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1회차-199화 (199/200)

나만 1회차 199화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황색대륙의 누런 밀밭, 청색대륙의 시푸른 강, 적색대륙의 붉은 사막.

그 무엇도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나밖에 남지 않았어. 결국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공백에서, 남아 있는 자는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 무엇보다 고독함이 앞섰다.

쓸쓸하고, 괴로웠다.

혼자여서.

“…….”

그리고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참 화려하게도 일을 벌였군.”

내게 말을 거는 존재가 나타났다.

***

“……누구지?”

내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나를 빼고 모두가 죽은 세상에서, 낯선 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너, 갑자기 어디서 나온 놈이냐?”

멸망한 세상에 갑작스레 등장한 낯선 이는 독특한 개성의 인물이었다.

몸의 반쪽은 백골인 데다가, 칠흑색 로브를 두른 독특한 차림새의 외견.

멸망한 세상의 불청객은 초록색 기운이 일렁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쓸모없는 질문을 하는군. 살펴보기만 해도 답을 알 수 있을 텐데.”

그의 눈에서 느껴지는 초록색 불빛의 기운이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그대가 사용하던 진혼검의 기운. 그것은 나로부터 비롯됐던 것이다.”

진혼검?

멍하니 생각하던 나는 한참 뒤에야 상대방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명계왕의 진혼검.’

그에게서 흐르는 기운은 검에서 뿜어지던 명계의 맹염과 닮아 있었다.

“당신이…… 설마 명계왕입니까?”

“그래, 이승과는 정반대인 세계를 다스리지. 세상을 방관하며, 그대를 꽤 오랫동안 눈여겨봐 왔기도 했고.”

명계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 세상을 그대가 멸망시켜 명계와의 경계선이 흐려졌다. 그래서 지금 눈앞까지 당도할 수 있었지.”

나는 긴장하며 숨을 죽였다.

눈앞의 그가 척 보아도 규격 외의 절대자란 예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명계왕이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아래부터 위까지 찬찬히 훑었다.

“명계를 다스리는 왕인 내가 어째서 그대의 앞에 나타났는지 아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명계왕이 손가락뼈로 자신의 오른쪽 광대를 가볍게 문질렀다.

“그대는 자기 세상까지 멸망시켜서 회차 목표를 달성한 인간이지.”

“설마…….”

“그래, 절대자인 내가 목표를 완수한 그대에게 보상을 내주러 왔다. 그대는 회차 목표를 이루지 않았나.”

명계왕이 살이 붙은 오른손과, 초록색 기운의 왼쪽 손뼈를 펼쳤다.

“자, 어떤 숙원을 빌겠나? 뭐든지 말해도 좋아. 세계를 규율하는 절대자? 아니면, 모든 걸 관장하는 신? 그대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행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무엇이든 가능한 단 한 가지 숙원.

회귀자들의 대부분이 회차 목표를 이루려고 했던 절대적인 이유였다.

‘원래 내가 태어나고, 살아가던 지구로 되돌아가는 것도 가능하겠지.’

지금 무엇을 말하느냐에 따라서 나는 그 무엇이든지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유혹에 앞서서.

나는 눈앞의 절대자를 노려보았다.

“명계왕. 숙원을 빌기 전에,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지금에서조차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이 있었다.

“도대체 이 엿 같은 회귀는 누가 만들어낸 겁니까?”

***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 사망회귀.

120회차에 다다르며 많은 이가 반복된 회귀로 끝없이 고통을 받았다.

인류를 미치게 만든 회귀의 주범이 과연 누구인지 나는 알아야만 했다.

“세상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명계왕은 침묵하거나 뜸 들이는 것도 없이, 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세상과 세계. 세계와 세상. 그것들이 한데 모여 ‘세계관’을 형성하지.”

명계왕이 초록색 기운의 왼쪽 손뼈를 휘젓자 드넓은 우주가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세상이었다.

“그리고 이런 세계관에 신보다 더 높은 자리에 위치한 존재가 있다.”

수많은 세상을 거느린 세계관 위에서 유일하게 아득한 존재가 빛난다.

하나 그 빛이 너무 강렬해 난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찌푸렸다.

“우리가 사는 ‘세계관’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존재. 알려진 이름은 없다. 단지 ‘정상의 존재’라고 불리지.”

명계왕이 뼈 손아귀를 거두자 방금까지 보이던 세상들이 없어졌다.

나는 그 설명을 간단히 요약했다.

“그러니까, 인류를 회귀시켜온 새끼가 그 ‘정상의 존재’란 겁니까?”

“이해가 빠르군. 그대의 거친 말투가 조금 심기에 거슬리긴 하지만.”

그러나 이해가 쉽게 가지 않았다.

“세계관의 정상에 위치한 존재가 왜 인류를 회귀시켰던 겁니까?”

