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95화
“크라아아아!”
실로 오래간만에 용으로 돌아온 그녀의 모습은 이전보다 커져 있었다.
샛노랗기만 하던 비늘 색깔은 이전보다 훨씬 짙고 한층 성숙해졌다.
비늘이 뜯기고, 내장을 흘리고 있지만, 고귀한 자태의 황색 빛깔 용!
본모습으로 변화한 퀸소히니베가 선혈을 흩뿌리며 적에게 달려든다.
“크라아아악!”
“어른이 된 용이여. 용이 군단으로 달려들더라도 아크 리치에게 몰살당할 뿐이었던 과거를 벌써 잊었나?”
포효하며 달려드는 퀸소히니베에게 솔로몬은 조소를 지어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벌어준 잠깐의 틈.
나는 그 시간 동안 투구를 착용하고, 각종 스킬을 준비할 수 있었다.
‘구중투구 착용. 순간가속 발동. 마나원천 괴력술. 그리고 공간왜곡.’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며 나는 솔로몬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라아아악!”
솔로몬이 그녀를 내쳐 자빠뜨렸다.
퀸소히니베를 상대하느라 내보인 빈틈을 향해 난 맹렬히 파고들었다.
[구중투구가 폭주 중입니다!]
[이대로 가면 당신의 인격이 여러 개로 늘어날 위험성이 있습니다.]
[연속된 공간왜곡을 사용해 고정된 땅에 적응하기 어려워집니다!]
[심각한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각종 부작용이 일어날 만큼 무리가 갔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움직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공격할 기회가 나지 않아.’
지금 솔로몬은 어떤 상처를 입든지 빠른 속도로 회복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검으로 입히는 타격은 그 회복속도를 넘어섰다.
무수한 마찰력을 머금은 진혼검이 왜곡된 공간에서 솔로몬을 덮쳤다.
“초조하나?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 될 순간이?”
하나 솔로몬은 히죽 웃으며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칼날을 막아냈다.
명계의 맹염을 두른 무수한 공격조차 놈을 감히 불태울 수는 없었다.
“크헉!”
솔로몬의 주먹도 만만치가 않았다.
난 타오르는 지배자의 갑주가 갈라지는 것을 느끼며 피를 흘렸다.
퀸소히니베는 한쪽 날개가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응급치료하며 카티에가 매서운 눈으로 내게 소리쳤다.
“지금이에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긍정한다.
솔로몬이 손을 들어서 동작을 취하려고 했을 때, 내가 손목을 끊었다.
피가 튀며, 손이 떨어졌지만 솔로몬은 별 감흥 없는 표정일 뿐이다.
“그래서, 이게 전부인가?.”
“아니.”
나는 마지막으로 온갖 힘을 짜내서 최후의 맹염을 두르고 일격을 날렸다.
휘익!
이윽고 솔로몬의 목을 베기 직전.
아주 천천히, 솔로몬이 웃음을 지우곤 번득대는 눈동자로 날 보았다.
“정말이지, 나를 질리게 하는군.”
놈이 잠시 집중하자, 내가 입혔던 그 모든 상흔이 깔끔히 회복되었다.
그리고 날 뛰어넘는 속도로, 검의 일격을 피하며 내게 손을 뻗었다.
‘……망할.’
극한의 절망을 느꼈던 순간, 눈앞의 힘에 휘감기며 의식은 끊어졌다.
***
세상은 어둠에 물들어져 있었다.
어쩌면 모든 것이 꿈이었을지도.
“괘…… 습……. 범…….”
누군가 나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눈을 감고 기절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습니까, 범철.”
어렴풋이 눈을 가늘게 떠보았다.
누군가 나를 양손에 안고 있었다.
나는 등골이 섬뜩해졌다.
“……헤르탄. 당신 눈이!”
“세상에 의안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범철.”
왼쪽 눈을 잃은 헤르탄이 흐른 피를 닦지도 못하고 날 업고 뛰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죠?”
“지금은 애완수들이 솔로몬에게서 시간을 벌어주고 있습니다만, 그리 오랜 시간을 벌 수는 없을 겁니다.”
저편에서 드워프 군세와 애완수가 솔로몬을 대적하는 광경이 보였다.
“끄어억!”
“대마술사를 막아내라!”
