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65화
사막이 뒤흔들리며 거친 포효가 울렸지만, 그것은 잠시에 불과하였다.
잠시 후, 놀랍도록 고요해진 사막을 보며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뭐야.”
사막드래곤이 근처에서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기우였나?
그런데 갑자기 퀸소히니베가 이상 행동을 보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너, 지금 뭐하는 짓이냐?”
“쭙.”
퀸소히니베가 일순간 멍한 표정을 짓더니 내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내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도 그녀는 아랑곳 않고 손가락을 빨아댄다.
검지를 휘감는 혀의 감촉에 찡그리며 내가 곧장 빼자 그녀가 말했다.
“짜. 미각이 느껴지니 연결됐군.”
“뭐?”
내가 황당해 얼굴을 찌푸렸다.
퀸소히니베가 내게 한 행동을 목격한 카티에는 미려하게 미소 지었다.
“헤르탄. 용의 레시피는 주로 어떤 방식이라고 했었나요?”
“우선, 골육이 몹시 단단하니 강력한 산에 녹여 연하게 다지고 쪄먹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정석적인…….”
헤르탄이 거침없이 조리법을 읊을 때 퀸소히니베가 빠르게 다가왔다.
내 손가락을 빤 그녀가 이번엔 주먹으로 헤르탄의 가슴을 내갈겼다.
퍽!
헤르탄은 짧은 순간 손목을 들었지만 방어해도 몸이 날아가 버렸다.
내가 휘둥그레 눈을 뜨며 실없이 입을 벌렸다.
“찌는 것보단 굽는 게 더 좋냐?”
퍽!
퀸소히니베는 팔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재빠르게 내게 주먹을 갈겼다.
일순간, 나는 허공에 날아올랐다.
“크억!”
그나마 타오르는 지배자의 갑주 덕에 피해는 덜했지만, 엄청 아프다!
순식간에 두 남자를 때려눕힌 퀸소히니베를 보며 탐사단이 당황했다.
“가, 갑자기 저 여자가 왜 저래?”
“동료 아니었어? 배신이야?”
그러나 멍청히 처맞은 우리 둘과는 다르게 카티에는 겁먹지 않았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카티에가 끔찍한 빛을 실은 왼손을 주물럭거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멍청한 용의 배신은 항상 대비했죠. 나까지 방심할 줄 알았나 보죠?”
헤르탄이 찢긴 입술의 피를 닦으며 일어섰고, 나도 검을 쥐며 일어났다.
“퀸소히니베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맞아요. 남의 손가락 빨아대는 것도 그렇고, 눈도 뭔가 흐린데?”
“저 용이 드디어 실성했나 보죠.”
우리 셋이 퀸소히니베를 두고 대화할 때 갑자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미개하고 우매한 것들아.”
“지금 말 다했어요?”
화가 난 카티에가 당장에라도 기적을 쏘려 했지만, 내가 적극 말렸다.
“잠깐! 말투가 평소랑 다르잖아.”
퀸소히니베는 뭔가 평소와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펴면서 오만하게 말했다.
“설마 너희 일행 중에서 어린 동족이 있을 줄은 몰랐군. 그래서 정신 지배가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지금 우리 앞에서 말하고 있는 존재는 퀸소히니베가 아니었다.
“너, 누구지?”
“너희가 밟는 대사막의 주인.”
“사, 사막드래곤!”
탐사단 전원이 경악하며 놀랐다.
내 허리에 감긴 검이 웅웅댔고, 오직 정신 잃은 롬만이 무반응이었다.
헤르탄이 침착하게 물었다.
“그토록 높으신 분께서 저희에게는 무슨 볼일로 오신 겁니까?”
“드워프가 이 모든 사막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너희가 그들의 도시에서 나오더군. 너희와 관련 있는가.”
그저 목소리일 뿐인데도 막강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존재였다.
퀸소히니베의 정신을 단숨에 지배한 것만 봐도 그 수준이 짐작 간다.
“전혀요. 저희도 드워프를 찾으러 지하도시에 갔다가 간신히 살아남고서 지상에 막 올라온 참입니다.”
나는 의문이 들어서 물었다.
“그런데 실종된 드워프는 어째서 찾으시는 겁니까?”
“놈들이 나의 보물을 훔쳐갔다. 하지만 모른다면 어쩔 수가 없겠군.”
