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73화
문의 안쪽에서 검고 커다란 괴물이 스물거리며 형체를 드러내었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것은 거대문어처럼 새까만 촉수 괴물이었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처형자, 라뮤키르칸이 소환되었습니다.]
“#%#%#[email protected]$%@%!”
수수께끼의 언어를 내뱉으며 촉수를 꿈틀거리는 징그러운 괴물.
그 괴물을 보는 즉시 쟌의 얼굴이 이전과 다르게 창백해져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이 괴물이 쟌이 꺼려하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쟌은 이세계의 괴물을 싫어한다.’
이세계의 존재는 현존하는 마술사에게 이질감을 느끼고 적대한다.
그래서 다른 세계에서 괴물이 오면 가장 먼저 공격당하는 건 그였다.
“#%#$%$#%#$%!”
“제기랄!”
촉수괴물이 돌격해오기 시작하자, 쟌은 욕설을 뱉으며 방패를 들었다.
그러나 난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나는 연속해서 뛰어가 각양각색의 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쟌에게서 떠오른 최고급 변수 중 첫 번째.’
이차원 미로에 존재하는 문들과 그 너머의 차원에 관한 모든 정보였다.
‘쟌이 열기 두려워하는 문은 상아 문, 전나무 문, 불타는 철문,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녹슨 폐문이다.’
나는 쟌이 촉수괴물을 상대하는 틈에 세 개의 차원 문을 열어젖혔다.
[다른 세계에서 온 불가사의 백작, 메피스토가 소환되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여왕의 육촌, 사라 티미셜이 소환되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온 거신, 열화의 대장장이가 소환되었습니다.]
“%*%$%*$*$%*$%*$%*$.”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어째 다차원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녀석이 없군. 참 원시적이게도.”
척 봐도 위압적인 세 마리의 타차원 존재들이 소환되었다.
상앗빛 망토를 두른 창백한 남성.
열일곱 개의 다리를 가진 왕거미.
그리고 미로 천정에 머리가 닿을 만큼 거대한 거신까지.
“또 여긴가. 지난번 여행할 때도 끌려오게 하더니. 민폐인 차원이군.”
특히 마지막에 소환된 대장장이 거신은 우리 언어까지 쓸 줄 알았다.
‘차원을 자주 넘나드는 생물이라도 되는 건가? 하여간 덩치는 크군.’
설사 쟌이라도 저런 강력한 존재들을 쉽사리 휩쓸 수는 없으리라.
[이차원의 미로에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세계의 존재는 자존심 드높고 고고한 강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세계 존재가 미로를 나가면 세상에 변화가 찾아올지 모릅니다.]
“거기 멈춰라, 이 망할 자식!”
쟌은 이세계 괴물 네 마리를 상대하며 격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확실히 쟌은 강하다.’
저렇게 강력한 이차원의 괴물들을 상대하며 소리칠 여유까지 있다니.
‘이세계의 괴물들은 딱히 나와 아군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저 마술사의 이형적인 분위기 때문에 녀석을 먼저 공격할 뿐이다.
괴물들이 잔을 해치우고 나면, 다음 목표물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도망쳐버려야겠지.’
그리고 난 녹슨 폐문 앞에 섰다.
쟌이 가장 열기 두려워하는 문!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에 유폐된 것처럼 녹슬고 마모된 문짝이었다.
‘최고급 변수에 의하면 이 폐문 너머에는 가장 위험한 괴물이 있다.’
솔직히 약간은 망설여졌다.
그렇게 강력하다는 괴물을 이곳 세상에 넘어오게 해도 되는 걸까?
‘위험은 크지만, 감수하지 않으면 황제를 평생 쓰러뜨릴 수 없어.’
나는 각오를 다지고, 긴장하며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끼이이이익……!
폐문의 너머에서는 가장 위압적인 분위기와 선명한 향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그 향취가 생각보다 익숙한 것이라서 난 놀라고 말았다.
‘왜 저기서 술 냄새가 풍겨?’
