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83화
‘확실히, 다들 나이는 꽤 먹었군.’
내가 임종 직전의 시기이니만큼 거물들 역시 꽤나 늙어 있는 상태였다.
특히나 멸살군주는 본래 나이가 많아 이미 늙어 죽었을 시기였다.
그래서 군주만은 여기 모인 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해골 언데드였다.
“……시체를 부활시켜 데려왔냐?”
“인력을 파견해 황색, 청색, 적색대륙을 모조리 뒤졌습니다. 세뇌의 룬을 붙이는 작업은 쉽지 않았지요.”
죽었다니까 언데드를 데려오다니.
일레아흐가 설마 이 정도까지 일처리를 훌륭하게 해줄 줄은 몰랐다.
‘세뇌의 룬.’
그것을 사용해 거물을 집합시켰다.
나의 명령에는 절대복종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45회차야.’
회귀할수록 강해지는 거물들.
지금 회차에서 거물들은 120회차에서의 악명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당연하게도 여섯의 모든 거물이 모여도 세 마수를 해치울 수는 없다.
‘늙기도 했으니까. 다만 상관없어.’
지금 우리가 세 마리의 마수를 한꺼번에 상대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한 마리만 사냥하더라도 난 과업을 완료해 현실로 돌아간다.
애당초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늑대마수만 잡고 돌아가면 그만이다.
“병사들은 악마와 거미의 이목을 끌고, 거물은 늑대마수를 덮쳐라!”
내가 크게 소리쳤고, 모든 거물이 일제히 늑대마수를 향해 공격했다.
온몸이 뼈로 이뤄진 멸살군주의 뒤편에서 수십 개의 영혼이 빛났다.
“승냥이만도 못한 것 따위가.”
나는 거물들을 직접 살해하며 그들의 능력을 직접 겪어본 바가 있다.
[세뇌의 룬에 의해서 세뇌한 생명체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합니다.]
멸살군주 바르녹!
그는 회귀 시마다 부하의 혼을 10개씩 가질 수 있는 권능을 얻는다.
“본래 부하들의 혼을 쓰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지만, 명령이니 따르지.”
영혼을 불태우자 언데드 멸살군주의 권능은 강화되어 힘이 늘어났다.
그가 노련한 몸놀림으로 달리자 늑대의 송곳니가 단숨에 비틀어졌다.
“커러럭!”
늑대마수가 한층 분노하며 거물들을 향해 달려들 때, 그에 못지않은 맹수가 출현해 녀석을 막아 들었다.
늑대마수 못지않은 덩치의 대호!
“스승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어요.”
거대한 호랑이가 크르렁대었다.
범파 교주 이랑은 회귀할 때마다 더 많은 모피를 생명체로 살릴 수 있고, 본인도 변신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되살리거나 변신할 수 있는 생물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대호까지가 한계지.’
대호는 늑대마수를 깔아뭉개고 단숨에 목덜미를 깨물어 부숴버렸다.
송곳니에 피가 번지고 뼈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늑대마수는 가쁜 숨을 쉭쉭대며 울부짖었다.
“크라앙!”
“크라아앙!”
대호에게 모여드는 새끼늑대들!
그러나 신속히 치고 나가는 검사들에 의해 새끼늑대들은 파훼 되었다.
“깨갱!”
새끼 늑대들을 죽이는 그들은 모두 같은 사람, 철파 교주의 화비였다.
“범파의 수장 따윈 돕기 싫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가 없군.”
회귀할수록 분신이 늘어나는 능력!
수십 명의 화비가 신속하게 협공을 해가며 새끼마수를 처치했다.
그러나 그때, 피에 젖은 늑대마수가 재빠르게 사막을 뛰기 시작했다.
“빠르다!”
“놓치지 말라고!”
체력회복을 위해 돌아선 늑대마수!
지금 빈사 상태인 놈을 놓치면 완전히 회복하여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하나 감히 거물들조차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마수의 질주는 재빨랐다.
하지만 그때, 웃기지도 않다는 듯이 찬웃음을 흘리는 여자가 있었다.
“지금 저게 뭐가 빠르다는 거야.”
세뇌의 룬이 새겨진 창천의 여제!
위니아는 추락사해서 회귀할 때마다 새로운 날개를 습득할 수 있다.
늑대마수는 감히 그녀의 민첩함을 따라잡지 못하고 온몸에 깃털이 박혔다.
“크아아악!”
“컁!”
늑대마수는 자기 새끼를 물고 던져 방패로 써가며 깃털 세례를 막았다.
그러자 창천의 여제는 날개를 펄럭이며 냉혈하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너도 모성애가 없는 모양이구나.”
자기 날개에서 깃털 하나를 뽑아 던지자 정확히 마수의 눈에 명중했다.
“크아아앙!”
