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93화
“네가 회차 목표를 완수했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해내면 회귀를 멈출 수 있는 목표.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목표라 믿었는데 그게 실은 이미 완수됐었다고?
“웃기지 마.”
“내 말이 농담 같나? 재미있군.”
“그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솔로몬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어째서 말인가?”
“회차 목표를 완수하면 회귀는 멈추게 된다. 네 말대로 4회차에서 회차 목표가 완수되었다면, 그때 회귀가 멈췄어야 해. 그런데 왜 120회차까지 사망 회귀가 계속되고 있는 거지?”
“이봐, 자네는 착각을 하고 있어.”
솔로몬이 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그러자 허공에 글자가 떠올랐다.
그것은 오랜만에 보는, 회귀가 시작될 당시에 처음 떠오른 문구였다.
“다시 한번 기억을 상기해 보게.”
[120회차에 직면한 모든 인류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번 120회차 세상 목표는 ‘세 대륙의 지배자 전원 몰살’입니다.]
[목표를 달성한 자는 숙원을 이루고 인류의 사망 회귀를 멈출 수 있습니다.]
[숙원은 누구에게나 오직 하나이며, 그 개수는 늘릴 수 없습니다.]
오래간만에 보는 문구를 곱씹던 나는 순간 한 문장을 보고 깨달았다.
‘목표를 달성하면, 숙원을 이루고 인류의 사망 회귀를 멈출 수 있다.’
순간 머리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설마……!”
솔로몬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회차 목표를 이루면 ‘회귀를 멈출 수 있는 것’이네. ‘회귀가 멈춘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지. 즉, 회차 목표를 이룬 자가 원치 않으면 회귀는 멈추지 않고 계속될 수 있는 거야.”
“회차 목표를 이뤘는데도, 회귀를 멈추지 않고 그냥 가만히 뒀다고?”
“그래, 숙원을 빌었지만 내가 원하는 바를 전혀 얻지 못했으니까.”
생글생글 웃던 솔로몬의 얼굴에 처음으로 싸늘한 낯빛이 깃들었다.
“회차 목표를 완수한 나는 숙원으로 전지전능한 신이 되길 원했네.”
언젠가, 다른 회귀자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이 숙원을 하나 빌 수 있다면, 전지전능한 신이 되는 데 쓰겠다고.
그러면 하나의 숙원으로도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될 테니까.
“난 전지전능한 신이 되고 싶었지. 누구라도 한 번씩 꿈꾸지 않나?”
“보통 어릴 때 망상에서 그치지.”
“역시 나는 동심을 잃지 않았군.”
솔로몬은 실소를 터뜨리며 포도알을 입에 던져 넣었다.
“그래서 솔로몬 교를 창설했던 거야. 하지만 만족할 수 없었지. 진정한 신과 아주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래서 회차 목표로 눈을 돌렸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그는 포도 씨를 우득 씹어 먹었다.
“4회차에서 회차 목표는 간단했어. ‘모든 거인의 멸종’. 병을 퍼뜨리고, 생식기를 베어버리고, 재앙을 일으켜 거인족 신생아까지 모조리 죽였지. 말은 간단하지만 해내긴 쉽지 않았어. 억지로 수명을 늘려간 끝에 간신히 자연사하기 직전에 이뤘으니까. 그래서 내가 회차 목표를 완수했단 사실은 어느 회귀자도 알지 못했지.”
“그래서 네 숙원은 이루었나?”
“보이지 않나. 이게 결과물일세.”
솔로몬은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울긋불긋한 근육이 드러나있고 요사스러운 보랏빛에 흉측하기 그지없는, 인간답지 않은 몸뚱이.
나는 의아함을 느끼고 물었다.
“신이 되겠다는 숙원을 빌었는데, 어째서 이뤄지지 않았던 거지?”
“전지전능을 이루려는 숙원은 한낱 인간 따위에게는 너무 오만한 것이었으니까.”
솔로몬은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며 싱긋 웃었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 인생 걸고 숙원을 이뤘더니 이런 결과라니.”
그러다 문득 그가 낮게 중얼댔다.
“과욕이라는 걸까. 숙원 하나로 모든 욕망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그러나 곧이어 그의 목소리는 아까처럼 밝게 돌아왔다.
“그래, 다른 숙원을 빌었다면 결과는 달랐겠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을 거야.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신이 되는 것이니까.”
너무 예상치 못했던 대화가 오가서 나는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병에 담긴 포도 주스를 잔에 따르고, 입에 담아 마셨다.
그 광경에 솔로몬이 웃어 보였다.
“궁금한 적은 없었나? 누가 우리를 회귀시키고, 숙원이란 걸 빌미로 매 회차마다 목표로 달리게끔 하는지.”
이 모든 회귀를 꾸민 자는 누굴까.
그것에 대한 의문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들로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회귀라는 게임의 주최자는 말하는 거야. 신의 자리를 넘보지 말라고.”
알 수 없는 말을 한 솔로몬이 턱을 짚으며 포도 껍질을 짓눌렀다.
