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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69화 (169/200)

나만 1회차 169화

미로 벽이 좁혀져 오는 위기상황.

램프의 마인이 차분하게 말하였다.

“말해라. 주인의 세 가지 명령을 들어주면 나는 해방될 수가 있다.”

세 가지 명령을 들어주는 마인!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무 명령이나 무조건 들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명령을 수행할 때마다 마인은 램프의 족쇄에 저항하며 강해진다. 그래서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순 없어.’

세 번의 명령을 수행하고 지나치게 강해진 마인은 배신할 수도 있다.

‘거기다가 이 램프는 주둥이랑 몸통을 4번씩 닦아야만 마인을 불러낼 수 있다는 괴상한 규칙까지 있지.’

이 램프가 암흑상가에서 괜히 잡동사니처럼 썩어가던 것이 아니다.

지금껏 위기에서도 줄곧 꺼내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 어쩔 수 없다.

“우린 여기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그걸 네가 도와줬으면 하는데.”

그러자 마인은 고개를 휘저었다.

“이곳에서는 탈출이 불가능하다.”

그러자 좁혀드는 벽을 보며 다들 회귀를 각오하는 심정을 토로했다.

“역시……!”

“회귀밖에 답이 없는 거야…….”

그러나 나는 단호히 말했다.

“그럼 넌 영원히 해방될 수 없어.”

“악독한 주인이로군.”

램프의 마인이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손가락으로 마법진을 그려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이 시시각각 커지기 시작했다.

“너힐 탈출시켜줄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살아남게 해줄 수는 있다.”

[축소화 마술이 걸렸습니다.]

[몸집이 100분 1로 줄어듭니다.]

[작아진 덩치만큼 모든 능력치도 100분의 1 수준으로 감소됩니다.]

마술로 작아져 버린 장비와 몸집!

전투가 불가능할 만큼 능력치가 줄었지만, 함정을 피하기엔 제격이다.

벽이 좁혀져도 100분의 1로 줄어든 덕분에 우린 생존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덩치가 커진 마인이 연기가 되어 조그마한 램프로 들어갔다.

“손뼉을 치면 축소화가 풀리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유의해라.”

밀착한 벽에서 한참을 버티자 좁혀졌던 벽이 원래 위치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각자 손뼉을 쳐서 원래 모습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하마터면 회귀해버릴 뻔했어.”

“제기랄, 황제 놈. 설마 우리한테 이런 식으로 덫을 짜놓을 줄이야.”

간신히 위기에서 살았나 싶을 때.

쉴 틈 없이 맞은편 통로에서 흉악한 괴물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크랴아아악!”

이차원의 괴물!

미로의 몇몇 길에서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괴물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어요.”

“저놈은 뭐야! 회귀하는 내내 난생처음 보는 몬스터라고!”

“조심해, 돌격해온다!”

회귀자조차 생존하기 버거운 장소!

‘이럴 때는 선공이 답이지.’

우리는 달려드는 적을 공격해, 재빠르게 베고 넘겨 죽여 버렸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선량한 노동자, 축사굴을 살해하였습니다.]

[힘을 합쳐 미로를 탈출하자 외치던 일반인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다른 세계 주민들이 격노해 무작위 능력치가 1 감소합니다.]

“…….”

퀸소히니베가 무릎을 끌어안고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야.”

“……알아. 나도 안다고.”

제길, 우리 눈에는 괴물로 보여도 선량한 일반인인 경우도 있는 건가?

그리고 미로에서 그런 존재를 죽여 버릴 경우, 무작위 페널티를 받는다.

‘대화도 통하지 않는데. 함부로 죽이면 페널티까지 입는 수 있다고?’

역시 최대한 괴물이 있는 길로는 가지 않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다.

‘하여간 한 손으로는 제법 버겁군.’

나는 왼손을 잃었다.

그래서 외손으로 칼을 쓴다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깨닫게 되었다.

‘양손이 있을 때처럼 마법과 검술을 공용할 수도 없고 말이지.’

카티에가 그런 나를 위로해줬다.

