하다못해 90년대 생이기만 했어도 운동부의 단체 훈련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으로 그 한계를 체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야구부는 근성이라는 이름으로 혹사가 허락되던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성민은 자신의 말처럼 21세기에 태어난 남자였다.

게다가 21세기의 한국 야구. 특히 아마 야구의 교육환경은 강진호라는 걸출한 메이저리거의 등장으로 한층 더 선진적인 형태로 변했다.

-넌 아직 더 할 수 있다. 더 움직일 수 있고 더 달릴 수 있어.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서는 안 돼. 언제나 한계의 기준은 자신의 몸이 돼야 한다. 그리고 항상 그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어야 해. 그게 아니라면 메이저리거는 꿈도 꿀 생각을 하지 마.-

필 니크로는 말했었다.

‘너에게는 재능이 있다. 너는 천재다.’

성민은 그 말을 자신의 강철 같은 어깨, 긴 손가락, 혹은 타고난 야구 센스 등으로 이해했다.

“그러다가 망가지면요.”

-나를 믿어라. 넌 절대 쉽게 망가지지 않아.

“쉽게 안 망가지기는요. 이 팔꿈치 수술 자국 좀 보세요. 무리하면 이렇게 똑 끊어진다니까요.”

-내가 말했었지. 넌 재능이 있다고.

“정확히는 천재라고 했었죠.”

하지만 필 니크로가 볼 때 성민의 가장 큰 재능은 그의 내구성이었다.

-난 유령이야.

“나도 알아요.”

-내 눈은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어. 네 근육은 아직 여력을 가지고 있어. 힘줄이나 인대도 충분히 튼튼하고. 뭐, 팔꿈치가 망가진 건 아마 너의 투구 폼 어딘가에 팔목 인대에만 부하를 주는 자세가 있었겠지.

“아니, 뭐 눈이 MRI도 아니고 제 근육이 여력이 있는지 없는지, 힘줄이나 인대가 튼튼한지 아닌지를 어떻게 압니까.”

-MRI? 고작 그런 거에 비견될 수준이 아니지.

필 니크로가 단언했다.

-넌 아직 네 한계를 몰라.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뭐라 반박을 하고 싶긴 했지만, MRI보다 몸의 내부가 더 잘 보인다는야 뭐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더 달리고, 더 들고, 더 찢는 수밖에.

성민의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노곤했다.

살아생전 이토록 힘들게 연습한 적이 있었을까? 필 니크로는 말 그대로 젓가락 하나 들 힘이 없을 만큼 그를 몰아붙였다.

“영감님 이거 평소에도 이렇게 운동하면 다음 날 경기 절대 못 뜁니다.”

-당연하지. 지금 비시즌기, 게다가 재활 기간이잖아. 다음 날 시합을 뛸만한 강도의 운동이 아니지.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어마어마한 근육통이 성민을 습격했다. 물론 그는 운동선수였고 닷새에 한 번씩 한계를 넘어서게 움직이는 선발 투수였던 적도 있었기에 근육통은 익숙했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그의 운동 인생에서도 이토록 지독한 근육통은 처음이었다.

-일단 스트레칭부터. 거기 그쪽 더 누르고. 더 누를 수 있는 거 다 안다.

-어허, 꾀병 부리지 말고. 하나 더 할 수 있잖아.

자기 눈이 MRI보다 더 좋다는 필 니크로의 말은 마냥 헛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정확하게 성민의 몸을 잡아냈다.

일주일, 그리고 이주일.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성민은 자신의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체감했다.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이 귀신은 도움이 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잔소리가 좀 심하다는 단점만 제외한다면 필 니크로의 유령은 몸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살펴보고 운동을 지도할 수 있는 최고의 개인 트레이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애당초 그가 필 니크로와 함께하기로 한 것은 고작 이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대체 그건 언제 하실 겁니까.”

-그거?

“모르는 척하지 마시고요. 뭐 저야 지금도 나쁘진 않습니다만, 슬슬 하지 않으면 시간상으로 너클볼 익힐 시간이 없다고요. 영감님 저한테 너클볼 전수하려고 이렇게 붙어 있는 거잖아요.”

-그야 그렇지.

너클볼.

세상에 가장 완벽한 구종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너클볼 뿐이다.

타자는 너클볼이 올 것은 알아도 칠 수 없고, 포수는 너클볼이 올 것을 알아도 받을 수 없으며 투수는 너클볼을 던질 줄은 알아도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구종은 있어도 완벽한 투수는 없다.

이 너클볼이라는 녀석은 사람이 구사하기에는 너무 까다롭기 그지없는 녀석이다.

보통의 피칭과는 그 매커니즘부터가 완벽하게 다르다. 너클볼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구종에서 더 많은 회전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너클볼은 정확히 그 반대다.

게다가 다른 공의 경우 조금 실수를 한다고 해도 약간 빠지는 공, 혹은 덜 움직이는 공이 될 뿐이다. 하지만 너클볼은 적당히 회전하며 들어가는 완벽한 배팅볼이 돼버린다.

그렇기에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같은 수준의 너클볼을 던지기 위해서는, 재능만큼이나 커다란 ‘경험’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 어떤 천재라고 해도 쉽게 극복하기 힘든 문제다.

“그러니까 이제 슬슬 ‘그거’ 하자고요.”

-그래도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준비된 다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영감님. 딱 보니까 슈팅 게임 할 때 죽기 직전까지 폭탄 모아두는 타입이네요. 옛날에는 그렇게 비장의 무기를 묵혀두는 타입도 좀 먹히긴 했거든요? 근데 요즘은 아니에요. 초반에 쾅 터트려서 빠르게 밀고 나가는 게 더 먹힌다고요.”

필 니크로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 좋다. 내일 시작하자.

“오케이. 내일 그러면 구단으로 출근해서 약속 잡을게요.”

오직 필 니크로만이 가진 압도적인 너클볼의 ‘경험’의 전수를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 너클볼의 경험(1)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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