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89화
83회차의 술로 크게 강화된 인형.
그런 인형 몸체를 내가 손으로 분해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머리만 남은 인형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분해 버튼이요? 내 허리춤에 그런 것이 있었단 것은 처음 알았군요.”
“왕께서 인형이 반란을 일으킬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둔 것이니까요.”
쿰룸이 곁에서 보충해 설명했다.
그가 상세히 설명해 준 덕에 난 인형에 관해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초대형 운석을 부수기 위해서는 당신의 심장이 꼭 필요합니다.”
분해된 인형의 부품들 사이에서 별빛을 품고 태동하는 심장이 있었다.
83회차의 술을 마시고 강화된 그것을, 나는 손아귀에 꼭 쥐었다.
『별빛인형, 똘똘이의 심장』
운석을 다루는 별빛이 잠재되어 있는 인공심장. 아직도 펄떡이고 있다.
+다른 회차에서 온 특수한 아이템으로 인하여 효과가 막대히 강화됨.
+동료의 생명을 바치고 중형 운석 하나를 움직여 폭발시킬 수 있음.
+단, 밤낮으로 항시 별빛이 진한 ‘유성우 지대 영역’에서만 사용 가능.
중형 운석을 폭발시켜 일대를 휩쓸 수 있는 어마어마한 상위 아이템.
그러나 동료의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상당한 페널티가 존재한다.
‘이거면 기대 이상이야. 지금 상황의 내게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군.’
인형의 심장을 사용함으로써 성별 전환 페널티를 피하며 힘을 얻는다.
덩그러니 놓인 인형 머리가 호기심이 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 심장을 가져갈 건가요?”
“죄송합니다. 운석을 파괴하고 드워프 왕을 구하는 데 꼭 필요해요. 혹시나 만약 불편하시다면…….”
“아뇨, 가져가도 좋아요. 몸이 분해됐는데 지금 말하고 있듯, 전 심장 없이도 잔여별빛으로 가동하거든요. 물론 기타능력이 약해지긴 하지만.”
쿰룸은 별빛에 감긴 심장을 제외한 다른 인형 부품을 조립하며 말했다.
“초대형 운석의 추락 시기를 앞당기려면 무수한 별빛이 필요합니다. 또한, 시간도 제법 오래 걸리게 될 거고요.”
조립된 인형은 조금 전보다 동작이 느릿하긴 했지만 움직일 수 있었다.
“초대형 운석의 추락 시기를 앞당길 수는 있지만, 그러면 난 한참 동안 운석제어의 힘을 잃어버리게 돼요.”
그 말에 나는 쿰룸을 슬쩍 보았다.
“괜찮겠습니까?”
“성좌의 금속 원료를 많이 구할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운석을 베지 못하면 당신을 향한 드워프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게 되겠죠.”
드워프들과의 호감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번 시도에 성공해야 한다.
카티에가 다가오며 나를 올려봤다.
“그런데 왜 추락 시기를 앞당겨 달라고 한 거죠, 대장?”
“깨부수려고.”
그러자 카티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염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하지만 그 운석 하나 부수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할 거예요.”
그때 난 도리어 싱긋 웃어 보였다.
“하나만 부순다고 한 적 없는데.”
“예?”
손에서 펄떡이는 심장을 내 쥐었다.
“최소한 100개는 부숴야 최종결전에 쓸 만한 장비를 만들지 않겠냐?”
***
“유언은 무엇으로 남길 것이야?”
“없어요. 대장이 죽으면 바로 회귀하는 거야 거의 일상인데요, 뭘.”
“……네년이 아니라 내 노예한테 물은 것이야.”
유성우 지대에 근접한 터널 안.
투명한 천장으로 밤하늘이 보인다.
난 초대형 운석을 기다리고 있다.
“나 없이도 잘 살아라. 유언 끝.”
“참 성의도 없는 유언인 것이야.”
“하기야 너는 나 없이 못 살지?”
“내 노예가 정신이 나간 것이야?”
눈썹을 확 치켜세운 퀸소히니베의 시선을 무시하고 난 밤하늘을 봤다.