드워프들이 사막드래곤의 보물을 훔쳐갔다고?
그때 사막드래곤이 말했다.
“그런데 그보다 관심 가는 게 생겼다. 이 아이의 몸은 무척 아름답군.”
퀸소히니베의 모습으로 가슴팍을 살짝 벗더니 녀석이 미소를 지었다.
“핏줄이 보일 만큼 선명한 피부. 허, 백룡의 피도 섞인 건가? 타고난 피까지 상당히 강력하고 우수하군.”
별것 아닌 그 자태가 놀랍도록 요염해 모두가 약간 넋을 잃었다.
사막드래곤이 혼자 중얼거렸다.
“이 육체를 몹시 갖고 싶어졌다.”
그리고 녀석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팔겠나?”
“예?”
“이 탐스러운 어린 육체. 내가 정신에 뿌리박으면 종속할 수 있다. 그럼 이 몸은 영원히 내 것이 된다.”
사막드래곤은 침착하고 태연한 어투로 퀸소히니베의 몸을 탐내었다.
대사막의 주인이 우리에게 제안했다.
“나 역시 거래의 상도를 안다. 이 몸을 내게 주면 일행인 너희에게 그만한 대가를 넘기겠다. 뭘 원하나? 대사막의 태양? 제왕의 자질? 내게 이 몸을 주면 무엇이든 내어주지.”
갑작스러운 사막드래곤의 거래제안!
졸지에 퀸소히니베의 육체가 다른 용에게 뺏겨버리게 생길 위기였다.
우리는 곧장 심각하게 의논하였다.
“저 몸을 뭘 받고 팔까요, 대장?”
“…….”
“비정하게 보자면 저 육체를 넘기는 것도 나쁜 판단은 아닙니다. 사막드래곤이 넘겨주는 보상은 그만큼 높고 대단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피도 눈물도 없는 회귀자들.
“정말 두 사람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
“주위 사람을 무시하진 않아요. 다만 최우선순위가 늘 대장일뿐이죠.”
“전적으로 범철의 판단에 맡기겠지만, 비정하며 쉬운 길도 있습니다. 지금 거절하면 사막드래곤이 우리를 해치려들 확률도 높아질 겁니다.”
후, 퀸소히니베가 들었다면 고개를 돌리며 눈물 훔쳤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고개를 단호하게 내저었다.
“퀸소히니베의 몸은 절대 넘겨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내 친구니까.”
“아쉽군. 허락하지 않는다니.”
사막드래곤은 크게 아쉬워하며 혀를 찼다.
“그렇다면 본체로 돌아갈 수밖에.”
본체?
그럼 이제 물러난다는 소리인가?
내가 순간 반색한 표정을 짓자, 사막드래곤이 말하였다.
“그렇게 기뻐할 것 없다.”
나는 흠칫했다.
“나는 이미 이곳에 와 있으니까.”
순간 퀸소히니베의 눈빛이 풀리더니 모래바닥에 픽 쓰러지고 말았다.
헤르탄이 서둘러 그녀를 감싸 안았고, 사막에는 거친 바람이 불었다.
“모래폭풍입니다!”
“다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요!”
모래가 불어 닥치는 막대한 폭풍에 휘말린 우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저 일렁이는 모래바람 너머에서 그림자가 드러난 건 그때였다.
“보, 본체!”
“사막드래곤. 대사막의 주인! 적색대륙에서 가장 지고한 용이라니!”
탐사단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지 제대로 눈도 맞추지 못했다.
모래폭풍에 가려져 거대한 그림자는 아직 확연히 알아볼 수 없었다.
꽤 늙은 수컷의 목소리가 울렸다.
“불길한 냄새가 풍기는군.”
폭풍 속에서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뚜렷한 형체가 드러났다.
적색대륙의 사막드래곤!
놈은 황색이나 청색대륙의 용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날개는 달려 있지만 아주 작고, 뿔이 길고 거대하며, 몸집이 비대하다.
특히 가장 큰 특징은 눈동자가 작다 못해 눈매가 허물어져 있었다.
‘눈은 퇴화되었는지 아예 없군. 평소에는 땅속에서 생활하는 건가?’
사막드래곤이 코를 벌렁거렸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후각이 몹시 예민한 모양이었다.
