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87화
“만지기는 뭘 만져요?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데.”
카티에가 핀잔을 줬고, 헤르탄도 고개를 끄덕이며 반대했다.
“미확인 운석이라면 함부로 만졌다가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회귀자들조차 조심스럽다면 운석이 얼마나 위험한지 대충 짐작이 간다.
“확실히 수상해 보인다는 것이야.”
퀸소히니베도 경계심이 생겼는지 운석을 바라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나는 램프를 꺼내서 4번 문질렀다.
“말해라. 주인의 두 가지 명령을 들어주면 나는 해방될 수가 있다.”
램프로부터 연기를 내뿜으며 소환된 나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마인!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무 명령이나 무조건 들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명령을 수행할 때마다 마인은 램프의 족쇄에 저항하며 강해진다. 그래서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순 없어.’
세 번의 명령을 수행하고 지나치게 강해진 마인은 배신할 수도 있다.
‘이제 램프의 마인이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은 두 개까지.’
저번에 한 번의 소원을 사용했으므로, 마인은 이전보다 커져 있었다.
‘위험한 일은 이놈에게 맡겨야지.’
나는 보랏빛 운석을 가리켰다.
“저 운석을 만지고 와라.”
“알겠다.”
램프의 마인은 명령에 순종하며 구덩이로 내려가 운석에 손을 댔다.
그리고 마인이 운석을 향해서 손을 대는 순간, 운석이 쩌저적 갈라졌다.
“끄어어억! 주, 주인이시여!”
[무작위 인과율 운석을 잠식하고 있던 미확인생물체가 출현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물체가 램프 마인에게 기생합니다!]
마인의 큰 머리에 끈적거리는 보랏빛의 기생체가 철썩 달라붙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깊고 낮은 목소리가 사악하게 울렸다.
“칵! 이제야 숙주를 얻었군. 외계에서 표류한 지 수천 년! 나, 아리카르스크가 드디어……!”
그리고 마인의 머리가 불타버렸다.
“끄아아악!”
내가 던진 염화의 불이 정확히 마인의 이마에 적중했고, 불타버렸다.
마인이 전소되어 사라지자, 내가 쥐고 있던 램프가 박살 났다.
순식간에 가루가 된 마인을 바라보다 나는 황당해하며 쿰룸을 돌아봤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가끔가다 ‘꽝’이 있기는 한데……, 운이 지독히도 나빴군요.”
함부로 만졌으면 엿 될 뻔했네.
‘아깝게 램프만 깨버렸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걸었다.
“주의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이 보게 될 것은 드워프의 기밀입니다.”
쿰룸은 터널의 중심부로 걸어갔다.
어찌나 깊고 경계가 삼엄한지 그는 걸으며 수십 개의 결계를 통과했다.
“도대체 안에 뭐가 있기에 이렇게 절차가 까다로운 겁니까?”
“회귀자가 습격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조차 모르는 비밀이겠지요.”
쿰룸이 바닥 중앙을 가리켰다.
그것은 놀랍게도 나의 손등에 그려진 펜타그램과 흡사한 문양이었다.
“드워프는 평상시에 ‘이곳 너머의 비밀’에 관해 완전히 잊고 있지만, 이 문양을 넘어가면 이 너머에 있는 비밀을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쿰룸이 그곳을 넘으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끄덕였다.
“떠올랐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우리는 그를 따라갔다.
굳게 닫힌 철문의 방.
‘괴물이라도 가둬뒀나?’
그만큼 방의 설비가 촘촘했다.
쿰룸이 자물쇠로 열자, 그곳의 방에는 의외로 한 여인만이 보였다.
기다란 로브를 걸치고, 맑은 백옥의 피부를 가진 신비한 분위기의 여인이었다.
“우리의 왕, 홀롬 2세의 대행으로 왔다. 이들은 초대받은 손님들이고.”
“그러셨나요?”
여인은 정초한 눈으로 우릴 봤다.
“이분은 누구시죠?”
카티에가 묻자 여인이 대뜸 말했다.
“메테오 스톰이란 마법을 아나요?”
알고말고.
제아무리 마법의 문외한이더라도 이계에 살면 한 번쯤은 듣게 된다.
운석을 낙하시켜 특정 지역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대마법.
모든 마법사가 수습생부터 꿈꾸는 파괴마법의 극치가 아닌가.
“전 그걸 2만 번째 쓰고 있어요.”
“…….”
모두가 할 말 잃은 표정을 지었다.
“저, 그 유머 감각이 넘치십니다?”
“나는 농담을 모르는걸요.”
여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참, 2만 번 넘게 메테오 스톰?
‘한 번만 써도 도시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게 메테오 스톰이라던데.’
역사상 그 어떤 대마법사라도 그만큼의 메테오 스톰을 쓰진 못하겠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빈정거렸다.
“마나가 그렇게 넘쳐나십니까?”
“난 마나가 아니라, 별빛을 써요.”
“별빛으로 마법을 부린다고요?”
“그야 인형이니까요.”
“예?”
그러자 쿰룸이 설명하였다.