당연하지만, 아무런 계획 없이 초대형 운석을 떨어뜨려달라는 건 아니다.
“초대형 운석을 떨어뜨리면, 이 일대가 쑥대밭이 될 거예요. 각종 보호의 술이 걸린 터널에 있는 우리는 괜찮겠지만, 당사자는 운석을 베지 못한다면 사망하고 말 거예요.”
별빛에 휘감긴 인형이 날 보았다.
“그래도 후회가 없으실 건가요?”
“예. 어차피 딱히 방법도 없고.”
그러자 인형이 무언가를 가져왔다.
낡은 주머니였는데, 신기하게도 입구 쪽을 잡아당기면 크게 늘어났다.
“그렇다면 이걸 가져가요. 왕께서 제작하신 ‘이형주머니’인데 운석조각에 한정해 아주 많이 담을 수 있어요. 원래는 제게 맡기셨지만, 지금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게 낫겠네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걸 받았다.
‘긴장은 하되, 부담을 느끼지는 말자. 세계 유일의 아이템이 있으니까.’
나는 품에서 빛나는 돌을 꺼냈다.
시간의 돌!
과거 카티에와 헤르탄의 영혼을 구할 때 사용했던 아이템이었다.
회생의 운석 효과로 인해, 평범하게 변했던 돌은 재사용이 가능했다.
[현재 시간의 돌은 2회 재사용이 가능합니다.]
[회생의 운석에 의해 ‘시간 정지’ 성능만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특수한 광채를 쬐면 시간의 돌에 담긴 권능이 크게 강화됩니다.]
[지혜가 뛰어난 자가 조사하면 더 자세한 성능을 파악 가능합니다.]
‘난 두 번의 시간을 멈출 수 있다.’
그리고 그 기회 중 한 번을 지금 바로 이곳에서 사용할 계획이었다.
“캬앙!”
“……아빠. 예쁜 별이 막 떨어져.”
“…….”
“꾸왁!”
나는 가진 다섯 애완수를 소환했다.
그중에서도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 않는 것은 아기 로크가 유일했다.
“별일 없으면 다시 호리병에 넣어 줘.”
나는 그런 무심한 소녀를 보았다.
‘여전히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군.’
고개를 돌려서 달귀를 바라보았다.
“달귀.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생명체의 낯을 빌려오도록 해.”
이목구비가 없는 달귀가 끄덕였다.
곧이어 달귀의 매끄러운 안면에 매끄럽고 잘생긴 코, 눈, 입이 생겼다.
[주인이 지금껏 죽인 생명체의 ‘낯’ 중 하나를 달귀가 택합니다.]
[달귀가 제법 강한 생명체, 청색대륙 거물 화비를 선택했습니다.]
[달귀가 이전보다 성장해, 빌려온 낯의 권능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현할 수 있는 권능은 애완수 역량에 따라 한정됩니다.]
“이 얼굴은 잘생겨 마음에 들어요. 비록 제 작은 몸이랑 안 맞지만.”
이목구비가 생기는 즉시 달귀는 재잘재잘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귀가 아파서 얼굴을 약간 찌푸리고 초화를 내려다보았다.
“초화는 헤르탄이랑 덩굴을 만들어 줘. 절대 끊어지지 않도록 질기게.”
“……응. 알았어.”
초화는 헤르탄과 함께 땅에서 덩굴을 일궈내며 자기 역할을 다했다.
“백야는 축지법을 써서 초대형 운석 주변의 운석 흐름을 파악해줘.”
“캬앙!”
백야가 두 개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머리를 끄덕였다.
“꾸악?”
사막거북 동북이가 자기에게 시킬 일은 없냐는 듯 엉금엉금 기어왔다.
“별건 없고, 너는 울어줘라.”
“꾸와아아왁!”
동북이가 외치는 행운의 포효!
사막거북의 우렁찬 포효에 우리의 행운 또한 아주 크게 올라갔다.
[동북이가 이전보다 성장해 행운의 포효 지속시간이 늘었습니다.]
[하루 동안 행운이 300 상승합니다.]
