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1회차-174화 (174/200)

나만 1회차 174화

‘시간 역행?’

순간 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내가 회귀하게 되는 건가?’

그러나 지금 현재 벌어지는 상황은 회귀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주위의 사물들이 서서히 멈춰간다.

순간가속을 쓸 때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감각.

‘시간이 멈추고 있다. 나만 빼고.’

선 채로 울고 있는 퀸소히니베도.

무참히 침울해하는 롬도.

쓰러져서 골골대는 샬까지도.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정지하였다.

[현실 시간이 정지되었습니다.]

[현재 두 사람은 가사상태에 빠졌을 뿐, 아직 사망한 게 아닙니다.]

[앞으로 당신의 행동에 따라 두 사람의 생존 여부가 결정됩니다.]

나는 주위를 살폈다.

현재 멈춰진 세상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 혼자뿐이었다.

피투성이로 쓰러진 둘을 바라본다.

‘가사상태에 빠진 것뿐이라고?’

호흡과 맥이 멎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는 소리였다.

상태창에 떠오른 말이 사실이라면 아직 둘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시간 역행’이 발동 중입니다.]

[시간을 역행하여 되살리려는 인물의 전생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해당 인물의 전생에서 특수과업에 성공하면, 떠나가는 영혼을 데려와 죽음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죽음을 막을 수가 있다.’

되살리려는 인물의 전생을 지켜볼 수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진정하자.’

나는 침착하려 애쓰며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특수과업?

전생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특수과업이 무엇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특이한 조건이긴 하지만 두 사람을 당장 살릴 수 있다면 해야만 한다.

[먼저 지켜볼 인물의 전생을 택하여 가슴 위에 손을 얹어주십시오.]

‘우선은 카티에부터.’

나는 피로 젖은 카티에의 가슴 위에다가 손을 올렸다.

그러자 문구가 떠올랐다.

[‘카티에 로넬야드’의 삶.]

[1회차, ‘헌신하는 성녀.’]

[지금부터 ‘카티에 로넬야드’의 모든 전생을 지켜봅니다.]

***

카티에 로넬야드.

그것은 자신의 이름이었다.

카티에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성녀’로 정해져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일가의 명망이 높은 성녀로 살았으니까.

거기다가 자신 이외의 다른 성녀의 핏줄은 맥이 끊겨버리기도 했었고.

‘수도원.’

자신은 그곳을 맡으며 생활하였다.

누군가는 한창때 나이에 수도원에 갇혀 사는 그녀를 가엾게 여겼다.

그러나 카티에 자신은 자기의 삶이 그다지 나쁜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친구는 없지만, 신앙이 있으니까.’

신에게 봉사하며 살다 보면 그녀는 자신의 삶도 구원받으리라 믿었다.

매일 아침마다 예배를 하였고 휴일에는 신자에게 안수기도를 올렸다.

가난하거나 갈 곳 없는 자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봉사하기도 하였다.

그리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그녀는 결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고된 일을 맡아서 헌신하는 성녀.’

그것이 바로 카티에 로넬야드였다.

그녀가 솔선수범해서 신께 헌신하는 이유는 간단하였다.

‘그래야만 죽어서 낙원에 가니까.’

그 간단한 이유를 어려서부터 할머니께, 그리고 어머니께 교육받았다.

카티에는 성녀답게 순종적이고 선한 천성을 타고나 그 말을 따랐다.

그렇게 평생 봉사의 삶을 마치고 신자들 앞에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드디어 끝이로구나.’

카티에는 스스로가 낙원에 가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세상의 그 어떤 신도들보다도 봉사와 헌신에 평생을 바쳤으니까.

하나 죽음을 경험하고, 눈을 떴을 때.

그녀는 19살 시절로 돌아와 있었다.

[2회차: ‘수도원 지키는 성녀.’]

2회차.

그녀가 처음 한 생각은 단순했다.

‘……어째서.’

신께서는 이러시면 안 되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당신께 바쳤는데 어째서 낙원이 아니라 이곳에?

반복되는 삶은 그녀가 신에게 바라 왔던 것이 전혀 아니었다.

‘……나만이 아니야.’

수도원 창밖을 바라보자 수많은 시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설마 모든 인류가 회귀한 것일까?

카티에는 평소와 다르게 진정하지 못하고 가슴에 불안이 밀려왔다.

어떻게든 진정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이봐요. 관리인이십니까?”

카티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이변에 놀라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그토록 세계가 혼란스러운 순간, 그 남자는 태연히 수도원에 들어왔다.

“아, 스승님! 진짜라니까요! 방금 죽었는데 회귀해서 돌아왔다고요!”

그에게 귀를 붙잡힌 어린 소년이 악을 쓰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그러나 남자는 콧방귀를 뀌더니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했다.