그러나 그 마지막 문이 완전히 열리기 직전, 쟌이 이상행동을 보였다.
“끄으윽!”
놀랍게도 쟌은 자해하고 있었다.
그는 검으로 스스로의 팔뚝이 피범벅이 되도록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마지막 문…… 그것만은 절대 열게 놔둘 수 없다.”
[쟌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교차되는 차원이 흔들립니다.]
[차원균형이 약간 맞춰집니다.]
[수십 개의 문이 사라집니다.]
쟌이 자해하자 주위에 있는 문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다.
내가 방금 열어젖힌 폐문은 마지막 이세계의 괴물이 미처 넘어오기 전에 완전히 소실되어버리고 말았다.
‘제길, 마지막 이세계의 괴물은 결국 불러오지 못했군.’
얼마나 그 괴물이 두려웠으면 자해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써댄 걸까?
그러나 후회할 여유 따위는 없다.
난 곧장 검을 꼬나 쥐며 외쳤다.
“저 빌어먹을 마술사를 죽이자!”
“네놈도 우리처럼 다른 세계에서 온 녀석인가? 그 뼈갑옷은 범상치 않은 솜씨로 만들어진 물건이로군.”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대장장이 거신이 맹금 같은 눈으로 날 보았다.
“당연하지. 각자 목적은 다르더라도 저 마술사를 당장 죽여야 해.”
“동의한다. 저자가 지닌 마술이란 것은 내 눈에도 사악해 보이는군.”
뭔지는 모르겠지만 덩치와는 다르게 사기 잘 당할 것 같은 인상이군.
어찌 됐건 생각보다 말이 통해서 의견이 합일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망할! 네놈들 세상으로 꺼져라!”
쟌이 울부짖으며 마술을 쓰며 괴물들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였다.
특히 대장장이 거신은 워낙 덩치가 커서 대충 움직여도 미로가 무너질 듯이 광범위한 공격이 되어버렸다.
‘좋아. 이 틈에.’
괴물들이 싸우고 있는 사이, 난 몰래 잠에 취한 퀸소히니베에게 갔다.
내가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
“야, 일어나.”
“씨이…… 너무…… 졸린 것이야.”
황제에 의해 수면욕에 취한 퀸소히니베는 아주 신경질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현재 상황을 말해줬다.
“카티에랑 헤르탄이 쓰러졌어.”
“그게 사실인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펄쩍 뛰며 깨어났다.
그때 미궁이 크게 흔들렸다.
쟌의 팔뚝이 빛으로 휘감긴다.
[쟌이 빛의 마술을 발전시킨, 폭사의 마술을 발동시켰습니다.]
[현 세계로 이전된 지 3일이 되지 않은 생물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나, 시전자는 30일간 마술을 쓰지 못합니다.]
[해당 페널티는 모든 적에게 강제적으로 공개가 됩니다.]
페널티까지 전원에게 공개될 수준이라면 굉장히 무리해버린 것이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이제야 여행을 계속 즐기겠군.”
빛에 휘감긴 네 괴물은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갔는지 사라져 버렸다.
예상치 못한 이변이었지만 나는 빠르게 상황을 분석하였다.
‘괴물이 끝까지 싸우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마술을 봉인한 것은 커.’
쟌은 각종 재능에 능통하지만, 그중에서도 마술은 가장 까다로웠다.
거기다가 그는 그저 마술만 봉인당한 게 아니라 기력도 꽤나 소진한 모양이었다.
“크흑, 허억!”
쟌이 땀을 닦지도 못한 채 거친 숨을 내쉴 때, 검과 방패가 울렸다.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제멋대로 날뛰어대는 두 개의 자아보존무구!
[쟌은 자아보존무구를 각자가 싫어하는 용도로만 쓰고 있습니다.]
[무구의 저항력이 거세집니다.]
[마술의 효력이 다했습니다.]
[SSS급 정신지배 재능으로도 무구의 세뇌가 불가능해집니다.]