“정상의 존재는 이쪽 세상에서 자신의 뒤를 이을 후보를 선출하길 원했으니까. 그래서 선택했던 수단이 바로 ‘회귀’와 ‘회차 목표’였지.”

세계관의 정상이 되기 위한 후보.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온 수없는 회귀와 회차 목표의 존재 이유였다니.

“정상의 존재는 반복되는 회귀 속에서도 강인한 일념으로 목표를 이루는 회귀자를 후보로 선출하려 했던 것 같군. 1회차인 그대가 회차 목표를 이룬 건 꽤나 의외이지만.”

한꺼번에 놀라운 정보를 듣게 되자 머리 한구석이 울리는 것 같았다.

내친김에 나는 예전부터 품어왔던 의문 하나를 더 물어보았다.

“그럼 내가 원래 살던 지구에서 이계로 넘어왔던 건 어떻게 된 거죠?”

“세계와 세상이 뒤얽히다 보니, 차원전이는 수도 없이 일어나지. 그대 말고도 차원전이의 피해자는 많아. 그대 개인에게는 운 나쁜 비극일지 몰라도, 우주적으로는 흔한 일이지.”

그렇다면 다른 세상에 나 말고도 차원전이한 지구인이 또 있단 건가?

명계왕은 왼쪽 손뼈와 오른쪽 손바닥을 치면서 대화를 일축하였다.

“하여간, 잡설이 길었군. 그간 그대는 회귀자들에게 치여 고생했지. 죽다가 살아나기도 부지기수였고. 그래서 내가 ‘정상의 존재’ 대행으로 이곳에 온 거다. 무엇을 이루겠나?”

그간 지나온 모든 여정의 결과물.

나 역시 뜸 들이지 않고서 말했다.

“내가 직접 멸망시킨 세상을 복구시켜주십시오. 단, 솔로몬은 빼고.”

한순간도 뜸 들이지 않고 말하던 명계왕이 이번만큼은 한참 침묵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고작 그딴 숙원으로 만족하나? 원래 살던 세계로 보내 달라는 숙원이나, 불멸을 살아갈 수도 있는데.”

경솔한 발언을 숙고해보라는 것처럼, 그가 나를 보며 깊이 충고했다.

“아니.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신이 된다면 앞서 말한 모든 게 가능하겠지.”

나도 유혹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신이 되어도, 신력의 기원이 될 세상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물론 세상을 복원하는 김에 모든 사망자를 되살려 달라 할 수도 있다.

회차가 시작되자마자 자살했던 회귀자들이나, 내 자식을 그리워하던 전 부인 모두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적인 욕심만은 안 된다.

‘유혹은 들지만, 숙원을 빌 때만큼은 절대로 과욕을 부려서는 안 돼.’

아크 리치, 불멸 아귀, 솔로몬.

그 셋 또한 나처럼 회차목표를 달성하였지만, 대륙지배자로 전락했다.

전지전능이란 숙원이 한낱 인간에겐 너무 과분한 숙원이었기 때문에.

“내가 회차 목표를 이루려 했던 이유는 숙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명계왕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럼 그대는 뭘 위해 싸워왔지?”

“이제, 회귀를 멈춰주십시오.”

내가 지금껏 달려온 여정의 목표.

그동안 인류를 미치게 해온 재난.

그 모든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다.

“120회차가 마지막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류의 회귀를 끝내겠습니다.”

***

오래간 침묵한 뒤 명계왕은 처음으로, 나를 향해서 클클 웃어 보였다.

“그대는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하지 않았나. 정상의 존재가 인류를 회귀시킨 이유가 자기 뒤를 이을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서였다고.”

나를 바라보는 명계왕의 시선이 방금 전과는 전혀 달라진 것 같았다.

이제 그는 나를 친근하게 보았다.

“이제껏 회차 목표를 이룬 회귀자는 그대 말고도 셋이나 있었다. 그러나 모두 끝에서는 탈락해 버렸지.”

왼쪽 손뼈가 나의 어깨를 짚는다.

“마지막 숙원으로 무엇을 비느냐, 그리고 무엇을 위해 목표를 완수했느냐에 따라서 합격 여부가 갈린다. 그대는 아주 멋지게 통과해 버렸군.”

명계왕이 유쾌한 어조로 선언했다.

“정상의 존재를 뒤이을 일곱 명의 후보. 이제 그대는 그중 한 명이다.”

내가 놀라서 물었다.

“정상의 존재 후보가 저 빼고도 여섯 명이나 더 있습니까?”

명계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관’에는 내가 눈여겨보고 있는 일곱 명이 존재한다. 각기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지. 언젠가 경쟁이 벌어지고 최종후보만이 다음 ‘정상의 존재’가 될 테지.”

그는 누군가를 떠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혼자서 클클 웃어 보였다.