“더군다나 나뿐만이 아니야.”
“무슨 소리지?”
솔로몬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회차를 통틀어 회차 목표를 완수했던 회귀자는 날 포함해 셋 있었지.”
“설마…….”
솔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지전능한 신이 되기 위해서 숙원을 빌었으나 실패한 회귀자들. 그것이 바로 대륙지배자의 정체일세.”
***
아크 리치, 불멸아귀도 회차 목표를 완수하는 데 성공한 회귀자였다.
믿기지 않는 발언이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의혹이 명쾌히 풀린다.
‘대륙지배자는 회귀할 수 있었다.’
인간도 아닌 그들이 어째서 회귀할 수 있는지 난 줄곧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지배자가 본래 회귀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그들에게 회귀자 살해 재능이 발동했던 것도 설명이 된다.
회귀자 살해 재능은 언데드나 살덩이 문이 된 회귀자한테도 통하니까.
“……그들 모두 숙원으로 전지전능한 신이 되려고 했었던 건가?”
“보통 숙원을 단 한 가지만 빌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빌겠지.”
솔로몬은 다 먹은 포도송이를 내려 두고 관자놀이를 누르며 회상했다.
“아크 리치는 2회차 회귀자. ‘키아덴’이라는 잿빛교주였지. 그리고 불멸아귀는 ‘박돌’이란 이름의 3회차 천하장사였고. 그리고 내가 마지막 4회차의 대마술사, 솔로몬일세.”
“그럼 그 이후로는 회차 목표를 달성한 회귀자가 없었던 건가?”
“그래, 만약 있었다면 내가 바로 알 수 있었겠지. 대개 회차가 넘어갈수록 목표는 어렵게 설정되거든.”
그럼 4회차에서 회차 목표를 달성한 솔로몬은 가장 강한 회귀자였다.
하지만 지금 왜 저렇게 약해졌지?
“그런데 왜 세 대륙지배자 모두 회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긴 거지?”
“일부러 ‘패턴’을 만든 거지. 우린 모두 회귀자니까, 우릴 습격해오는 회귀자의 약점은 잘 알거든. 스스로 장담하던 몬스터의 패턴이 깨졌을 때, 습격한 회귀자는 당황해. 중요한 때를 위해 모두 신중히 인내했네.”
“확실히 전략적이긴 했었군.”
“전부 헛짓거리가 됐지만. 하여간.”
솔로몬은 한탄하며 말했다.
“전지전능한 신이 되려고 했던 우리는 대륙지배자가 되어, 강한 힘을 얻었지만, 모습이 크게 바뀌어버렸네. 심지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조차 제한되어버렸고. 역겹지 않나?”
“그래서 회귀를 멈추지 않았나?”
솔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력한 대륙지배자에게도 수명은 존재하지. 그래서 꿈꾸던 전지전능한 신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고. 그래서 회귀를 멈추지 않은 거야. 신이 되기 위한 기회를 잡기 위해.”
“이미 숙원이란 기회를 놓쳤는데도 전지전능한 신이 될 방법이 있나?”
솔로몬은 눈을 빛내며 끄덕였다.
“4회차 이후, 세 대륙지배자가 존재한 후에야 확립된 유일한 방법. 불완전한 대륙지배자가 전지전능한 신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네. 첫째,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대륙지배자가 될 것.”
“유일한 대륙지배자?”
“세 대륙의 지배자가 하나여야만, 세상을 주무를 권한을 얻으니까. 그래서 세 지배자는 서로 미워했어.”
그가 과즙이 묻은 턱을 쓰다듬었다. -
“첫 번째 조건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본인을 제외한 두 대륙지배자를 죽여야 하지.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대륙지배자는 한정된 지역을 벗어날 수 없어. 그래서 황색, 청색대륙 지배자는 한 가지 잔꾀를 냈던 거야.”
그다음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 둘은 자기 힘을 나눠 회귀할수록 강해지는 능력을 여섯 인간에게 주었어. 그들이 바로 지금의 세상에서 ‘거물’이라 불리는 자들이지.”
세상에 존재했던 여섯 명의 거물.
그들이 청색과 황색 대륙지배자에 의해 능력을 얻은 존재들이었다고?
솔로몬의 얼굴에 비웃음이 담겼다.
“하지만 아주 멍청한 짓이었지. 회귀자는 개인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야. 그들이 원하는 바와 달리 거물들은 다른 대륙지배자를 죽이는 데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거든.”
최후의 적이 나의 눈을 바라봤다.
“그래서 나는 지금 회차를 줄곧 인내하며 기다려온 거야. 이곳에 찾아온 회귀자들의 기억을 지우며 나의 정체를 숨기면서까지. 회차 목표가 ‘대륙지배자 살해’로 설정되기를.”
이제야 깊은 의문이 해소되어간다.
어째서 대륙지배자인 그가 모든 대륙지배자를 죽이려는 날 도왔는지.
