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66화
[대륙지배자를 죽이고 획득한 펜타그램의 새 기능이 발동합니다.]
[회귀자들조차 알지 못하는 최상의 ‘이득경로’를 파악합니다.]
이득경로를 사용한 나는 두 가지의 길을 중첩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드워프 종족을 찾아내는 길.’
‘황제와 재회하는 길.’
두 가지 길은 모두 가야만 한다.
하나 갈림길을 택하고 싶지 않다.
대륙지배자는 회귀 시점 이후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이 강해지니까.
‘시간을 절약하고 아끼기 위해선.’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나의 머릿속에 얽매이는 두 개의 길을 하나로 엮겠다.”
[엇갈리는 두 가지 경로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 경로를 합쳐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드워프 족을 찾는 길’과 ‘황제와 만나는 길’을 동시 진행합니다.]
[이득 경로가 보이는 일주일 동안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가능할 줄이야.’
두 가지의 길은 ‘연관이 있기에’ 펜타그램으로 엮는 것이 가능했다.
‘드워프의 대실종과 황제.’
그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경로의 끝. 그곳에 답이 있다.’
뭐가 어떻게 됐는지 파악하려면 이득경로를 따라가 보는 게 급선무다.
‘확실히 이득경로는 쓸만해. 시간 제한과 마법을 못 쓰는 페널티는 아쉽지만.’
하여간 우리는 사막을 횡단했다.
이득경로를 보는 나는 자연히 일행 가운데서 가장 앞장서 걸었다.
“놀랍군요. 탐사단으로 오래 생활한 저보다 적색대륙을 잘 아시니.”
샬이 나를 감탄하며 보았다.
솔직히 나도 회귀자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하는 내 꼴이 낯설긴 하다.
문득 이득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손등 위의 펜타그램을 보다가 나는 이상한 변화를 눈치챘다.
‘펜타그램의 빛이 원래 이랬던가?’
펜타그램은 여전히 붉은빛을 뿜고 있었지만, 그 빛이 확연하게 강했다.
예전에도 밝긴 했지만 이렇게 눈이 아플 만큼 빛이 거세진 않았는데?
‘뭐, 별일은 아니겠지.’
이득경로는 확실히 목표에 빠르게 도달하는 지름길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안전성은 보장하지 않기에 빠른 만큼 몹시 위험하고 험난했다.
“사막 송골매입니다! 위험해요!”
“꺄아아악!”
샬은 훌륭한 리더답게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몬스터 정보를 말했다.
“사막 송골매는 크기가 크고 시력이 좋지만, 화살에는 약해. 우린 활이 없으니, 돌팔매로 대체한다!”
샬이 명령을 내리면 호흡이 맞는 단원들은 일제히 행동에 들어갔다.
심지어 몇몇은 수명을 깎아서 힘을 키우는 저주의 보석을 쓰기도 했다.
내가 황당해서 물었다.
“수명을 그렇게 막 써도 됩니까?”
“어차피 죽으면 회귀하는데요. 뭘.”
과연 회귀자다우시군.
하여간 우리는 몬스터가 나오더라도 그렇게 어렵게 사냥하진 않았다.
이계 유일의 성녀에, 상위 드루이드, 용 한 마리, 거기에 거물이자 불세출의 검사까지 있는데 오죽할까.
“롬. 너도 황제한테 볼일이 있지?”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롬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신분을 알 수 없는 놈이지만 일단은 말을 잘 듣기는 하니 무난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롬의 에고소드는 내가 쥐고 있어야겠다.
“오늘은 여기서 쉬자고. 갈 길이 머니까.”
모두가 피곤한지 휴식을 취하였다.
불가를 지피고 야영을 하였다.
“황제가 있는 곳에는 언제 도착합니까, 범철?”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경로대로라면 내일쯤이면 도착할 겁니다.”
“그리 멀지 않아 의외인 것이야. 황제가 그렇게 가까이에 있다니.”
퀸소히니베가 의아해하자, 나는 왼쪽 손등의 펜타그램을 바라보았다.
“그보다는 펜타그램이 빠른 지름길을 우리한테 알려줘서 그런 거지.”