“그녀는 왕께서 만드신 인형입니다. 인간과 흡사한 외모를 가졌죠.”
……저 여자가 인형이라고?
아무리 봐도 사람처럼 맑고 깨끗한 피부, 푸른 눈동자를 지녔는데?
퀸소히니베는 놀란 표정으로 얼른 내 옆에 붙어서 조그맣게 속삭였다.
“꼬셔볼까 했는데 경악한 것이야.”
“…….”
“드워프라면, 온갖 금속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금속은 이미 거의 찾아냈죠. 그래서 우린 세상 밖으로 고갤 돌렸습니다.”
쿰룸의 설명은 놀라운 것이었다.
“세상에 없는 금속을 얻고 싶었거든요. 그럴 때 왕께서 만드신 것이 이 인형입니다. 그녀는 이곳, 별빛의 힘을 받는 장소에 한정해서 무한정 ‘메테오 스톰’을 쓸 수 있습니다.”
퀸소히니베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상 밖의 금속을 얻고 싶어서 유성우 지대를 만들었다는 것이야?”
아니, 아무리 세상에 없는 금속을 갖고 싶어도 그렇지 운석낙하마법을 쓰는 인형까지 만들어댄다고?
“발상이 참 미치광이처럼 참신하네요.”
“홀롬 2세께서는 저희와 생각하는 방식부터가 달랐으니까요.”
쿰룸이 싱긋 웃고는 말했다.
“최근 유성우 지대는 어떻지?”
아리따운 인형이 즉각 대답했다.
“침입자가 있습니다.”
“그래, 오늘은 몇 명이지?”
“북방에 27명. 서방에 4명. 중앙 1명. 모두 천문학자나 모험가군요.”
“최근 많아졌구나. 하여간 제 목숨도 아낄 줄 모르는 것 같으니라고.”
쿰룸은 비정하게 말했다.
“운석 날려라. 살려둘 가치가 없다.”
“알겠답니다.”
인형이 수인을 맺자 유성우 지대 전체가 전역지도처럼 펼쳐졌다.
위험한 지대에서 목숨 걸고 운석을 얻으려는 인간들이 작게 보였다.
“정말 목숨 걸 가치가 있는 거지?”
“그래, 여기 운석 캐가서 천문대에만 맡겨도 보상이 어마어마하다고.”
“어느 운석은 삼키기만 해도 외계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던데.”
그러나 그들을 직격하는 운석!
콰아아앙!
“소원 빌기도 전에…… 어어어억!”
“천문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가야 하는데, 회귀…… 크어억!”
운석이 떨어지자 그곳에서 눈이 따가운 광명이 폭발하며 쑥대밭이 됐다.
“침입자를 처단하는 것도 저의 임무랍니다. 이곳 사막은 특수해 운석이 내리꽂혀도 무너지지 않아요.”
태연하게 메테오 스톰을 시전하고 손을 거두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성우 지대에서 영원히 운석을 떨어뜨리는 임무를 맡은 쓸쓸한 인형.
퀸소히니베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인형을 쳐다보았다.
“그럼 너는 이곳에서 평생 운석만 떨어뜨리는 것이 인생인 것이야?”
“왕께서 내리신 명령이니까요.”
과거에 우울증을 앓기도 했던 퀸소히니베는 유독 동정심을 내보였다.
“무척 외로울 것 같은 것이야.”
“어째서 제가 외롭나요?”
“그야 지금 드워프 왕은 실종됐는데도 계속 명령을 따르고…….”
“왕께서는 돌아오실 거예요.”
순간 쿰룸이 숨을 삼켰다.
그가 다급한 눈동자로 물었다.
“설마 또 ‘계시’가 내려온 건가?”
“예. 왕이 제게 계시를 전해주셨어요. 그분의 힘은 아직도 느껴져요.”
내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계시라뇨?”
“저번에도 왕께 계시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 또한 저 인형을 통해서 전달받은 것입니다.”
인형이 아랫입술에 손을 짚었다.
“하지만 왕의 상태가 좋지는 않으세요. 힘은 연하고, 보내주신 문자열은 희미해요. 당장 숨이 끊길 듯이.”
“역시나, 여전히…….”
쿰룸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 조력자가 위독한 상황이라고?
“얼마나 위험한 겁니까?”
“예전부터 좋지 않았지만 지금 몹시 심각해요. 제가 가늠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는, 버텨봐야 열흘. 그 기한을 넘기면 장담할 수 없어요.”
“그 말은 즉…….”
“예. 현재 왕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을 구출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어요. 자신이 있는 곳을 계시해 주셨네요.”
내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왕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인형이 나의 펜타그램을 가리켰다.
“적색대륙 지배자가 사는 곳. 그곳에 당신께 조력하는 분이 계세요.”
***
그건 눈이 번뜩 뜨이는 정보였다.
적색대륙 지배자가 활동하는 구역에 나의 조력자가 있다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왕에게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는 겁니까?”
“예. 완벽하진 않지만 그분의 힘을 읽고 계시를 받을 수가 있답니다.”
인형이 그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너무나 인간과 흡사하여 나는 제법 놀라버렸다.