“봐요, 보다시피 내 제자가 미쳤습니다. 자기가 회귀했다나 뭐라나.”

남자가 자신을 보며 싱긋 웃었다.

회귀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말끔하고 청결한 미소였다.

“그래서 여기 수도원에 제자를 좀 맡기려 합니다. 내 이름은 범철이고 보호자인데 비용은 어떻게 됩니까?”

그 남자의 이름은 이범철.

앞으로도, 이후로도 영원히 함께 삶이 꼬이게 되어버릴 인물이었다.

하나 아직 그것을 모르는 카티에는 저 순수한 웃음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따라 미소 짓는다.

“무료로 하죠. 두 번째 삶에서는.”

***

그 범철이란 남자는 무턱대고 제자를 수도원에 밀어 넣고 가버렸다.

무료로 맡기기에 염치없었는지 잘 보살펴달라며 식비는 놔두고 갔지만, 어린 소년은 툴툴거릴 뿐이었다.

“제길, 날 수도원에 가두다니. 저번 삶에서의 인연도 잊어버렸나? 왜 저래.”

“저분이 어떤 분이신데, 그러니?”

“내 스승이요. 원예가예요.”

“원예가?”

카티에는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익히 아는 원예가라면 화분과 수목을 가꾸며 사는 하위직 아니던가.

그 일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딱히 그런 일을 할 인상은 아니던데.

소년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맞아요. 저번 삶에서도 느꼈지만, 우리 스승님은 뒷골목에서 화초나 가꿀 인간이 아니라니까요.”

하여간 소년도 드넓은 수도원의 설비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는지, 당분간은 이곳에서 생활하기로 하였다.

수도원에서 자라며 소년은 그 범철이란 인간에 관해서 자주 말해줬다.

“스승님은 첫 번째 삶에서 나를 잘 챙겨주고 아껴줬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나를 기억 못 하는 것처럼 행동했을까?”

“또 그 얘기니?”

하도 얘기를 많이 들어서 카티에는 그 범철에게 호기심까지 생겼다.

‘전생을 기억 못 하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별로 믿기지 않았다.

모든 인류가 회귀했는데, 아직 혼자서만 첫 번째 삶을 사는 자라니.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어느 날은 무릎 꿇고 기도를 하는데 소년이 흘깃 궁금해하며 봤다.

“신한테 기도하면 뭐가 들려요?”

카티에는 눈을 감고 말하였다.

“응. 넌 허무하게 죽을상이래.”

“허무하게?”

“술에 취했을 때 객사하든가, 날아든 화살에 팍! 꽂혀서 죽든지.”

“참, 누님도 말이 섭섭하셔. 알았어요. 기도하는 데 방해 안 하겠다고.”

그러자 카티에는 흘깃 웃으면서 자신보다 키가 큰 소년을 쓰다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이 떠나가고, 그녀는 수도원을 지켰다.

‘지키자. 이곳을.’

비록 회귀하였지만,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처럼 똑같았다.

약자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신에게 기도를 매일 올리는 것.

‘언젠가, 신께서도 답해주실 거야.’

때가 되면 낙원에 가게 되리라.

두 번째의 삶도 그렇게 지나갔다.

***

[카티에 로넬야드의 2회차까지의 삶을 지켜보았습니다.]

[프롤로그가 종료되었습니다.]

[타인의 전생을 깊숙이까지 지켜봄으로서 마력이 1 상승합니다.]

눈앞에 스치듯 바라본 카티에의 인생을 본 난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당시의 분위기를 나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카티에가 저런 삶을 살았었구나.’

다른 이의 삶을 직접 지켜본다는 것은 상당히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나저나 프롤로그가 종료되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고작해야 아직 2번째 삶까지밖에 지켜보았을 뿐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수많은 삶의 장면이 앞을 스치며 페이지처럼 넘겨졌다.

[3회차: ‘가슴 아픈 배신.’]

[4회차: ‘앉아 숨 쉬는 흉터.’]

[5회차: ‘첫 살인.’] …….

각 소제목이 붙은 회차가 나의 눈 앞을 빠르게 스쳐 가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간략하게 페이지를 넘기듯 스쳐 지나간다.

수도원에 들린 회귀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어 사람을 못 믿게 된 일.

밴시를 처음 만났을 때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오줌을 지려버린 일.

성녀에게 금기나 마찬가지인 살인을 난생처음으로 행했던 일까지도.

‘굉장히 빠르게 보여줘서 아쉽군.’

자세히만 본다면 나도 그녀처럼 전생지식이 풍부해질 수가 있을 텐데.

…… [18회차: ‘미쳐가는 성녀.’]

[19회차: ‘보이지 않는 낙원.’]

[20회차: ‘화초를 가꾸는 검사’]

‘어째 회차 소제목이 좀 불길한데.’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치던 인생들이 불현듯 21번에서 멈추었다.