“대장. 이곳에서 나가면 괜찮은 의수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괜찮아. 손 잃은 지도 사흘이나 지났고 딱히 우울하진 않으니까.”

지금은 잃은 왼손 때문에 좌절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헤르탄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직 무사하죠?”

“피를 많이 쏟았지만 살아 있습니다.”

헤르탄이 로크를 살피며 끄덕였다.

목덜미에 죄인 손자국이 선명한 로크는 눈알에 핏발이 선 상태였다.

“으으……허억?”

혀를 잃은 그녀는 발음이 부정확해 말하는 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널 살려둔 건 별 게 아니야. 황제를 죽일 때 도움 될 것 같아서다.”

로크는 황제가 죽기를 바라며, 그의 약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살려놓을 가치는 있었다.

“황제에게 복수를 하고 싶지? 대행해줄 수 있어. 놈의 약점은 뭐냐?”

그러나 로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혀가 잘린 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에 피를 묻히고 바닥에다가 글을 썼다.

〈내친김에 하나만 더 부탁하지.〉

로크가 불타는 눈빛으로 예상치 못한 글귀를 써내려갔다.

〈나를 죽여줘. 빨리.〉

***

로크는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다.

당연히 숨이 붙어 있는 것조차 괴로워서는 아니었고, 계획은 있었다.

“정말 해도 되냐?”

로크가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나는 오른손으로 쥔 검을 내리찍어서 그녀의 심장을 관통해 버렸다.

[대형괴조 로크가 죽었습니다!]

[애완수가 타살당해 주인과 얽매여진 계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1회 한정 부활이 이뤄집니다!]

[대형괴조 로크가 집중해 ‘부활을 대기하는 알’ 상태에 돌입합니다.]

[사망한 로크가 알 상태로 돌아가, 새로운 인생을 준비합니다.]

숨이 끊어진 로크의 몸에 빛에 휘감기더니 알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사망과 함께 부활을 준비하는 새!

‘1회지만, 부활까지 가능하다니. 과연 전설적인 비행 몬스터긴 하군.’

그런데 로크를 살해하는 순간, 나에게 또 다른 업적이 적용되었다.

[영웅등급 칭호 ‘날개를 찢고 추락시키는 자’가 발동하였습니다.]

[한정효과: 1. 회피율 10% 상승.

2. 전설적 비행 몬스터를 사냥 시 ‘날개’ 강탈 1회 가능.]

과거 창천의 여제를 죽이고 획득했던 칭호!

전설적 비행 몬스터 로크를 살해하면서 칭호의 효과가 발동된 것이다.

[‘로크의 날개’를 획득했습니다.]

[3할에 해당하는 마나를 소모하여 ‘로크의 날개’를 쓸 수 있습니다.]

[고속비행이 가능하며, 다양한 깃털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내 노예도 날 수 있게 된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반색했고, 난 새까만 벽을 높이 올려다보며 말하였다.

“그래, 하지만 이 미로는 위쪽도 막혀 있어서, 날더라도 딱히 미로를 통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마나를 소모하자 로크의 날개가 등줄기에서 솟구쳐 나왔다.

내 몸집보다 커다란 날갯죽지를 펄럭일 때마다 몸이 조금씩 떠오른다.

그 감각이 워낙 낯설고 신기해서 나는 꽤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재밌기는 한데, 이거 날려면 연습이 좀 필요하겠는데?”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아픈 몸을 매만졌다.

날개를 퍼덕이며 이곳저곳에 부딪히고 깃털을 흘리고 만 것이다.

“내 노예의 비행연습은 미로 밖에서나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야.”

퀸소히니베 역시 날개를 가지고 있어 비행에 대한 경험이 탁월했다.

‘나중에 가르침이나 받아야겠군.’

잠시 후 알껍데기가 깨지더니 완전히 회복된 로크가 다시금 태어났다.

그녀는 혀가 멀쩡히 붙어 있었지만, 외견은 전보다 훨씬 어려져 있었다.

이전이 여인이었다면 지금은 6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의 외견이었다.

“따라와. 내가 지름길을 알거든.”

