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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78화 (178/200)

나만 1회차 178화

“제기랄, 인원 점검부터 실시해!”

“막사에서 뭐 하나 나오기라도 하면 가장 끔찍하게 회귀할 줄 알아!”

다음 날 아침, 병영이 뒤집혔다.

밤사이 누군가가 적진에서 탈취한 용의 알을 깨부숴 버렸다는 것이다.

“하아암. 아침부터 무슨 일이래?”

“용의 알이 깨졌다더군.”

“뭐! 그게 정말이야? 누가?”

틴의 대답에 글래스가 벗어뒀던 안경을 고쳐 쓰며 크게 놀랐다.

세베켈이 황당해하며 중얼댔다.

“훔치는 것도 아니고 부숴?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딴 짓을 한 거람?”

포그돈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용의 알이 깨지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그야 분노한 용이 찾아오겠지? 알을 깨뜨리는 것은 중죄이니까.”

나도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뭐? 아무리 회귀자라지만 그만한 또라이 짓을 한 놈이 있다고?”

“그러게. 내가 아는 놈이 그런 거라면 당장 직접 회귀시켜 줄 텐데.”

포그돈도 불쾌한 기색을 내보였다.

“이제야 적진이 코앞인데, 개자식이군.”

틴도 짜증을 내었다.

유일하게 한 마디도 내뱉지 않은 사람은 카티에뿐이었다.

“…….”

그날 아침부터 그녀는 그저 나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바탕 병영에 소동이 일며 압수수색이 시작되었지만, 헛수고였다.

‘흔적 남기지 않느라 고생했었지.’

나는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기 위해 지휘관 거처에 갈 때, 일부러 누구도 가지 못하는 샛길로 이동하였다.

‘바로 하늘.’

로크를 살해하고 획득한 대형날개!

난 언제든 커다란 날개를 펼쳐서 하늘을 주행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날갯짓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짧은 고공을 날은 덕분에 기절시킨 보초병 외에 목격자가 없었다.

‘하늘로 이동하여 알을 깨뜨렸으니 범행경로를 추측하기는 어렵겠지.’

당연히 내 범행을 알고 있는 자는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다음날이 될 때까지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다.

포그돈은 괜스레 턱을 매만지며 은근슬쩍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야, 틴. 설마 네가 범인 아니냐?”

“내 전문은 도둑질이다. 멍청아. 귀한 보물 깨뜨리는 건 초보 짓이지.”

세베켈은 나름대로 추리하였다.

“분명 계획범죄일 거야. 그 해제가 어려운 마법자물쇠도 단숨에 따버리고 알을 깬 걸 보면 딱 알 수 있지.”

일행이 머리를 맞대고 추론했다.

글래스가 곰곰이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새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어쩌면 반란군 소행이 아닐까? 알을 빼앗겨 화가 난 거지. 이거라면 알을 깨뜨린 것도 설명되지 않아?”

“글쎄, 외부 소행이라 보긴 힘들 것 같은데. 아무리 본진의 방비가 허술해도 적이 침범하고 빠져나가게 두겠냐? 거기다 어제 패한 놈들인데?”

나도 일행의 추리극에 동참하여 진지하게 맞장구를 쳤다.

“난 오히려 미쳐서 맛이 간 회귀자가 범인이 아닐까 싶다. 공들여 놓은 걸 망칠 때 더 희열을 느끼잖아.”

당연히 범인은 나지만 여러 방면으로 연기해야 혼선이 생기는 법이다.

[모든 이의 추리를 경청해 일행과의 호감도가 소규모 증가합니다.]

[자신이 진범인 주제에 사건의 수사에 혼선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럴듯한 사기를 30번 이상 치면 사기 관련 칭호를 획득합니다.]

나는 지쳐서 혀로 입술을 핥았다.

‘역시 사기는 내가 할 게 못 돼.’

거짓말도 많이 하니 지쳐간다.