황제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는 무기!
쟌의 눈빛에 당혹함이 깃들었다.
“썩을, 고작해야 무구 따위가!”
본래 에고 소드는 방어를 좋아하고, 에고 실드는 공격을 즐긴다.
그런데 계속 역으로만 줄곧 써댔으니 페널티가 없을 리가 없겠지.
‘지금이 기회다!’
그 틈에 나는 칼을 집어놓고 잽싸게 오른손으로 낚싯대를 던졌다.
휘익!
황금빛으로 고고하게 빛나는 낚싯줄에 정확하게 방패가 딸려 잡혔다.
만물낚시!
“롬!”
난 정확히 그에게 방패를 던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방패를 내쥐었다.
롬이 독한 눈빛을 하며 포효했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무기도 쓸 줄 모르는 백치 놈이!”
롬이 돌격했고, 쟌은 검을 세웠다.
롬의 방패와 쟌의 칼날이 거의 같은 순간에 동시에 휘둘러졌다.
그러나 롬은 미세한 찰나 몸을 낮춰 검을 피하고 방패를 후려쳤다.
“크윽!”
방패에 옆구리를 얻어맞은 쟌에게서 갈비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는 검을 놓쳐버리고 멀리 내동댕이쳐졌다.
롬은 재빠르게 황제가 놓친 에고 소드를 주워 손아귀에 쥐었다.
-흥. 멍청하긴! 네까짓 게 감히 우리를 훔쳐서 쓰려고 해?
-역시 롬의 손에 휘둘리는 게 최고야! 나는 방어가 취향에 맞거든.
“크윽……!”
상체가 거의 반쯤 부서진 쟌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땅을 기었다.
내가 그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설마 자기 재능이 무력화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나 보지?”
“닥쳐라! 네놈한테서 재능만 더 뺏을 수 있다면…….”
확실히 황제는 여유를 잃어버렸다.
‘재능의 숫자는 많아도 전투에 주력인 것은 마술뿐이었나 보군.’
그러나 쟌은 부상을 입었지만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까진 들지 않았다.
‘도망치려고 하고 있어.’
척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땅을 기는 척하며 녀석은 품에 있는 다른 뭔가를 꺼내려 하고 있다.
하기야 조심성 많은 그가 도망칠 대비책을 짜두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난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그렇게 남의 재능이 갖고 싶다면.”
내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가져가라.”
“……뭐?”
나는 양팔을 활짝 펼쳐 들었다.
“내 재능, 얼마든 뺏어도 좋다고.”
***
‘쟌이 재능을 빼앗는 발동조건.’
그것은 바로 일정 수준의 대화였다.
물론 숙련된 재능을 훔친다면 대화 이외에도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상대방이 재능을 가져가라 허용할 경우 대화할 필요조차 없다.
‘의도적으로 SSS급 재능을 쟌에게 넘겨줄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나는 지금 쟌에게 나의 재능을 넘겨줄 수 있도록 선언하였다.
[SSS급 검술 재능을 빼앗겼습니다.]
[SSS급 회귀자 살해 재능을 빼앗겼습니다.]
[SSS급 보물 탐색 재능을 빼앗겼습니다.] …….
검술, 회귀자 살해, 보물 탐색, 낚시, 조련, 그리고 채광까지.
그나마 가지고 있던 6개의 재능마저 모두 놈에게 넘겨주었다.
이로써 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재능을 쟌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검을 쥐거나 상황을 분석할 때 느끼던 모든 감각은 흐릿해져 버렸다.
“우습군. 회귀를 못 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멍청할 줄은…….”
쟌이 쾌락섞인 웃음을 내지르며 만신창이인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퀸소히니베가 기겁해서 소리쳤다.
“재능을 넘겨주면 어쩌잔 것이야!”
“왜 그러냐?”
“뭐?”
“재능 없는 놈이라고 재능 있는 놈을 평생 이기지 못하리란 법 있냐?”
