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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96화 (196/200)

나만 1회차 196화

[각성한 시간의 돌의 사용횟수가 강제적으로 소모되었습니다.]

[인과율 균열 속에서 가장 깊숙한 곳, 무저갱 단층에 들어섰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곳은 사방이 어두컴컴한 나락의 끝자락이었다.

‘무저갱 단층?’

시간을 너무 오래 멈추면 갇히게 되는 세월의 단층과는 다른 곳일까?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곳인데.”

무저갱 단층.

사방은 깜깜한 어둠 속이었다.

발바닥에 닿는 평평한 바닥만 느껴질 뿐 다른 구조물은 찾을 수 없다.

[무저갱 단층은 시공간이 비틀어져 형성된 수련의 공간입니다.]

[영겁수련관에 입문했습니다.]

그런 문구가 떠올랐을 때, 갑자기 어둡기만 했던 공간이 확 밝아졌다.

‘저건…… 시련방?’

예전에 갔던 칼의 시련방, 마법의 시련방, 그리고 지옥의 시련방처럼.

그와 제법 비슷한 구조를 지닌 다양한 시련방이 수백 개나 보였다.

그리고 밝은 문구가 떠올랐다.

[입문자는 무저갱 단층 속에서 무한한 기간을 수련할 수 있습니다.]

[영겁수련관 대사범은 바로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시련방입니다.]

[이곳에 있는 172개의 시련방을 끝마칠 때까지 나가지 못합니다.]

[무저갱 단층에서 지낼 동안, 현실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습니다.]

[다만, 시련방에서 사망할 경우 실제로 사망하니 주의하십시오.]

‘172개나 되는 시련방. 이걸 전부 들어가서 시련을 완수해야만 한다.’

오로지 수련만을 위한 특이공간.

다른 사람이라면 기가 질렸겠지만, 지금의 나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오히려 잘 된 것일지도 모른다.

‘솔로몬. 그 자식을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능을 키워내야만 해.’

단층 속에 있는 최상위 수련관!

여기서 수련하는 동안에는 현실의 시간이 전혀 흘러가지 않는다.

‘딱히 반응 없는 걸 보니 솔로몬도 여기는 침범하지 못하는 모양이고.’

이곳은 아무도 날 방해하지 못하니, 오로지 수련에 매진할 수 있다.

‘그런데 시련방이 172개나 되면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걱정을 할 참에 추가적인 문구가 이어서 떠올랐다.

[영겁수련관에서는 식사, 수면, 각종 생리활동이 필요치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오래 지날지라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층 속에서 입문자의 수명은 무한합니다. 한계까지 수련하십시오.]

‘정말 수련만을 위한 공간이군. 이거라면 끝없이 수련할 수 있겠어.’

지친 몸을 휴식해 회복하고, 나는 영겁수련관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가장 쉬운 시련방부터 시작했지만, 한 가지 큰 부작용을 겪게 되었다.

그간 구중투구를 과용한 부작용 탓에 아홉 개의 인격이 생겨난 것이다.

[구중투구를 과용해 왔습니다.]

[새로운 여덟 개의 인격이 생성돼 당신은 구중인격자가 되었습니다!]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식은땀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하기야 그간 많이 쓰긴 했었지. 제기랄, 정신적 참사가 따로 없네.’

시련방을 드나드는 동안, 내게 생겨난 여덟 개의 인격과 함께했다.

덕분에 외롭지는 않았지만, 갖은 소음들 탓에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오늘도 좋은 아침! 또 수련이야? 시련방 말고 꽃놀이를 가고 싶어!”

“우하하! 아주 슬프고 너무 좋아!”

“투덜대지 마. 강해지려면 수련해야 하는걸. 솔로몬을 이기기 위해서.”

“수련하다고 이길 수 있을까요? 그 솔로몬은 무려 신에 가깝다구요!”

“오렌지 먹고 싶다!”

“……짐은 나태하여 죽겠도다.”

“오늘은 시를 쓰고 싶군. 수련이 끝난 뒤 내게 몸을 맡겨라. 제1 인격.”

“웃기지 마! 몸을 쓰는 건 나야!”

“망할, 제발 조용히 할 수 없냐?”

혼잣말을 내뱉고, 혼자서 대답한다.

누가 보더라도 미친놈 같았겠지만, 봐줄 사람도 없으니 상관이 없었다.

그보다는 아홉 인분의 혼잣말을 내뱉느라 목이 아프단 것이 문제였다.

‘거슬리지만, 어쩔 수 없군.’

나는 짜증을 다스리고 독창적인 여덟 인격과 함께 수련을 계속해왔다.

‘정말 별의별 시련방이 다 있네.’

시련방에서 해당 시련을 완수하면 특정 재능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

‘한 재능의 숙련도를 몰아서 올릴 수 있다는 점이 간편하군.’

수십 시간 쉬지 않고 명상하기도 했고, 차를 배 터지게 먹기도 했다.

