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81화
45회차 퀸소히니베.
120회차를 제외한 모든 삶에서 그녀는 우울증으로 아사해 단명했다.
내가 대규모 인원을 인솔해 퀸소히니베의 둥지에 시체를 찾으러 온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난 헤르탄이 넘긴 책을 살펴봤다.
『인간이 젊음의 힘을 찾으려면 특수한 생물의 사체를 써야만 한다.』
‘여기서 특수한 생물이란.’
바로 서로 다른 대륙 간의 핏줄을 물려받은 용을 의미한다.
그리고 퀸소히니베는 청색대륙의 백룡과 황색대륙의 레샬피티에 사이에서 출생한 보기 드문 용이었다.
‘내가 있던 120회차를 제외하곤 그녀는 항상 우울증으로 단명했다.’
그녀의 둥지 위치는 120회차에서 얘기를 들어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젊음의 힘을 되찾기 위해 퀸소히니베의 둥지를 찾은 것이다.
“굳어버린 용의 유해를 옮겨라.”
날 따르는 부하들이 대동하였다.
하나 단단히 굳은 용의 거체는 대규모 인력으로도 꿈쩍하지 않았다.
“너무 단단하게 굳어있습니다!”
“괜히 도굴꾼들이 뼈를 훔쳐가지 못한 게 아닙니다! 고정되었어요!”
퀸소히니베의 뼈는 꿈쩍도 안 했다.
그래서 내가 칼을 뽑았다.
“비켜라.”
[안드레카의 검을 뽑았습니다.]
[각성한 세계보검의 특수효과에 의해 공격력이 800% 증진됩니다.]
[현재 칠살七殺의 귀걸이가 핏빛이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과거 일곱 번의 학살을 한 대가로 7배의 완력 보정이 이뤄집니다.]
이 감각은 불멸 아귀를 마무리할 때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었다.
‘극한까지 단련한 재능이 육신에 힘을 불어넣는 바로 이 기분.’
비록 노쇠하여 몸은 엉망이지만, 내가 최강이었던 시절의 육체였다.
‘거기다가 장비까지도 미쳐버렸어.’
검은 단순히 뽑기만 했는데도 공격력이 800%나 증진되는 대보물이다.
거기다 갑옷과 장신구, 신발까지 무지막지한 옵션이 걸려 있었다.
‘괜히 왕으로 지낸 게 아니라니까.’
이만한 무구로 능력치 보정을 후하게 받으니 최강자로 군림한 것이다.
내가 퀸소히니베의 뼈를 향해서 검을 내려치자, 칼날의 풍압에 용의 거체가 드르르륵 반쪽이 나버렸다.
콰가가각!
“허어!”
“수천인 우리도 감히 움직일 수 없었던 용의 거체를 단번에 갈랐어.”
대신들이 일동 나에게 감탄하였다.
기본능력치가 워낙 뛰어나서 이딴 뼈쯤이야 가뿐하게 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뚜둑!
‘끄으으억!’
고작 검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허리에서 불협화음이 울려 퍼졌다.
검을 휘두른 팔이 근육통을 호소하고 욱신거려서 얼굴이 찌푸려졌다.
‘젊을 때 보통 고생을 한 게 아닌가 보다. 아주 몸이 개판이네, 망할.’
이래서야 능력치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제대로 활동도 못 하겠다.
쩌저저적.
하여간 반쪽으로 가른 퀸소히니베의 뼛골 사이 중앙을 나는 걸어갔다.
‘기분이 참 묘하네. 퀸소히니베의 유해를 가르고 걷게 될 줄은.’
유해의 두개골이 갈라진 자리에는 큼지막한 돌이 빛나고 있었다.
‘혼혈용의 호박.’
틀림없이 서적에 나와 있던, 젊음의 힘을 되찾게 해주는 보석이었다.
설마 퀸소히니베의 유해로부터 이런 보물을 얻을 수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죽은 뒤에 수십 년이 지나서 만들어질 수 있던 아이템이겠지만.’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칼로 문대어 작게 조각을 내서 삼켜버렸다.