그러나 드워프는 빠르게 숫자가 줄고 있었고, 애완수들도 많이 다쳤다.
“캬아앙!”
백야는 축지법을 쓰며 움직였지만, 솔로몬은 모든 움직임을 읽어냈다.
“꺄악!”
초화의 뿌리가 몇 줄기 끊겨버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쓰러졌다.
“아악! 내 얼굴!”
달귀는 새로운 낯을 빌렸던 것 같지만, 얼굴이 반쯤 뭉개져 버렸다.
“꾸와아악!”
동북이는 등껍질에 금이 가버렸다.
“……아파, 제기랄.”
아기 로크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두 번째 죽음을 각오한 표정이었다.
모두가 다치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솔로몬의 얼굴은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처럼 여유 자체였다.
“나는 잠시 후, 120회차의 신으로 강림한다. 설령 회귀자라도 내게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전지전능한 신에게 반항하는 그 순간, 회귀를 할 수 없게 만들고 죽여 버릴 테니까!”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군요.”
헤르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로몬은 장기전을 택한 겁니다. 그래서 계속해 방어만 하는 거죠. 어차피 시간만 흐르면 뭐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 될 테니까.”
퀸소히니베와 마찬가지로.
헤르탄 또한 마지막을 직감하는 표정으로 나를 힘겹게 바라보았다.
“범철. 그대가 보았던 저의 최후가 실현될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우릴 놓아주지 않겠다고 했죠. 하지만 세상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헤르탄의 말은 옳았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 수 없다.
인정하기 싫던 그 사실이, 현실이 되어서 내 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구중투구, 공간왜곡, 순간가속, 마나원천 괴력술, 명계의 맹염까지!
나는 모든 전력을 쏟아내 싸웠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순식간에 회복하여 저곳에서 버젓이 웃고 있었다.
저런 놈을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우리 중 누군가가 죽여야 한다면…… 부디 나부터 포기하십시오.”
헤르탄은 나를 아주 부드럽게 내려놓으며, 무릎을 꿇으면서 쓰러졌다.
“살아남으십시오. 나의 왕이시여.”
그의 가슴에 큰 구멍이 나 있었다.
내가 기절한 새, 솔로몬과의 난전에 의해서 다친 상처가 분명했다.
“헤르탄!”
쓰러진 그를 추스르려 했을 때, 카티에가 다급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대장. 시간이 없어요.”
“알아, 하지만 헤르탄이!”
“응급치료와 지혈은 해놓을게요. 다만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어요. 조금 있으면 솔로몬이 올 테니까.”
회귀자다운 냉정한 대처를 하고서 카티에가 황금의 치유석을 꺼냈다.
“카티에, 그건……?”
“드워프 창고에서 챙겼던 치유석이에요. 쿰룸의 설명이 기억나요?”
그녀가 밟아서 치유석을 깨뜨리자, 놀랍게도 절단된 왼손이 자라났다.
“드워프 전사가 양팔을 다치지 않기 위해 만든 치유석. 부서뜨리면 절단된 손으로 변형이 가능해요.”
“너. 설마 지금 기적을 쓰려고?”
그녀의 왼손이 돌아왔다는 것은, 기적을 쓸 수 있단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적을 쓰더라도 지금의 솔로몬을 우리가 꺾지는 못할 것이다.
카티에가 나의 가슴에 손을 댔다.
“내가 밤새 조사한 것 기억나요?”
내가 가슴팍에 넣어둔 시간의 돌.
그러나 제한횟수를 초과한 그것은 이제는 평범한 돌멩이에 불과했다.
“시간의 돌. 걱정 끼칠까 봐 숨겼지만 사실 이것의 숨겨진 성능을 내가 일깨울 수 있어요. 이건 대장에게 영겁의 시간을 가져다줄 거예요.”
“영겁의 시간?”
바로 그때 솔로몬의 흥분으로 젖은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가까워진다! 내가 전지전능한 신의 자리에 오를 시간이!”
카티에가 입술을 씹고서 말했다.
“설명할 여유가 없어요. 자세한 건 ‘저쪽’으로 가면 알게 될 거예요.”
……저쪽이라니?
순간, 카티에의 왼손에 빛이 났다.
이제껏 써온 어느 기적보다도 빛이 진하고 순수하며 맑은 색이었다.