“슬프고, 비극적이고, 파괴를 불러오는 냄새다. 넌 어떠한 존재이냐.”
“인간입니다.”
“웃기지 말거라. 이것은 한낱 인간이 함부로 낼 수 없는 냄새일진대. ‘미래의 향기’를 맡는 나도 이렇게 불길하고 고약한 냄새는 처음이다.”
사막드래곤은 킁킁대다가 말했다.
“하여간 너희가 드워프 위치를 모르며 친우의 몸을 내어줄 것도 아니라면 잡아먹기 참 좋은 조건이다.”
모두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회귀자들은 다음 삶에서 용한테 잡아먹힌 무용담을 펼칠 생각에 흥분이나 했겠지만, 난 사정이 다르다.
‘빌어먹을. 용이랑 싸워야 한다고?’
지금 인원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이 사막은 내 무덤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때 사막드래곤이 말하였다.
“가라. 놓아준다.”
탐사단은 실망의 한숨을 토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토하며 물었다.
“……방금 잡아먹기 좋은 조건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디까지나 ‘조건’만 그러하다.”
그것은 다소 심드렁한 목소리였다.
“가거라. 누구도 먹지 않는다. 허락 없이 몸을 빼앗지도 않겠다. 모든 것이 허무해져 의미 없는 행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세상이 멸망할 날도 남지 않았다. ‘미래의 향기’가 그것을 말해준다.”
순간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상이 멸망한다고?
그러나 사막드래곤의 다음 말은 더욱 예상치 못하게 놀라운 것이었다.
“그 향기는 지금 네게서 풍기는 불길한 냄새와 흡사하다. 어쩌면 네가 차후 벌어질 멸망과 크게 연관이 있는 인물인 것일까? 알 수가 없군.”
사막드래곤은 퇴화된 눈이 보이기라도 하듯 내 쪽을 바라보았다.
“묻고 싶다. 운명에게 선택받은 자는 크게 두 가지 길을 걷는다. ‘파멸의 길’, 혹은 ‘지키는 길’. 만일 네게 그러한 갈림길이 주어진다면 너는 어느 길을 택해 걸어갈 것인가.”
파멸의 길.
지키는 길.
두 가지의 길이 주어진다면, 언제든 내가 택할 길은 당연히 하나다.
“전 지키는 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아가라. 어쩌면 네가 그 멸망을 막아낼 인물일지도 모르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사막드래곤은 귀찮다는 어조로 뜨거운 모래에 꼬리를 틀며 내려앉았다.
폭풍은 가라앉고 우리를 위한 길이 닦아놓은 것처럼 깨끗이 드러났다.
“용이 살려줄 때는 바로 가야 합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헤르탄이 말했고, 우린 움직였다.
사막드래곤이 모래에 스스로 자기 몸을 묻으며 작별인사로 말하였다.
“한 번 사는 인간이여. 네가 모든 것을 지키는 길을 걷기를 바란다.”
모래를 파고든 용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우린 한숨 쉬었다.
내가 업고서 걷던 퀸소히니베가 깨어난 것은 한참이 지나간 후였다.
그녀가 길게 하품을 하였다.
“내가 언제 단잠을 잤던 것이야?”
“기뻐해라. 너, 나 아니었으면 웬 노인네한테 몸을 뺏겼을 거라고.”
“내 노예가 열사병에 걸리고 만 것이야? 역시 인간은 나약하다니까.”
퀸소히니베가 얼른 내 등에서 내리고는 나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윽, 이 은혜도 모르는 자식.
그때 샬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드워프를 찾을 때까지는 저희도 당신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목적이 같으니 여럿이면 더 수월하겠죠.”
“모든 탐사단 인원이 같은 의견입니까?”
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신 일행. 회귀자의 눈에도 딱히 평범해 보이지는 않아서요. 함께하면 지금이 재미없는 삶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기도 하고요.”
적색대륙 전생지식이 풍부한 베테랑 회귀자들이라면 물론 환영이다.
사막을 횡단하며 나는 생각하였다.
‘사라진 재능의 행방을 알아내려면 황제, 장비강화와 조력자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드워프에게 가야 한다.’
펜타그램을 바라보며 고민하였다.
지금 우리는 누구에게 가야 할까?
나는 고심하고 결단을 내렸다.
