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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77화 (177/200)

나만 1회차 177화

나는 눈매를 비틀었다.

‘내가 사망했던 구간이라니.’

전생의 내가 사망한 장소, 보통 위험한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경계태세를 내세우며 주위를 살피자, 저편에 불타는 인영이 엿보였다.

“끄으으…… 끄어어엇!”

“회, 회귀하기 싫어! 너무 뜨거워!”

살아 있는 채로 타오르는 용병들.

누군가 적진의 깊숙한 곳에서 아군들을 화염으로 태워버리고 있었다.

나는 회귀자들조차 고통스럽게 죽여 버리는 적을 바라보았다.

“크화하하핫! 타라! 전부 타라!”

얇은 로브를 입은 반란군 마법사.

왼쪽 팔뚝에 두른 푸른 띠를 봐서는 반란군 신분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제정신은 아닌 것 같군.’

마법사가 광범위한 폭발을 시전할 때마다, 숲의 지축이 크게 흔들린다.

반란군, 용병할 것 없이 폭발을 일으켜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재수 없게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조리 육신이 오체분시가 됐다.

“끄아아악!”

“아, 아파! 아아악!”

폭발도 단순한 마법이 아니었다.

땅에 있는 자갈이 터지거나, 비틀어진 고목이 터져버리기도 한다.

시전, 대기시간조차 없이 마나를 대량소모해 폭발을 일으키고 있다.

‘21회차라는 빠른 시기에 벌써 저런 마력이라니. 평균을 넘어서는군.’

어쩌면 과거에 조우했던 밀밭기사단처럼 회귀 시점 이전부터 상당한 실력을 쌓아둔 마법사일지 모른다.

어찌 됐건 실력에 비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폭발술사’의 정신상태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하기야 회귀자가 언제 제정신이었던 적이 있기나 하던가.’

나는 폭발술사를 향해서 다가갔다.

폭발에는 역시 냉기마법이 진리다.

조심스레, 한기의 숨결을 내뱉는다.

“후욱!”

그런데 이럴 수가.

내가 내뱉은 숨결에 폭발술사는 얼기는커녕 느려지지조차 않았다.

로브 한 자락까지 전혀 얼어붙지 않은 그가 나에게 킬킬 웃어댔다.

“히히히! 너도 터지고 싶니?”

나는 재빨리 뒷걸음질로 물러섰다.

동시에 앞에 있던 바위가 터졌다.

콰강!

조각난 자갈이 우수수 떨어진다.

서둘러 뒤로 빼지 않았더라면 나도 회귀자처럼 오체분시 당할 뻔했다.

난 어이가 없어 눈을 치켜세웠다.

‘……지금의 내 마법으로도 상대가 안 된다고? 저거 21회차 맞아?’

나는 SSS급 마법 재능을 지녔는데도, 폭발술사의 마력에 밀리고 있다.

능력치와 마법의 경지는 내가 앞설 텐데 21회차 회귀자한테 밀리다니?

그 순간, 나의 눈초리에 녀석의 볼록한 품새에 무언가가 엿보였다.

‘저건……?’

SSS급 보물 탐색 재능!

어느 정도 숙련된 재능에 집중하자 폭발술사 몸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둥그런 물체가 투시되기 시작했다.

‘저놈, 무언가 붉은색 보물을 지니고 있어. 아주 강력하고 뜨거운데.’

지금 저 폭발술사는 폭주 중이다.

무언가 엄청난 아이템을 지니고 있어서 마력이 폭등 중인 것이다.

‘물론 능력치 폭주에 대한 대가로 정신까지 나가버린 모양이지만.’

반란군의 폭발술사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마구 태우고 있다.

이제야 어째서 21회차의 내가 이곳에서 사망했는지 이유를 알겠다.

‘저만한 녀석이라면 죽고도 남지. 120회차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녀석이야.’

반란군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광기에 가득 찬 폭발술사를 내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강력한 적이었다.

그러나 ‘21회차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고생한 경험이 다르지.’

21회차의 회귀자와 120회차의 회귀자는 강함과 미친 정도가 다르다.