아기 로크는 막 부활했는데도 덤덤히 배양액으로 질척한 뺨을 쓸었다.

“몸을 회복하려고 부활한 거냐?”

“아까는 혀가 끊어졌고, 목 기관도 파열됐었거든. 오래 살 순 없었어.”

아기 로크를 뒤따르기 전에.

내가 의심하며 뒤늦게 질문했다.

“어째서 우리한테 황제를 죽여 달라는 거냐? 네 주인 아니었어?”

그러자 아기 로크는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순진한 내게 약을 먹이고 길들였으니까. 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어.”

“당신한테 약을 먹였다구요?”

카티에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기 로크가 끄덕였다.

“주인, 아니, 쟌 그 자식은 SSS급 제약재능을 가졌어. 그것도 남에게서 훔쳐온 재능이지. 너처럼.”

로크처럼 강한 생물을 어떻게 길들였나 싶었는데, 설마 약을 썼었다니.

“그래서 황제 명령에 복종했었군?”

“그래, 약에 취해서 길들여지면 무슨 명령이든지 듣게 되니까. 방금 부활한 덕에 약 기운은 좀 가셨어.”

내가 주변을 살피며 염려했다.

“그런데 그거 말하다가 또 황제한테 원거리에서 당하는 것 아니냐?”

“괜찮아. 애완수 관계가 해지됐으니까, 쟌은 멀리서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해. 내가 이렇게 부활한 사실은 잔도 모를 거야. 날 길들인 게 이번 삶에서 최초라고 했거든.”

아기 로크는 주로 샛길만을 택해서 걷고 있었다.

“지름길은 빨라도 그만큼 위험해. 괴물이 나오면 너희가 처치하고.”

“괴조가 있는데, 굳이 우리가?”

그러자 아기 로크가 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올려다보았다.

“방금 다시 태어났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어떻게 싸울 수 있겠어?”

“그럼 죽이기도 좋겠네요? 생각해 보니 예전부터 우릴 해치려 했죠?”

카티에가 눈썹을 올리자, 아기 로크가 뜨끔했는지 헛기침을 하였다.

“사과할게. 그땐 약에 당해서 나도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거든.”

확실히 새대가리라서 그런가, 어설픈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구만.

헤르탄은 무심한 눈길로 아기 로크의 걸음걸이를 보다가 고갤 저었다.

“걸음이 너무 느리군요. 제가 로크를 업고 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니. 내가 업는 게 좋겠다는 것이야. 무척 귀여운 새란 것이야.”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롬도 귀여운 아기 로크를 업고 싶은 눈치인지 양손을 벌렸다.

그러나 아기 로크는 얼른 고갤 저으며 등에서 조그만 날개를 튀어나오게 해 펼쳤다.

“됐어. 나는 혼자 갈 거라고.”

황제한테 받은 상처가 많아선지 로크는 아무나 쉽게 믿지를 않았다.

아기 로크의 뒤를 따라 미로를 걸으니 함정을 발견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미로 군데군데에서 여러 개의 문이 보였다.

조그만 나무문도 보였고, 대리석으로 조형된 예스러운 대문도 있었다.

퀸소히니베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 문들은 무엇인 것이야?”

“‘문’은 함부로 열지 않는 게 좋아. 어느 세상과 연결될지 모르거든.”

다른 세상과 연결되는 문이라고?

“열어본 경험이 있었단 말투인데?”

“실수로 문 열었다가 외딴 세상의 대장장이 거신이 넘어온 적 있어. 다시 쫓아내느라고 엄청 혼났었지.”

‘문’을 열면 다른 세상의 위험한 생물체가 넘어올 수도 있단 거군.

‘혹시 내가 원래 살던 지구랑 통하는 문도 있을까?’

호기심 일긴 하지만, 위험할 수 있으니 문에 대한 관심은 거둬야겠다.

하여간 곳곳에 ‘문’이 생겨난 만큼 출현하는 이차원 괴물도 늘어났다.

“크러워워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독특한 괴물!

아기 로크는 전투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괴물에 관해 자세히 알았다.