[회피 확률, 희귀아이템 획득 확률, 급소가격 확률이 증가합니다.]
‘위험한 일을 하기 직전이니까, 일단 행운을 올려두는 편이 좋겠지.’
그리고 마지막 애완수를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아기 로크.”
“거슬리게, 왜.”
“넌 나한테 나는 법을 가르쳐줘.”
“하기 싫어.”
역시나 막 영입됐고 충성도가 낮다 보니 쉽게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내가 소녀 옆에 앉아서 속삭였다.
“무섭냐? 내가 배신할까 봐.”
“…….”
아기 로크는 한참을 침묵하다, 내키지 않아 하며 말했다.
“전주인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
“나도 딱히 좋은 놈은 아니지.”
“무슨 의미야?”
“뒤통수를 때릴지도 모른단 거지.”
“…….”
아기 로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럴 땐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주는 게 일반적이지 않아?”
“네가 먼저 나를 배신 때렸을 경우에 한해서 말하는 거야.”
“차라리 너는 솔직해서라도 좋네.”
아기 로크가 헛웃음을 지었다.
반면에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도 배신당하는 것이 무서워. 그래서 항상 평안한 일상을 즐겼고, 지금은 오로지 그걸 바라며 싸워.”
아기 로크의 작지 않은 눈망울을, 나는 조용하게 응시했다.
“그러니, 이것만은 명심해. 난 네가 먼저 배신하지 않는 이상, 절대 너를 전주인처럼 버리지 않을 거야.”
환생한 소녀는 조금 어깨를 떨다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침묵했다.
나는 일부러 그녀를 혼자 두었다.
이윽고, 아기 로크가 약간 붉어진 눈시울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내가 뭘 해줬으면 하기에 그렇게 듣기 좋게 입을 턴 거야?”
“상공에서 나는 법. 이제 곧 아주 높이 나는 행위를 반복해야 하거든.”
“그럼 체력을 아끼며 날아야겠네.”
나는 큰 날개를 펼치고 아기로크에게 속성으로 비행 법을 교육받았다.
“내 날개로는 그렇게 나는 게 아니야. 날갯짓도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몇 시간 교육받자 날개를 대충 어떻게 써서 비행할지 각이 잡혔다.
이전에도 퀸소히니베에게 자주 조언을 받으며 연습해둔 덕분이었다.
“그쯤이면 중수 정도는 될 거야. 오랜 시간 비행해도 덜 지칠 거고.”
얼추 비행연습에 숙달되었을 때, 퀸소히니베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뭘 하면 좋겠냐는 것이야?”
나는 그녀와 카티에를 같이 봤다.
“두 사람은 내가 혹시나 추락할 때를 대비해 날 받아줄 준비를 해줘.”
“알겠어요. 대장.”
한편 달귀는 분신을 소환했다.
“이 낯이 지닌 힘은 꽤 신기해요! 멋진 분신들을 만들어낼 거야!”
[달귀의 경험이 부족해 낯의 권능을 완벽히 재현하지 못했습니다.]
[99명의 분신들은 본체의 1할에 해당하는 능력치를 지니고 있으며 90분이 지난 뒤 자동 소멸됩니다.]
어째 달귀가 소환한 분신은 하나같이 본체보다 작고 비실비실했다.
달귀 본인은 실망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렇게 약해 보이는데 괜찮아요?”
“상관없어. 숫자만 있으면.”
심장기관을 소실한 인형은 나를 궁금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제 심장은 언제 돌려주실 거죠?”
“운석을 부수고 나서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안 돌려주셔도 상관없어요. 당신 동료 심장으로 대체 가능하거든요.”
“…….”
인형은 느릿한 손동작으로 오랜 시간 주문을 외우며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하늘에 떠 있는 유성의 궤적이 그녀의 손동작에 따라 틀어졌다.
“무서운 굉음이 들리는 것이야.”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겠어요, 대장?”
카티에가 불안해 할만도 했다.
저편에서 내려오는 매서운 불빛은 초대형 운석의 전조라 해도 좋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운석은 눈곱만 한 크기에서 갈수록 매섭게 커졌다.