“대체 내 노예에게 도움을 주는 그 ‘조력자’란 인물은 누구인 것이야?”
사실은 나도 그게 알고 싶다.
‘악마의 펜타그램. 이걸로 지금까지 도움받은 게 한두 번 아닌데.’
숨 막히는 위기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펜타그램은 항상 내게 길을 제시해 나를 구원하고는 했다.
그래서 더더욱 실종된 드워프를 만나 봐야만 하는 것이다.
‘이 펜타그램의 모양은 적색대륙에서 드워프 일족의 증표라고 했었지. 드워프를 찾아내면 조력자의 정체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불은 타닥이고 모두 잠들었다.
뜨거웠던 낮에 비하여 싸늘하기 그지없는 밤이었다.
어째선지 잠이 오지 않아 나는 뒤척였고, 하늘엔 별도 보이지 않았다.
볼일이나 볼까 하여 모래언덕에 가서 바지춤을 여는데 누군가 말했다.
“대장.”
“깜짝이야. 너, 뭐하냐?”
“볼일 보려고 왔지, 뭐했겠어요?”
“…….”
쭈그려 앉은 카티에는 부끄러운 기색조차 없이 몸을 털고 일어났다.
내가 멀리서 볼일을 보고 올 때까지 카티에는 물끄러미 날 보았다.
괜히 겸연쩍어서 헛기침을 했다.
“자꾸 뭘 보냐? 신경 쓰이게.”
“흥. 나는 대장 대소변도 받아줬는걸요. 전혀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
“…….”
참,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군.
“됐고. 너, 요새 나 몰래 뭘 자꾸 그렇게 오래 써대고 있냐?”
“내가 쓰기는 뭘 썼다구요?”
저게 예전부터 숨어서 필기장에 끼적이는 걸 봤는데도 시치미를 떠네.
카티에는 대체 나한테 몰래 비밀로 하고 뭘 그렇게 몰래 쓰는 걸까?
“역시 비밀일기라도 쓰는 거냐?”
내가 물었지만, 카티에는 역시나 화제를 빠르게 전환할 뿐이었다.
“하여간 대장. 여전히 적색대륙 지배자의 정체는 추측이 불가능해요?”
적색대륙 지배자.
우리가 쓰러뜨려야 할 마지막 적.
기사단장 유령 말에 의하면 적색대륙 지배자는 이미 내가 아는 자다.
‘하지만 전혀 감이 안 잡혀.’
도대체 내가 아는 자 중에서 대륙지배자처럼 강력한 놈이 있다고?
최소한 내가 아는 녀석들 중에서 그렇게까지 위험한 놈은 전혀 없다.
‘있어도 이미 내 손에 다 죽었지.’
심지어 나는 회귀를 하지 않아서 그다지 인연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이곳은 낯선 외딴 대륙.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자가 적색대륙 지배자란 게 믿기지 않는다.
내가 고개를 내젓자 카티에는 턱에 손을 붙이고 추론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미 기억에 있는데 자기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숨기고 있다고?”
“대장이 느끼기엔 평범한 자인데 실제로는 지배자의 힘을 숨긴 거죠. 어쩌면 적색대륙 지배자는 대장 가까이에 있는 주변인일지도 몰라요.”
그건 상당히 흥미로운 가설이다.
일상 모습을 연기하는 흑막이라니.
하지만 가설은 가설일 뿐이다.
‘적색대륙 지배자가 내 주변인?’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나도 추리력은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지만 안타깝게도 짚이는 바 없다.
“글쎄, 그렇게 세밀하게 연기하고 있는 녀석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게다가 주변인이라고 해봤자 너랑 헤르탄, 퀸소히니베밖에 없잖아?”
“……하기는 그렇네요.”
카티에는 한숨을 폭 쉬었다.
“하여간 아쉬워요. 결정적인 단서가 있는데도 갈피를 못 잡겠으니.”
확실히 대륙지배자의 정체를 미리 안다면 대비책을 일찍 짤 수 있다.
젠장, 난 이미 최후의 적을 알고 있다는데 정작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겠으니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군.