[혼혈용의 호박을 삼켰습니다.]
[젊음의 활기, 정력, 힘이 아주 천천히 몸에 돌아오고 있습니다.]
[현재 0.7%의 ‘젊음의 힘’을 되찾았습니다.]
[무모하게 활동하고 사냥할수록 ‘젊음의 힘’은 빠르게 돌아옵니다.]
‘나쁘지 않군.’
확실히 온몸의 근육통과 관절염이 조금은 잦아드는 기분이었다.
우선 ‘젊음의 힘’을 되찾을 구실은 얻었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한 채로 젊음의 힘이 돌아오려면 20년은 걸린다.’
그리고 그 상태로 여유 부리다가는 나는 진작 자연사하고 말 것이다.
서둘러 헤르탄을 돌아보았다.
“진리의 문구가 존재하는 유적이 어디라고 했었죠?”
***
울부짖는 달빛의 유적 지하 8층.
이곳에서 나는 칼을 뽑아 들며 고대 흑기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노쇠한 나이에 맞지 않게 무리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근육통과 관절염이 심화되며 모든 능력치가 47%씩 감소합니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아내며 사냥을 계속하였다.
과거 칼의 시련에서 시간을 멈추는 고대 평기사와 조우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그때 그 녀석들보다 훨씬 강하고 악독하였다.
“#%$#%#%!”
“*r$#%#%#$#$!”
칼날은 하나같이 고대의 보검을 착용해 날카롭고, 갑옷과 방패의 내구력은 떨어지지 않으며, 지치지 않는 흑마에 올라타 속도까지 충만했다.
‘하나, 하나가 어지간한 던전의 보스몬스터조차 넘어설 만큼 강하군.’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비록 노쇠했어도 회귀자의 왕이다.
내가 칼을 툭 칠 때마다 투구째 산산조각 파괴되어버리는 흑기사들!
[‘젊음의 힘’이 평소보다 미묘하게 빠른 속도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4.2%의 ‘젊음의 힘’을 축적하였습니다.]
[50대의 기력을 되찾았습니다.]
거기다 나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부하들까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군.’
나를 따르는 신하들은 일개 군단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최강급이었다.
젊은이부터 백전노장까지 구성된 나의 군단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느 부대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전군은 회귀할 듯이 진격하라!”
일레아흐는 명령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전문적인 최고의 신하였다.
심지어는 전투에도 능통해서 그녀는 120회차에서 항상 붙어 다니던 히사네처럼 격투술의 달인이었다.
주먹을 휘두르면 흑기사의 갑옷조차 꿰뚫고 상처를 크게 입혀냈다.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상흔은 수목이 치유해줄 것이다.”
헤르탄은 그렇게 말하며 땅에서 푸르고 아름다운 빛의 수목을 피웠다.
놀랍게도 늙고 경지를 쌓은 헤르탄은 별다른 씨앗 없이도 땅에서 생명의 나무를 피워 전군을 회복시킨다.
45회차의 끝 무렵, 헤르탄의 주숙은 극한까지 개화되어 있었다.
“그거 아무 때나 가능한 기술입니까?”
“땅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흙과 물, 빛이 있으면 패배할 일도 없고요.”
45회차의 최정예 회귀자들로만 구성된 왕의 군단!
‘내가 명령 하나만 내려도 국가 몇 개는 그냥 박살 낼 수 있겠는데?’
괜히 헤르탄이 나를 따르는 대신들이 와해되어서 내가 왕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전성기의 용까지도 사냥할 수 있을지 모르는 대규모의 화력!
그런 우리 앞에서 고대유적의 흑기사들은 맥을 못 추고 사냥당했다.
흑기사들을 전부 해치워버리고 마지막 층으로 향했을 때, 그곳의 오래된 석벽에는 무언가 쓰여 있었다.
[유적 최하층에 도달했습니다.]