믿기지 않는 경험을 할 때마다 내가 수련한 재능의 경지는 높아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니, 시스템?”

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였지만, 질문한 녀석은 제2 인격이었다.

[112년의 세월을 수련했습니다.]

[현재 가장 열심히 단련하는 재능의 경지가 중간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정점까지 오르기 위해선 전보다 더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112년.

오래 살아온 회귀자라면 모르겠지만, 내겐 지나치게 무성한 세월이다.

그런데도 딱히 실감 나지는 않았다.

‘쉴 새 없이 시련방을 드나들고 재능만 키우다 보니 시간이 정말로 후딱 가버리네.’

특히나 여덟 개의 인격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오늘은 에테르 나무 시련방에 가자. 거기 맛있는 사과가 있을 거야. 제발 이 몸을 나한테 맡겨줘, 응?”

“단팥 먹고 싶다!”

“아니. 대마술관 시련방이 훨씬 나을 테지. 거기에는 장서관도 있다. 이 몸의 진짜 주인은 바로 짐이다.”

백 년을 넘도록 함께한 여덟 인격.

녀석들은 내게서 육신의 지배권을 훔쳐가려고 호시탐탐 욕심을 냈다.

처음에는 여덟 인격들에게서 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녀석들과 지내는 것도 점차 익숙해져 갔다.

‘여덟 인격의 대부분은 몹시 순수하고 각기 다른 분야에서 소질이 있다.’

예술이나 첩보활동, 화술처럼 내가 미처 재능이 없는 분야의 활동!

오히려 특정 인격이 나의 몸에 빙의해 나를 구해줬던 순간도 있었다.

물론 내가 여덟 인격과 함께할 수 있는 것도 조련 재능의 덕이 컸다.

‘단순해서, 이용하기도 쉬우니까.’

초반에는 다퉜지만 단순해서 조련할수록 오히려 이점이 있는 인격들이다.

물론, 너무 가까이하면 내 몸이 오히려 먹힐 테니 조심해야겠지만.

재능을 수련하기 위해 시련방을 드나들수록 난이도가 크게 높아졌다.

오랜 심층수에서 해왕을 상대하다 산호에 얽혀서 죽을 뻔하기도 했고.

화산에서 장엄한 불의 현인을 상대하다가 온몸이 녹을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솔로몬.’

내가 수련하는 동안 현실 시간은 멈춰 있기에, 놈은 아직 신이 아니다.

하나 전지전능한 신에 가까운 적과 싸우려면 나도 괴물이 되어야 한다.

‘나의 몸에 깃든 가장 거센 재능.’

그것을 한계까지 단련해야만 난 솔로몬과 겨룰 수 있는 힘을 얻는다.

‘45회차의 시절. 회귀자의 왕.’

직접 전생으로 돌아가 경험해봤던 그 시간을 난 결코 잊을 수 없다.

정점까지 수련을 마친 SSS급 재능!

‘최고의 재능을 최후까지 수련해야지만 난 솔로몬과 맞먹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난 45회차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수련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수명이 줄지 않는다.’

따라서 노화가 벌어지지도 않았다.

난 잠을 자지 않고, 음식을 먹지도 않았으며 한눈팔 새도 없이 수련에만 매진했다.

영겁수련관에선 기억을 잊는 일도 없기에 수련 속도가 매우 빨랐고, 목적의식이 흐려지는 일도 없었다.

간간이 휴식하는 일도 있긴 했지만, 그건 시련 보상으로 해결했다.

[회복의 단팥을 섭취했습니다.]

[한계까지 쌓인 피로도가 700% 속도로 회복됩니다.]

“춘장도 먹고 싶다! 몸 내놔!”

성미라곤 식탐밖에 없는 제6 인격의 발언을 무시하고 나는 일어섰다.

수련, 수련, 그리고 또다시 수련.

영겁수련관에 있는 각종 시련방을 돌아다니며 나는 재능을 키워냈다.

“지겨워 하품이 나오는구나. 커흠.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수련관?”

나의 입을 빌려서 제8 인격이 묻자, 자동적으로 문구가 떠올랐다.

[500년의 세월을 수련했습니다.]

[시련방이 20개 남았습니다.]

[20개의 시련방은 입문자가 가장 많이 죽은 역대급 난이도입니다.]

이제 수련관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하나같이 끔찍한 시련방뿐이었다.

시련방 하나를 들어갈 때마다 그곳에서 25년 가까이 세월을 투자했다.

생사를 넘는 일이 허다했고.

162번째 시련방, 암석용 대전장에서 최후의 승자로 군림할 때.

[오랜 싸움으로 명계왕의 진혼검의 숨겨진 성능을 발견했습니다.]

[명계의 대요괴 한 마리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소환자의 명령에 복종하겠지만, 물은 먹이지 마십시오.]

오랜 기간 고생하며 진혼검에 숨겨져 있던 세 가지 성능도 찾아냈다.

명계의 요괴를 소환하는 주문과, 절삭력을 올려주는 옵션, 그리고 떨어뜨린 별을 폭발시키는 스킬까지!