난 언제나 재능이 있는 놈이었다.
하나 이젠 재능 없는 인간이 됐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재능이 특출난 천재를 조져버릴 것이다.
“이제 끝을 보자고. 황제 폐하.”
[순간가속이 활성화됩니다.]
[요정장화가 가속 강화합니다.]
[속도 +95%! 지속시간 +3초!]
[6초간 공격력 500% 증가!]
순간가속!
모든 재능을 다 넘기는 바람에, 황제는 도망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따라서 자연히 생겨나 버린 빈틈!
‘마법의 재능은 없더라도 내가 여전히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킬.’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순간가속은 마법이 아니라 육속의 반지 세트 효과로 얻은 특수스킬이었다.
즉, 재능이 없더라도 쓸 수 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세상 모든 것이 느려 보이는 순간.
난 쟌을 붙잡고 뒤쪽에 있는 차원문을 발로 박차며 함께 뛰어들었다.
“안 돼!”
퀸소히니베의 비명이 얼핏 귀에 울렸지만 곧 희미해져 버렸다.
곧이어 다른 세계가 보였다.
***
이곳은 과연 어떤 세계일까.
우린 어둠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끔찍한 악마들이 날 비웃고 있다.
“판데모니엄의 기강을 잡아라!”
“새로운 지배자를 뽑아야 한다!”
“사라진 왕좌는 누가 쥘 것인가!”
수만이 넘을 듯한 수많은 악마들.
그리고 끝에서 고통받는 영혼들.
「아아악!」
「제발, 살려주세요!」
부유하는 우리가 점차 가라앉는다.
모든 악마의 손이 우리에게 온다.
켈켈대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킬킬! 신참이다! 신참이야!”
“반복하는 세상에서 왔다는데!”
“몇 번을 살았어도 괜찮아. 이곳에서의 고통이 가장 끔찍할 테니까!”
각종 고문도구가 가득하다.
징그러운 이형생물이 괴성 지른다.
지옥불이 우리를 달구기 시작한다.
“하필 참 로맨틱한 세계로군. 단둘이 있기에 참 좋지 않나. 안 그래?”
피투성이 쟌이 이를 갈며 빈정거렸고, 나도 마주 보고 픽 웃어버렸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는걸.”
“같이 자살할 셈인가? 안됐군. 자네와 달리 난 회귀할 수 있으니까.”
쟌이 피를 흘리며 비웃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여기 남는 것은 너 혼자야.”
두 번째 최고급 변수.
‘쟌이 가장 지독히 고통받아야만 빼앗긴 재능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끔찍한 세상으로 녀석을 함께 끌고 온 것이다.
나는 쟌을 발로 차버리고, 오른손으로 빠르게 낚싯대를 내쥐었다.
등을 돌리자 우리가 들어온 차원문이 아주 조금씩 닫히고 있었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까지 수어 초!
쟌이 나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어이없어하며 나를 크게 비웃었다.
“형편없는 헛짓거리군. 문고리에 낚싯바늘을 휘감아서 탈출하려고?”
그는 지금 나와 거리가 멀어져 낚싯대를 빼앗지도 못한 채 킬킬댔다.
악마들도 따라서 나를 비웃었다.
고문하고 괴롭힐 대상이 헛된 저항을 할수록 즐거운 모양이었다.
“멍청한 시도뿐이군. 어차피 낚시의 재능마저 내게 빼앗긴 주제에.”
“그게 너와 나의 차이점이지.”
지옥불이 점차 가까워진다.
시간상 기회는 오직 한 번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세상일, 꼭 재능이 있어야지만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
내가 형편없는 솜씨로 낚싯대를 던졌고, 문고리에는 걸리지 못하였다.
그때, 문밖의 누군가가 팔을 내뻗어 허공에 날아든 찌를 붙잡았다.
그것은 바로 퀸소히니베였다.
“내 노예가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라는 것이야!”
“제기랄……, 설마!”
쟌은 얼굴을 구겼고, 나는 웃었다.