“후보 중에 천 번을 살아가는 자도 있어. 그대와는 정반대의 상성을 가졌지만, 그는 아주 유력한 후보야.”

120번을 산 회귀자도 지긋지긋한 마당에 일천 번을 산 놈이 있다고?

제길, 상상만 해도 얼마나 미친 녀석일지 등골에 소름이 다 끼친다.

하여간 명계왕이 내게 말하였다.

“어쨌든 간에 이제껏 회차 목표를 이뤘던 모든 인간 중에서, 그대야말로 가장 완벽한 숙원을 빌었다.”

그러나 그런 절대자의 찬사에도 그다지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카티에.’

되살아나도 카티에는 기적 때문에 몇 년 후에 죽게 돼버릴 운명이다.

마지막 삶에서마저, 그녀가 시한부 인생이라면 그것은 너무 비참했다.

과욕으로 인한 파멸을 피하기 위해서 숙원은 욕심 없이 빌었지만 나는 그녀를 살릴 수 있는 기회 또한 놓쳐버린 것이다.

그러한 나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명계왕이 깊이 충고했다.

“제한된 수명은 함부로 뒤틀 수 없네. 그것은 정해진 인과율이니까. 정상의 존재도 결코 좋아하지 않지.”

무거운 마음과 다르게, 숙원에 의해서 멸망한 세상은 복구되어간다.

삭제되었던 건축물, 자연환경, 사람들이 공백 속에서 다시금 일어선다.

밀밭과 강물, 사막이 샘솟아가는 세상을 볼 때, 명계왕이 제안하였다.

“아, 후보로 발탁된 그대가 원한다면 지금 정상의 존재와 대면시켜줄 수 있네. 설령 절대자에 준하는 지위라고 해도 주어지지 않는 기회지. 지금 정상의 존재를 뵈러 가겠나?”

정상의 존재를 만날 수 있는 제안.

세상에 둘도 없는 기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습니다.”

“정말 괜찮겠나? 지금을 놓쳐버린다면 평생 이런 호기는 없을 텐데.”

“그보다는.”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카티에를 되살리려면, 인과율마저 개입할 수 있는 자를 만나야 한다.’

절대 비틀 수 없는 세상의 인과율.

그러나 오직 단 한 명, 그걸 비틀 수 있는 유일한 자를 난 알고 있다.

“혹시 지금 말하는 인물한테 저를 데려다줄 수 있겠습니까?”

***

천막을 들추고 난 안에 서 있었다.

어둡고, 고즈넉한 곳에서 눈 뜬다.

조명이 내리쬐는 수더분한 바구니와 물감들을 보다 난 눈을 올렸다.

“아…….”

내 주위로 빛의 새가 날아다녔다.

빛과 새의 경계에 놓인 추상체.

과거에는 만질 수 없었던 그것을, 지금 나는 손가락에 올렸다.

“한 번 사는 자여.”

나는 고개를 돌렸다.

소녀인지, 소년인지 성별이 짐작 가지 않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아이.

유랑자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결국, 우리가 또다시 만났군.”

그를 보며,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품에서 유랑자의 쪽지를 꺼낸다.

글귀 하나 없이 텅 빈 종이일 뿐이던 그것을, 이젠 읽을 수 있었다.

「그녀를 기구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싶다면, 날 찾아와라.」

“네가 이 쪽지를 내게 보냈었지.”

“그 쪽지를 읽을 수 있다면 자네도 결국 세상 하나는 멸했다는 거군.”

유랑자가 기분 나쁘게 웃었지만, 나는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카티에의 삶을 늘리고 싶다. 그녀를 시한부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아.”

“딱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정상의 존재의 눈을 피해, 난 인과율을 비틀 수 있는 방법을 알지.”

유랑자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빛새가 날개를 펼치더니 나에게서 벗어나 그에게로 날아갔다.

그 탓에, 나의 주위가 어두워졌다.

“하지만 공짜로는 해줄 수 없어. 그녀의 운명을 변화하려면, 자넨 내 종으로서 아주 많은 일을 해야 해.”

유랑자의 노예로 지내야 한다니.

솔직히, 전혀 내키지 않았다.

“쉽지 않을 거야. 내가 복수하고 싶은 자도 있고. 내게 복수하려는 자도 많지. 자넨 그 모든 이에게서 목숨을 지키며 명령을 따라야 하네.”

유랑자가 나를 깔보며 웃어 보였다.

“120회차가 지옥이라고 했던가? 그곳이 아주 살기 좋은 낙원이었단 걸 내 노예로 살면 알게 될 걸세.”

유랑자는 날 처음 봤던 때부터 지금 이 순간을 노린 걸지도 모른다.

마침내 유랑자가 거래를 제안했다.

“그래도 하겠나?”

그러나 지금은 이것만이 카티에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난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말했다.