카티에는 기분이 뚱한지 눈썹에 조금 쌓인 모래를 털고서 하품하였다.
“하여간 이번 삶은 유독 시간이 빠르게 가네요. 작년에 대장을 만난 시점이 내 생일 즈음이었으니까요.”
확실히 그렇기는 하군.
나도 벌써 서른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문득 놓치고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작년 네 생일은 지나쳐 버렸네. 너, 나중에 생일 땐 뭐 받고 싶냐? 갖고 싶은 거 있어?”
“글쎄요. 좀 더 생각해 볼게요.”
카티에는 새침하게 턱을 들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기적을 모두 써서 머리칼이 완전한 흑발이 되면 카티에는 죽어버린다.
아직은 흰색의 비중이 높았지만 이제 머리칼의 흑발도 상당하였다.
“카티에.”
“싫어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표정 보면 딱 알아요. 대장은 지금 내게 무리한 부탁을 하려 해요.”
나는 카티에를 끌어안았다.
작은 그녀가 순순히 안겼고, 나는 모래가 묻은 머리칼을 털어주었다.
“원래 새벽감성이 쓸데없잖아.”
“하고 싶은 부탁은 뭔데요?”
“회귀가 멈추고,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너랑 같이 살고 싶어.”
“싫어요.”
“…….”
카티에는 턱을 올려 나를 보았다.
“우선 함께 여행해요. 밤새도록 걷고 평화로운 풍경도 보고 즐겨요. 미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이, 빌어먹을 회귀의 존재도 잊고. 밤새서 술도 마시고 친구들이랑 떠들기도 해요. 헤르탄과 저 못난 용도 함께요. 그리고 나이가 먹어서, 내 마모된 감정도 회복되고 우리가 손만 잡아도 행복을 느끼게 되면.”
나는 카티에의 말을 경청했다.
“그때 함께 살 집을 구해 봐요.”
120번의 삶에 녹슬어진 그녀는.
“마지막 삶은 즐기고 싶으니까.”
매 삶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카티에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아이를 만드는 건 그 이후여야 해요. 그렇다면 승낙쯤은 해주겠어요.”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휘젓고 말았다.
“알았어.”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회귀자가 아니니까.
그러나 공감만은 해줄 수 있다.
“네 말에 따를게. 카티에.”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카티에가 발개진 볼로 속삭였다.
“늦었어요. 이만 자도록 해요.”
우리는 불가로 돌아와 누웠다.
나는 별이 없는 밤하늘을 보며 가슴에 박힌 전생의 돌을 매만졌다.
전생의 돌은 내가 불멸아귀를 죽일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전생의 카티에들을 불러오고 45회차, 왕이던 시절의 힘을 가져왔지.’
그럼 과연 이것은 어떨까.
나는 품에서 평범한 돌을 꺼냈다.
‘시간의 돌.’
불멸아귀를 죽이고 획득한 아이템.
이 돌을 가지게 된 것은 모든 회차를 통틀어서 내가 최초일 것이다.
‘내 의지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모습이 변화한다는 문구는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까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이것은 평범한 돌일 뿐이었다.
‘도대체 이 돌의 역할은 뭘까.’
한참을 생각하다 난 잠들어버렸다.
***
“저곳이 황제가 있는 장소입니까?”
헤르탄이 질문했고, 난 끄덕였다.
펜타그램의 ‘이득경로’를 통해 우리는 최단기간의 루트로 이동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저곳이야말로 황제가 있는 저 장소가 분명하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암반동굴인데.’
롬은 동굴을 보며 즉시 으르렁거렸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그러자 호전적인 에고 실드가 즉시 신이 나서 그 말을 해석해 주었다.
-롬이 말하는데, 여기서 황제의 기운이 느껴진다네. 싸우고 싶나 봐!
“저놈은 그런 것도 느낄 수 있냐?”
어찌 됐건 정말 저 안에 황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카티에가 재빠른 시선으로 동굴 앞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이곳이 입구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굴 문은 완전히 닫혀 있는데요?”
그 말대로 암반동굴의 입구로 추정되는 곳은 바위에 막혀 있었다.
그러자 샬이 말했다.
