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1회차-194화 (194/200)

나만 1회차 194화

순간, 나의 품에서 빛이 터졌다.

나는 시간의 돌을 사용하려 하였다.

‘손에 쥐지 않고도, 몸에 접촉만 해 있다면 시간의 돌은 쓸 수 있다.’

다만 손에 쥐는 것보다 사용이 오래 걸려 때가 상당히 늦어버렸다.

서서히 세상의 시간이 멈추었다.

[오래 시간을 멈추면 ‘세월의 단층’에 빨려들 확률이 높아집니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오래 지낼수록 균열의 인력이 강해집니다.]

[피해를 막으려면 되도록 빠르게 멈춘 시간을 다시 움직이십시오.]

유일하게 남은 시간정지의 기회!

그 1회를 나는 살기 위해서 썼다.

“우욱!”

그제야 펜타그램의 힘에서 벗어난 나는 쿨럭이며 음료를 토해냈다.

‘……썩을.’

입가를 닦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까지 모든 여정이 솔로몬이 의도한 것이었단 것은 충격적이었다.

나를 이용해 두 지배자를 죽이고, 혼자서 전지전능을 이루려는 계획.

‘하지만, 아직 놈은 신이 아니야.’

시간의 돌은 시간을 정지시킨다.

그리고 솔로몬은 아직 자기 자신의 본연의 힘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다.

놈이 완전한 신이 되기 위해선, 힘을 되찾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멈춰진 시간에서 죽인다.’

아직 놈이 전지전능을 달성하지 못한 상황이면, 충분히 죽일 수 있다.

난 명계왕의 진혼검을 움켜쥐었다.

화르륵!

명계의 맹염!

검에서 초록 불길이 파도처럼 토해지며 솔로몬을 집어삼키려던 순간.

‘……뭐야.’

불꽃이 휩쓸고 지나간 연기 속에서 솔로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놀랍군. 시간을 멈추다니. 용의 수장만이 가능한 힘이라고 여겼는데.”

곧장 뒤로 돌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미 몇 발짝 떨어진 장소에서 날 보며 싱긋 웃었다.

나는 순간 내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오직 나만 움직일 수 있는 정지된 시간에서 솔로몬은 회피한 것이다.

“……분명 시간은 멈춰져 있는데.”

흑영사막을 스치던 바람도, 스치는 모래 알갱이도 전부 정지해 있었다.

세상의 시간은 분명히 멈춰 있다.

그러나 시간이 멈춰진 세상에서 솔로몬이 느긋하게 미소를 지었다.

“전지전능에게 시공간의 규칙 따윈 통하지 않는 법이지. 아직 완전한 신은 아니라 몸이 조금 둔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가는 솔로몬은 시간의 규칙에서조차 행동이 자유로워지려고 하고 있었다.

‘죽여야 해. 놈을 한시라도 빨리.’

심장이 뛰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는 달려가 놈을 향해 연속해서 진혼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고 날카로운 검이 솔로몬의 살결을 크게 스친다.

‘확실히, 아직 움직임은 꽤 느려.’

정지된 세계에서 움직이는 것은 놈과 나뿐이지만, 동작은 내가 빠르다.

피가 튀고 살점이 나가떨어진다.

그러나 솔로몬은 침착히 나의 검을 피하며 치명상은 모면하고 있었다.

“슬프군. 원래 피부색과는 좀 다르지만, 간만에 가진 피부를 베다니.”

솔로몬이 손을 내뻗은 순간, 나의 검이 형용할 수 없는 힘에 잡혔다.

순간적으로 나의 동작이 끊겼다.

그리고 놈의 발등이 일순간 나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큭!”

아찔한 고통과 함께 이명을 느끼며 나는 짙은 모래에 나가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놓지 않은 검으로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며 비틀댔다.

찝찔한 피를 뱉고 이를 악물었다.

“……드워프 왕도 네가 죽였나?”

“다른 지배자들에게 자넬 돕는 자가 솔로몬이란 걸 숨겨야 했으니까.”

솔로몬은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놀랍게도 내가 입힌 상흔과 출혈이 미친 듯한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그래서 정의로운 드워프 왕의 문양을 빌렸지. 때문에 다른 지배자가 날 ‘키 작은 자’로 착각했던 거고.”

솔로몬은 경쟁자한테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겨가며 계획을 이행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완벽한 계획은 성공적으로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내가 드워프 왕의 힘을 가져갔으니까. 이미 그는 죽었지만, 그 기운은 세상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어이없게도 최후의 적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나를 신이 되기 위한 ‘재료’라고 칭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내가 다른 두 대륙지배자를 죽이기 위해 가장 최적화된 놈이니까.’

기가 차서 말조차 나오질 않는다.

‘내가 시간을 조금 더 일찍 멈출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솔로몬이 펜타그램을 빼앗기 전에 내가 시간을 멈췄더라면…….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솔로몬은 날 걷어차며 픽 비웃었다.