늑대마수의 뜀박질이 멈추었고, 거물에게 포위당해 다시 공격당했다.
나는 후열에 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거물들을 멀찍이 지켜만 보았다.
[거물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세뇌의 룬에 의해 저들의 싸움이 그대로 몸에 경험으로 쌓입니다.]
[젊음의 힘을 되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가 싸우는 와중에도 오직 방관만 하는 거물이 있었다.
“난 왜 싸우도록 명령하지 않지?”
“넌 지금 나서봤자 뒈질 테니까.”
“…….”
그것은 바로 황제, 쟌.
120회차에서 내가 제일 고생한 거물이지만 45회차에서는 겉절이였다.
회귀할 때마다 훔칠 수 있는 SSS급 재능이 늘어나는 황제의 능력!
하나 안타깝게도 45회차에서 쟌이 보유한 SSS급 재능은 전혀 없었다.
‘SSS급 재능만 훔칠 수 있어서, 쟌은 다른 거물보다 성장이 느렸군.’
45회차에서 황제는 그저 민간인.
이곳에서 가장 쓸모없는 거물이며, 약한 데다가, 보유한 재능조차 없다.
“어쩐지 네 재능이 탐이 나는데.”
“그럼 주지.”
“……진짜로?”
곧바로 난 쟌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45회차에서 쌓은 경지 그대로, 검술 재능을 쟌한테 넘기겠다.”
내가 선언하자, 제한조건이 해금되어 쟌은 나의 모든 재능을 훔쳤다.
[황제가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극한까지 단련한 검술의 재능을 황제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단숨에 내게서 검술의 재능을 훔쳐간 쟌은 위압감부터가 달라졌다.
“이제 됐지? 가서 죽도록 싸워.”
“……고마워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네.”
단신으로 마수에게 돌격하는 황제!
난도질로 마수의 이빨을 꺾어낸다.
방금 재능을 훔쳤지만 귀신같은 활용도만은 과연 최악의 거물다웠다.
‘검 하나만 들어도 위압적이군.’
쟌은 세뇌 탓에 죽을 힘을 다해 검술 재능을 한껏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나의 숙달된 재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근육이 파열되고, 뼈에 금이 가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몸이 빨리 삭은 이유가 있었어. 저건 얼마 가지 않아 죽겠군.’
나의 재능을 훔친 쟌을 전선에 앞세우고 난 여전히 뒤에서 방관했다.
그리고 검의 재능을 빼앗은 쟌만큼이나 미쳐 날뛰는 거물이 존재했다.
‘검과 방패도 회귀하며 강해진다.’
다른 거물들에 비해서 어찌 보면 롬의 능력은 꽤나 수수한 편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롬의 전투를 보고서 그런 생각은 깔끔히 접었다.
‘백치가 아닌 롬의 진정한 전투력.’
롬은 방패로 마수를 으깨고, 검으로 발톱을 방어하며 적을 상대했다.
피투성이라곤 하지만 그 커다란 마수를 상대하는데 밀리지도 않는다.
정면으로 연옥계 마수를 상대하며 압박해가는 침착한 불세출의 검사!
‘괜히 거물과 불세출의 검사 칭호를 동시에 얻은 게 아니라니까. 그런데 방패로 때리고, 검으로 방어하는 것은 백치가 아니어도 똑같군.’
늑대마수는 죽어가고 있었고, 어느새 악마와 거미마수는 뒷전이 됐다.
그나마 생존한 병사들이 다른 두 마수의 시선을 끌어줬기 때문이다.
‘이대로만 가면 이길 수 있다.’
……라고 생각했던 순간.
“아우우우우!”
“크아아악! 나의 혼이 절규한다!”
“스카랴아아앗!”
늑대마수가 울부짖자 대악마가 스스로 불탔고 거미마수는 쓰러졌다.
그리고 사망한 둘의 영혼이 합쳐져 늑대마수에게 흘러드는 것이었다.
[새끼를 모두 잃은 늑대마수가 죽음을 앞두고 홀로 각성합니다.]
[세 마수의 혼이 융합됩니다.]
[곧 이상 현상이 벌어집니다.]
‘각성? 갑자기 이 상황에서?’
세 마수의 혼이 합쳐지는 것은 또 뭐지?
위화감과 의문점이 들었지만,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두 마수가 쓰러졌다! 이제 마수는 하나뿐이야! 모두 총공격해라!”
모든 이가 힘을 짜내 총공격을 동원했다.
그러나 늑대마수가 숨이 끊기기 직전, 돌연 눈빛이 황금빛으로 변했다.
[한계에 몰린 늑대마수가 마지막 체형변형으로 각성하였습니다!]
[늑대마수의 진명, ‘백금 갈기의 웨오르칸’이 공개되었습니다.]