“저놈은 미로에서 꽤 보이는 괴물이야. 나무랑 바위를 합친 듯한 특성인데, 머리를 흔들어서 흩뿌리는 열매에는 끔찍한 독이 많아.”

“죽여도 페널티는 없는 놈이지?”

“응. 괜찮아. 그리고 저놈은 벌레계열 괴물한테 맥을 못 써.”

날아다니는 벌레에 약하다고?

난 곧바로 호리병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밝은 초화가 소환되었다.

“……왜 불렀어, 아빠?”

“꿀벌을 소환해서 공격해라.”

초화가 꿀벌을 소환하자 괴상한 괴물들이 괴로워하며 기세를 잃었다.

그 틈에 나는 나이테가 가득한 놈의 턱주가리를 검으로 찢어내었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식인바위 식물, 오가툴을 살해하였습니다.]

[무작위 능력치가 1 오릅니다.]

[오가툴을 20마리 사냥하면 ‘조경 스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괴물들이 더 몰려옵니다!”

샬이 소리쳤고, 호리병 뚜껑을 다시금 열어 모든 애완수를 소환했다.

“캬아아앙!”

“…….”

“꾸왁!”

어린 애완수들은 날이 갈수록 전투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강해졌다.

특히 요즘 들어 많이 먹고 부쩍 덩치가 커진 동북이가 크게 울었다.

“꾸와아아왁!”

동북이의 행운의 포효!

사막거북이 외치는 포효에 아군들의 행운이 크게 올라갔다.

[1분간 행운이 300 상승합니다.]

[회피 확률, 희귀아이템 획득 확률, 급소가격 확률이 증가합니다.]

카티에의 축복에 행운까지 더해지자 우리는 기세를 잡고 싸웠다.

모든 이차원 괴물을 쓰러뜨리고 우리는 가까스로 한숨을 돌렸다.

그때 애완수들이 내게 다가왔다.

“캬앙?”

“……아빠, 손이 왜 그래?”

“……?”

“꾸왁?”

나는 쓰게 미소 지었다.

확실히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이 녀석들한테 고맙기는 하였다.

“그런 게 있다.”

나는 외손으로 걱정하는 애완수들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어줬다.

한편 아기 로크는 물끄러미 멀리 서서 나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가만히 보고 있냐?”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한편 초화는 자기 또래처럼 보이는 아기 로크를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쟤는 누구야?”

“볼일 있으면 직접 와서 물어.”

아기 로크가 당돌하게 바라봤다.

“…….”

수줍음이 많은 초화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나의 등 뒤로 얼른 숨었다.

하여간 우리가 계속 미로를 걸었을 때 희망적인 문구가 떠올랐다.

[이차원 미로의 50%를 돌파했습니다.]

[이곳을 초행하는 인원에게는 ‘미로 찾기’ 스킬(Lv1)이 주어집니다.]

[탐사자 전원의 무작위 능력치 2개가 3씩 상승합니다.]

이차원 미로 50% 돌파!

‘벌써 절반이나 진행하다니.’

아기 로크의 길 안내 덕분에 지난 사흘보다 훨씬 진행이 신속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문구가 떠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여러 세계가 간섭하고 교차하는 구역에 들어섰습니다.]

[당신을 눈여겨보는 이차원의 존재가 쪽지를 발송하였습니다.]

조그만 쪽지가 너풀거리며 나의 손아귀 앞으로 내려앉았다.

이차원의 존재에게서 쪽지를 받은 것은 일행 중에서도 내가 유일했다.

아기 로크가 놀라서 눈살을 찌푸리곤 나를 노려보았다.

“쪽지를 보냈다고? 나도 여긴 자주 들락날락댔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인데. 누가 네게 쪽지를 보낸 거야?”

영문을 모르는 나는 쪽지를 살펴보았다.

《수신인: 이범철.》

나는 흠칫 놀랐다.

‘왜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거지?’

쪽지 봉투의 뒷면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발신인이 적혀져 있었다.

《발신인: 인과율에 간섭하고 차원을 방랑하는 자.》

그것은 ‘유랑자’가 보낸 쪽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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