“오만한 착각은 말게. 조금 더 일찍 움직였어도 자네의 결과는 같았어. 쓰기 전에 돌을 뺏거나 부쉈겠지. 헛짓거리를 가만히 놔뒀겠나?”

“큭!”

나는 모래밭에 나가떨어졌다.

피가 줄줄 흐르며 의식이 연하다.

‘제기랄, 고작 두 대 맞고서.’

지금 솔로몬이 지니고 있는 힘은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지된 시간 속에서조차 그의 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혼자서는 안 돼. 벗어나야 한다.’

나는 다급히 시간이 멈춰 있는 모래폭풍 속을 향해서 뛰어갔다.

어차피 지금의 느릿한 움직임으로는 잡을 수 없단 것을 아는지 놈은 딱히 날 따라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도망치는 내 뒷모습을, 솔로몬은 그저 웃으며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래 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네.”

***

[세월의 단층이 가까워 옵니다.]

[정지된 시간이 늘어날수록 단층 속에서 유폐될 위험도 커집니다.]

세월의 단층의 인력이 감당 못 할 만큼 커졌을 때, 시간을 움직였다.

일행이 모래폭풍 속에서 갑자기 돌아온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대장, 어떻게 된 일이에요?”

“시간을 멈추고 돌아왔어. 지금 설명할 시간 없어. 다들 어서……!”

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놀라운 일이군……. 숨 쉬는 생명 하나하나, 모래알부터 보잘것없는 석편 조각까지도 힘이 된다니.”

순간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쫓아온 걸까.

솔로몬의 목소리와 함께 강력한 힘의 위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드워프들은 무기를 들며 마른침을 삼켰다.

“카르르릉!”

백야가 털을 세우고 으르렁댔다.

“……!”

달귀가 깜짝 놀라 저편을 가리켰다.

날카롭던 모래폭풍이 순식간에 멎으며 그곳에서 솔로몬이 걸어왔다.

그리고 그가 내게서 흡수한 악마의 펜타그램이 그려진 왼손을 뻗었다.

“반전해라.”

그러자 검은 모래가 희어졌다.

싸늘한 바람이 들이닥친다.

모두가 놀라서 몸을 크게 떨었다.

사막이, 순백의 설원이 되었으니까.

***

“……추, 추워!”

“꾸아아악!”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애완수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서린 추위에 얇고 긴 복장을 한 우린 추위에 떨 수밖에 없었다.

쿰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댔다.

“고작 몇 초 만에…… 수천 년간 변함이 없었던 기후가 바뀌었어.”

“저, 저 남자는…… 도대체……?”

그러나 아연실색한 우리와 다르게 솔로몬은 하늘을 보며 혀를 찼다.

“태양도 얼려보려 했건만. 아직 그만한 경지는 되지 못한 건가. 기후를 바꾸는 것도 범위가 한정됐군. 역시나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퀸소히니베가 경악하며 물었다.

“대체 저 남자는 누구인 것이야?”

“적색대륙의 지배자. 대마술사 솔로몬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남자.”

“솔로몬. 그가 적색대륙 지배자의 정체였단 말입니까?”

솔로몬은 신神에 가까워지고 있으나 힘을 무분별하게 쓰지는 않았다.

그가 펼친 왼손을 감싸 쥐자 추운 설원이 다시금 뜨거운 사막이 됐다.

“여흥은 좋지만, 역시 나는 사막의 작렬하는 뜨거움이 마음에 드는군.”

시간이 지날수록 솔로몬의 형상은 인간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피부 빛깔이 흰색으로부터 회색으로 변하고, 비늘 같은 것이 돋았다.

“이것이 바로 신력이군. 감히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 힘.”

카티에가 눈살을 깊게 찌푸렸다.

“신력이라니. 저게 무슨 소리죠?”

나는 최대한 축약해서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적색대륙 지배자의 술수였어. 두 대륙지배자가 죽고 놈은 신이 될 자격을 얻었지. 시간이 지나서 녀석이 힘을 전부 되찾으면, 전지전능한 신이 되고 말아.”

“그게 정말로 사실인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놀라야 할지 당황해야 할지 분간을 못 하겠단 표정이었다.

헤르탄이 침착히 청록의 지팡이를 쥐고서 솔로몬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군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들었다.

“맞습니다. 어서 빨리 놈을 지금 이 자리에서 처치해야 합니다. 놈이 완전히 신이 되기 전에, 서둘러요!”

모두가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쿰룸이 커다랗게 소리쳤다.

“전원, 대마술사를 공격하라!”

5천의 드워프가 함성을 내질렀다.

다급히 일제히 공격하려 했을 때.

“날뛰는 벼룩을 내려다보는, 용의 기분을 이제야 알겠군.”

솔로몬이 빛나는 왼손을 내뻗었다.

“크어어억!”

“도, 돌풍이!”

솔로몬의 가벼운 손동작에 5천의 드워프가 전부 나가떨어져 버렸다.