“선언하게. 그럼 자연스럽게 나와 계약이 체결될 거야. 노예로 복종하면, 자네가 원하는 것을 내주겠어.”

유랑자는 자기가 유리한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낄낄거렸다.

“이해 가지 않아. 그깟 여자 하나가 뭐라고 내 노예가 된단 말인가.”

“나도 동감해. 그깟 내가 뭐라고 그녀는 그렇게 희생하며 살았을까.”

순간, 스쳐서 지나갔다.

내가 보았던 그녀의 전생들이.

날 위해 몸 바치던 카티에의 삶이.

그러니, 이제는 되갚아줘야겠지.

“너의 종이 되겠다. 유랑자. 카티에의 제한된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

선언을 마치자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내게 짙은 문신이 새겨졌다.

“끄흑……!”

고통에 신음 흘리며 무릎 꿇은 내 앞에 유랑자가 픽 웃으며 돌아섰다.

“유랑자는 이명일세. 나의 본명은 레펠카테스 라 데페라도. ‘마황’이라 불리던 누님의 성을 따랐지. 자, 따라오게. 노예에게 규율을 알려주지.”

깊게 결심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겪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들에게로 돌아가겠다고.

***

인류는 잠시나마 죽음을 체험했다.

하나 세상이 복구되며 되살아났을 때, 모두에게 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회차 목표가 달성되었습니다.]

[인류의 회귀가 멈췄습니다.]

[사망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며, 120회차가 마지막입니다.]

고작 세 줄의 문구가 세상에 가져 오게 된 영향은 그야말로 막대했다.

“회차 목표가…… 달성됐다고?”

“영원히 회귀할 줄로만 알았는데.”

“……이, 이번이 마지막 삶이라니.”

마지막 회차를 맞은 회귀자 모두가 당황하고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당연히 모두가 회차 목표가 완수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역대 회차 중에서 가장 난이도 높은 목표였잖아. 그런데 대체 누가?”

“회차 목표를 완수하려던 영웅들도 다 자살했는데, 회귀를 멈춰냈다니.”

“윤회수뇌부도 없고. 앞으로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버림받았던 회차가, 이제는 그들에게 있어 마지막 삶이 되어 있었다.

회귀가 멈춘 소식을 당면한 직후.

회귀자들의 반응은 극렬하게 갈렸다.

“드디어 삶을 끝낼 수 있겠구나.”

“평생 죽지 못했어! 회귀란 것에 지쳐 있었다고. 우린 구원받은 거야.”

“그동안, 너무도 오래 살아왔었지. 이제는 쉬고 싶어. 안식을 얻겠어.”

처음은 놀랐지만 마침내 죽음에 닿은 것에 안도하는 회귀자가 있었고.

“더 이상 회귀할 수 없다면, 목숨의 가치도 모르는 미친놈들도 줄겠군.”

“이번이 마지막 삶이라면, 끝은 내가 원하는 결말로 마무리 짓겠어.”

“제대로 살자. 마지막 삶만큼은.”

마지막 삶을 제대로 살아가겠노라 다짐하는 회귀자들도 있었으며.

“마지막 삶? 그게 어쨌다는 건지.”

“회귀자는, 회귀자답게 살아야지.”

“어느 회차든지, 내 삶은 똑같아.”

여전히 회귀자답게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 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마지막 삶에서.

“회귀는 멈추고 세상은 돌아왔지만, 어째선지 한 놈만 없는 것이야.”

살아남았지만, 평생 뱃가죽에 짙은 흉터를 남기게 된 용이 우울해했다.

“우리가 되살아난 걸 보면 범철이 솔로몬을 죽인 것은 확실합니다만.”

살아남았지만, 한쪽 눈을 잃고 왕을 그리워하는 남자가 한숨 쉬었다.

“늘 기다리는 것은 그였고 찾아가는 것은 나였는데 반대가 됐네요.”

살아남았지만, 수년의 시한부를 선고받은 성녀가 조용히 말하였다.

“대장은 결국 거짓말을 했어요. 우리가 바라온 삶을 이뤄준다더니.”

그들은 세상의 모든 곳을 뒤졌지만, 범철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자살기도회나, 이종족, 용들의 도움도 받아봤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다.

“……아빠! 어디에 있어!”

“캬아앙!”

“……!”

“꾸아아아아악!”

“울지 마. 나는 놈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전혀……제기랄.”

주인을 잃은 애완수들은 엉엉 울었고, 세 사람도 한껏 지쳐버렸다.

모두가 부정하려 했지만, 한 가지 사실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적과 함께 죽은 것일까. 범철은.’

그러한 차갑고 슬픈 의심 속에서.

그녀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뱉는다.

“기다리기 싫으니까, 빨리 와요.”

마지막 회차, 그가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카티에가 하늘을 보았다.

“우리가 바라온 마지막 삶이, 당신 없이 완성될 리가 없잖아요.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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