그리고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한 번뿐인 기적이 쓰였습니다.]
[특수한 영역, 감히 누구도 도달하지 못하는 장소로 도피합니다.]
***
또다시 설원이 찾아온 것만 같다.
그러나 이곳은 춥지 않았고, 그저 무한한 흰색의 공간에 불과하였다.
[인과율이 교차한 공간입니다.]
[미래시간의 파편이 나돕니다.]
[무차별적 사건예지에 이끌려 의식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이곳은 한 번 와보았던 장소였다.
인과율이 교차하는 이질적인 공간.
과거, 아크 리치의 생명그릇을 훔치기 위해서 침입했던 특수한 곳.
‘내가 미래 파편을 보았던 장소.’
과거 이곳에서 나는, 무수히 단편적인 미래들을 목격했다.
‘이전에 왔을 때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는데.’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미래시간 파편은 전혀 없었다.
나는 혼란해지려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지금 상황을 판단했다.
“……카티에?”
카티에가 나의 허리에 타고 있다.
단검이 나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그녀가 굳어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왜……?”
난 숨을 삼키고 식은땀을 흘렸다.
카티에는 순간 차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놀란 얼굴로 변했다.
“나를 배반하려고 하는 거죠?”
“뭐?”
순간, 나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녀가 주저하며 내게 속삭였다.
“잠깐, 미래파편 하나를 봤어요.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에, 대장이 나를 해하려 하는…… 그런 광경.”
저게 대체 무슨 소리지?
그녀가 한숨 쉬며 고갤 내저었다.
“……아니에요. 내가 잘못 봤겠죠. 지금 그걸 신경 쓸 겨를 없으니까.”
카티에가 나의 목을 향하던 단검을 조금 내려서 가슴에다가 겨누었다.
‘방금 그건 무슨 소리였지? 내가 카티에를 배신하는 미래를 봤다고?’
그러나 의문을 해소할 틈이 없었다.
“이곳은 특수한 공간이에요. 우리 세상의 생명체는 감히 올 수 없죠.”
교차공간은 울리고 있었다.
쿠웅!
누군가 넘어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래 버틸 순 없겠네요. 이곳마저 침범해 오다니. 솔로몬은 정말로 신이 되어가고 있어요.”
카티에가 챙겨온 단검에다가 빠르게 눈 부신 빛을 조형하기 시작했다.
난 피투성이였고, 내게 올라탄 카티에도 내가 흘린 피로 젖어있었다.
내가 지친 기색으로 질문했다.
“그런데 내 위에 왜 올라탄 거냐?”
“미래파편이 함부로 다가오지 않게 하기 위해죠. 성녀의 기적이 지켜줘야만 무분별한 예지를 막으니까요. 아까 파편 하나는 실수로 봤지만.”
확실히, 머릿속을 헤집고 어지럽히는 예지 따윈 지금 보고 싶지 않다.
바로 의식을 잃어서도 곤란하고.
“어쩌면 이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될지도 몰라요. 그래서인데…….”
카티에가 약간 망설이다가, 나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장은 나를 왜 사랑하고 있죠?”
“지금 상황에서는 참 갑작스럽네.”
쓴웃음을 지었지만, 그녀는 달랐다.
“나는 대장의 기억에도 없는 인물인데, 대장에게 집착하고 사랑하죠.”
카티에가 뿜어내는 빛이 단검에 녹아들며 빠르게 흡수되고 있었다.
“날 기분 나쁜 짝사랑 취급해도 될 텐데. 어째서 날 좋아해 주는 거죠?”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줄곧 신경 쓰여 왔는지, 약간은 초조한 기색을 담아서 물었다.
“딱히 이번 회차에서 대장이 나를 사랑할 이유는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더 묻고 싶었어요. 나도 이번 120회차만큼은 포기하기 싫으니까.”
쿠우웅!
공간이 한 차례 크게 흔들린다.
지금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 없다.
“혹시나 내가 그간 도와온 전생 탓에 나와 억지로 함께한 거라면…….”
그리고 나의 답변에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지 않았다.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면 어떻게 그딴 걸 사랑이라고 볼 수 있겠어.”
혀는 잘 굴리는 편인데도 이런 말을 지껄일 땐 참 더디기 짝이 없다.
“네가 내게 너무 과분하고, 지키고 싶고, 지킴 받고 싶고. 그러니까.”