그러니 120회차 회귀자에게 별 고생을 다 맛본 나는 어지간한 미친놈에게조차 웬만해서는 면역이었다.

‘저놈도 내 기준에선 딱히 별것은 아니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수를 계산하고 있을 때, 누가 내게 소리쳤다.

“제기랄, 위험해!”

포그돈이 돌진해 나를 밀치며, 방패로 폭발하는 나무를 막아주었다.

동시에 뒤쪽에서 단검을 내던지며 틴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근처로 가지 마! 놈의 주위에 있는 사물이 뭐든지 폭발하고 있어!”

미치광이 폭발술사는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리며 마력이 휘감긴 왼손을 높게 들고 있었다.

“터져라! 기왕 끝낼 것 아름답게! 어차피 불사의 삶이 아니던가!”

지축이 격동해 연쇄지진이 일었다.

폭발술사의 마력은 근처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 위력적이고 강력했다.

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글래스!”

“으, 응? 왜?”

“골렘을 소환해! 네가 딱이야!”

멍하니 있던 글래스가 늘어진 안경을 고쳐 쓰며 곧장 주문을 외웠다.

“바위에서 새로운 생명이여. 나의 하수인이 되어서 곧바로 일어나라.”

그러자 곧장 깨진 자갈이 모여들며 바위골렘 세 마리가 완성되었다.

“크아아악! 이런 성가신 골렘 놈!”

아무리 폭발술사라도 바위골렘은 함부로 터뜨릴 수 없었다.

‘역시나, 폭발술사는 자력으로 움직이는 생물은 터뜨릴 수가 없다.’

놈이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움직일 수 없는 무생물!

그러나 폭발술사는 잿더미로 소형 폭발을 일으키며 골렘에게 맞섰다.

그 순간, 세베켈이 뛰어나갔다.

“어디 한 번 회귀해보자!”

세베켈의 검술은, 내 기준에서 보자면 그다지 훌륭한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전장에선 나름 상급자 대우를 받을만한 실력이지만, 내 눈으로 보자면 그저 그런 편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부족한 실력을 보충할만한 특수기술이 있었다.

‘자세한 기술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더니. 그게 바로 저거였나.’

검신의 길이가 확장되는 칼날!

세베켈이 칼을 휘두르자 검신의 길이가 크게 늘며 폭발술사를 베었다.

“크어!”

폭발술사는 곧바로 몸을 수그려서 손끝만 살짝 스쳤을 뿐이다.

그러나 녀석의 정신집중은 무너졌고, 자연히 마나도 흐트러졌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빠르게 다가가며 폭발술사의 정면을 향해 검을 내찔렀다.

“하찮은 왕 따위를 따르는 놈이!”

그러나 폭발술사는 정면에 보호막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였다.

나의 칼날이 노린 것이 자신의 뒤통수라는 사실도 모른 채.

‘공간왜곡!’

성공확률이 불확실해 자주 쓰지는 않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다.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는 듯하다가 폭발술사는 뒤통수를 관통당했다.

“크…… 억!”

[제2반란군장 미치광이 폭발술사 호켈을 해치워 버렸습니다.]

[공적도 1순위가 되었습니다.]

[적절한 지휘와 활약으로, 일행의 호감도가 아주 크게 올랐습니다.]

바닥에 쓰러진 폭발술사의 품에서 동그랗고 붉은 알이 굴러 나왔다.

녀석에게 막대한 광기와 폭주한 마력을 부여했던 바로 그 보물이다.

붉은 기운이 맴도는 알을 주웠다.

[‘폭파룡의 알’을 획득했습니다.]

[번식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폭파룡이 남긴 유일한 흔적입니다.]

[역사협회나 모험가 길드에 맡기면 특수칭호 획득이 가능합니다.]

[만약 알을 훼손할 시, 용의 여왕이 찾아와 대가를 치를 겁니다.]

[알의 신비로운 기운에 의해 주운 것만으로도 능력치가 오릅니다.]

[마력이 1 올랐습니다.]