‘두 길이 엇갈린다면 합쳐버린다.’
***
“……난 질투가 많은 것 같아. 다른 애들 보면 막 내가 못나 보여.”
“너는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열등감만 느껴선 살기 힘들 거야. 롬도 그렇게 생각해?”
“너는, 죽게, 될 것이다.”
“……정말로?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을까? 먼저 다가갈 자신감이 없는걸.”
“너는? 죽게 될 것이다.”
“……역시 롬은 소중한 친구야.”
황당한 대화에 나는 어이없었다.
“너희, 그렇게 대화가 되냐?”
“……롬은 아주 착한 애야. 아빠.”
그런데 초화는 저 말을 도대체 어떻게 알아듣는 거람?
뜻밖에도 롬은 내 애완수들이랑 굉장히 빠르게 친해졌다.
그 수줍고 내성적인 초화랑 손쉽게 말을 텄으니 할 말 다했다.
“꾸왁!”
동북이는 통통한 몸을 뽈뽈 기며 롬이 내어준 건량을 주워 먹었다.
“…….”
달귀도 롬이랑 팔씨름을 하고 싶은지 녀석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다.
나는 괜스레 섭섭해서 입술 주변을 긁적였다.
“놀기도 잘 노네. 아빠처럼 느껴지기라도 하는 건가.”
그러자 나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이 툴툴대며 말했다.
-아빠라니? 롬은 19살이야.
“뭐, 19살이라고? 저 덩치가?”
거참 요즘 애들은 크기도 잘 커.
사막을 횡단하면 크고 작은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와 마주치게 된다.
개중에 앞길을 가로막는 선인장이나 함정을 파는 개미지옥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로 롬이었다.
‘확실히 아군일 때는 도움이 돼.’
거물이자 불세출의 검사!
롬이 지닌 희푸른 방패는 작은 몬스터쯤은 단숨에 터뜨려 파괴했다.
“그런데 너흰 둘 다 어쩌다가 백치인 회귀자를 주인으로 모시게 됐냐?”
-롬도 처음부터 백치는 아니었어.
소극적인 검의 얘기를 요약하자면 롬은 처음엔 유능한 회귀자였다.
그러나 밴시에게 백치가 된 것은 ‘황제’를 만나게 된 이후였다 한다.
-그래서 우린 그 황제한테 복수할 거야. 롬의 원한을 갚아주기 위해!
방패가 알아서 웅웅거리며 말했다.
한 번 손대서 대화를 나눈 이후로 무구의 목소리는 저절로 전해졌다.
‘이유야 어찌 됐든지 쓰러뜨리고자 하는 목표가 일치하는 것은 편해.’
머지않아 황제와도 재회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재능이 사라진 것도 황제와 연관이 있을 게 분명하다.
“대장. 안색이 좋지 않아 보여요.”
“재능이 하나 없어졌잖아. 기분 좋아서 웃을 일은 아니지 않냐?”
“그러게요. 대장이 항상 재능으로 이득보는 것만 보다가 그러는 걸 보니 고소하네요.”
“……너, 지금 그게 할 소리야?”
내가 은근히 기분 나빠 얼굴을 살짝 찌푸리자 카티에가 픽 웃었다.
“뭘 긴장하고 그래요? 검술 재능 하나로도 대장은 늘 이겨왔어요.”
“맞습니다. 전생에서도 검의 재능만으로 정점에 수없이 올랐던 범철입니다. 그러니 잠금 해제 재능 하나 없다고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상당히 일리 있는 조언이었기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설령 위기가 생겨도 걱정 마십시오. 범철의 곁엔 우리가 있습니다.”
“동감이에요. 지켜줄게요. 대장.”
정신은 불안정해도 믿음직한 회귀자를 동료로 뒀단 것이 때론 좋다.
헤르탄이 걸음을 멈춘 것은 그때였다.
“하지만 범철.”
모두가 그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나만을 보았다.
“때론 외로움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각오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걸었다.
고개를 갸웃하고 나도 걸어갔다.
하지만.
이때 헤르탄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못한 것을 나는 쭉 후회하게 된다.
‘각오하고, 대비했어야만 했어. 언젠가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은 나흘 뒤, 내 모든 운명을 뒤트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위기와 비교도 되지 않을 비참함을 품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