[카티에가 당신과 처음으로 깊은 인연을 맺은 회차로 이동합니다.]

[21회차: ‘제3용병대.’]

[해당 삶에서 과업을 완료해야 떠나가는 영혼을 잡을 수 있습니다.]

‘회차로 이동한다고?’

내가 그녀의 전생으로 간다는 소리인가?

‘과거의 삶에서 과업을 완수해야지만 카티에를 살려낼 수가 있다.’

나는 대충 ‘시간 역행’이 어떤 의미였는지 지레짐작이 갔다.

‘과연, 이래서 시간 역행이었군. 21회차로 이동할 수 있다니.’

과거 회차로 돌아가 전생을 경험한다는 것은 꽤나 새로운 모험이다.

그곳에서 행해야 할 특수과업은 어쩌면 제법 위험할지도 모른다.

‘뭐라도 해야지.’

주먹을 꽉 쥐었다.

카티에, 헤르탄. 그 둘을 살릴 수 있다면 지금 무엇이라도 하겠다.

‘그들이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러자 주위 풍경이 바뀌며, 내 코 끝에 피비린내가 스치기 시작했다.

***

전란이 끊이질 않는 시대였다.

10회차부터 시작된 싸움.

황색대륙엔 소년왕 게오르킨과 그에 반하는 민중의 대립이 들끓었다.

‘모두가 불사이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회귀하니까.’

20번째 회귀를 맞은 카티에 로넬야드는 무겁게 눈꺼풀을 올렸다.

어느덧 벌써 21회차의 세계였다.

초창기에는 항시 수도원을 지켰지만 이젠 그런 의무감도 희미해졌다.

‘이제, 낙원은 보이지 않아.’

카티에는 천천히 차가운 물을 받은 대야를 가져와서 얼굴을 헹구었다.

아주 차가웠는데도 그녀는 표정에 미동조차 없이 수면을 내려다봤다.

그곳엔 찬물보다 싸늘하게 회귀로 마모되어가는 자기 자신이 있었다.

“개 같아.”

카티에는 평소라면 하지도 않았을 욕설을 내뱉으며 입술을 씹었다.

양손으로 젖은 얼굴을 주무르면서 그녀는 고뇌하였다.

‘뭐라도 목표를 만들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거야.’

카티에는 이번 삶에서의 목표를 정했다.

‘각 회차마다 정해지는 목표.’

그것만 이루면 숙원을 이루고 회귀를 멈출 수 있다고 전해진다.

딱히 숙원을 이루거나 회귀를 멈추는 것에 흥미는 없었다.

오로지 미치지 않기 위해서.

‘무언가 쫓아갈 목표가 필요해.’

21회차의 목표는 간단했다.

‘세 대륙의 용병을 통합하는 것.’

역시나 엄청난 난이도.

이번 삶에도 회차목표를 이루려고 기를 쓰는 회귀자는 넘쳐날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려면 전쟁에 용병으로 참전하는 것이 가장 좋다.

‘최대한 강한 동료들을 모아서, 전쟁에서 공적을 세우는 거야. 그게 용병을 통합하기에는 가장 좋겠지.’

힘과 공적이 전부인 용병의 세계!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남자가 있었다.

‘분명 보았어. 지난 삶에서 원예가인 그 남자가 장검을 쓰는 행동을.’

카티에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그녀의 예상에 의하면 ‘그 남자’는 분명히 수도원 근처에 있었다.

“오, 누님! 오랜만이야!”

주점에 들어서자 제자가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했지만 보지도 않았다.

카티에는 볼일이 있는 남자의 앞으로 가서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어, 저를 아십니까?”

그 남자, 범철이 자신을 바라본다.

단지, 그저.

“혹시…….”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것은.

“당신, 대장을 해보지 않겠어요?”

이 남자를 절대로 다른 회귀자들한테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나는 눈을 떴다.

‘이곳이…… 21회차인가.’

코끝에 스치는 피비린내.

진흙으로 범벅이 된 땅바닥.

결이 그슬린 나뭇잎과 나뭇가지.

‘싸움터와 가까운 곳인가?’

나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좀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살피는데 어떤 사람들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팔짱을 낀 거한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저놈이 우리 대장이라고?”

깡마른 소년은 나는 보지도 않고 고개를 내린 채 단검만을 손질한다.

“우선, 대장으로 삼을 만한 그릇인지부터 파악하고 싶은데.”

안경 쓴 여성은 어깨만 으쓱인다.

“흐음. 확실히 세 보이진 않는걸.”

거한, 깡마른 소년, 안경 쓴 여성, 그리고 키가 큰 미청년까지.

그리고 난 그 넷을 보고서 놀랐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미청년이 나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였다.

“세베켈 란그로날이다.”

이 자식들, 회귀가 시작되자마자 회차 포기하고 자살한 그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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