“왕은 제게 이름도 지어주셨어요. 그분이 저에게는 아버지 같으시죠.”
“아, 당신 이름이 뭡니까?”
“똘똘이요.”
“…….”
인형이 꿈꾸듯이 나에게 말하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름 아닌가요?”
……어째 조력자의 성격이 대충 예상 가는걸.
‘하여간 인형치곤 감정이 풍부해.’
그만큼 드워프 왕의 기술력이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증거일까.
“……왕이시여. 보고 싶나이다.”
인형은 왕이 그리운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조금 떨어뜨렸다.
그러자 퀸소히니베가 가여워했다.
“똘똘이가 시무룩해진 것이야.”
“……그만해. 듣기 이상해.”
하여간 이러 저래 산만해진 대화를 정리하는 것은 역시 헤르탄이었다.
“조력자가 적색대륙 지배자의 영역에 있고, 생명이 위태롭다면 여정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래요. 그 조력자라는 드워프 왕. 우리한테 도움 될 테니까.”
적색대륙 지배자를 죽이기 전에, 그가 사망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나는 인형에게 다가갔다.
“저희는 성좌의 금속 원료를 얻기 위해서 날아드는 운석을 베어야 합니다. 혹시 어떤 방법이 없겠습니까?”
“예. 없어요.”
“…….”
단호한 인형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강해지는 방법이라면 있어요. 괜찮은 운석이 있는 곳도 있고요.”
인형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흙밭.
“이곳에 특수한 운석이 묻혀 있어요. 안전한 것이죠. 하지만 깊게 묻혀 있는 터라 땅을 오래 파야 해요.”
그러자 쿰룸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곧바로 여러 자루의 삽을 꺼냈다.
“인간치곤 채광을 잘하시는군요?”
“그쪽도 꽤나 한껏 하나 봅니다?”
SSS급 채광 재능을 지닌 나와 드워프가 합심하자 아주 깊은 구덩이가 금세 생겨났다.
그곳에는 흰 운석이 묻혀 있었다.
[전생보상 운석을 찾았습니다.]
[회귀자가 만질 시 운석이 깨지며 전생의 아이템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전생에 대한 기억력이 나쁘다면, 효과가 전혀 다르거나 해괴한 전생 물건이 떨어집니다.]
헤르탄이 턱을 짚으며 말했다.
“전생의 기억이 뛰어날수록 확실한 보상을 받을 수 있나 봅니다.”
“여기서 기억이 뛰어난 자라면, 딱 저네요. 제가 손을 대어볼게요.”
카티에가 신중하게 운석에 손댔다.
그러자 운석이 쩌저적 갈라졌다.
[120회차 회귀자입니다.]
[깨진 운석에서는 회귀자와 관련 있는 전생의 아이템이 나옵니다.]
[모든 순간을 새기는 완전기억!]
[카티에 로넬야드의 83회차와 관련된 물품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큼지막한 압생트 병이었다.
그러나 안에 든 물질은 여러 색깔이 뒤섞인 희한한 액상의 술이었다.
카티에가 놀란 표정으로 그것을 주워들었다.
“설마 운석에서 이 아이템이 나올 줄은 몰랐어요. 이 술병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제가 아는 거예요.”
“네가 아는 아이템이라고?”
카티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화라는 별칭이 붙을 아이템이에요. 혼돈의 마녀를 무찔러야 얻을 수 있죠. 이젠 모든 회차에서 얻기가 불가능해진 아이템인데……, 끝없이 강해질 수 있어요. 어쩌면 지금의 대장이 이걸 사용하면, 진짜로 운석을 벨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그 정도야?”
일이 이렇게나 잘 풀릴 줄이야.
그렇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카티에가 덧붙이듯 말했다.
“물론 강해질 수 있지만, 딱 한 가지 몹시 치명적인 저주에 걸려요.”
“뭔데?”
“과거, 대장은 이걸 썼었거든요.”
“뭐가 어땠기에?”
“내 전생을 봤다면서요? 그렇다면 83회차도 본 기억이 있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곧바로 기억이 났다.
온 전생에서 유일하게 83회차에서만 카티에와 함께 다니던 절세미녀.
그러자 헤르탄이 턱을 쓰다듬었다.
“저도 한 번 보긴 했습니다. 분명 절세미녀라 불릴 만한 여자였죠.”
그가 과거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
“과거 멋모르고 반했을 정도입니다. 범철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릴 만큼. 예전에, 숙원을 써서라도 다시 보고 싶다고 했던 그 여자입니다.”
“헤르탄이 그리 말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미녀였던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제법 관심이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궁금해했다.
“확실히 엄청나게 미려한 사람이긴 했었지. 그런데 그거는 지금 왜?”
“83회차. 대장은 이걸 썼었어요. 뭐, 자의는 아니고 타의였지만.”
“야, 설마…….”
내가 불안한 표정을 짓자, 카티에가 모처럼 짓궂은 미소를 떠올렸다.
“그 절세미녀가 대장이에요. 이걸 쓰면 사용자 성별이 바뀌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