역시 난 사기를 치기보단 사기꾼을 잡아내는 역할이 몸에 맞는 편이다.

그런데 카티에가 날 툭 건드렸다.

“나와요. 둘이서 할 얘기 있어요.”

“설마 고백이냐?”

“농담은 섹스와 동일해요. 상대가 원하고 즐길 때나 쳐야 하는 거죠.”

“…….”

순식간에 내 입을 다물게 만든 카티에를 따라 나는 오솔길을 걸었다.

둘만 있게 되자, 카티에가 말했다.

“왜 깨버렸죠?”

“뭘?”

“시치미 떼지 마요. 나는 알고 있어요. 그 알, 당신이 부쉈잖아요.”

난 어이없어하며 눈썹을 올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곳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당신을 전생부터 보아왔어요.”

21회차 카티에가, 날 쏘아붙였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재능을 갖고 있죠? 아무리 전생을 기억 못 한다지만 이번 삶의 당신은 너무 달라요. 지나치게 강하고, 너무 뛰어나요.”

역시, 그녀마저 속이는 건 어렵겠다.

“……다른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

내가 표정을 바꾸자, 카티에의 눈빛이 한층 예리해졌다.

이제까지 답답하게 뭉쳐왔던 의구심을 풀어내겠다는 듯 말이 터진다.

“당신은 뭐죠? 회귀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회귀자의 예측범위를 뛰어 넘는 방면에서 행동할 수가 있죠?”

“사실 난 미래 회차에서 왔거든.”

“또 말도 안 되는 농담을…….”

“120회차의 네가 죽어가고 있어. 그래서 나는 21회차로 온 거야.”

카티에가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지었고, 나는 이어서 말하였다.

“이곳에 남을 수 있다면 남는 것도 좋겠지만 그럴 순 없어. 120회차에서 죽어가고 있는 네가 있으니까.”

나는 잠시 침묵했다 입을 열었다.

“카티에.”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가.

어째서 용의 알을 깨버렸는가.

그리고 왜 전생의 헤르탄을 제압하기 위해 어려운 판을 짜고 있는가.

“네가 죽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아.”

내가 속삭이자 카티에가 입술을 씹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서 그 무모한 짓을 벌인 건가요? 용의 알을 부수는, 45번을 산 회귀자조차 하지 않는 미친 짓을?”

“예전부터 회귀자를 항상 욕했었는데, 이젠 나도 그럴 입장은 아니야.”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말하였다.

“이제는 나도 좀 미친 것 같아서.”

난 잠시 고개를 숙이며 침묵했다.

그리고는 어째선지 웃음이 터졌다.

“왜 웃는 거죠?”

“그냥, 웃겨서. 미쳐간다는 말은 내가 정상이 되어가고 있단 거잖아.”

카티에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친 게 어째서 정상인 거죠?”

나는 그저 미소 지으며 지나쳤다.

“내가 사는 회차는 나 말고 죄다 미쳤거든. 그래서 정상인은 오히려 이상한 놈 취급을 받게 되더라고.”

헤르탄이 해줬던 말이 떠오른다.

미칠수록 살기가 쉽다는 것을.

‘슬프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밖에.’

불현듯 그런 예감이 들었다.

회귀를 멈추고 여정을 끝내려면.

언젠가, 나는 그 어떤 회귀자보다 미친 녀석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

내가 제2반란군장까지 죽였으므로 우리 용병대 이름은 제2용병대였다.

전장에 모인 수많은 용병대 사이에서 2등이란 의미였지만, 나는 거부하고 제3용병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본래 21회차 삶에서는 제3용병대였을 테니까. 원래 삶에선 제3반란군장을 죽이는 데까지만 성공했었지.’

기왕이면 본래 역사에 있었던 이름이 더 좋지 않겠나.

‘하여간 시간이 촉박해지고 있다.’

과업의 기한은 30일.