“정해진 암호를 대야만 할 겁니다. 이른바 ‘암호동굴’이란 지형인데 적색대륙에선 흔치 않게 볼 수 있죠.”
암호를 대야만 열리는 동굴이라니.
‘열려라, 참깨 같은 암호라도 대야 하나?’
펜타그램은 오로지 ‘경로’만 가르쳐줄 뿐, 그런 암호는 알 수 없다.
“힘으로 부수면 안 되는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닫힌 동굴 문을 상당히 무식하게 노려보던 바로 그때.
쿠구구구구……!
허무하게도, 바로 문이 열렸다.
폐쇄된 거대바위가 움직이며 동굴의 입구는 완전히 드러나 버렸다.
퀸소히니베가 자신의 명석함에 스스로 크게 감탄하며 입을 벌렸다.
“여기 암호가 ‘힘으로 부수면 안 되는 것이야?’였던 것이야?”
“그게 말이나 되겠냐?”
“내부에서 누군가 열어준 겁니다.”
나도 헤르탄의 말에 동감하였다.
“황제 본인이 열어준 걸까요?”
“그럴 가능성은 낮을 겁니다. 자신에게 원한 있는 자에게 직접 문을 열어주는 주인은 없는 법이니까요.”
그럼 동굴 문은 누가 연 거지?
카티에가 염려하며 미리 경고했다.
“지금 동굴에 들어가는 건 위험할 수 있어요. 이곳은 그 악명 높은 황제의 본거지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인원수를 모아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지만, 마땅히 구할 곳도 없는 데다 장소는 밀폐된 동굴이다.
다수의 인원이 접근해 싸우기에는 그다지 적합한 장소라 볼 수 없다.
‘그리고 행여나 일이 잘못되면 탈출할 수단은 생각해 두고 있으니까.’
샬이 침을 꿀꺽 삼켰다.
“황제. 그 적색대륙 최강의 회귀자가 드워프와 연관이 있다니. 전혀 믿기지가 않습니다.”
“일단은 내가 보는 경로에 의하면 분명히 틀림없습니다. 가보죠.”
우린 동굴로 들어가 걸어갔다.
그러자 얼마 걷지도 않아서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흰 가루가 보였다.
“이건……?”
나는 가루를 손에 담아서 보았다.
무색무취無色無臭.
흰 가루를 손가락으로 비벼보았다.
‘밀가루인가? 아니, 그렇다고 보기에는 손에 닿는 질감이 낯선데.’
그런데 내가 느낀 것과 다르게 카티에는 머리를 짚고 비틀거렸다.
“향기 좋아요. 취할 것 같아요.”
“야, 너 왜 그래?”
내가 그녀를 붙들자 그녀의 눈은 이미 반쯤 풀려 있었다.
“마약이군요. 적색대륙에서 성행하는 상품입니다. 질은 꽤나 좋군요.”
헤르탄이 흰 가루를 쓸며 말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마약이 바닥에 새하얀 모래처럼 쌓여 있다.
샬이 곧장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향기만 맡아도 몽롱한데요. 전생에서 헤어진 마누라가 떠오릅니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롬도 몽롱한지 이마를 짚었다.
회귀자들은 그 향기에 정신을 못 차렸지만, 난 별 기분을 못 느꼈다.
‘회귀자에게만 통하는 마약이니까.’
이 마약은 회귀자에게 ‘가장 행복했던 삶’을 보여줘 취하게 만든다.
따라서 향을 맡기만 해도 무방비 상태에 놓여 몽롱해지는 것이다.
그 순간 동굴에 목소리가 울렸다.
“오랜만이라 더욱 반갑군. 당신들. 누가 문을 열어줬는지 모르겠지만.”
-황제, 네놈!
에고실드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즉시 나의 검을 내뽑았다.
그러나 순간, 이변이 벌어졌다.
“그 펜타그램, 참 거슬렸었지.”
강력한 빛살이 눈앞을 휘감더니.
콰자작!
나의 왼손이, 찢겨 버렸다.
[펜타그램이 소멸됐습니다.]
[이득 경로가 완전히 끊깁니다.]
[연결고리가 차단돼 ‘조력자’의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