나는 어째서 그녀를 사랑하는가.
어쩌면 날 죽일지 모르는 여자를.
“마지막 삶, 너와 함께하고 싶어.”
믿으니까.
지금의 카티에가 날 결코 죽이지 않으리라, 분명하게 믿고 있으니까.
맨 처음, 카티에는 내가 추구하는 평안한 일상을 깨뜨리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없으면 내가 추구하는 일상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마지막 삶에는, 네가 있어 줘야만 해. 카티에.”
“……미안하지만, 나는 아니에요.”
카티에는 나의 시선을 피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을 거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가 충격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만일 이번 회차에서 회귀를 멈추어도 3년 후, 난 죽게 될 거예요.”
“……뭐?”
쿠우우웅!
다시 한번 굉음이 울려 퍼졌다.
금방 무너질 듯 공간이 위태롭다.
내가 놀라서 조급하게 물었다.
“기적 때문이야? 하지만 네 머리칼에는 아직 흰색 머리칼이 있잖아.”
기적을 많이 사용해 머리칼이 완전히 검게 물들면 카티에는 사망한다.
그러나 지금 카티에의 머리칼에는 적지만 흰 머리칼이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전생을 봤다고 했죠? 그렇다면 45회차의 삶도 기억하고 있나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기적을 너무 써 단명한 삶.”
“45회차에서도 ‘한 번뿐인 기적’을 썼었죠. 그래서 대가를 잘 알아요. 이 기적을 쓰면 수명이 ‘한정’돼요. 길어봐야 3년. 내 머리칼은 완전히 흑색으로 물들며, 삶이 끝나겠죠.”
“……그런 게 어디 있어.”
듣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설사 내가 솔로몬을 죽이고 회귀를 멈추는 데 성공해도 그녀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의미 아닌가.
그러나 회귀자로서 수없이 죽어온 카티에는 오히려 나보다 담담했다.
“그간, 난 적지 않은 기적을 써왔으니까요. 오히려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 때문에 회귀를 멈추는 것을 망설이지 마요.”
“안 돼. 그건…….”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카티에가 없다면 세상을 지켜봐야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애당초, 마지막 삶이 시한부 인생이라면 도대체 그녀가 그동안 해왔던 고생은 전부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네가 원한 삶이 아니잖아.”
빌어먹을 눈물로 뺨이 축축해진다.
“…….”
카티에는 나를 조용히 응시하였다.
그리고 웃어주며 내 뺨을 쓸었다.
“존대하지 않을 거니까, 닥치고 들어. 당신한테 처음 해보는 말인데.”
제기랄, 그러지 마. 부탁이야.
“이번이 마지막 삶일지라도.”
카티에는 미소 지으며 날 보았다.
그녀는 누구보다 강인한 여자였다.
눈물에 젖은 나와 달리, 끝까지 슬픈 빛이 감도는 웃음이 날 비췄다.
“사랑하겠어. 범철. 몇 번을 되풀이 하고, 단명하여도, 당신만 영원히.”
카티에가 날 따스하게 끌어안았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녀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쿠우우우웅! 콰자자작!
그리고 마침내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인과율 교차공간이 깨져버렸다.
“성녀, 네까짓 게 감히 변수를!”
솔로몬의 고함이 들려오는 와중에.
“다녀와요, 대장. 기다릴 테니까.”
카티에가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단검이 나의 가슴팍에 내리꽂힌다.
‘실현되었어.’
그토록 오랫동안 불안해하던, 카티에가 나에게 칼을 꽂는 미래였다.
그러나, 결코 그녀가 날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칼날의 끝은 정확하게 시간의 돌에 적중하여 파고들었고, 빛이 뿜어졌다.
[특수한 광채를 쬐면 시간의 돌에 담긴 권능이 크게 강화됩니다.]
[새로운 사용기회가 생깁니다!]
[시간의 돌이 꿰뚫려 내부에 기적을 한계점 너머까지 투영합니다.]
[시간의 돌의 권능이 강화돼 당신을 특별한 단층으로 데려갑니다.]
이윽고 끔찍한 광명이 폭사하였다.
성녀의 수명을 태워낸, 그 어느 기적보다 폭발적인 밝기의 빛이었다.
마지막, 나는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단층 속으로 유폐돼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