“이건…… 고대부터 살았던 용의 알이로군요. 용들조차 귀중하게 여기는 진귀하고 강력한 보물이에요.”

카티에가 드물게 놀라워하며 말했고, 틴은 손에 젖은 땀을 닦아내었다.

“반란군 중에서 용에 관해 아주 방통한 회귀자가 있는 것이 분명해. 설마 저런 괴물까지 만들어냈다니.”

굉장히 높은 보상에 놀라는 것도 잠시, 곧바로 다음 문구가 떠올랐다.

[사망구간을 무사통과했습니다.]

[당신이 본래 사망한 구간을 카티에의 시선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보시겠습니까?]

당연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주위의 장면이 바뀌며 카티에가 실제로 겪은 21회차가 보였다.

***

사방에 용병들의 시체가 쌓였고, 살아남은 것은 한 용병대뿐이었다.

패배가 명확해가는 전장, 유일하게 생존한 용병대가 저편을 바라봤다.

미치광이 폭발술사가 천천히 다가왔지만, 이들은 한가롭게 대화했다.

“이제 어쩔까. 한 번 사는 대장이 말해봐. 제일 살고 싶을 것 아냐?”

“이제 와서 대장 취급이냐? 절대 대장이라곤 한 번도 안 부르더니.”

“그야 실세는 성녀님이시잖아?”

세베켈이 턱짓을 하자 범철은 픽 웃다가 문득 카티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동료 용병들의 시체를 불태우고 있었다.

“안 슬퍼?”

“전혀요. 회귀자니까.”

“너는 눈물도 없냐?”

“회귀하다 보니 마른 지 오래네요.”

“가끔은, 울어도 좋은데 말이야.”

카티에는 불쾌한 시선으로 그를 똑바로 보았다.

“당신은 이상한 사람이군요. 범철.”

“글쎄, 회귀를 못 해서 그런 걸까?”

“당신이 싫어요. 늘 농담조고. 한 번 사는 당신은, 회귀자의 삶이 얼마나 끔찍하고 삭막한지 모르겠죠.”

그러나 범철은 여전히 자신에게 얄미운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전이 시작되었다.

제3반란군장까지 해치웠던 그들은 마침내 제2반란군장과 조우했다.

그러나 저 미치광이 화염술사 탓에 함께 했던 용병들은 사망해 버렸다.

폭발에 장비가 훼손되고, 각자 신체의 일부가 불타며 상처를 입었다.

모두가 전멸을 직감하고 있을 때.

“카티에. 그리고 다들.”

오로지 한 남자만이 움직였다.

“내가 기억 못 하더라도 다음 삶에서 잘 부탁해.”

“제기랄, 너 설마!”

포그돈이 소리를 지르며 노려봤다.

그러나 범철은 뛰어나가고 있었다.

카티에가 비명을 내질렀다.

“대장!”

그것이 그에게 처음으로 대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크윽!”

폭발술사는 범철에게 결정적인 일격을 허용했지만, 마지막 폭발만을 일으키고 다급히 도망쳐 버렸다.

일격에 몸을 던진 범철은 폭발에 휘말려 수 미터를 날아가 버렸다.

모든 일행이 다급히 그를 일으켰지만, 이미 반신이 잿더미가 되었다.

머리칼은 빠지고, 눈알도 타버렸다.

“제기랄! 어째서 멍청하게! 우린 회귀하면 그만이라구요! 그런데, 왜 회귀도 못 하는 당신이 나서서……!”

“내가…… 대장이니까. 의무지.”

평소에 과묵하던 틴조차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바락 소리를 질렀다.

“제기랄! 의무 좋아하네! 우리가 좋아할 것 같아? 여기서 제일 살고 싶은 것은 너잖아! 대장인 너만 죽고 우리가 살면 좋아할 것 같냐고!”

포그돈은 주먹을 피나게 쥐었다.

틴은 회귀하며 처음으로 자신도 모르는 격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글래스는 안경을 벗고 흐느끼며, 눈매를 소매로 감추고 있었다.

세베켈은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무겁게 희생한 대장을 지켜보았다.

“안 돼, 안 돼……!”

