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화 (2/287)

< 나도 한때는 잘나가는 투수였다(1) >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본래 운동이라는 것은 결국 재능의 결정체다. 그리고 대부분 프로선수가 그렇듯 성민은 학창시절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하나였다.

그는 잘 치고, 잘 달리고, 잘 던지고, 잘 막았다.

“성민아, 어쩌겠냐. 여기까지 왔는데.”

오래된 만화의 어떤 문구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남들보다 월등히 운동을 잘하는 성민에게 코치는 조금 많은 기대와 책임을 부가했다.

“코치님.”

“그래.”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21세기가 들어서고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기는요. 마운드에 올라갈 사람 없으면 떨어지는 거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성민은 21세기에 태어나 땅에 떨어진 교권과 폭풍 같은 치맛바람 그리고 꼭 야구 아니더라도 먹고 살만한 집안의 보호 아래 살아가던 남자였다.

쌍팔년도에나 통하던 ‘어쩌겠냐 여기까지 왔는데.’가 통할만 한 남자가 아니었다는 소리다.

“인마!! 그게 무슨 막말이야.”

“아니 막말은 코치님이 먼저 했죠. 솔직히 지금 제가 이거 왜 하는 겁니까. 관중 300명도 안 오는 대회 우승 하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요.”

“야, 김성민!!”

“결국 이게 다 프로 돼서 이름도 좀 날리고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건데 여기서 어깨 뽀사지게 던져서 뭐 어쩌라고요. 그러다 진짜 어깨 부서지면 코치님이 저 먹여 살리실 것도 아니고요.”

“이, 이 새끼가? 지금 말 다 했어?”

“아뇨, 아직 덜 했는데요. 솔직히 규정 아슬아슬하게 꽉꽉 채워가면서 던졌으면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닙니까. 4일 휴식할 수 있는 날에는 매일 105개씩 던지고 3일 휴식일 때는 90개씩 던졌죠. 거기에 준결승에 4회에 불펜으로 나가서 75개 던졌으면 전 할 만큼 한 거죠. 내가 75개에서 딱 끊을 때 그래도 설마 했는데, 꼴랑 이틀 쉬고 또 선발로 나가라고요?”

성민이 지금 회상하기로 그 당시 시뻘겋게 달아오른 코치의 얼굴은 참 보기 좋았었다.

물론 그 이후로 날아온 주먹질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이보세요. 김 코치님. 아니, 김 코치님이 깡패에요? 아니 어떻게 애를 이렇게 팰 수가 있습니까.”

“아니, 어머님.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그래요. 저도 운동하는 사람들 세계가 험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주먹으로 애 얼굴을 때릴 수가 있습니까. 저 이거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고소할 겁니다.”

“고, 고소라뇨. 어머님 진정하시고 제 말씀 좀 들어 주십쇼. 이게 단순히 제가 법적 절차를 밟는 것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닙니다. 이게 폭력 같은 구설수가 올라가면 저뿐만 아니라 야구부 전체가······.”

“아니, 지금 그러니까 야구부 전체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성민이한테도 좋을 게 없으니 좋게 좋게 넘어가자 협박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요. 우리 성민이 그깟 야구 안 해도 그만입니다. 아직 18살밖에 안 됐고, 어릴 때는 전교 3등도 하던 아이에요. 지금이라도 공부 시키면 샤대? 우습지도 않아요.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어머님,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뭐, 그래도 그 주먹질 덕분에 코치한테 바락바락 대들었던 그 날의 일은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긴 했다.

그 당시 성민의 어머니인 권 여사는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라면 지옥에도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갖춘 그의 가장 큰 지지자였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응? 블러핑? 그게 무슨 소리니. 난 솔직히 네가 그때라도 야구를 때려치우고 기숙학원을 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랬어봐. 지금 그 꼴로 붕대를 칭칭 감고 썩은 냄새 풍기면서 침대에 누워 있는 대신에 어디 의사나 판검사가 돼서 이 엄마한테 곰 같은 며느리에 토끼 같은 손주들 주렁주렁 안겨줬겠지.”