17일이란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남은 13일 안에 나는 헤르탄과 조우해 어떻게든 제압을 해야만 했다.

‘슬슬 반응이 올 시간일 텐데.’

용의 알을 깨부순 여파로 인해 우린 황급히 퇴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전쟁용으로 지급된 뭉툭한 장검을 슥슥 갈면서 지나가듯 말했다.

“카티에.”

“꺼져요.”

“원하고, 즐기고 싶냐?”

“전혀요.”

“그럼 진담으로 말하지. 친구 하자.”

“숨져요.”

“…….”

내가 미래 회차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로 카티에는 저기압이다.

일행 모두와 친밀해져야 과업을 완료할 수 있을 텐데, 이거 큰일이군.

그때, 저편에서 화살이 쏟아졌다.

“화살이다!”

“기습이야!”

용병들이 재빨리 방패를 들었다.

말을 타고 오는 수백의 반란군!

마스크를 쓰고 해머를 휘두르는 거한이 가장 선두에 서고 있었다.

“제1반란군장이다!”

“어정쩡한 적습이 아니다! 적의 본대가 총공격을 해온 거라고!”

“모든 용병대는 각기 일어서라!”

퇴각을 준비하던 우리에게 적의 기습은 그야말로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모든 회귀자가 혼란해하고 있지만.

나만은 태평하게 말했다.

“타이밍 정확하게 맞아 들었네.”

그러자 세베켈이 태평한 나의 태도에 화가 났는지 성을 냈다.

“무슨 개소리야! 이대로라면 목표는 이루지도 못하고 회귀할 텐데!”

나는 말없이 하늘을 가리켰다.

내 검지를 따라간 용병들의 시선이 흐리멍덩해지며 잠시 멍해졌다.

그곳에서는, 뼈로 이뤄진 거대한 용이 날아오고 있었다.

***

세상에서, 미래를 아는 것은 오직 회귀자의 강점이다.

그러나 1회차인 나일지라도 미래의 회차에서 온 나는 상황이 달랐다.

‘아직 21회차에 없는 정보라면, 충분히 머릿속에 가득히 들어있다.’

21회차의 세계에서 날뛸 수 있는 것은 내게도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120회차에서 획득한 지식이지만,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크와아아아악!”

갑작스러운 본드래곤의 출현에 반란군, 용병군 모두 당황해 버렸다.

회귀자는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

그러나 용의 포효에는 죽음도 넘보지 못할 막대한 살기가 담겨 있다.

“으으윽!”

“히, 힘이!”

어설픈 경지의 회귀자들은 포효를 듣자마자 힘을 잃고 무릎 꿇었다.

그나마 서 있는 회귀자들마저 비틀대고 있었고, 태연하게 용을 바라보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는 어째서 멀쩡하냐고?

‘많이 들어봐서 내성이 있으니까.’

용의 여왕, 본드래곤 레샬피티에는 낮지만 격노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

“이 하찮은 미물들이, 감히 용의 알을 깨뜨렸단 말이냐.”

21회차의 레샬피티에.

나는 그녀를 향해 정중히 나섰다.

“오해이십니다. 레샬피티에.”

“너는 무엇인데 내 이름을 알지.”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나는 당신의 딸, 퀸소히니베의 절친한 친구입니다.”

그러자 레샬피티에가 부정하였다.

“되도 않는 거짓말은 마라. 내 딸이 친구가 있을 리 없다.”

“사실입니다.”

“집 나간 내 딸은 친구가 없다. 아직까지 소식도 전해 듣지 못했지.”

“용의 여왕의 딸은 퀸소히니베입니다. 그 이름은 인간 중에서도 오직 저만이 알고 있지요.”

헤르탄은 용 전체를 조사했던 삶도 있었다고 했지만, 퀸소히니베란 이름은 전생에서 들은 적 없다 했다.

21회차 인간 중에서 그녀를 자세히 아는 것은 분명 나뿐일 것이다.