카티에는 어떻게든 그를 치유하기 위해서 범철을 안고 치유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그가 속삭였다.

“찾아와…… 줘.”

카티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죽어가는 범철이, 그녀의 어깨에 힘겹게 손을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회귀도 못 하는 주제에, 미래를 아는 회귀자조차 농락해대는 그 웃음.

“다음 삶에도, 나를 찾아와줘.”

그리고, 한 번 사는 자가 죽었다.

카티에는 오랜만에 눈물을 쏟았다.

***

‘……묘하네.’

전생의 광경이라지만, 어찌 됐건 내가 죽는 장면을 직접 보게 되다니.

하여간 나의 자기희생에 카티에와 일행은 적잖게 감동했던 모양이다.

‘이래서 다들 나와 함께 하게 됐던 거군. 버려진 120회차까지 말이야.’

나는 항상 전생에 대해서 회귀자들을 통해 얘기로만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말로만 듣는 전생에 관해 답답했는데, 직접 전생을 비켜보니까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그런데 희생으로 가까워졌었다니.’

기존의 21회차와는 달리 나는 폭발술사를 완벽하게 제압해 버렸다.

폭발술사한테 내가 죽지 않은 지금은 일행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까?

그런 걸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지휘관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신참!”

“왜 그러십니까?”

“몰라서 묻나? 그 알은 아까 제2반란군장한테서 얻은 희귀 물건 아닌가. 그건 중요품이니 가져가겠다.”

그는 내게서 알을 뺏어가 버렸다.

아주 당연하고 뻔뻔한 태도였다.

“이봐! 지금 뭐하는……!”

발끈한 포그돈이 뭐라고 하려 했지만, 나는 그를 제지시켰다.

“그만둬.”

“화도 안 나? 우리가 힘겹게 얻은 전리품을 압수해 갔잖아! 아마 우리 공적도 자기 걸로 만들 속셈일걸?”

“군법에 따르자면 저게 맞아. 일개 용병이 중요품을 가질 수는 없어.”

“어차피 회귀자들 세상인데 그깟 군법이 무슨 상관이라고!”

포그돈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세베켈이 중재를 했다.

“자, 자. 됐어. 아까 폭발술사 못 봤냐? 저건 개인이 가질 게 못 된다고. 어찌 됐건 이번 회차를 허투루 날리지 않은 것에 위안을 얻자고.”

우리는 쉬기 위해서 돌아갔다.

카티에는 날 유독 오래 바라봤지만 결국 말없이 고개 돌릴 뿐이었다.

***

모두가 잠이 든 시각.

나는 몰래 일어나 거처를 나왔다.

“무슨 일로 지금…… 어억!”

그리고 지휘관 텐트로 가서 보초병들 뒷목을 칼집으로 쳐 기절시켰다.

“쿠우우…….”

낮에 내게 알을 빼앗은 욕심 많은 지휘관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거기서 난 자물쇠가 걸려 있는 큼지막한 상자를 어렵지 않게 찾았다.

보통 철 자물쇠는 아닌지 테두리에서 두터운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나 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잠금 해제 재능.’

상자의 자물쇠를 따자, 그곳에 천에 곱게 포개진 붉은 알이 보였다.

어차피 이곳은 평행세계.

나의 행동은 차후의 현실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제한시간까지 앞으로 고작 14일.’

저 눈앞의 적진을 그 안에 깨부수지 못하면 내게 승산이란 없었다.

하나 지금 속도론 제1반란군장 헤르탄까지 도달하려면 너무 멀었다.

‘어떻게든 14일 안에만 헤르탄을 제압하면 된다. 나머진 안 중요해.’

그러면 내가 할 행동은 간단하다.

내가 내려친 검이 알을 깨뜨렸다.

콰그작!

[폭파룡의 알을 깨뜨렸습니다!]

[‘여왕’이 격노해 찾아옵니다.]

[대형범죄를 저질러, 중립을 지키는 용들에게조차 표적이 됩니다.]

[모든 인간에 대한 황색대륙 용의 적개심이 최대치로 변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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