“이러면 낚시 재능도 필요 없지.”
나는 낚싯대를 세게 붙잡았다.
그러자 저편에서 잡아당기는 퀸소히니베의 힘에 의해서 난 올라갔다.
“거기서 잘 살라고. 내 두 동료가 괴로웠던 것보다 훨씬 비참하게.”
“끄아아악!”
지옥 불구덩이로 떨어지는 쟌의 비명이 어렴풋이 어둠에서 들려왔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쟌을 버리고 난 닫혀가는 문을 열어젖혀 귀환했다.
***
[황제, 쟌이 추방되었습니다!]
[악의 세계, 판데모니엄으로 끌려가 버린 그는 영원히 이곳 세상과는 격리되어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뺏긴 재능을 돌려받았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 오릅니다.]
[새까만 관의 시체에 꽃송이를 올리면 전설등급 칭호를 얻습니다.]
[미궁의 주인과의 연결이 끊어져, 차원균형이 완전히 안정화됩니다.]
어느덧 내게 왼손이 붙어 있었다.
다른 차원으로 이전됐던 왼손!
쟌이 죽고 차원균형이 안정화되면서 사라졌던 왼손도 돌아온 것이다.
‘혹시나 했었는데 다행이군.’
당연하다는 듯이 왼쪽 손등 위에 있는 펜타그램도 무사히 있었다.
‘다행이지만, 일단 그것보다는.’
나는 서둘러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카티에와 헤르탄에게로 갔다.
그러나, 너무 늦고 말았다.
나는 싸늘한 울분을 느꼈다.
“……죽은 것이야? 두 사람은?”
퀸소히니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고갤 휘저었다.
“대답 좀 해보라는 것이야. 정말로, 죽은 것이야? 그렇게 노련한 회귀자인데도?”
나는 조용히 답하였다.
“……그래.”
나도 한껏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미련하고, 야속하게도.
둘의 심장은 멈춰져 있었다.
죽은 것이다.
“…….”
퀸소히니베는 입을 열지 못하였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당황한 것 같기도 한 그녀가 고갤 숙였다.
자신이 우는 걸 숨기려고 하였지만 흐느끼는 소리마저 숨기진 못했다.
“왜……, 왜……, 어째서…….”
퀸소히니베가 흐느끼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나도 그녀의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회귀를 하지 못하는 우리는, 이딴 죽음 따위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어째서. 왜 이렇게 허무하게.’
그래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
롬도 침울한 표정을 지을 뿐, 뭐라고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난 감정이 죽어버린 눈으로 두 사람을 내려 보았다.
‘죽었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카티에와 헤르탄은 사망하였다.
돌이킬 수 없다.
죽음이라는 것은.
무슨 짓을 해도 돌이킬 수 없다.
‘……아니야.’
순간 머리가 번뜩였다.
있지 않은가.
‘숙원.’
마지막 지배자를 죽이면 뭐든 이룰 수 있는 숙원을 하나 빌 수 있다.
그것으로 지금 사망한 카티에와 헤르탄을 되살리면 되는 것 아닌가.
다만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숙원 하나로…… 정말 내가 가진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 그보다도. 이 두 사람 없이 내가 마지막 대륙지배자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어째서 이런 미묘한 위화감이 드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마지막 적을 쓰러뜨릴 때까지 이 두 사람을 시체로 둬도 될까?
‘그렇지만 숙원 말곤 방법이 없잖아.’
지금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바로 그래서.
처음으로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내가 회귀할 수만 있었더라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찼다.
주먹을 꽉 쥐었다.
‘나에게도 다른 이들처럼 후회되는 과거를 뒤바꿀 기회가 찾아온다면.’
눈알에 실핏줄이 섰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피가 나도록 분을 삼키던 그때.
작은 암석이 나의 품에서 흘러나와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며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돌이었다.
[시간의 돌이 당신의 간절한 바람에 최초로 응답합니다.]
[지금부터 ‘시간 역행’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