‘유용하겠군. 솔로몬을 죽이기에.’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솔로몬에 대한 적의는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그럴 수 있던 것은 내가 지켜야 할 것들에 관해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련방의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내 눈앞에 문구가 떴다.

[천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모든 시련방을 완수했습니다.]

[172개의 시련방을 끝마친 보상으로 가장 숙련도가 높은 재능이 정점의 경지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넘었습니다!]

[현재까지 무저갱 단층 입문자 중 유일하게 대사범을 꺾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손아귀에 수수한 허리띠 하나가 너풀거리며 내려앉았다.

지금까지의 수련관 허리띠와는 달리 색깔을 묘사할 수 없었다.

육안으로는 색을 정의할 수 없는, 그야말로 무색의 허리띠.

[영겁허리띠를 획득했습니다.]

[무색無色이므로, 모든 세계의 수련관에 도전할 자격을 얻습니다.]

[영겁수련관에서 나갈 권한을 얻게 되며, 1회 죽음을 모면합니다.]

‘한 번 죽음을 모면할 수 있다니.’

생각보다 심심한 보상이었지만, 수련의 목표는 달성했으니 만족했다.

형체가 고정되지 않은 허리띠를 매고 나자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됐다.

“이제, 작별할 시간이다.”

“아, 안 돼! 소멸되기 싫어!”

스스로 나의 뺨을 여덟 번 때리자.

천 년간 함께 한 인격이 소실됐다.

그동안 나를 괴롭혀왔던 인격들이기에, 깔끔히 소멸시키니 후련했다.

‘고작 자해 한 번으로 몸에 얽매인 인격도 파괴할 수 있게 되었다니.’

정점까지 단련한 재능 덕에 확실히 이전과 비교도 못 할 경지에 올랐다.

‘하여간, 이제야 돌아갈 수 있어.’

나는 무저갱 단층을 내찢고서 내가 살고 있던 세상으로 귀환했다.

***

천 년 만에 귀환한 이계.

그러나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가 넘어간 이후로 1초도 흐르지 않았다.

찝찔하고 삭막한 검은 모래사막.

“꺄아아악!”

천 년 만에 듣는 목소리지만 그 주인이 정확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과율의 교차공간에서 붙잡혔던 카티에는 솔로몬에게 멱살을 잡혔다.

“왼손을 잘랐다고 방심했군. 역시 성녀인 네 목숨을 제거했어야…….”

그러나 그 전에 내가 달려나갔다.

서걱!

발 빠르게 달려가 맹염을 씌운 칼로 솔로몬을 베고 카티에를 구했다.

“……대장?”

나는 그녀를 감싸고 적을 보았다.

단지 그랬을 뿐인데 솔로몬은 나를 보더니 전에 없던 경계심을 표했다.

“이전과는 느낌이 다르군. 넘어간 ‘저편’에서 무슨 일을 겪고 왔나?”

“수련했어. 천 년의 시간 동안을.”

카티에가 놀란 눈으로 날 보았다.

“대장……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내가 어깨를 낮추며 미소 지었다.

“너하고 어울리게 정신을 천 년 삭히고 왔거든. 나도 좀 삭막해졌냐?”

카티에는 고갤 숙이고 픽 웃었다.

“취소하죠. 여전히 그대로네요.”

“물러나 있어. 저놈은 내가 죽여.”

귀환한 나는 이전의 나와 다르다.

천 년간 수련한 것은 신에 도달해 가는 저놈을 죽이기 위해서니까.

솔로몬이 내게 베이고 회복된 손등을 쥐었다 펴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천 년 동안 수련했다고. 45회차처럼 나를 검으로 대적할 셈인가?”

회귀자의 왕이자 검제였던 45회차.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 년의 세월. 그곳에서 오직 단 하나의 재능만을 정점까지 키웠다.”

그간 수련을 해오면서 깨달았다.

카티에가 어째서 날 단층으로 보내 영겁수련관에서 수련을 시켰는지.

‘정점까지 키웠을 때,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재능.’

그러나, 그만큼 무지막지한 시간과 어마어마한 숙련도를 잡아먹는다.

시련방을 완수할 때마다 모든 숙련도 보상을 ‘한 재능’에만 투자했다.

그리고 천 년의 세월을 투자한 끝에야 난 ‘그 재능’의 정점에 올랐다.

나는 솔로몬의 눈을 똑바로 봤다.

“너의 가장 큰 실수는, 내게 준 재능을 다시 뺏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령 눈앞의 솔로몬이라도 결코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정의 초반, 어느 마탑주가 내게 알려줬던 정보를 다시금 상기했다.

실로 미친 재능이지만 인간 수명으론 정점까지 수련할 수 없는 분야.

그러나 정점에만 도달할 수 있다면 세상을 휩쓸 수 있는 유일한 재능.

마침내, 수련관에서 보낸 영겁의 시간이 나의 재능을 개화시켰다.

“나의 마법은 12서클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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