“당신의 가출한 딸을 만났습니다. 남을 노예로 삼기 좋아하고, 오만하며, 당신처럼 신화에 자기 이름을 남기기를 원하고 있는 친구이지요.”

내가 퀸소히니베에 대해 상세히 묘사를 해주자 레샬피티에가 잠시 멈칫하며 숨을 골랐다.

“……딸의 친구니 말은 들어준다. 오해라 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용의 알을 깨뜨린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바로 저들이죠.”

나는 반란군을 즉시 가리켰다.

모두가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지만, 용의 살기에 눌려 옴짝달싹 못 했다.

“너희 같은 미물은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 알아듣게 제대로 말해라.”

“어깨에 찬 녹색 띠가 반란군 표식입니다. 저들이 폭파룡의 알을 훔쳐 자기들 욕망에 이용한 주범입니다.”

사실 깨뜨린 것은 나지만.

레샬피티에의 살기가 거세졌다.

“그러면 녹색 띠를 단 놈들만 죽이면 그만이겠군. 알을 깨뜨린 것, 그것도 폭파룡의 알을 깨뜨린 것은 가장 큰 중죄다. 재판에 회부할 가치조차 없다. 중립의 규칙에 의거하여 너희는 이곳에서 즉시 사형이다.”

레샬피티에가 숨을 들이마시며 검은 브레스를 내뱉었다.

콰아아악!

그 순간, 우리 진영에 침입한 반란군 전체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살아남아도 신체 부위를 잃었고, 그제야 다들 정신을 차렸다.

“요, 용의 여왕이 날뛰고 있다!”

“모두 도망쳐!”

“반란군 쪽과 감히 엮이지 마라!”

용의 여왕이 반란군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모두 도주를 시작하였다.

한편 허겁지겁 도망치는 와중에도 날 유일하게 노려보는 자도 있었다.

마스크 사이로 번뜩이는 눈빛과 살벌하게 들어 올려지는 육중한 해머.

‘일 대 일 상황을 만들려면.’

말을 내뱉어야 한다.

적을 도발하기 가장 적합한 그 말.

나는 칼을 거머쥐고서 소리쳤다.

“난 미래 회차의 당신을 알지.”

헤르탄이, 그곳으로부터 달려왔다.

그리고 난 도발적으로 웃어보였다.

“그래서, 정면승부는 하지 않겠어.”

곧장 꺼냈던 칼을 집어넣으며, 난 마력을 끌어모아 대형마법을 썼다.

[‘대형화염지대’를 썼습니다.]

[‘낙뢰의 전야’를 썼습니다.]

[‘역병의 바다’를 썼습니다.]

“으아아악!”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동시에 불타고 낙뢰가 내려치며, 역병이 들끓기 시작하는 전장!

거기다가 본드래곤까지 날뛰고 있으니 소규모 지옥이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대형마법을 쓰지 않은 것은 오직 지금 이때를 위해서지.’

설령 헤르탄이라도 내가 이런 마법을 쓸 거라고는 상상 못 했을 거다.

그러나 그의 집념과 초월적인 집중력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뭐야?’

광범위마법에 낙뢰를 맞아 몸이 타고 역병에 걸리면서도 그는 달렸다.

질기게 대형마법 지대를 뛰어넘고는 독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헤르탄!

헤집어진 마스크가 닳아 풀리며 그의 훤하고 차가운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나 나는 픽 웃어줄 뿐이었다.

“헤르탄, 당신. 그거 알아?”

그러자 그가 처음 입을 열었다.

동작은 감정적으로 분노한 것처럼 보였는데, 목소리는 아주 침착했다.

“알지 못하지. 너의 정체조차도.”

“반면에 난 당신을 아주 잘 알지.”

나는 헤르탄에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약간의 틈.

그를 제압하려면, 그에 맞는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만 한다.

“당신.”

그리고 나는.

헤르탄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다.

“복상사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순간, 헤르탄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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