[마수의 모든 능력치가 상승하며 사냥 난이도가 급등합니다.]
늑대마수의 털들이 백금색으로 물들더니, 갑자기 뒷다리로 일어선다.
체형이 인간으로 변하며, 온몸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거체의 웨어울프로 변신하는 마수!
‘아니, 저기서 체형까지 변형해?’
도저히 끝이 보이질 않는 놈이다.
“크우어어어엇!”
각성하며 피로, 상처까지 치유됐는지 웨오르칸은 동작이 빨라졌다.
심지어는 정면에서 싸우던 쟌이 주춤하자 단숨에 머리를 물어뜯었다.
“끄아악!”
[황제 쟌이 사망하였습니다!]
[빼앗긴 검술 재능을 돌려받았습니다.]
쟌이 죽고 난 뒤부터는 빠르게 거물들의 대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아, 안 돼!”
“이, 이런 제기랄! 또 죽음을……!”
범파 교주 이랑이 쓰러지고, 철파 교주 화비는 본체가 잡혀 죽었고, 창천의 여제는 도주하다 날개가 찢겨 사망했으며, 멸살군주는 본래 자기가 있어야 할 땅으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생존하던 롬마저 마수에게 짓밟혀버리며 전멸!
‘망할, 설마 거물들까지 당하다니.’
나는 재빨리 상태창을 살폈다.
[현재 되찾은 젊음의 힘: 47%]
그러나 아직 내가 되찾은 젊음의 힘은 47%에 불과했다.
이것만으로도 몸은 전보다 훨씬 가벼웠지만 아직 부족한 감이 많았다.
‘……아직 안 끝났어.’
모든 거물이 사망하고.
생존한 병사들도 거의 없는 위기.
난 배낭에서 해골을 꺼내 부쉈다.
[세상에 현존했던 마지막 성녀의 두개골을 깨뜨렸습니다.]
[‘기적’을 1회 사용 가능합니다.]
‘카티에한테 고마워해야겠군.’
내가 황색대륙 왕실납골당에서 남몰래 챙겨온 45회차 카티에의 유골!
‘퀸소히니베도 그렇고. 어쩐지 동료 뼈마다 죄다 효과가 죽이는데.’
그야말로 뼛속까지 도움 되는 동료를 만났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한다.
나는 단 한 번뿐인 기적을 젊음의 힘을 보충하는 데 바로 사용하였다.
[‘기적’을 소모하여, 1시간 동안 젊음의 힘을 절반 회복합니다.]
나의 왼손으로부터 끔찍한 빛이 터지며 나머지 젊음의 힘이 보충됐다.
[현재 되찾은 젊음의 힘: 97%]
‘이거면, 이제 충분해.’
눈을 가늘게 뜨자 대기가 떨렸다.
병사들을 학살하던 웨오르칸이 한기를 느끼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칼집을 흔들며 한 걸음, 내디뎠다.
휘이이이잉!
힘이 실린 칼집에 기류가 얽힌다.
고요히 걸으니 모래폭풍이 일었다.
“흐어어억!”
“왕이시여! 부디 진정을…… 억!”
사람들이 휩쓸리고, 비명을 내질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온몸에서 터져 흐르는 극한의 힘.
이건 정점에 오른 왕의 진가였다.
“왕이시여.”
뒤편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목소리의 주인은 헤르탄이었다.
“아마도, 제가 120회차에서까지 그대를 따르고 있는 이유는.”
칼을 쥔다.
내게, 이곳에 수많은 검이 있었다.
“어떤 회귀자에게도 물들지 않는, 그대의 신념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헤르탄이 몸을 조아렸다.
그는 나의 검이었다.
일레아흐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검이었다.
퀸소히니베의 보석과 카티에의 뼛가루가 나의 힘을 증진시켜주었다.
그들 모두가, 나의 검이었다.
‘검이란, 하나로 규정되지 않아.’
정점에 오른 상태를 경험하자 검의 새로운 의미를 깨우칠 수 있었다.
검이란, 그저 날이 예리한 쇠붙이만을 일컫는 명사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날 이루고 있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바로 검이었다.
“크르르르…….”
웨오르칸은, 이마를 땅에 박았다.
나에게서, 감히 도망치지 못하였다.
사막의 달궈진 모래에, 이마를 처박으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려댄다.
‘바로 지금처럼. 120회차에서도, 내게 주어진 모든 검을 쓸 것이다.’
마침내 검을 내리꽂았을 때.
사막이 붕괴되는 굉음이 울렸다.
웨오르칸의 육신이 산산이 찢긴다.
[연옥계 마수를 처치했습니다.]
[첫 번째 과업을 완료했습니다.]
[45회차의 모든 과업 달성!]
[명계로 떠나가는 헤르탄의 영혼을 강제로 붙잡습니다.]
[현실로 귀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