[하나 이곳엔 아무도 없습니다.]
[유적의 보스몬스터가 당신들의 거침없는 무력에 경악해 범접할 수 없는 시공간으로 달아났습니다.]
[바닥에 보스몬스터가 남기고 간 잿빛 털이 조금 남겨져 있습니다.]
[이것을 깊이 조사하면, 불가침영역 시공간에 서식하는 고대의 주인을 뒤쫓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숨에 유적을 격파한 우리가 두려웠는지 꽁무니를 뺀 보스몬스터!
분명 역사에서조차 몇 번 없었을 몹시 이례적인 경우였다.
‘보스몬스터는 쫓을 필요 없어. 과업이랑 관련도 없고, 보상을 얻어도 현실로 귀환하면 전부 없어지니까.’
나는 벽면에 손을 짚었다.
고대어로 빛나는 글귀가 적혀있다.
진리의 문구!
‘세상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를 다루고 있는 역사의 문장.’
꽤나 여러 줄글이 빛나고 있었는데, 도무지 해석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의미인지 읽을 수가 없군.’
그래서 영특한 신하를 돌아봤다.
“일레아흐. 이걸 어떻게 읽지?”
“간단하지요. 고대어에 능통한 사람을 찾아내면 됩니다.”
“그것도 일이겠군. 어디서 찾지?”
“전하의 눈앞에서.”
일레아흐는 석벽의 빛나는 글귀를 바라보며 바로 고대어를 해석했다.
“여긴 과거에 신을 모셨던 신전 같군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구만 축약해서 읽어줘.”
일레아흐는 벽의 글귀를 빠르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 보고 말했다.
“신은 대적불가하다. 신력이란 우리 세상이 있기에 이뤄진 것이니.”
[진리의 문구가 저장됐습니다.]
[마나가 사흘간 2배가 됩니다.]
[언제든 상태창을 펼쳐 다시금 진리의 문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문구를 매 아침마다 낭독하면 고대의 신앙을 알게 됩니다.]
[제2과업을 달성하였습니다.]
제2과업의 달성!
단순히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스몬스터와의 전투 없이 고대 유적을 최단시간으로 격파했습니다.]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세뇌의 룬(5)을 획득했습니다.]
내 앞에 특수한 룬 문자가 박힌 인장 다섯 개가 주어졌다.
‘세뇌의 룬이라.’
설명을 읽어 보니 강인한 생명체를 세뇌할 수 있는 특수한 아이템이었다.
하여간 제1과업만 달성하면 헤르탄을 살리고, 현실로 귀환할 수 있다.
‘제2과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군.’
하지만 문제는 제1과업이다.
‘연옥계 마수 사냥.’
대륙지배자 다음으로 엄청나다는 마수를 과연 사냥할 수나 있을까.
“진리의 문구를 찾았군요. 이제 연옥계 마수를 사냥할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그래 봐야겠죠.”
젊음의 힘을 그럭저럭 되찾은 나는 짚고 있던 지팡이를 던져버렸다.
“그런데 카티에와 나머지 동료들은 어떻게 된 상태입니까?”
“안타깝게도 이미 모두 죽었습니다. 항시 함께하는 일행 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전하 혼자뿐이십니다.”
설마 모두가 죽었다니.
하기야 카티에는 기적을 너무 많이 써서 45회차에선 단명했다고 했지.
“무덤에나 한번 가봐야겠군요.”
하여간.
‘제1과업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해.’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지금 45회차, 모든 삶을 통틀어 최전성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마법이나 다른 재능은 없지만, 재능의 숙련도와 장비가 120회차와는 전혀 비교조차 되지 않아.’
최강자라면 120회차에서 활동이 힘든 곳도 거뜬히 모험할 수 있다.
그럼 생존이 힘겨운 사막에서도 원하는 인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적색대륙으로 향해야겠습니다.”
“어째서 말입니까?”
“그곳에서 만날 사람이 있으니까.”
***
지금 내가 위치한 곳은 황색대륙.