“……나는 황색, 청색, 적색 순으로 지배자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바로 그랬기에 내가 자네를 지원하고 많은 변수로 도와줬던 거지.”
솔로몬의 웃음이 가증스러웠다.
내가 입술을 씹다가 물었다.
“……어째서 나를 선택했지? 나 말고도 다른 강자들은 널렸을 텐데.”
“이곳은 버림받은 회차이니까.”
솔로몬이 양손을 크게 펼쳤다.
“모두가 포기한 악조건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자. 의욕이 부진한 회귀자와는 달리, 진심으로 회귀를 멈추고 싶어 하는 자. 그 유일한 사람이 바로 범철, 자네였지.”
나는 이번 회차를 포기하고 자살한 회귀자들에게 큰 반항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 어떤 회귀자보다 전력을 다해서 회차 목표를 이루려 하였다.
“더군다나 회귀자를 학살해 왕까지 됐던 인간이라면, 회귀한 대륙지배자를 죽이는 데도 뛰어나지 않겠나?”
가슴에 응어리진 의문이 풀려갔다.
그리고 동시에 소름이 끼쳤다.
빌어먹게도 솔로몬의 의도대로, 난 지금까지 두 대륙지배자를 죽였다.
그 결과, 그가 전지전능을 이루기에 가장 안정된 조건이 이루어졌다.
‘내가 지금껏 해온 모든 행동이 솔로몬을 위한 꼭두각시 짓이었다고?’
당황과 분노로, 주먹을 꽉 쥐는 나를 솔로몬은 부드럽게 바라봤다.
“세상은 그저 단일하다 볼 수 없지. 수많은 구성요소로 채워져 있어. 생명체, 건축물, 자연, 대륙까지도. 그 모든 것이 바로 세상 자체이지.”
그의 눈동자는 오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처럼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 모든 것을 다스리며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자. 그게 바로 신이야.”
“…….”
“그리고 마지막 조건은, 본래의 힘을 완전히 되찾아야 한다는 거지.”
솔로몬이 갑자기 웃음을 거두었다.
“그래서 내가 자네의 그 펜타그램을 수거해야 할 때가 됐단 것이네.”
본능적으로 자릴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나 왼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크흑!”
펜타그램이 빛나는 왼손이 나의 목을 의지와 관계없이 움켜쥐었다.
날 돕고 구해줬던 그 펜타그램이 이제는 나의 숨통을 조르고 있었다.
“커헉! 끄흐윽!”
“억울해하진 말게. 지옥의 시련방에서 악마의 펜타그램을 얻을 수 있던 것도 내가 준 재능 덕 아닌가?”
숨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나에게 솔로몬이 천천히 다가왔다.
“상심도 말고. 자네에게 준 재능만은 내가 다시 가져갈 수 없으니까.”
“……굳이, 바라지도 않았던……, 정보까지 친절히 알게 해주는군.”
“어차피 상관이 없으니까.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인내해 왔던가.”
그때 줄곧 이상했던 걸 깨달았다.
어째서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음료를 나는 계속 마시고 있었는가.
“제…… 푸욱, 기랄……!”
목을 조르던 왼손이 갑자기 피처럼 붉은 음료가 담긴 잔으로 향하였다.
눈과 코와 입에 포도 주스가 퍼부어지는데 결코 잔을 멈출 수 없다.
눈을 닫거나 입을 닫지도 못했다.
‘숨을…… 못 쉬겠……!’
폐까지 음료가 들어차는 것 같다.
솔로몬은 해학적인 고문을 즐겼다.
“그동안 자네에게 재능을 몰아주고, 펜타그램을 빌려주느라 오랜 기간 거의 온 힘을 소진하고 있었지.”
그의 손이 나의 손등에 뻗어졌다.
“자네가 황제에게 펜타그램을 잃었을 때 어찌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그리고 악마의 펜타그램이 진한 붉은빛을 흘리며 그에게 스며들었다.
“그간 재능 넘치는 주인공 역은 즐거웠나? 현실을 깨달을 때가 왔네.”
[악마의 펜타그램이 수거됐습니다.]
[적색대륙 지배자가 잃어버린 힘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유일한 지배자는 머지않아 신의 영역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 이거야……. 아주 조금씩, 전지전능…… 신이 되어가는…….”
솔로몬의 피부가 복구되어간다.
흉하게 울긋불긋했던 근육이 흰 살결에 뒤덮이고, 머리에 뿔이 솟는다.
검고 징그러운 날개가 돋아나며 솔로몬의 모습이 새롭게 재탄생된다.
그는 마치 ‘악마’ 같은 형상이었다.
“큭!”
다가오는 힘이 몸을 짓누른다.
그가 소름 끼치는 눈웃음을 지었다.
“눈엣가시 같던 두 대륙지배자를 죽이고, 그 악마의 펜타그램을 나에게 가져와 조력해준 자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네. 그러니 이제…….”
솔로몬이 나의 턱 끝에 손을 댔다.
“자, 끝을 보게나. 나의 조력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