“아니, 엄마. 잘 나가다가 갑자기 또 웬 며느리에 손자 타령이야. 내가 말했잖아. 난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아들, 괜찮아. 괜찮아. 이제 엄마한테 그런 변명 하지 않아도 괜찮아.”

“갑자기 그렇게 인자한 표정 짓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그런 표정으로 말하니깐 진짜 변명 같잖아. 엄마도 알잖아 내가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래, 이 엄마도 이제는 다 알지, 다 알아. 못 나가는 삼류 야구 선수라서 며느리 만들 능력도 없는 거잖니. 에휴, 어쩌다가 내 하나뿐인 아들놈이 이 꼴이 됐을까.”

“와, 미치겠네. 어머니. 저 어머니 아들 김성민입니다. 김성민. 2026년 9월 둘째 주 우먼 주간 특집 이슈 사윗감 삼고 싶은 남자 3위에 선정된 김성민이요.”

“넌 대체 4년 전 이야기를 대체 언제까지 울궈먹을 생각이니.”

권 여사는 곰 같은 며느리와 토끼 같은 손주. 그리고 하루라도 빠른 은퇴만을 외치는 성민의 가장 큰 반대자가 돼버렸다.

“성민아, 그러지 말고 그냥 지금이라도 사업이나 시작하는 건 어떠니? 작은 건물 하나 임대해서 네 특기를 살리면 좋잖아.”

“갑자기 웬 특기?”

“요즘 그 뭐냐. 스크린 야구장? 그게 그렇게 잘 나간다고 하더라. 얼마 전에 명예의 홀인가 올라간 강진호 덕분에 야구 붐이 또 크게 일었잖니.”

“명예의 전당이거든요.”

“홀이나 전당이나. 아무튼, 팔도 그 꼴 났으니 이제 야구 계속하겠다는 소리 그만하고 사업이나 시작해라. 그래도 프로 시작할 때 계약금 받아둔 거랑 이후로 쥐꼬리만 하게 받았던 연봉들 내가 잘 모아뒀으니 따로 상속세 안내고 그 돈으로 사업 시작할 수 있을 거야.”

“아, 싫어. 박사님도 나 수술 엄청나게 잘 끝났다고 그러시고, 이제 FA까지도 꼴랑 1년만 더 채우면 되는데 여기서 그만두라고? 1년 빡세게 재활하면 서른 되기 전에 FA야. 그러면 그깟 스크린 야구장 한 10년 즈음 운영해도 못 벌 돈 한방에 만지는 거라고.”

“아들.”

권 여사가 갑자기 다정한 목소리로 성민을 불렀다.

그 다정함이 싸늘하다.

“아 왜 갑자기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고 그래요. 불안하게.”

“내가 우리 아들 좋아하는 거 잘 알지?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자고. 우리 아들 작년 성적이 어떻게 되지?”

“아니, 그건 팔꿈치 불편한 걸 참고 던져서······.”

“재작년은? 그 이전은? 우리 아들이 마지막으로 팔팔하게 던졌던 때가 언제지?”

“아니, 그래도 2026년 나고야 아시안게임 때는 잘 던졌잖아요.”

“그래, 그 덕분에 군 문제는 해결했지. 그런데 그러면 뭐해. 그 뒤로 꾸준히 일관되게 죽을 쑤고 있는데. FA 대박? 어휴, 차라리 로또 대박이 현실적이겠어요.”

“아니, 세상에 어느 엄마가 아들 기를 죽입니까!!”

“어린 시절에 기를 너무 살려놨더니 서른이 코 앞인데 현실 파악을 못 하는 아들을 둔 엄마가 지금이라도 좀 죽여놓으려고 그런다 왜!!”

“아 몰라!! 나 잘 거야.”

젠장, 대체 누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한 건지. 그 앞에 자신의 엄마를 데려다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성민이 이불을 뒤집어썼다.

< 나도 한때는 잘나가는 투수였다(1) > 끝

ⓒ 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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