적색대륙까지 배를 타고 가려면 최소한 몇 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평범하게 배를 타는 방법은 너무 늦어. 빠른 방법을 택하고 싶은데.”
“하늘선을 타거나 축지법을 쓰는 도사를 찾는 법도 있지만 번거롭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을 택하죠.”
일레아흐가 제안한 방법은 바로 순간이동이었다.
‘왕이 가진 힘이란 게 참 놀랍군.’
일만 명의 마법사가 모여서 마력을 끌어 모아준 덕에 나는 적색대륙으로 바로 순간이동이 가능하게 됐다.
적색대륙까지 내가 함께 데려갈 것은 헤르탄, 단 한 명뿐이었다.
“이 방법은 가장 빠르지만 마력의 소모 때문에 인원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단둘이서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충분해.”
그리고 그녀는 남편인 헤르탄에게도 각별히 안전을 당부하였다.
“전하와 바람피우지 마라.”
“네 맞바람이 역겨워 불가능하지.”
“…….”
저 둘은 45회차에서도 살벌하구만.
하여간 나는 왕정에 남게 된 일레아흐에게 남몰래 은밀히 속삭였다.
“그리고 네게 부탁이 있는데…….”
내가 속삭이자, 그녀가 끄덕였다.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로? 꽤 위험할 텐데?”
“위험한 것을 위험하지 않게끔 해결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과연 일레아흐로군.
나는 그녀에게 유적에서 획득한 세뇌의 룬 다섯 장을 넘겨주었다.
그러자 일레아흐도 나에게 특이하게 생긴 마석을 한 개 넘겨주었다.
“호출하실 상황이 되시면 저를 부르십시오. 모든 준비를 마쳤다면 그 마석이 푸르게 변해 있을 겁니다.”
그렇게, 나와 헤르탄은 적색대륙의 붉은 사막에 도착하였다.
‘분명 사막 어딘가에 있을 텐데.’
우리는 붉은 사막을 걷고 있었다.
나야 젊음의 힘을 조금씩 되찾고 있어 그렇다지만, 헤르탄은 늙었는데도 걸음이 전혀 느리지 않았다.
“헤르탄은 늙어서도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나 봅니다?”
“범철이 젊은 시절에 고생을 많이 해서 몸이 지나치게 상한 겁니다.”
확실히 이만한 힘을 축적하려면 젊은 시절에 꽤나 고생하긴 했겠지.
헤르탄이 사막의 땡볕에 주름진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적색대륙에도 저희 세력은 있습니다. 그쪽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까?”
“아니, 일단은 소규모로 움직이죠.”
그쪽이 지금 만나게 될 사람과 나쁘지 않은 인연을 만들 테니까.
하여간 밤이 되고 우린 노숙했다.
헤르탄이 높은 밤하늘을 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참 새롭군요. 전하가 120회차에서 오신 분이시라니.”
“저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허리를 두드리며 하품했다.
늙은이 둘이서 사막을 걷자니 보통 고생이 아니로군.
헤르탄은 불가를 뒤적이며 물었다.
“여기서 누굴 만날 작정이십니까?”
“지금 여정에 반드시 필요한 자.”
“무엇을 하실 생각이시기에?”
“말로 설명해 봤자 어렵습니다. 나중에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사막을 방황하는 그의 행적을 찾았다.
“그런 독특한 무장을 한 남자라면 가끔씩 봤었지. 저쪽으로 가보쇼. 항상 이 시간엔 저쪽 언덕에 있던데.”
다행히도 사막유목민을 찾아서 그의 흔적을 빠르게 쫓을 수 있었다.
사막언덕에 가보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고, 우린 가까이 올라갔다.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남자가 사막 한가운데에 앉아 물을 먹고 있었다.
내가 그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롬.”
그가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볼일이 있다면, 화장실을 찾아봐.”
세계 유일, 거물이자 불세출 검사.
붉은 검과 시푸른 방패를 쥔 남자.
45회차, 롬은 백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