“예상보다 훨씬 크군요. 크기가.”
헤르탄조차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내려오는 운석은 어지간한 것들과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만큼 컸다.
‘어째서 인형이 함부로 초대형 운석을 떨어뜨리지 않는지 알겠군.’
어지간한 조그만 운석들은 부숴버리며 추락하는 초대형 운석!
허공이 울리며 사막이 흔들린다.
저런 막대한 대형재앙을 부수라니.
‘하지만 해야 한다. 조력자를 구하고, 적색대륙 지배자를 죽이려면.’
우린 헤르탄과 초화가 꼬아둔 넝쿨로 달귀의 분신들을 촘촘히 묶었다.
그리고 난 구중투구를 착용했다.
청색대륙 지배자의 무구답게 착용하자마자 크게 증폭되어가는 힘!
비록 오래 사용하면 다중인격이 될 수도 있다는 페널티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반드시 써야만 할 순간이다.
‘슬슬 시작해 볼까.’
나는 시간의 돌을 꽉 쥐었다.
[시간의 돌을 사용합니다.]
[9서클 마법, ‘타임스톱’을 사용할 권한을 1회 획득했습니다.]
[지고한 마력으로 세상의 시간을 오직 단 한 번 멈출 수 있습니다.]
천천히,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춘다.
순간가속을 쓸 때 느낌과 전혀 다르게 완전히 정지한 120회차 세상.
‘9서클 마법의 힘은 굉장하군.’
무려 9서클의 마법!
현재까지 밝혀진 마법의 정점이다.
이렇게 대단한 마법을 자유로이 쓸 수 있다면 얼마나 꿈만 같을까.
‘최소한 대마법사 이상의 경지를 가져야만 쓸 수 있는 마법이겠지.’
그런데 갑자기 괴물의 입처럼 보이는 이형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정지된 세계 속의 허공에서 무언가 균열이 생기고, 점차 틈이 벌려졌다.
그리고 균열로부터 나를 희미하게 잡아당기는 인력이 느껴졌다.
[오래 시간을 멈추면 ‘세월의 단층’에 빨려들 확률이 높아집니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오래 지낼수록 균열의 인력이 강해집니다.]
[피해를 막으려면 되도록 빠르게 멈춘 시간을 다시 움직이십시오.]
‘역시나, 시간을 멈추는 기술이니만큼 페널티도 결코 적지가 않아.’
되도록 빠르게 운석을 부숴야 한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날아올랐다.
‘우선, 달귀 분신을 데려가야 해.’
질긴 넝쿨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난 구중투구에 의해 잔뜩 강화된 힘으로 달귀의 분신들을 들고 날아올랐다.
‘저기에 운석이 보이는군.’
밤하늘에 불타오르며 멈춰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성流星.
날개를 접고 공기가 희박한 상공에 위치한 운석 위를 직접 살펴본다.
‘역시 부수는 것은, 쉽지 않겠어. 어지간한 소도시 크기의 바위잖아.’
허공에서 정지된 운석은 불타고 있어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넝쿨째로 가져온 달귀의 분신 99명을 상공에 풀어놨다.
시간이 멈춰있기에 허공에 둥둥 떠 있기만 할 뿐, 추락하지는 않았다.
‘인형의 심장은 한 번씩 성능을 발휘할 때마다 동료를 죽여야 한다.’
99명의 달귀의 분신을 상공에 띄운 채로 나는 심장을 사용했다.
[달귀(분신)를 바쳤습니다.]
[별빛의 힘이 모멸 운석의 조종 권한을 소유자에게 가져옵니다.]
심장을 쓸 때마다 역류하는 별빛!
난 달귀 분신을 모두 죽이고, 99개의 운석을 모두 내 휘하에 두었다.
크드드드드드!
별빛에 휩싸인 운석이 선회했다.
마침내 밤하늘에 떠 있는 모든 운석이 초대형 운석 쪽으로 모여든다.
‘어디 깽판 한 번 제대로 쳐보자.’
하늘에서, 운석의 폭발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