“캬아앙!”

“……꺄악!”

“……!”

“꾸왁!”

“날갯짓을…… 못하겠어!”

애완수들도 단숨에 휩쓸려 버렸다.

솔로몬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모래에 파묻혀서 발걸음 소리도 나지 않아, 사방이 무척 고요하였다.

나는 살의를 담아 놈을 노려봤다.

“내게 회귀자 살해 재능을 쓸 거면 숙고하게나. 그건 통하지 않으니까.”

놈이 기피하는 변수도 알 수 없다.

상대는 전지전능을 넘보고 있었다.

심지어 몇 초 만에 기후도 바꾼다.

도대체 저런 놈을 어떻게 이기지?

“설마 내가 미쳤다고 자네에게 날 쓰러뜨릴 수 있는 재능을 줬겠나.”

“……갈고 닦는다면 또 모르지.”

“자네에게는 그만한 시간이 없어.”

제기랄, 분하지만 놈의 말이 맞다.

“곧 있으면 나는 무엇이든 살릴 수 있고, 무엇이든 죽일 수 있게 되네.”

솔로몬의 손에 다채로운 빛깔의 힘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얼음이며, 불이자, 바람이며, 흙인 세상의 정수 그 자체였다.

“사후세계. 평행세계. 우주. 만물의 영역.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

솔로몬은 한껏 도취해 있었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환한 미소를 터뜨리며 놈이 느리게 얼굴을 쓸었다.

“항상 꿈꾸어왔었지. 신이 되면 무엇을 할까. 우선, 날 지금껏 조력해 준 자네에게 보상부터 내려야겠지.”

솔로몬의 손에 환상이 깃들었다.

환상의 광경에는 금은보화가 있기도 했고, 황홀한 미인도 보였으며, 비전물약이나, 차원양탄자도 스쳤다.

“자네는 신화의 제1 사도가 될 수도 있고, 날 추종하는 주교의 우두머리가 될 수도 있네. 혹은 누구도 하지 못하는 대과업을 내줄 수도 있지.”

그러나 그가 손을 움켜쥐자 방금까지 보였던 환상은 산산이 으깨졌다.

“하지만 마음에 걸려. 자네를 둘러싼 그 불길함. 그 이유 모를 불길함 때문이라도, 자네와 동료들은 모두 이곳에서 함께 없어져 줘야겠네.”

“……애당초 받을 생각도 없었어.”

나는 미끄러지듯이 달려가 칼을 휘두르며 명계의 폭염을 내뿜었다.

그러나 나의 기습을 솔로몬은 비웃지도 않고 막아내며 고갤 저었다.

“전혀 학습능력이 없군. 정지된 시간 속에서도 움직이던 나였거늘.”

솔로몬이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공간이 단숨에 일그러지며, 주변에 있는 일행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그리고 끔찍한 빛을 내뿜으려던 카티에의 왼손이 빨려서 들어갔다.

“성녀의 기적은 유일한 변수지. 그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삼가두도록.”

“망할, 카티에!”

그러나 카티에는 피가 뚝뚝 흐르는 손목을 붙잡으며 앙칼지게 외쳤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대마술사한테나 몰두해요! 지금 기회를 놓치면 영영 회차 목표를 이룰 수 없어요!”

확실히, 카티에의 말은 사실이다.

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점검해 지금 활용하려 했지만, 솔로몬은 그런 것조차 전혀 기다려주지 않았다.

“여유를 주진 않을 거야. 말만 지껄이다가 당하는 악역은 싫거든.”

그가 땅에다가 발을 박차자 날카로운 창들이 뻗어서 내게 날아들었다.

검으로 박살 내고, 몸을 날렸지만, 그 숫자는 무려 수백에 달하였다.

“하나하나가 영지 제일의 창 수준이지. 거기다 거미여왕의 맹독을 발라 하나만 몸에 스쳐도 치명타일세.”

독액이 듬뿍 발라진 창들이 나를 향해서 솟구쳐 날아오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온 힘을 다해 피하고 부쉈지만, 수어 개의 창날만은 피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치명상만은 피하기 위해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릴 때.

그 순간, 누군가 날 막고 있었다.

“너……!”

퀸소히니베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용의 비늘조차 관통해버린 창날.

그러나 힘겹게 입꼬리를 올린다.

“퀸소히니베!”

퀸소히니베는 씁쓸히 웃고는, 나를 돌아보며 걸쭉한 피를 툭 뱉었다.

“너는 내 노예인 것이야.”

“너, 지금 상처가…….”

“그러니까, 허락 없이 죽지 마. 범철.”

퀸소히니베가 복부 상흔을 만졌다.

꿰뚫린 배로부터 내장이 흐른다.

“어느새, 나도 어른이 된 것이야.”

마지막을 직감한 그녀가 웃어댔다.

“나의 친구를 지키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다음 순간, 고귀한 용의 몸서리치는 포효가 사막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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